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학년 교류전 (3)
‘젠장, 저게 마법사라고?’
연무장 바닥에 누운 줄리앙은 숨을 헐떡거렸다.
방금 전에 대련을 시작한 것 같은데 지금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죽을 것 같다.
솔직히 덱스와 대련을 시작하기 전에 지난 소각장의 복수를 떠올린 것도 사실이다. 그때는 완력에 당했어도 마법을 쓸 수 있다면 결과가 다를 것이라 믿었으니까.
‘하나도 맞질 않잖아!’
맞추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다.
덱스는 파이어 애로우를 가볍게 피하면서 계속해서 접근해 왔다.
거리 유지를 위해 아무리 움직여도 지치지 않고 달려는 녀석.
다리는 금방 무거워지고 목까지 숨이 차올랐다. 머리가 멍해지니 판단력도 흐려졌다.
나중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쪽팔리게…!’
줄리앙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생각해 보면 녀석이 쓴 마법이라고는 그리스와 아쿠아, 그리고 이상한 불붙은 주먹질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영창과 무영창, 가짜 영창을 섞어 실컷 농락당하기까지 했고, 결국은 마법도 아니고 주먹질에 맞아 쓰러졌다.
아니, 마법 주먹질이면 마법인가? 아무튼.
“나도 저 주먹에 맞을 뻔했던 거야?”
“먼저 기절해서 천만다행이지. 그때만 생각하면 난 아직도 소름이 돋는다니까.”
폭력적이다 싶을 정도로 일방적인 대련.
유리아와 세실은 동시에 양팔을 감싸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음은 누구?”
“내가 할게.”
세실이 일어났다.
마법 충격을 흡수하는 대련용 아티팩트도 잊지 않고 착용한 모습.
“오호, 오빠의 복수를 하러 나왔나.”
“…그런 거 아니거든.”
“둘이 딱히 사이좋은 남매는 아닌가 봐?”
“신경 꺼.”
“왜 짜증을 내고 그러냐…. 나는 여동생 가진 오빠가 엄청 부러워서 하는 말인데.”
평소와 달리 얄밉게 빙글거리는 덱스.
‘저게…!’
세실의 이마에도 살짝 힘줄이 돋았다.
오라버니와 엮이는 것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덱스도 그 정도 눈치는 있을 텐데 오늘따라 말 한마디, 한마디가 거슬린다.
‘흥분하면 안 돼.’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마법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어서는 안 된다.
설사 목젖에 검 끝이 닿는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스승 메퀸토는 입이 닳도록 말했다.
‘마법사 간의 전투는 집중력 싸움이라고 하셨지.’
그러니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것이 먼저다.
빙긋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이는 덱스.
“먼저 들어와.”
“그래, 사양하지 않고.”
세실의 손가락 끝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가장 자신 있는 마법, 라이트닝.
파이어 애로우에 비해 더 빠른 데다가 감전이라는 부수적인 효과도 가진다.
파지지지직-!
푸른 전격이 허공을 지그재그로 밟으며 덱스를 향해 달렸다.
‘이건 까다롭네.’
덱스의 눈동자가 전격을 따라 좌우로 움직였다.
라이트닝은 여태껏 다뤄 본 적 없어서 정보가 부족하다.
코앞까지 다가온 전격을 피해 몸을 굴리면서 동시에 후방에 실드를 폈다. 전격인 만큼 순간적으로 방향을 꺾어 들어올 가능성이 있어 보였기에.
파지지직-!
예상대로 실드와 충돌한 전격이 소멸했다.
아티팩트 목걸이의 색은 여전히 푸르다. 마법 대미지를 거의 받지 않았다는 뜻.
‘역시 직각에 가까운 방향 전환도 가능했어.’
화염 마법과는 다른 성질.
라이트닝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그사이 새로운 전격이 세실의 손끝에서 뿌려졌다.
“라이트닝!”
“파이어 애로우!”
동시에 덱스도 술식을 완성한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투사 마법. 화염 화살 세 개가 동시에 둥실 떠오르더니 세실을 향해 쏘아졌다.
그와 동시에 몸을 날려 거리를 좁히는 덱스.
“칫!”
상대가 저돌적으로 달려오자 세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얼마 전까지 그녀가 알고 있던 마법사의 대련이란 서로 마법을 한 번씩 주고받는 것.
그 상식을 깨부순 것이 입학시험에서 본 덱스와 유리아의 대련이었다.
이렇게 직접 마주해 보니 관전할 때와 압박감의 수준이 다르다.
차분히 생각하며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절대 아니었다.
퍼엉-!
전격과 화염이 충돌하며 폭발했다.
‘아직 두 개 더 남았어.’
세실은 눈을 부릅떴다.
폭발의 잔연을 뚫고 날아드는 불꽃.
재빨리 옆으로 몸을 피하자 화염 화살이 방금 전까지 그녀가 있던 자리를 지난다.
‘덱스는?’
안도할 틈도 없이 사방으로 고개를 돌리는 세실.
눈 깜빡일 시간 정도의 찰나였지만, 덱스의 모습을 놓쳤다.
“여기야.”
어느새 왼쪽 사각에서 접근하는 덱스.
저도 모르게 놀라 뒷걸음친 세실의 발 한쪽이 푹 꺼진다.
“아앗!”
몸을 휘청한 세실이 저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질렀다.
한쪽 발이 삐끗한 것에 불과했지만 깊은 구멍에라도 떨어진 듯 가슴이 철렁했다.
발밑 주변이 여기저기 파여 있었다.
‘어느새…!’
압박해 오는 상대, 불안한 발밑.
언제 디그를 사용했지? 아무리 1서클 마법이라지만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디그를?
라이트닝을 써야 할까? 아까처럼 실드를 두르고 밀고 오면 어쩌지?
마음이 조급해진다.
아무리 마음을 가라앉히려 해도 쉽게 냉정해지지 않았다.
‘공격? 아니면 방어해야 하나?’
혼란, 아주 짧은 망설임.
그 순간 슬며시 뒤통수를 간지럽히는 위화감.
‘왜?’
세실의 미간이 헝클어진다.
덱스는 일부러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디딜 곳 사방을 불안하게 만들어 발을 묶어 두려고도 했다.
어째서?
그리고 왜 그가 접근전으로 승부를 볼 것이라 생각했지?
화악-!
등 뒤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세실은 급하게 뒤를 돌았다.
붉은 화염이 코앞이었다.
퍼엉-!
“아앗!”
아까 지나쳤던 두 개의 화염 화살.
그것이 세실을 직격했다.
아티팩트는 마법적 피해는 흡수하지만, 물리적 충격은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다.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은 세실이 자신의 아티팩트 목걸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완전한 붉은색.
패배를 가리키는 색이었다.
‘…처음부터 이게 노림수였구나!’
한번 발사한 파이어 애로우의 좌표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 화염 화살은 나중에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니다. 처음 발동되었을 때의 좌표대로 이동한 것뿐이라는 뜻.
소름이 돋았다.
냉정한 판단을 방해하고, 목소리로 시선을 빼앗고, 움직임을 주저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이 한 수를 위한 것이라니!
도대체 언제부터 그의 손바닥 안이었던 걸까, 어떻게 그런 전투를 생각할 수 있는 거지?
“괜찮아?”
“으응, 괜찮아. 그냥 조금 놀랐을 뿐이야.”
덱스가 다가와 물었다.
대련 전의 얄미운 웃음기가 지워진 얼굴.
“…어디부터 계획되어 있던 거야?”
“하하하.”
머리를 긁적이는 덱스.
“화난 거 아니지? 약 올린 건 미안. 별 뜻은 없었어.”
“아냐, 쉽게 동요한 내가 미숙했던 거지.”
세실은 힘없이 웃었다.
그래서 대련 전부터 일부러 긁었던 거구나.
남매의 이야기부터 그 얄미운 손가락질까지 전부 계획되어 있었다는 건가.
그러다 어느 하나에 생각이 닿았다.
“…혹시 이전 대련에서 집요하게 접근전만 고집한 것도?”
“아, 그것도 있었지.”
세실의 미소가 무너졌다.
접근하며 압박할 것이라는 그 무의식적인 판단조차 그의 의도에 놀아난 것이었다니.
솔직히 충격이었다. 그간 알고 있던 세계가 무너지는 기분이다.
“유리아의 기분을 조금 알 것 같네….”
자신이 꽤 우수하다고 생각했다.
또래 중 견줄 만한 이는 손에 꼽았고 주변 어른들도 언제나 칭찬뿐이었으니 그렇게 여긴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으그그, 조금 쉬었다가 할까.”
덱스가 앓는 소리를 내며 근처에 주저앉았다.
마법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고 해도 체력적으로 좀 지친 것은 사실이다.
덱스는 앉은 채로 숨을 돌리는가 싶더니 세실과 줄리앙의 얼굴을 한 번씩 보고 뭔가 생각하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고개를 꺾어 잠시 하늘을 보는가 하더니 머리를 벅벅 긁으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되냐? 너희들 셋한테 궁금한 거긴 한데.”
그러더니 대뜸 물었다.
“너희, 마법 왜 배우냐?”
“……?”
셋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왜 마법을 배우냐니.
이거 혹시 기만질이라고 부르는 그건가?
“지금 그 질문 무슨 의미야?”
줄리앙이 가장 먼저 날을 세웠다.
실력 차가 크다는 건 안다. 아무것도 못 해 보고 졌으니 까짓거 놀림도 좀 당할 수 있지.
하지만 여동생과 황녀에게까지 그러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어? 내 질문이 이상했나? 으음…. 그래, 마음가짐? 각오? 뭐, 그런 게 궁금한 거야.”
“…처음부터 그렇게 물어보라고.”
“미안. 내가 말주변이 좀 없어서.”
박차고 일어나려던 줄리앙이 민망한 표정으로 슬그머니 앉는다.
덱스가 헤헤 웃더니 말을 이었다.
“음, 너희들도 알다시피 나는 평민이야. 산기슭 깡촌에서 자랐지. 다섯 살에 약초를 캐러 처음 숲에 들어갔고, 여덟 살에 나무를 베기 시작했어. 열 살에는 첫 사냥에 도전했지.”
갑자기 영문 모를 이야기를 시작하는 덱스.
셋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일단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약초인 줄 알고 독초를 건드렸다가 며칠씩 앓아누운 적도 있고, 사냥하겠다고 숲에 깊이 들어갔다가 역으로 짐승에게 사냥당할 뻔한 적도 있어. 자랑은 아니지만 죽을 고비를 꽤나 넘겼지. 와, 생각해 보니까 나 어떻게 살아 있나 싶다.”
어리다 해서 부모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먹을 것은 항상 부족했고, 고사리손이라도 움직여야 했다.
늑대와 처음 마주쳤을 때는 오줌을 지렸다. 배부른 늑대가 아니었다면 무조건 죽었겠지.
살아난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
“그런 촌놈이 어쩌다 마법사가 되었네? 나는 마법사로서 어떻게 살게 될까? 잘은 모르지만 분명 앞으로도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겠지, 그러다가 어느 날, 운이 좀 나쁘면 죽어 버릴 수도 있고.”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차라리 용병도 나쁘지 않지.
용병 마법사, 언제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삶이겠지만, 그건 론마르에서 사냥꾼이나 약초꾼이었어도 마찬가지다.
“약초꾼이든, 나무꾼이든, 사냥꾼이든… 또는 마법사든. 나는 언제나 목숨을 걸고 살아야 하겠지. 그래서 항상 생각해, 죽는 순간에 최소한 후회는 하고 싶지 않다고. 순전히 운이 더럽게 나빠서 죽을 수도 있어. 뭐, 그런 건 어쩔 수 없지. 그런데 내가 방심해서, 준비가 부족해서 죽는다면 엄청나게 후회할 것 같아.”
목숨을 건다는 것은 모든 것을 건다는 뜻.
모든 것을 걸었는데 결코 소홀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짜내고 짜내서 이겨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별로 이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환경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니까.
그러니 황족이, 귀족이 평민의 치열한 삶을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저.
어중간한 마음으로는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자에게 사냥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그 말을 해 주고 싶었다.
너희는 어떤 각오로 살아가고 있어?
적어도 내게 이기고 싶다면 그 정도 마음가짐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을걸.
덱스는 얼굴의 웃음기를 지웠다.
“다시 물어볼게. 너희는 왜 마법을 배워?”
“…….”
셋은 한참이고 대답하지 못했다.
저마다 필사적이었다고 여겼지만, 덱스의 말을 들어 보니 각오가 부족했음을 깨달았기 때문.
내심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었다.
황족이라면, 귀족이라면 응당 정정당당하며 명예로워 모두가 찬사를 보낼 수 있는 고귀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그런 마음.
…서로 목숨을 빼앗는 전장에서도 과연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짝!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덱스가 박수를 쳤다.
“그건 그렇고 너희 따로 체력 운동 해 본 적 있냐?”
“아니, 딱히….”
셋 다 고개를 젓는다.
“마법은 둘째치고 너희들 체력이 너무 부족하더라. 체력이 없으면 집중력도 떨어진다는 건 동의하지?”
“그건 그래. 힘드니까 나중엔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고.”
줄리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헉헉대며 도망치다가 결국 잡혀 주먹질에 나가떨어졌으니까.
“그래서 내가 좋은 운동법을 알려 주고 싶은데 말이야.”
“운동법?”
“그래, 용병 체조라고 하는데 말이야. 아! 이거 일단 시작하면 무르는 거 없다? 무조건 따라와야 해?”
방금 전까지 부족함을 반성하고 각오를 다지던 셋은 덱스의 말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럼 시작해 볼까?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해 보자고, 흐흐!”
레오에게 당했던 것을 그대로 시킬 생각에 저절로 웃음이 흘렀다.
그렇게 덱스의 안에서 악마 교관이 눈뜨기 시작했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