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32화 (32/127)

32. 송곳은 삐져나오기 마련 (1)

“론마르에 있는 가족들 말이야. 이쪽으로 부르는 거 어때?”

“어? 갑자기?”

갑작스러운 레오의 제안.

덱스는 버릇처럼 눈을 끔뻑거렸다.

[같이 황립 아카데미에 가자.]

[가서 보란 듯이 성공하는 거야, 그리고 식구들을 수도로 불러서 떵떵거리며 사는 거지.]

처음 론마르를 떠날 때 레오가 했던 말이다.

덱스도 맞장구를 치긴 했다만, 당시에는 아카데미에 입학한다는 것조차 꿈 같았다.

촌놈이 성공해 봐야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론마르도 좋은 곳이지만 이왕이면 가족과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어. 어머니하고 여동생도 더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고.”

“그거야 나도 마찬가지지.”

그런데 이제는 마냥 허황된 일이 아니게 됐다.

재능 있는 마법사라니! 이제 아카데미만 졸업해도 돈벌이 걱정은 안해도 되지 않을까.

“언제나 문제는 돈 아니겠어? 그래도 아카데미 졸업하고 몇 년 바짝 모으면 수도에 집 하나 정도 마련할 수 있겠지?”

덱스도 몇 년 바짝 번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저 지금 당장 방법이 없으니 미래를 기약하자는 의미였을 뿐.

“그래서 그거 말인데, 지난번에 투자한 게 좀 잘 됐거든? 당장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뭐? 그게 며칠이나 됐다고?”

공금 60실버를 투자해 보겠다고 한 게 불과 며칠 전이다.

그걸로 돈을 벌었다고? 그래 봐야 얼마나 되겠나 싶던 덱스에게 이어지는 레오의 말은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얼마라고?”

159골드.

상상 이상의 거액에 덱스는 고장이라도 난 듯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그게 60실버 투자해서 벌 수 있는 돈이야?

“그러니까 얼마라고?”

“정신 차려, 인마.”

“아니,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어쨌든 네 몫은 절반이야. 그래서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게 있는데….”

레오가 뭐라 설명했지만 덱스는 영 들리지 않는 표정이다.

“야, 내 말 듣고 있냐?”

“그러니까 양가 정착금으로 일부를 제하고, 나머지 돈을 지금처럼 적당히 투자하면서 불리자는 거잖아?”

“그렇지, 물론 네 몫을 받고 싶다면 말해. 원하는 대로 해 줄테니까.”

덱스에게 아무 말 안 하고 계속 투자하며 돈을 불려 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레오는 처음부터 말을 꺼내기로 했다.

거액의 돈은 멀쩡한 사람의 마음도 흔든다. 덱스는 믿을 수 있는 놈이지만 그렇다고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 필요는 없다.

“다 좋아. 다 좋은데…. 왜 내 몫이 절반이나 되냐? 너무 많아.”

덱스는 여전히 자신의 지분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현상범을 잡은 것도 레오고, 고블린 사냥을 한 것도 레오다. 거기다 레오가 돈을 벌러 다니는 동안, 자신은 여관에서 돈을 쓰며 마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러니 절반은… 아무리 생각해도 과했다.

“지랄하지 말고 준다면 좀 받아.”

“못 받아. 그냥 네가 알아서 해라.”

“그럼 내 마음대로 한다. 나중에 울면서 후회해도 소용없어.”

에라이, 순진한 새끼.

레오는 그 말을 애써 눌렀다.

“여기 집은 엄청 비싸겠지?”

“대충 알아봤는데 15골드 내외면 괜찮은 집을 구할 수 있겠더라. 너희 어머니 음식 솜씨 좋잖아. 식당 하나 열어 드리는 건 어때?”

“그거 좋지, 우리 엄마의 장어 파이는 일품이거든.”

“아니, 그건 좀….”

도대체 숲속 마을에서 장어를 어디서 구하시는 거냐고.

애초에 그거 장어가 맞긴 해?

“…덱스, 너 뱀 싫어했지?”

“으으, 왜 갑자기 뱀 이야기를 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뱀이잖아. 상상만 해도 소름 돋네.”

생각해 보니 덱스는 어릴 적 뱀에 물려 호되게 고생한 적이 있다. 그 트라우마 때문에 뱀이라면 아직도 진저리를 친다.

…갑자기 뱀 껍질을 벗겨 파이에 넣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마 장어 파이는 안 될 거야…. 여기는 장어 구하기 힘들거든.”

“그래? 그러면 할 수 없지.”

단순한 놈이라 다행이다. 얼른 말을 돌리기로 했다.

“어쨌든 집 구하고 가게도 차리고 여윳돈 좀 드리고 하자. 그래도 대충 절반 넘게 돈이 남아. 그걸로 다시 투자해서 불려 보자고.”

“네가 알아서 해. 당장 내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러면 그렇게 결정! 내일 저녁에 같이 집 좀 보러 나가 보자.”

당장 내일 편지를 보내더라도 론마르의 집을 정리하고 올라오는 데 적어도 한 달은 걸릴 터.

그동안 지오르의 도움을 받아 집을 구해 볼 생각이다.

다음 날.

레오와 덱스는 오후 수업이 끝나자마자 부지런히 아카데미를 나섰다.

성문을 통해 외구역으로 나가자 지오르가 보낸 마차가 그들을 맞았다.

“프라인입니다. 제가 오늘 두 분을 모시겠습니다.”

멋들어진 턱수염을 기른 남자.

지오르와 같은 상회 소속으로 부동산 중개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이라고 했다.

“원하시는 조건에 대해서 지오르 님께 대략 설명을 들었습니다. 치안이 가장 중요하고, 생활에 불편함이 없어야 하며, 음식 장사를 할 가능성도 있으시다고요.”

“맞습니다. 두 집이 가까이 붙어 있으면 더욱 좋겠네요.”

“예, 말씀하신 조건으로 매물을 몇 군데 추렸습니다.”

수도이다 보니 다른 중소 도시보다 전반적인 치안은 단연 뛰어나다. 하지만 반대로 외부인도 많이 유입되기에 불안 요소도 남는다.

어쨌든 첫째는 가족의 안전이다.

“여기가 첫 번째 매물입니다. 내구역 성문에서 그리 멀지 않고 조용한 곳이지요. 바로 길 건너 시장이 있고 그 옆에는 경비 초소도 있습니다.

프라인의 발이 멈춘 곳은 정갈해 보이는 이층집 앞이었다.

짙은 색의 목재 골조를 바탕으로 외벽에 회백색 점토를 바른 집이다.

뾰족하게 위로 솟은 붉은 지붕이 석양빛을 받아 더욱 따뜻하게 빛난다. 특히 위층에 크게 낸 창문이 마음에 들었다.

“비어 있으니 한번 들어가 보시죠.”

내부는 꽤 넓었다.

1층에는 화덕이 붙은 주방과 방 하나, 창고로 쓸 공간이 구분되어 있고, 2층에는 큰 방 하나와 작은 방이 두 개나 있다.

아예 일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돈을 안겨 드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어머니 성격에 맞지 않는다. 소일거리로 빵 가게 정도라면 딱 좋을 것 같다.

레오는 이곳에서 사는 가족을 상상해 보았다.

1층에서 빵을 굽는 어머니.

고소한 빵 굽는 냄새에 손님이 이끌려 방문하면 여동생 릴리가 반갑게 맞을 것이다. 귀여운 데다 싹싹하기까지 하니 릴리를 싫어할 손님은 절대 없겠지.

2층 큰 방은 어머니와 릴리가 함께 쓰면 된다. 릴리가 조금 더 크면 자기 방을 가지고 싶다고 하겠지만 아직은 응석을 부릴 나이다. 가끔 집에 들러 자고 갈 때 작은 방을 쓰면 딱 좋겠다.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모습을 떠올리자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좋은데요?”

“마음에 드실 줄 알았습니다. 바로 길 건너 맞은편 집도 꽤 좋은 매물입니다. 바로 가 보실까요?”

비슷한 느낌의 집이 바로 맞은 편에 하나 더 준비되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따뜻한 느낌이 드는 푸른 지붕을 가진 이층집.

크기도 비슷하고 내부 구조도 큰 차이 없다.

“덱스, 어떤 것 같아?”

“둘 다 너무 좋네.”

덱스는 아까부터 입을 벌리고 집을 구경하고 있다. 하도 땜질을 해대서 누덕누덕한 고향집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 이후에도 프라인을 따라 매물 서너 개를 더 보았지만 처음 보았던 두 집만큼 느낌이 오는 집은 없었다.

“제일 처음 봤던 두 집으로 하고 싶은데. 계약까지 시간을 좀 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지오르 님이 최대한 편의를 봐 달라고 하셨는걸요.”

“고맙습니다.”

어느새 론마르를 떠나온 지 두 달.

한 달만 더 있으면 가족과 가까이서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 * *

1학년 학부 공통 ‘전략과 전술 개론’ 강의.

이오페는 백 명이 넘는 생도들 앞에서 익숙하게 강의를 이끌었다.

전사든 마법사든 아카데미는 생도에게 최소한의 전투 능력을 요구한다. 그것은 개인 전투 능력은 물론 지휘 능력까지 포함하기에, 전략 전술은 필수 과목이다.

‘훌륭한 강의야.’

레오는 이오페의 첫 수업을 그렇게 평했다.

전략과 전술에 대한 이론 강의는 처음 접하지만 내용 자체는 낯설지 않다. 그저 경험적으로 알고 있던 것을 이론과 사례로 다시 한번 점검하는 느낌이었다.

마을에서, 숲에서, 들판에서, 산지에서.

대규모 회전이나 소규모 유격전부터 성벽을 사이에 둔 공성과 수성까지.

귀족에게 고용되어 인간을 상대로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고, 몬스터 토벌에 앞장서기도 했다.

제국의 손꼽는 용병대를 일구어 냈다는 것은 그만큼 수많은 전장에서 살아남았다는 뜻.

전장의 경험의 다양성만 따지자면 오히려 레오가 이오페를 압도할 정도다. 그 때문에 강의를 바라보는 레오의 시선은 다른 생도들과 다른 수준일 수밖에 없었다.

‘흐음….’

강의 중 이오페의 눈이 때때로 레오를 좇았다.

입학시험 때 그가 보인 기행은 결과적으로 학부장 카르파의 마음을 움직였다.

카르파는 저 소년에게서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이오페는 그것이 궁금했다.

‘다른 녀석들과 눈빛이 달라. 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강단에 선 지 벌써 10년, 이제 생도들의 표정만 봐도 대충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다.

두 시간 넘게 이어지는 강의에도 대다수의 생도들은 여전히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냈다.

강의 자체에 흥미를 가지고 집중하는 이들도 있지만, 근위기사단 역사상 유일한 여성 단원이라는 이력을 가진 이오페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섞인 시선도 꽤 많다.

하지만 레오는 어느 쪽도 아니다.

기대, 흥미, 동경, 호기심 같은 감정은 그에게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강의에 집중하다가 그저 가끔 혼자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 눈빛은 자칫 도전적이기까지 해서 마치 강의의 수준을 평가하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한번 시험해 볼까.’

마침 강의를 마무리할 시간.

이오페는 강의용으로 준비한 여러 지도 중 하나를 꺼냈다.

준비된 마법 도구로 지도를 비추자 모두가 볼 수 있을 정도로 확대된 지도의 영상이 그녀의 등 뒤에 나타났다.

지명은 표시되지 않았지만 틀림없는 전술 지도였다.

“지도 서쪽에 성채 요새가 있다. 그리고 북동쪽으로부터 적이 침공해 오고 있다. 적의 주력 병종은 경보병, 경기병, 궁병으로 이루어졌으며, 여기 보이는 강에 도달하기까지 이틀, 도강하여 성문 앞까지는 추가로 반나절이 더 걸린다. 여러분이 성채 요새의 지휘관이라면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양측 전부 전투 마법사는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기사의 수준도 비슷하다.

방어군의 훈련도는 상대와 비슷하지만 병력은 절반 수준으로 열세이다. 가까운 아군에게 지원을 요청하더라도 지원군이 도착까지는 빨라도 열흘 이상이 걸리는 상황.

“대답해 볼 사람은 아무도 없나?”

이오페가 생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만큼은 백여 명이 모인 강의장이 숨소리도 들릴 만큼 고요했다.

“좋은 대답에는 가산점을 주지.”

가산점이라는 말에 생도들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서로 눈치를 보는 사이, 줄리앙이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아군은 병력이 열세입니다. 식량과 보급이 부족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성벽에 의지해 수성전을 펼치며 지원을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정석적인 답변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식량은 그리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다. 성에 비축된 식량이 일주일 분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나?”

“…아껴 먹으면 열흘까지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요?”

줄리앙이 잦아든 목소리로 답했다.

아무래도 가산점은 받기 어려워 보였다.

“다른 의견은 없나?”

마법 학부의 생도 하나가 손을 들었다.

“적은 숫자가 많다고 방심할 것입니다. 틈을 타서 기습을 시도하면 어떨까요?”

“어느 타이밍에 어떻게 기습할 생각이지? 어떻게 하면 기습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을까?”

“성 위에서 잘 살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그리 깊이 있는 답변은 아니다.

이오페는 손을 든 다른 생도에게 시선을 옮겼다.

“저는 도강할 때를 노려 보겠습니다. 궁수들로 견제하며 피해를 주겠습니다.”

“화살은 무한하지 않다. 도강을 견제하며 화살을 소모하는 것이 성벽 위에서 공격할 때보다 나은가?”

“어… 그러면 성벽에서 쓰는 게 나을 것도 같네요.”

생도는 빠르게 주장을 철회했다.

이오페는 딱히 생도들의 주장을 반박하려 한 것은 아니다. 그저 각 판단의 근거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이후에도 몇몇 대답이 나왔지만 이오페의 입에서 가산점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레오, 네 의견은 어떻지?”

“저요?”

“그래. 전사 학부 수석의 답변을 들어 보고 싶군.”

뭔가 다를까?

레오를 바라보는 이오페의 눈에 기대감이 서렸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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