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39화 (39/127)

39. 학년 교류전 (6)

콰앙- 쾅-!

연무장은 클라인의 대련이 한창이다.

그의 상대 아르망도 매우 뛰어난 검사였으나 오러의 수준도, 검술의 기본기도 클라인에게 미치지 못했다.

무난하게 클라인의 승리가 점쳐지는 상황.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원인 모를 불안함에 레오는 아까부터 제자리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기분이다. 다가오는 대련이 긴장된다거나 하는 그런 사소한 것이 아니다. 막말로 대련 따위 어찌 되어도 좋다.

그런데도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고 점점 커져만 갔다.

콰직-!

[정말 놀랍습니다! 이번에도 신입생 대표가 승리합니다!]

[승자! 클라인 반다이트! 올해 신입생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산산이 부서져 허공에 흩어지는 검과 그것을 허망히 바라보는 아르망.

당연한 승리라는 듯 무덤한 얼굴로 등을 돌리는 클라인.

와아아아아아-!

“저게 1학년의 오러라고!”

“올해 신입생들은 괴물인가? 하나같이 상대가 안 되잖아!”

“클라인! 클라인! 클라인!”

상대의 무기를 부수어 버리는 압도적인 광경에 객석의 함성이 더욱 커졌다.

무심하게 대기석으로 올라오는 클라인의 걸음 역시 조금 들떠 있다. 있는 힘껏 아닌 척하고 있지만 그 역시 이 상황을 즐기고 있던 것.

“이제 네 차례야. 신입생 전승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만들어 보자.”

“…그래.”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레오.

[올해 교류전은 정말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이제 전사 학부 마지막 경기만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신입생 수석 레오! 마찬가지로 2학년 학부 수석 베일 그리먼! 두 사람은 연무장으로 올라와 주십시오!]

검을 들고 연무장에 도달한 레오.

연무장 중앙에 다다라 사방을 둘러본다.

보이는 것은 스탠드에 가득한 관중뿐이다. 황태자가 참석한 행사인 만큼 객석 곳곳의 경호 병력도 만전. 불안 요소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두근거림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씨발, 도대체 왜 이러는데?’

어느새 반대편에서 마주 올라온 베일.

레오를 향해 대검을 척, 하고 겨눈다.

“후배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명예로운 대결을 하자.”

“아, 예….”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닌가 보군.”

“뭐, 그렇죠.”

“음… 그 또한 훌륭한 기사의 덕목이라 할 수 있겠군. 과묵한 기사, 그것도 나름의 풍취가 있지 않은가.”

뭐라는 거야.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짜증이 솟구친다.

[자, 전사 학부의 최종 경기! 이제 시작됩니다!]

그와 동시에.

우우웅-!

베일의 대검에 푸른 오러가 깃들며 검명을 낸다. 최소 엑스퍼트 중급 이상이라는 뜻.

헛소리를 나불대도 역시 2학년 수석이다. 긴장감을 늦춰서는 안 되는 상대인 것이다.

탓.

거대한 체구로 가볍게 접근하는 베일.

‘칫!’

상정 이상의 속도에 레오도 조금 반응이 늦었다.

온전히 상대에게 집중하지 못한 탓이 크다.

후웅-!

눈 깜짝할 새에 중량을 실은 대검이 머리 위에서 날아든다.

피하기에는 늦다. 재빨리 판단을 마친 레오는 비스듬히 검을 세워 받아 흘리기로 한다.

콰직-!

굉음과 함께 연무장 바닥에 큰 상흔이 남았다.

“하앗!”

그대로 이어지는 베일의 넓은 횡베기.

긴 리치 때문에 공격 반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재빨리 검을 세워 옆구리를 막는다.

쾅-! 촤아아악-!

그 강력한 힘에 주르륵 밀려 나간 레오.

“와아아아아-! 베일! 너만 믿는다!”

“선배의 무서움을 보여 줘!”

“믿고 있었다고! 젠장!”

객석이 달아올랐다. 특히 초반부터 강하게 압박하는 베일의 선전에 2학년들의 환호가 두드러졌다.

“레오 녀석, 이상하지 않아? 전혀 집중을 못하고 있어.”

클라인이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상대를 얕봐서? 아니, 레오는 그런 녀석이 아니다.

평소에 껄렁거리기는 해도 녀석은 검을 쥐었을 만큼은 단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인 적 없다. 빨리 승부를 포기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다며 자신에게 주먹질까지 한 녀석 아닌가.

그럼 뭐지?

눈앞의 대련보다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는 뜻인가?

그때.

레오의 신형이 크게 움직인다.

“……?”

마주하던 베일의 눈동자에 의문이 떠오른다.

“뭐야? 어디 가는 거야!”

덱스의 고개가 레오의 움직임 방향을 따라 크게 옆으로 돌았다.

그는 연무장 바깥으로 뛰어나가고 있었다.

“레오?”

천여 명의 눈동자가 동시에 한 남자를 좇는다.

그 등 너머에 보이는 것은 반쯤 부서진 특설 연무장의 남쪽 문.

부서진 틈 사이로 검은 형체가 아른거리고 있었다.

* * *

알 수 없는 불안함.

베일과 검을 섞는 와중에도 레오의 눈은 계속해서 사방을 훑었다.

칼날 위에 선 듯한 기분 나쁜 위기감.

본능적인 그 감각이 지금 대련 따위를 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정체를 확인했다.

“이런 씨발!”

남문에 일렁이는 검은 형체.

의심할 것 없는 검은 마물이다.

레오는 욕설을 뱉으며 곧바로 남문을 향했다.

일격을 준비하던 베일은 황당함에 치켜들었던 대검을 스르르 내렸고, 한창 달아오른 관객들도 영문을 몰라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

가장 높은 곳에서 관전하던 황태자도, 그 양옆의 메퀸토와 카르파도 아직 이변을 감지하지 못했다.

남문의 상황이 보이는 곳은 객석 중 일부였기 때문에.

“다들 정신 차려! 마물 습격이다!”

일순 함성이 잦아든 연무장에 오러를 실은 레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쾅!

그사이 남문이 완전히 부서졌다. 동시에 검은 마물이 연무장 안쪽으로 물밀듯 밀려들었다.

콰직- 쾅!

동문, 서문, 북문도 연이어 부서졌다. 그곳에서도 마물이 들이쳤다.

특설 연무장의 바깥이 이미 마물로 가득하다는 증거다.

“저, 저것이 무엇입니까?”

황태자 슈나이더가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곳이 어디인가. 제국의 수도 메프람, 그중에도 이중 성벽의 안쪽인 내구역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저런 마물이 다량으로 침입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바깥 상황은?

황궁은, 폐하는 무사한가?

“이오페! 나는 전하를 보호하겠다! 생도들을 지휘하고 내빈을 지켜라!”

“예!”

슈나이더가 머뭇거리는 사이 카르파는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황궁에 대한 걱정은 그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곳에는 근위기사대를 비롯한 방어 병력이 존재한다.

당장은 이곳을 생도와 내빈을 보호하는 것이 첫째다. 최우선 보호 대상이 황태자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오페라면 다른 귀빈의 보호를 맡길 수 있으리라.

“영감, 전황 파악부터!”

“말하지 않아도 안다.”

카르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메퀸토가 하늘로 솟구쳤다.

검은 것들이 어디에서 발생했는지, 숫자와 범위는 어떠한지 한눈에 확인하기 위해서다.

“마법동인가…!”

검은 물결이 흐르는 방향을 역으로 추적하니 그 끝에 마법동이 있다.

황궁과 수도는 휘말리지 않은, 아카데미 내부에서 발생한 이변.

다행히도 최악은 사태는 아니었다.

[놈들이 발생한 곳은 마법동 내부, 다행히 아카데미 밖으로 확산되지는 않았군. 마법사들과 놈들의 확산부터 막을 테니 나머지는 맡기겠네.]

메퀸토의 목소리가 직접 카르파의 머리에 울렸다.

서로 점잔을 빼며 나란히 아카데미 학부장 자리에 앉아 있지만, 둘은 30년 전 함께 전장을 누비던 동료이기도 했다.

‘마법동 내부인가, 확실히 마법사들은 그쪽에 집중하는 것이 맞겠군.’

카르파는 금방 뜻을 알아들었다.

저것들이 아카데미 밖으로 흘러 빠져나가는 순간 수도에 막대한 혼란이 일어난다. 그것을 막는 것이 먼저라는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하아아앗-!”

가장 먼저 이변을 감지하고.

가장 먼저 마물에 달려든 생도, 레오.

그가 마물을 베어 넘기는 모습에 패닉에 빠진 이들의 두려움이 일부 해소됐다.

미지의 존재를 죽여 없앨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 * *

핏빛으로 빛나는 붉은 눈과 검고 끈적한 액체를 떠올리게 하는 몸통.

어느새 코앞까지 들이닥친 마물에 레오는 가슴이 터질 듯 뛰었다.

회귀 전 검은 마물과 치열하게 싸우던 그 때의 기억과 감정이 고스란히 떠오르는 듯했다.

동료들이 하나둘 줄어들었다. 어제 함께 낄낄거렸던 동료가 오늘 보이지 않는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됐다.

전투의 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식과 같은 죽음과 처절하고 괴로운 삶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고민해야 했다.

“흐아아아압!”

레오는 괴성에 가까운 비명을 내지르며 검을 뿌렸다.

우악스럽게 달려들던 아울 베어 형상의 마물이 가로로 쪼개진다. 검은 체액이 울컥 튀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검 끝은 어느새 다음 마물을 향했다.

카아아악-! 키에에엑-!

마물의 포효.

검은 마물이 소리를 낼 줄 알았던가?

이렇게 검은 체액을 흘렸던가?

다음 녀석은 몬스터의 형상이다.

오크? 아니, 트롤인 것 같다. 손에서 길게 이어진 무기는 분명 넓적한 도끼다.

캉-!

쇳소리가 났다.

내려친 도끼를 어깨 너머로 흘리며 그대로 놈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대로 뱃가죽을 베어 넘기자 검은 것이 마치 내장처럼 울컥 쏟아졌다.

‘달라…!’

검은 마물.

회귀 전 상대했던 그것들과 비슷하지만 분명 달랐다.

소리도 내지 않고, 목을 자르면 시체도 남기지 않고 연기처럼 사라지던 그들이 아니다.

이놈들은 마치 살아 있는 몬스터처럼 괴성을 지르고 체액을 쏟아 낸다. 무기도 사용한다. 단지 모든 외견이 검을 뿐이다.

방어선에서 상대한 귀신 같던 그것들에 비하면 훨씬 더 ‘살아 있는 것’에 가까운 놈들이다.

오러안으로 바라보자 더욱 확실해졌다.

놈들의 생명력은 심장을 중심으로 세차게 약동하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떴다.

짧은 다리로 뛰어오는 놈들은 고블린과 코볼트.

그보다 더 큰 녀석들은 오크와 트롤.

커다란 얼굴과 긴 팔을 가진 곰 같은 놈들은 아울 베어.

긴 부리를 달고 타조처럼 달려오는 녀석은 코카트리스.

그저 검은 칠을 하고 있을 뿐, 익히 아는 몬스터와 다를 바 없는 놈들.

그렇게 생각하자 뜨겁던 심장이 한결 차분해졌다.

촤아아악-!

주먹을 뻗는 트롤의 팔을 갈랐다. 검은 피가 검신을 타고 흐른다.

땅을 박찼다. 팔뚝에 박힌 검이 어깨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대로 방향을 꺾어 목젖을 가른다.

크르르르….

피거품과 함께 넘어가는 트롤.

“흐아앗-!”

기합성과 함께 옆에서도 검은 피 보라가 터졌다.

마물 떼 한가운데서 대검이 춤추고 있다. 피아식별이 필요 없으니 그저 베고 휘두를 뿐인 폭력적인 검무다.

뒤늦게 레오의 뒤를 따라 달려온 베일이었다.

“후배! 이것들은 뭐냐!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지?”

후웅-!

횡으로 크게 가로지르는 검로.

작은 놈들의 목이 공중을 날고, 큰 놈들은 찢어진 뱃가죽에서 검은 내장을 쏟았다.

“나도 모르니까 닥치고 베기나 해요!”

“흐아앗!”

콰지지직-!

마치 마물을 부수는 분쇄기.

단 두 사람이 남문으로 몰려드는 마물의 물결을 막아섰다.

하지만 아무리 분투해도 고작 두 사람이다. 죽어 넘어지는 숫자보다 채워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뒤늦게 일부 생도와 병사들이 연무장에 내려와 힘을 보태기 시작했지만 꾸역꾸역 밀려드는 마물을 모두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쉬이이이이익-!

짧은 파공성.

퍼버버버버버벙-!

이어지는 연속적인 폭발.

머리 위에서 날아든 수 개의 화염 화살이 포위당하려는 두 사람의 좌우를 다시 넓게 열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누구의 마법인지 알 수 있다.

“덱스! 싹 다 쓸어버려!”

“뒤는 맡기라고!”

덱스가 만들어 준 공간으로 두 검사가 다시 한번 쇄도하며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콰과광-! 쾅-!

사방에서 폭발음이 울렸다.

마법사들의 포격이 시작됐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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