31. 친구
오후 강의를 마치고 돌아온 레오는 기숙사 방문에 붙은 메모를 발견했다.
1층에 서신이 도착해 있다는 내용.
발신자는 지오르였다.
‘안 그래도 찾아가려고 했지.’
방금 클라인에게 광산 채굴이 정상화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참이다.
그로 인해 미스릴 시세가 다시 크게 움직인 것이 틀림없다.
1층에 들러 지오르가 남긴 메시지를 확인했다.
건네받은 60실버로 매도권을 샀으며, 이후 광산 정상화 소식과 함께 미스릴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해 매도권의 가치가 폭등했다는 내용.
“217배?”
상상 이상의 숫자에 레오는 헤- 입을 벌렸다.
그저 막연히 크다는 생각뿐, 현실적인 감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매매권 투자를 실제로 해 본 건 처음이다.
막연히 큰 수익을 볼 수 있다고만 생각했지, 어느 정도 규모일지는 가늠하지 못했다.
‘이런 수익이 가능하긴 하구나….’
회귀 전 미스릴 가격이 폭등할 때, 매수권 투자로 수십 배를 벌어들인 이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다.
그것이 생각나 응용해 보았을 뿐인데….
60실버의 217배면 대략 13,000실버.
다시 환산하면 130골드.
붉은 이리 용병대를 이끌었을 때도 단기간에 그만한 돈을 만져본 적은 없다.
뒤늦게 계산해 보고 금액이 구체화되자 손이 덜덜 떨렸다.
서둘러 지오르가 기다리고 있을 상회 거래소로 향했다.
거래소 1층의 넓은 홀.
지오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린 곳을 찾아가니 높이 솟은 나무 판넬에 시선이 못 박힌 지오르가 서 있었다.
“아저씨?”
“레, 레오 님!”
지오르는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이다. 눈 아래가 시꺼먼 것이 꽤나 수척해 보이기도 했다.
그는 커다란 눈동자를 휘휘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사람이 적은 곳으로 레오의 팔을 잡고 이끌었다.
“잠깐 이쪽으로 오시죠. 짧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광산 정상화 소식.
미스릴 시세의 원복.
그리고 그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요동친 매수권과 매도권 가격.
한때 세 배 가까이 폭등했던 미스릴 시세는 현재 최고점 대비 절반 넘게 떨어져 평소 가격에 거의 근접한 상태였다.
“한마디로 대박을 쳤다는 말이네요.”
“그 정도 표현으로 부족하지 않을까요. 어쨌든 제가 판단을 할 수가 없어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시세는 어떤데요?”
“오전까지 크게 움직이다가 두세 시간 전부터는 큰 변동 없이 횡보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러면 이만 정리하죠. 미스릴 시세도 거의 원래대로 돌아왔으니까.”
“지금 처분할까요?”
“그렇게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당장 다녀오겠습니다.”
비장하게 대답한 지오르가 서둘러 거래소 창구의 인파 속으로 사라졌고.
잠시 후 한결 홀가분한 얼굴로 돌아왔다.
“여기 있습니다. 보는 눈이 많아 일단 수표로 받아왔습니다. 나중에 저희 지점에서 언제든 현금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게 낫겠네요.”
수표를 받아 확인한 레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159골드?”
“오전보다 더 올랐거든요. 혹시나 연락 드렸을 때 가격보다 떨어질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하….”
헛웃음이 나온다.
이 종이 쪼가리 한 장에 이렇게 큰 숫자가 쓰이기도 하는구나.
덱스가 있었다면 아마 놀라 뒤집히지 않았을까.
“이 돈 진짜로 받을 수 있는 거 맞죠?”
“물론입니다. 저희 상회 거래소가 그 정도 규모는 됩니다.”
“…만약 규모가 따라오지 못할 숫자라면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말로 들리네요.”
“상회가 파산할 규모라면 말이죠.”
번 돈을 전부 투자해서 또 대박을 치면 어떨까도 생각해 봤지만, 상회가 파산해 버리면 의미 없는 숫자 아닌가. 지금 당장은 딱히 더 떠오르는 것이 없기도 하고.
‘지금 돈에 목매고 있을 때가 아니지.’
할 일이 많다.
그러니 돈을 버는 건 지오르에게 일임하는 게 낫다. 생각나는 정보를 제공하면서 말이다.
“여하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저씨 덕분에 이렇게 큰돈도 만져 보네요. 약속대로 수익의 5푼은 수수료로 챙겨가세요.”
“저도 감사드립니다. 힌트를 주신 덕에 미스릴을 좋은 가격에 팔 수 있었거든요.”
지오르는 어느 때보다 시원한 미소를 보였다.
그저 며칠 동안 변하는 숫자를 지켜본 것이 전부인데 살이 쭉 빠질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던 지오르다.
이제야 좀 발을 뻗고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 * *
줄리앙은 피곤한 얼굴로 강의실로 향했다.
주말의 절반을 계획에 없던 외출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밤잠도 제대로 못 잔 건 물론이고 오가며 마차에서 긴 시간을 보냈더니 아직도 온몸이 욱신거린다.
일요일 내내 침대에 누워 있던 걸 생각하면 사실상 주말을 온전히 날려 버린 셈이다.
“으으….”
걸을 때마다 신음이 나왔다. 그나마 어제 종일 아팠던 엉덩이가 조금 괜찮아졌다는 건 희소식이다.
강의실에 도착하자 파블로와 니앙이 익숙하게 일어나며 그를 맞았다.
“지난번하고 같은 자리로 맡아 놨어. 괜찮지?”
“그래.”
푸석해 보이는 머리칼과 눈 밑의 짙은 그늘.
평소와 달리 부쩍 피곤해 보이는 줄리앙의 모습에 파블로와 니앙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왜 저래?’
‘나도 몰라.’
셋의 관계에서 일반적으로 먼저 말을 꺼내는 쪽은 줄리앙이었다.
불평하거나, 면박을 주거나, 과시하거나. 어쨌든 줄리앙이 말하면 다른 두 사람은 그에 맞춰 대화를 맞춰 나갔던 것이 보통이다.
평소였다면 주말 동안 있었던 일을 줄리앙이 먼저 이것저것 늘어놓았을 터였고, 어떤 내용이 든 두 사람은 맞춰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왜 저러지? 주말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우리가 뭘 잘못한 건 아니겠지?’
줄리앙이 입을 다물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피곤하고 의욕이 나지 않았을 뿐.
“하암….”
줄리앙이 눌러 온 하품을 작게 뱉어 내자 파블로가 슬쩍 눈치를 보다가 먼저 물었다.
“피곤해 보이네. 주말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아, 그냥 좀….”
무뚝뚝한 단답.
파블로는 적당한 대답에 실패했다.
그가 어색하게 미소로 굳어 있는 사이, 니앙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바쁘게 지냈나 보다. 나는 내내 뒹굴거리기만 했는데, 헤헤헤.”
헤실헤실 웃으며 말하는 와중에도 줄리앙의 반응을 살피는 니앙.
평소라면 “그러니까 네가 안 되는 거야”라든가 “내가 너하고 같냐?” 같은 패턴으로 대꾸할 것이다. 그러면 “역시 그렇지, 줄리앙은 다르다니까.”라며 치켜세워 줄 심산이었다.
“그래, 바쁘긴 했네.”
역시 돌아온 대답은 담백하기 그지없었고.
니앙도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그사이 강의가 재개됐다.
‘불편해.’
줄리앙은 아까부터 그런 기류를 느꼈다. 굳이 말로 내뱉지 않은 것뿐이다.
파블로와 니앙이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예전 같으면 행동 하나, 말투 하나에 전전긍긍하는 둘을 보면서 우월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엊그제 마차 안에서 덱스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야, 줄리앙]
아카데미로 돌아오는 길.
마차에서 깜빡 잠들었다가 눈을 뜨니 덱스만 깨어 있었다.
괜히 어색할 것 같아 다시 눈을 감고 자는 척하려는데.
[안 자는 거 다 안다.]
…쳇.
[너 혹시 아직도 꽁해 있는 건 아니지?]
[꽁해? 그렇게 사람을 때려 놓고. 꽁해 있냐고?]
울컥-!
울분이 치밀어 올라 나도 모르게 대꾸한 줄리앙.
[어… 내가 좀 심했나? 그건 미안.]
으드득- 이가 갈렸다.
사과를 받았는데 왜 더 열 받는 거지?
[근데 따지고 보면 네가 먼저 시비를 걸었잖아. 딱히 너도 잘한 건 없어. 그건 알지?]
[…그건 그렇지.]
[그래도 사과하는 건 앞으로 너랑 잘 지내고 싶어서 그런 거야.]
[갑자기 걱정이라도 되기 시작했냐? 베니에르 가문의 장자에게 손을 대서?]
그 말에 덱스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응수했다.
[개소리 하지 말고. 그딴 거 생각했으면 애초에 때리지도 않았겠지.]
[…그러면 왜 사과를 하는 거야?]
[원래 이러면서 친구가 되는 거 아니냐? 서로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 화해하고. 싸웠으니 화해를 제대로 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싸우고 때리고 그러다 화해하고, 그러면서 친구가 되는 거라고?
줄리앙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껏 그런 관계를 가져 본 적이 없었으니까.
친구를 자처한 이들은 모두 줄리앙이 하자는 대로 했다. 언제나 기분을 맞춰 주려 노력했다. 그러니 당연히 싸울 일도 없었다.
그래서 덱스의 말이 조금 혼란스러웠다.
[최소한 나한테는 그게 정상이야. 귀족들은 뭐 좀 다르냐? 너도 네 친구들하고 다투기도 하고 그럴 거 아냐.]
‘네 친구들’이라는 건 파블로와 니앙을 말하는 거겠지.
줄리앙은 생각했다. 그 둘과 다투거나 싸운 적? 없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무슨 말을 해도 따라 줬으니까.
[까놓고 말해서 지금 아니면 언제 치고받고 싸운 친구가 생기겠냐? 너 같은 귀족은 특히 그럴 거 아냐.]
줄리앙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동의했다. 작게는 개인의 성공을, 크게는 가문의 부흥을 위해, 귀족은 언제나 인간관계에 이해타산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가문의 이름을 가지는 귀족이라면 모두가 가지는 의무였다.
‘친구라….’
줄리앙은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파블로와 니앙. 두 사람을 생각하니 가슴이 갑갑하다.
친구란 대등한 관계에서 출발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과연 그들과 대등한 관계인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이렇진 않았다. 열 살 무렵 처음 알게 된 두 사람과는 꽤나 마음이 맞았다.
같이 마법 공부도 했고, 탐험하겠다며 셋이서 성을 빠져나간 적도 있다. 그러다 함께 혼나기도 했지만 즐거웠던 기억이다.
당시에도 둘은 줄리앙을 잘 따랐지만, 적어도 지금 같은 관계는 아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가문의 위세를 빌어 두 사람의 위에 서려고 했던 것이.
우정은 허울이 되었다. 그저 서로 필요에 의한 관계로 변질됐다.
줄리앙은 두 사람 위에 군림하며 만족감을 얻고자 했고, 파블로와 니앙은 가문의 이득을 위해 수모를 참았다.
흘깃.
아주 조금 고개를 돌리자 눈이 마주친 니앙이 헤헤 웃는다.
표정은 웃고 있지만 긴장 섞인 눈빛이다.
‘그래, 이건 친구가 아니지.’
레오, 덱스, 클라인.
하루 남짓한 시간을 함께 보냈을 뿐이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셋의 관계야말로 친구라 불리는 것에 가깝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과 있는 동안 내내 느꼈던 소외감.
그것은 파블로와 니앙과 함께 있는 지금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다.
싸우고 화해한다.
덱스의 말대로 그렇게 하면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는 걸까.
오전 강의가 끝나고 여느 때처럼 함께 점심 식사를 마치고.
줄리앙이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파블로, 니앙.”
“응, 왜?”
이제야 뭔가 말해 주려나 보다- 하고 화색이 된 두 사람에게.
줄리앙은 청천벽력 같은 말을 던졌다.
“우리, 싸워 볼래?”
턱.
파블로와 니앙의 안색이 푸르죽죽하게 변했다.
아무래도 방금 먹은 게 얹힌 것만 같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