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40화 (40/127)

40. 학년 교류전 (7)

[생도들은 내빈 보호를 최우선으로 임한다! 전사 학부는 방진을! 마법 학부는 요격이다!]

마력 증폭 스피커를 통해 이오페의 목소리가 연무장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동서남북 네 군데 입구는 이미 마물에게 점령당한 상황.

도망칠 곳도 없거니와 패닉 상태에서 움직이다 피해만 확대될 것이다. 일단 내빈을 안정시키는 것이 먼저였다.

[학년별로 현장 지휘관을 뽑아!]

아무리 이오페라 해도 서쪽 스탠드에 발이 묶여서는 동, 남, 북 각기 떨어진 곳에 세세한 지시를 내릴 수 없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 1학년 생도가 모인 남쪽 스탠드에 올라선 이가 있었으니, 바로 3황녀 유리아였다.

“이곳은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전사 학부는 병사들과 함께 방진을 구축하세요!”

“유리아 님!”

그녀의 등장에 허둥대던 1학년들이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2학년의 북쪽 스탠드도, 3학년과 4학년이 모인 동쪽 스탠드에도 차례로 지휘관이 등장했다. 황태자가 있는 서쪽은 이미 이오페가 지휘를 맡았다.

“3황녀님이시다!”

“살 수 있어! 황녀님께서 이곳에 계신다!”

황녀가 직접 앞으로 나서자 내빈도 금방 안정을 찾았다.

“마법 학부는 1형 투사 마법 준비!”

유리아의 지휘에 마법 학부 생도들이 일제히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서로 상성을 죽이지 않는 화염, 전격, 바람의 1형 조합.

“목표는 남문의 마물 중앙! 연무장의 생도들이 휘말리지 않도록 합니다!”

어느새 객석 위를 채워가는 수십 개의 화염 화살.

유리아의 옆에 선 세실 위 머리 위에도 푸른 전격이 떠올랐고.

“파이어볼!”

머리통만 한 화염구가 유리아의 손을 떠나 남문 쪽 마물 중앙에 떨어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수십 개의 투사 마법이 폭격하듯 내리꽂혔다.

콰과과과광-! 콰광-! 쾅-!

끼에에에엑-!

폭격의 중심으로 반경 십여 미터 이내의 마물이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다수의 마법사가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기초적인 전술.

고지대에서 때려 박는 화력망은 단순하지만 그만큼 효과적이었다.

“다시 한번! 1형 준비!”

두 번째 포격을 준비하는 유리아.

이번에는 그녀도 파이어 애로우를 선택했다.

줄지어 떠오르는 십여 개의 마법 화살.

“발사!”

콰과과과광-!

유리아가 쏘아 낸 화염을 따라 다시 한번 수십 개의 화염이 연무장을 폭격했다.

하나의 지휘로 제대로 묶인 두 번째 공격은 처음보다 훨씬 강력한 화력을 보였다.

폭격의 중심이 지우개로 지워진 것처럼 텅 비었고.

와아아아아-!

객석에서 함성이 터졌다.

“황녀님 만세!”

마법사들의 포격 지원.

덕분에 연무장에서 버티던 전사들도 숨통이 트였다.

“입구를 점령해! 틀어막으면 된다!”

검은 오크의 가슴팍을 가르고 발로 밀어낸 레오가 공간을 점유하며 입구 방향으로 접근했다.

적의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좁은 입구만 사수하면 된다.

곧 동서남북 입구를 모두 점령했다.

전사들이 입구를 틀어막고, 연무장에 내려온 마법사들이 후방에서 포격하니 마물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끝이 없겠어.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레오도 남문 입구를 지키며 마물을 베어 넘겼다.

전조 증상도 없이 아카데미 한가운데 마물이 나타났다.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뭐든 간에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이대로 소모전만 이어지리라.

그때 모두의 머릿속에 익숙한 음성이 울렸다.

[이제부터는 내가 맡도록 하지.]

메퀸토의 목소리.

마물을 아카데미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대규모 방벽이 완성된 직후였다.

“위를 봐! 메퀸토 님이다!”

“이제 살았어!”

대륙 유일의 7서클 대마법사.

다만 최근 그의 실력 발휘를 본 사람은 극히 드물다.

30여 년 전, 카르파와 전장을 누볐을 당시가 5서클이었으며 이후 7서클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그런 대마법사가 직접 나설 것을 천명했으니 모두 기대하는 것은 당연했다.

‘실력 좀 봅시다, 대마법사 양반.’

궁금한 것은 레오도 마찬가지.

회귀 전 메퀸토는 검은 마물이 등장하기 얼마 전에 세상을 떴다.

대규모 광역 마법이 가능하다는 대마법사가 살아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우웅-!

객석을 포함한 연무장 시설 전체에 반투명한 막이 씌워진다.

메퀸토를 제외한 마법 학부 교수진들이 함께 발동한 보호 방벽.

키에에엑!

연무장 입구가 막히자 더 이상 진입할 수 없게 된 마물들이 반투명한 방벽 밖에서 울부짖었다.

새로 유입되는 놈들이 없으니 내부에 남아 있는 놈들은 금방 정리됐다.

“하앗!”

대검을 힘차게 돌려 오크의 목을 딴 베일.

주변에 남은 마물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까이 있던 레오를 보며 씩 웃는다.

“후우, 이제 숨을 좀 돌리겠군. 후배님도 수고했다.”

“아, 선배도요.”

적당히 대꾸하는 레오의 시선이 남문 바깥을 향한다.

그런 그의 뒤통수에 대고 베일이 주절주절 떠든다.

“검을 꽤 쓰는 것 같더군. 신입생치고 꽤나 좋은 몸놀림이었다. 그래도 몇 군데 아쉬운 점이 있어 특별히 조언을 좀 해 주도록 하지.”

“아니, 괜찮은….”

“하하핫! 사양할 것 없다. 선배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는 것도 후배의 덕목이니.”

“그게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근육이 다가 아니다. 후배 같은 경우는 코어 근육을 더욱 단련할 필요가 있지. 먼저….”

‘미친놈인가…?’

엮이면 피곤한 타입이다.

레오는 적당히 고개를 흔들면서 슬금슬금 베일과 거리를 벌렸다.

여하튼 이제 남은 것은 연무장 바깥 놈들뿐.

메퀸토가 어떻게 저들을 처리할지 지켜볼 때다.

후우우우웅-!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람이었다면 태풍에 버금가는 움직임.

공중에 부유한 메퀸토를 중심으로 대량의 마나가 급격히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파아앗-!

이어서 마력진이 허공에 그려진다.

짧게 허공에 반짝이다 사라지는 1, 2 서클의 술식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대규모 술식.

그 마력 흐름이 마치 예술품처럼 아름답게 반짝여 마물의 존재를 잠시 잊을 뻔했다.

“우와아…!”

덱스의 입이 떡 벌어진다.

보고도 이해하지 못할 만큼 복잡한 술식이 한 치의 오차 없이 톱니처럼 맞물린다.

몸이 떨려 왔다. 놀랍고 경이로우며 한편으로 두렵기까지 했다.

유리아도, 세실도, 줄리앙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술식을 지켜봤다.

몇 세기에 나타날까 말까 한 대마법사의 술식이다. 눈동자에 새기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되리라.

마법에 문외한인 레오조차도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선언하는 곳이 곧 나의 영지로다.]

대마법사의 두 눈에 푸른 귀기가 서리며 이윽고 영창이 시작됐다.

붉게 실체화된 마력이 완성된 술식을 따라 내달린다.

그에 따라 마력진이 눈부시게 붉은빛을 뿜었다.

[불타오르라!]

고오오오-!

얕은 진동과 함께 보호 방벽의 바깥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뜨거운 열기와 후끈 지면으로부터 뿜어졌다.

연한 풀잎이 말라붙기 시작했다.

싱그러운 초록은 이내 마른 갈색이 되었고 곧 잿빛으로 변해 흩날렸다.

굵은 나무들도 본래의 색을 잃었다. 뿌리부터 말라붙은 나무줄기에서 화악- 불길이 치솟더니 이내 검은 숯으로 화한다.

그와 같은 광경이.

메퀸토가 선언한 권역 전체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끄에에에엑-!

견딜 수 없는 열기에 수백 수천의 마물이 몸을 뒤틀었다.

사방에서 울리는 놈들의 고통스러운 비명.

바짝 마른 대지가 이곳저곳 쩌저적 갈라진다. 그 틈에서 솟구친 붉은 열기와 화염이 마물을 휘감았다.

도망칠 곳도 없는 곳에서 다리부터 불타 산채로 녹아내리는 마물들.

마치 불지옥을 연상케 하는 광경.

“이것이 대마법사의 마법….”

레오는 검을 떨구었다.

족히 수천의 군대를 상대할 수 있는 힘이다.

대마법사 한 명이 국가와 상대할 수 있다는 소문은 결코 허풍이 아니었다.

대지가 불타오른 시간은 불과 수 분에 불과했지만 마물의 비명은 모두 끊어진 후였다.

고요함 속에 마나의 폭풍이 서서히 잦아들었고 이윽고 부유하던 메퀸토가 연무장 중앙에 내려앉았다.

모든 이들이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환호하기에는 너무도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카르파와 이오페를 포함해 전장 경험이 충분한 이들도 놀라움을 숨기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 레오는 생각했다.

‘하, 그냥 저 영감이 좀 더 오래 살면 다 해결되는 거 아닐까?’

어디서 마물 떼가 터져 나와도 저 영감을 던져 놓으면 다 해결될 것 같다.

* * *

뜨거운 대지의 열기가 어느 정도 걷히자 모든 방벽이 사라졌다.

다행히 내빈 중 사망자는 없었다. 허둥거리다 발목을 삔 경상자가 몇 나왔을 뿐.

각 건물에 남았던 건물 관리인과 메이드 등 아카데미 관계자 가운데도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마법동과 연무장 길목 근처를 거닐던 이가 없었던 것이 천운이었다.

하지만 연무장의 동서남북 입구를 지키던 병사들의 희생은 피할 수 없었다. 총 17명의 병사가 사망했다.

“유족에게 충분한 위로와 보상을 하도록 하라.”

카르파의 집무실.

피해 소식을 보고 받은 황태자 슈나이더가 침통한 얼굴로 명했다.

사건의 규모에 비하면 기적적으로 적은 피해.

그럼에도 17명의 사망 소식은 마음을 무겁게 했다.

굳게 입을 다문 황태자의 앞에 메퀸토가 조용히 섰다.

“태자 전하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였으니 이는 쉬이 넘어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책임자로서 당장 문책을 받아야 함이 옳으나, 감히 청을 드리니 진상을 직접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주시옵소서.”

오늘 일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황태자를 포함해 제국의 유력 귀족들 다수의 목숨을 위협한 테러다.

그 장소가 아카데미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아카데미 책임자의 처벌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대륙 유일 대마법사이자 현자로 존경받는 메퀸토를 누가 처벌한다는 말인가. 설사 메퀸토 스스로가 처벌을 원하고 받아들인다 해서 쉬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슈나이더가 힘겹게 입을 뗐다.

“메퀸토 공, 그대에게 오늘 사건의 진상을 밝힐 것을 명하겠소. 이 극악무도한 사건의 주모자를 반드시 알아내시오.”

“늙은이의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임을 논하는 것은 이후 다시 논의토록 합시다.”

이것이 지금 슈나이더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또한 아카데미는 황실 직속 조직이다.

황실의 행사에서 참변이 일어날 뻔했으니 이는 황가의 위엄에도 관련된 일.

현장을 목도한 수많은 사람의 입을 막을 순 없겠지만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슈멜린 공.”

“예, 전하.”

“이변을 가장 먼저 발견한 그 생도를 기억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전사 학부의 신입생 대표 레오라는 생도입니다.”

“그의 공을 치하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가장 먼저 이변을 알아챈 생도.

그는 미지의 마물이 ‘적’이라는 것을 빠르게 판단하고 즉각 전투 태세를 요구했으며, 용감하게 몸을 던져 마물을 가장 먼저 상대했다.

대중은 언제나 영웅을 바라며 환호한다.

이를 이로서 대중은 ‘일어날 뻔한 끔찍한 참변’보다 ‘어린 영웅’에 주목할 것이다.

“그를 불러 주십시오. 직접 만나 보고 싶습니다.”

정치적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황태자는 개인적으로도 그 생도가 궁금했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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