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학년 교류전 (2)
오러로 신체 강화를 한 상태인데 풍압만으로 터진 코피.
만약 제대로 맞았다면 얼굴이 뭉개졌겠지.
패트릭은 힘없이 창을 내렸다.
“하아….”
겨우 한 합.
가문의 비전 기술까지 간단히 파훼당하며 패배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무력감에 고개가 절로 떨어질 것 같았다.
“선공 타이밍을 빼앗긴 건 아쉬웠다. 거기서 도망가지 않겠다고 판단한 건 좋았어. 하지만 무기를 잡혔을 때 판단이 너무 늦어.”
결과를 다 함께 복기하는 방식이었고, 클라인이 가장 먼저 의견을 말했다.
“그렇게 잡힐 줄은 생각도 못 했어. 무무카의 완력이 상상 이상이었으니까. 그래도 변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은 할 말이 없네.”
누가 거기에서 창을 잡아챌 수 있을까.
창을 잡히고 움직임을 제한당한 순간, 패트릭의 패배는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찌르기는 꽤 좋았다. 회수 타이밍이 빠르더군, 혹시 이후 연격이 준비되어 있었나?”
“…맞아. 목과 명치를 함께 공격할 셈이었어.”
패트릭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가문의 비전 기술이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마치 자신의 부족함으로 가문을 욕보이는 것만 같아서.
“야, 그 찌르기 한 번 더 보여 줄 수 있냐?”
레오의 요청.
“응? 어렵지야 않은데.”
패트릭은 엉거주춤 일어나 다시 창을 잡았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해서 실패했을 뿐이다. 아버지나 형님이 보인 기술은 훨씬 대단했으니까.
그것을 절반이라도 보일 수 있다면….
다시 한번 창신을 그러쥐었다. 두 발을 단단히 지면에 박아 넣었다.
방금 전, 무무카와 대치했던 상황을 다시 한번 머리에 그리며 창을 내질렀다.
팡- 팡-!
허공에 짧은 간격으로 파공음이 울렸다.
무무카가 맞은편에 있었다면 목과 명치의 위치.
패트릭의 창끝은 정확히 그곳을 찍었다.
초격을 억누르지 못하면 이격까지 허용할 수밖에 없는 기술. 그런 의미에서 무무카의 본능적인 움직임은 최상의 대응이었다.
“어땠어?”
패트릭이 어색하게 물었다.
초격과 이격이 거의 동시에 쇄도해야 본래 의도를 담은 기술이다.
방금 보인 완성도는 아직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이거 혹시 그거야?”
무가(武家)의 대표적인 인물인 만큼 클라인이 가장 먼저 기술을 알아봤다.
그 번쩍임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몸 두 군데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마이어 가문의 비전 창술.
“…맞아. 가문의 비전 창술이야.”
“확실히 완성도만 조금 더 높이면 상대하기 힘들겠어.”
패트릭의 시선이 클라인에게 떨어져 바닥으로 향한다.
…그게 어려웠다.
손바닥이 터질 만큼 휘둘러 간신히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 전부였다.
“너, 내가 조언한다고 하면, 들어 볼 생각 있냐?”
씁쓸한 표정의 패트릭에게, 레오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중요한 건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의지다.
자존심 세우는 녀석을 달래 가면서까지 가르칠 생각은 없었으니까.
패트릭은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곧 진지한 얼굴로 끄덕였다.
다른 것도 아니고 가문의 비전 기술이니 외부 사람이 무엇을 알까 싶다.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오러 배분을 앞발에 조금 더 실어 봐. 초격을 찌르는 순간에.”
패트릭은 고개를 갸웃했다.
전체적인 오러 배분을 어떠한 식으로 하라는 내용은 형님에게도 몇 번이나 충고받은 적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이지, 지금처럼 구체적인 원 포인트 레슨 같은 것이 아니다.
애초에 상대의 오러 배분을 어떻게 세밀히 파악한다는 말인가.
‘그래도 해 보자.’
창을 잡은 이래 변함없는 단 하나의 믿음.
고민하고 의심하는 데 낭비하는 시간만큼 아까운 것은 없다.
다시 한번 창을 쥐었다.
팡- 팡!
“어?”
패트릭의 눈동자가 커졌다.
미세하지만 분명히 조금 다른 느낌이다.
다시 한번 자세를 잡았다. 이 감각을 놓치기 전에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팡- 팡!
미세하게 오러 배분을 조정한 것으로 폭발력이 달라졌다.
하체의 중심 이동이 빨라지면서 자연스럽게 힘의 손실이 줄었다.
다시 한번 해 보자.
줄어든 손실분을 상반신까지 끌어 올린다.
파방-!
한 번 더.
파방-!
땀이 비 오듯 흘렀다. 팔과 허리가 비명을 질렀다.
비전 기술이라는 것은 그만큼 신체에 무리를 야기한다. 쓰고 싶다고 매번 쓸 수 있다면 그게 무슨 비전 기술이겠는가.
하지만 본능이 외쳤다.
지금은 멈추어서는 안 될 때라고.
패트릭은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창을 그러쥐었다.
다시 한번 오러를 배분하고, 꾹 누른 용수철을 단번에 튕겨 내듯 허리와 팔에 폭발력을 집중했다.
파앙-!
초격과 이격이 동시에 공기를 터트린다.
두 개의 파공음이 거의 완벽히 중첩되어 연무장에 울렸다.
“아…!”
마이어식(式) 비전 창술.
섬전(閃電).
제 손으로 처음 성공해 낸 기술.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처음 아버지의 기술을 보았던 10년 전을 떠올렸다.
그래, 그랬지.
그것이 창을 처음 잡은 이유였다.
그때부터 창을 놓지 못하게 됐다.
“축하한다, 진심으로.”
“이건, 다시 한번 막을 자신이 없군.”
클라인과 무무카의 축하.
검을 들고 너클을 쥐었을 뿐, 모두 같은 길을 걷기에 그의 마음을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눈물을 글썽거리는 패트릭.
레오는 한쪽 입꼬리와 함께 엄지를 치켜들었다.
“레오, 너한테는 어떻게 감사를 표현해야 할지….”
“뭐야, 여기서 끝내려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지.”
“…다음 단계라니?”
“오러 소드.”
패트릭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확대된다.
“내, 내가 오러 소드를?”
“하라는 대로만 해 봐. 후회하지 않게 해 줄 테니까.”
패트릭의 등짝을 팡- 소리 나게 때리는 레오.
가르칠 보람이 있는 녀석이었다.
* * *
덱스, 유리아, 세실, 줄리앙.
마법 학부의 대표들도 막 교수실에서 교류전에 대해 들은 참이다.
“간단히 말해서 2학년하고 대련하라는 거잖아?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이 오고. 그거 재미있겠네.”
가벼운 표정의 덱스.
그에 반해 나머지 셋은 꽤 얼굴이 굳어 있다.
“너는 부담 되지도 않아?”
이제는 꽤 편하게 대화하게 된 유리아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우리가 부담될 게 뭐가 있어? 막말로 져도 본전 아닌가? 부담이라면 2학년이 더 심하겠지.”
“그건 그렇긴 한데….”
“아, 너희들은 어깨가 좀 무거울 수 있겠구나. 여러모로 기대받는 게 다를 테니….”
덱스는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황가의 일원인 유리아, 베니에르 백작가의 두 자제.
그들이 느끼는 부담은 확실히 몸뚱이 하나뿐인 자신과 다를 수밖에 없겠다.
“선배들은 얼마나 강할까?”
“어차피 우리하고 서클은 같아. 문제는 경험치겠지.”
마법학부는 보통 3서클 초입에 입학하여 3서클 후반에 졸업하는 것이 평균이다.
그러니 생도 대부분은 3서클에 머물러 있는 상태.
다만 같은 서클이라 해도 그 안에서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며, 특히 아카데미의 1년 교과 과정을 수료한 2학년은 길드 임무 등을 통해 다양한 실전 경험까지 얻어 응용력의 차이가 컸다.
“같은 건 아니지, 유리아는 4서클이잖아.”
내내 듣고 있던 세실이 끼어든다.
자랑스러움이 잔뜩 묻어나는 표정.
실제로 4서클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졸업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이니, 유리아의 성취가 단연 독보적인 것이 사실이다.
“지금 전 학년 통틀어서 4서클은 유리아 한 명 아니야?”
“…창피하게 왜 그래.”
“창피하긴. 유리아는 조금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어.”
세실의 목소리가 단호하다.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을 보던 덱스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좋겠다. 나는 언제 3서클 되냐.”
우뚝.
걷던 이들의 발이 멈췄다.
“……?”
“…그게 무슨 말이야?”
유리아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세실은 휙 고개를 돌리며 되물었다.
“뭐가? 3서클 되고 싶다고 한 거?”
“그래, 그거. 무슨 말이냐고.”
줄리앙마저 미간을 찡그린 얼굴로 대답을 독촉했다.
“그게 이상해? 2서클이니까 빨리 3서클 되고 싶다는 말이지.”
“2서클…? 네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줄리앙과 세실이 동시에 되묻는다.
목소리 톤마저 비슷한 것이 이럴 때 보면 둘이 남매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역시, 그랬구나.”
유리아는 오히려 덤덤했다.
입학시험 때 이미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것.
덱스가 활용한 공격 마법은 2서클의 파이어 애로우 하나였고, 나머지는 죄다 기초 원소 마법을 포함한 1서클이 전부였다.
…그는 단 한 번도 3서클의 마법을 선보인 적이 없었다.
‘말도 안 돼!’
세실이 입을 막았다.
대마법사 메퀸토의 재능에 비견된다는 유리아의 재능이다. 그런데 덱스가 2서클이라고? 그렇다면 두 단계의 서클을 벽을 넘어 승리를 따냈다는 말이야?
유리아가 충격을 받았을까 싶어, 세실은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조용히 곁눈으로 옆을 바라봤다.
그런 걱정과는 달리 유리아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진작 말할 걸 그랬나?’
어색한 분위기에 덱스는 볼을 긁적였다.
자신이 2서클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다들 충격을 받은 듯하다.
‘그래도 딱히 내가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말할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잖아.
까놓고 말해서 이렇게 오래 대화한 것도 거의 처음이다. 꼬우면 지들이 더 강해지든가.
덱스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유리아는 진지하게 고민에 빠져 있었다.
‘실전에서 쓸 수 없는 마법은 의미가 없어.’
지난번 덱스와 대련 이후 많은 생각을 했다.
작금의 귀족 마법사들의 대련은 확실히 실전성과 거리가 멀다. 실력 우위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사교가 주목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유리아는 그 원인이 겨우 수십 년의 평화라고 생각했다.
전장에서 마법사들이 사라진 지 수십 년이 지났다.
대륙 혼란기에는 귀족 가문이 수 명의 전투 마법사를 가신으로 거느리며 세를 과시하기도 했지만, 평화의 시대에는 그것이 불필요했다.
무엇보다 혼란기 때 수많은 베테랑 전투 마법사들이 죽어 나갔다. 초급 마법사를 받아들일 돈이면 기사를 늘리는 편이 효율이 좋았다.
마법사의 상징성은 여전히 건재했지만 점차 실전과 괴리가 커졌다.
자신만 해도 어떠한가, 오직 서클의 성취만 바라보지 않았나. 4서클 플레임 스피어에 성공했지만 실전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에 반해 덱스는 기초 수준의 1, 2서클 마법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숙련도뿐만 아니다. 아쿠아로 윈드 커터의 궤적을 확인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그 응용력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서클의 성취는 마법사의 능력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윽고 유리아가 입을 뗐다.
“덱스, 우리들의 훈련 도와주지 않을래?”
덱스의 전투 방식은 서클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상대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세실과 줄리앙에게도 그것을 깨닫게 해 주고 싶었다.
“난 상관없어. 지금 할래?”
“좋아.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넷은 연무장으로 향했고.
얼마 후 덱스를 제외한 모두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너희, 아무래도 체력부터 길러야 하는 거 아니냐?”
덱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체력 기르기에 최고라는, 론마르에서 레오가 알려 준 그 용병 체조가 떠올랐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