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학년 교류전 (8)
“미리야! 다친 곳은 없느냐?”
무무카는 서둘러 여동생 미리야의 안위부터 확인했다.
미리야가 있던 동쪽 좌석은 처음에 마물이 들이닥쳤을 때 가장 대응이 늦은 방향이었다. 이쪽에 배정된 3학년과 4학년 생도의 숫자가 워낙 적었기 때문.
이변이 발생하자마자 무무카가 달려와 동문을 막아섰다.
그렇지 않았다면 일반인 중 사상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홀로 마물을 막아섰던 무무카의 몸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저,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오라버니의 상처가….”
“아무렇지 않다. 이런 건 스친 축에도 못 끼어.”
“하지만…!”
“정말 괜찮다.”
무무카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동생을 만나기 전까지 수 없이 악몽을 꿨다.
꿈속의 미리야는 대부분 악담과 저주를 퍼부었다. 피눈물을 흘리며 울기도 했다.
말없이 음울한 얼굴로 쳐다보기만 한 적도 있었으며, 그러다 눈앞에서 목을 매기도 했다.
[왜 그랬어?]
[왜 나를 죽였어?]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으로 밤을 지새웠을 뿐이다.
모두 자신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지켜 냈다.
그러니 아무래도 좋았다.
“울지 마, 미리야, 내가 책임지고 치료받게 할 테니까. 응?”
울먹이는 미리야의 옆에서 손을 꼭 잡아 주는 소녀.
“미리야, 그분은?”
“소개가 늦었습니다. 그대의 용기에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메르윈 레이라라고 해요.”
“레이라 영애….”
무무카가 깊게 고개를 숙였다.
미리야의 놀이 친구 상대라던 메르윈 백작 가문의 영애.
여동생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만난 것은 처음이다.
이제라도 건강한 미리야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메르윈 백작가의 덕분.
어떻게 감사를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다.
“동생을 거두어 주어 고맙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오.”
“그야 당연해요. 제 소중한 친구니까요.”
레이라의 그 당당한 대답에.
무무카는 그간 족쇄 같았던 마음의 짐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다.
* * *
뒷정리로 어수선한 연무장의 한구석.
레오는 주저앉은 채 생각에 잠겼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
‘뭘 노린 거지?’
수도 한가운데, 황태자를 비롯해 수많은 귀족이 모인 아카데미의 교류전을 노린 이유.
그것이 이상했다.
황태자 암살? 합리적이지 않다.
그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베테랑 교수진과 생도가 우글거리는 아카데미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대륙 제일의 마법사와 전 근위기사단장까지 황태자의 곁을 지키는 상황. 말할 것도 없이 최악의 선택지다.
“레오, 다친 곳은 없나? 수고 많았다.”
“이오페 교수님.”
이오페가 다가왔다.
언제나 단정하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항상 목 끝까지 채워졌던 단추가 쇄골까지 풀려 있다. 한 올 흐트러짐 없이 언제나 정갈했던 감청색 머리칼도 군데군데 삐져나와 있다.
그녀도 정신없이 분전했다는 의미다.
“교수님도 엉망이네요.”
“자네만큼은 아니지만 말이야.”
“머리 묶어 드려요? 여동생 머리는 좀 묶어 봤는데.”
“농담 따먹기 하는 걸 보니 살 만한 모양이군.”
“입만 멀쩡하거든요. 다른 곳은 정말 죽을 맛입니다.”
으그그-!
과장이 아니라 온몸이 삐걱거리는 느낌이다.
“미안하지만 지금 좀 따라와 줘야겠다. 황태자께서 찾으신다.”
“저를요?”
“그리 놀랄 것 없다. 나쁜 일은 아닐 테니.”
휙 몸을 돌려 걷는 이오페.
별수 있나. 까라면 가야지.
그녀가 향하는 곳은 전사동 벨라토르 관.
마기쿠스관은 엉망이 되었으니 황태자가 기다릴 곳이 그쪽밖에 없긴 하겠다.
“미리 알아야 할 예법 같은 건 없습니까? 저 촌놈이라 그런 거 하나도 모르거든요.”
“기본적인 예법은 알고 있는 것 같던데? 질문에 잘 대답하면 된다. 그뿐이다.”
똑똑.
학부장실, 카르파의 집무실 방문이 열렸다.
상석에 앉아 있는 이십 대 남자.
그의 양옆에 카르파와 근위기사로 보이는 남자가 시립해 있다.
레오는 적당한 거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했다.
“전하를 뵙습니다.”
“고개를 들어라.”
언뜻 백발로 착각할 만큼 연한 금발 머리칼의 사내.
제국의 황태자, 슈나이더 드메이르 폰 아슐렌과의 첫 만남이었다.
“신입생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전하.”
“그리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그대를 치하하기 위해 부른 자리이니까.”
“송구합니다.”
“그리고 궁금했다. 그대는 분명 대련에 정신없는 상황이었지. 그럼에도 어떻게 가장 먼저 놈들의 습격을 알아챈 것이냐?”
황태자의 눈빛은 시종일관 부드러웠으며 목소리는 나긋했다.
세간의 어질고 선하다는 평가가 잘 들어맞는 인상이다.
레오는 조금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무어라 콕 집어 말할 수 없습니다. 그저 감이었습니다.”
“감?”
“예전부터 그런 감이 좋았습니다. 대련 전부터 이상하리만큼 불안했고, 그 때문에 대련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실제로도 그랬으니 달리 다른 설명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대의 빠른 판단 덕분에 희생자를 최소화할 수 있었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짧은 대화였지만 레오는 황태자의 인물 됨을 대략 알 것 같았다.
그는 희생자를 언급할 때 침통함을 숨기지 못했으며 괴로운 기색까지 보였다.
병사들의 죽음에 강한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틀림없다.
‘…두 학부장도 자리가 편치는 않겠군.’
책임이라 하면 두 학부장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
만약 황태자가 다쳤거나 고위 귀족이 사망하기라도 했다면, 경위에 어찌 되었건 두 학부장은 처벌과 비난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설마…?’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뒷골이 찌르르 울렸다.
줄곧 마음에 걸린 사건의 진위. 그것이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추측이 맞다면 결코 그 의도대로 움직여서는 안 될 일이다.
“레오 생도, 그대의 현명하고 용기 있는 대처로 큰 참상을 막을 수 있었다. 황실을 대표해 그에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황태자의 치하.
레오는 다시 한번 깊이 고개를 숙였다.
웬만한 귀족도 평생 자랑거리로 삼을 만한 일이었지만, 레오는 다른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
“이후 정식으로 치하하도록 하마. 오늘은 이만 물러가도 좋다.”
부드럽게 말을 마친 황태자.
그 목소리에 끝에 피곤함이 물씬 묻었다.
시립해 있던 카르파도 레오를 향해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일어나 나가 보면 된다는 신호.
하지만 레오는 일어나지 않는다.
카르파의 눈동자에도, 황태자 뒤를 지키던 근위기사의 얼굴에도 의아함이 떠올랐다.
이윽고 다시 고개를 든 치켜든 레오.
“전하,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
황태자가 축객령에도 할 말이 남았다는 생도.
카르파는 당황했고 근위기사의 얼굴은 험악해졌다.
황태자도 조금 놀란 듯했지만 이내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허락하지.”
“감사합니다.”
레오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깊게 숙였다.
헝클어진 생각을 하나로 정리했다.
“내내 사건의 목적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이 사건의 주모자는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왜 하필 아카데미의 교류전을 무대로 골랐을까.”
천천히 고개를 들어 황태자의 눈을 응시했다.
이에 대해 그 또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꺼내 봐야 소용없는 말이 될 테니까.
“계속하라.”
다행히 황태자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가능성에 대해 소거법으로 접근해 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전하의 목숨입니다.”
“이놈! 전하의 면전에서 어찌 그런 불경한…!”
근위기사가 끼어들었지만 황태자가 제지했다.
“그만. 괜찮으니 계속하라.”
“불경한 언사를 용서하십시오. 주모자의 목적이 태자 전하였다고 가정하면, 교류전 행사를 노린 것은 가장 멍청한 선택입니다. 제국 전역에 이름을 날린 전 근위기사단장과 제국 유일의 대마법사가 곁을 지키고 있으니까요. 그 외에도 즉시 대응할 수 있는 다수의 교수진과 생도가 현장에 있습니다. 바보가 아니라면 절대로 피해야 할 상황입니다.”
“…그렇지. 일리 있는 말이다.”
“이는 전하가 아닌 다른 귀족의 목숨이 목적이었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사방의 객석에는 생도들이 섞여 있다.
황태자 경호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다.
“그대의 말에 동의한다. 굳이 누군가를 노렸다고 하기에는 허점이 큰 방법이지. 하지만 단순히 소요를 일으키고자 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단순한 테러라고 한다면 그것도 이상합니다. 아카데미 내부에서 일을 저지를 능력이 있었다면 시내 한가운데서도 가능했을 겁니다. 오히려 그편이 더 많은 공포와 피해를 불러 일으켰겠지요. 그런데도 주모자는 굳이 아카데미를 장소로 정했습니다.”
“반드시 아카데미여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황태자의 미간이 좁아졌다.
카르파도 깊이 생각에 잠긴 얼굴.
일리 있는 말이다.
아니, 논리적으로 매우 합당한 추론이었다.
“그래서 다르게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하를 비롯해 수많은 귀족이 모인 아카데미 행사를 노린 진짜 이유는 그 사후 처리에 진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사후 처리?”
“그렇습니다. 아카데미의 행사에서 참상이 일어날 뻔했고 많은 귀족이 그 자리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지금 당장은 무사함에 감사하고 살아남은 기쁨에 취하겠지만, 얼마 못 가 부정적인 여론이 들고 일어날 겁니다. 그리고 그 비난과 분노가 향할 곳은 정해져 있겠지요.”
“그렇겠지.”
여태껏 조용히 자리를 지키던 카르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예상한 바였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책임을 지는 자였다.
“학부장님, 이후 어찌하실 생각이셨습니까?”
레오의 시선이 카르파에게 향했다.
황태자도 고개를 틀어 그를 바라보았다.
카르파는 주름진 미간을 움찔하더니 곧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슈멜린 공?”
“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힐까 싶어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이번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허락할 수 없는 일입니다! 메퀸토 공도 그러시더니, 슈멜린 공까지 이러시면 저더러 어쩌라는 말입니까!”
“누군가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카데미는 황실의 조직이다.
유야무야한 대응을 보였다가는 비난의 화살이 결국 황실로 향하게 된다.
앞서 메퀸토가 처벌을 운운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절대 허락할 수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절대 안 될 말…!”
벌떡 일어나 목을 높이던 황태자의 말이 끊어졌다.
그 시선이 천천히 레오에게 향한다.
뭔가 깨달은 듯 눈을 부릅뜬 카르파도 마찬가지였다.
“그대의 말이 의미한 것이 이것인가?”
“…그렇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야말로 주모자의 의도라고 추측합니다.”
황태자도, 카르파도 말을 잇지 못한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전쟁, 황태자의 전사, 새로운 황태자 추대, 이후 3황녀의 암살.
레오가 겪은 미래의 주요 사건이 우연이 아니라면 두 학부장의 실각도 그와 무관할 리 없다.
그리고 추측대로 라면….
‘분명히 후작파가 이 뒤에 있다.’
레오는 확신했다.
모든 것이 2황자 크롬멜을 황태자로 추대하기 위한, 후작파의 그림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이는 미래의 사건을 알고 있는 레오이기에 할 수 있는 판단.
지금으로서는 추측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이것이 놈들의 의도라고 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
카르파도 어렴풋이 후작파의 존재를 짐작했다.
그럼에도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명확한 증거가 없는 한 이번 건은 ‘불상(不祥)의 사건’이 될 것이기에.
“도대체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
황태자도 찡그린 얼굴로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적의 의도를 알고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니.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고개를 갸웃한 레오가 다시 입을 열기 전까지는.
“뭘 고민하십니까? 간단한 상황 아닙니까?”
“그리 간단한 상황이 아니다. 내가 물러나지 않으면 황실이….”
“물러나세요. 그러면 됩니다.”
“뭐라고? 그래서는 적이 의도대로 놀아나는 꼴이 되지 않는가!”
“아니죠.”
레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적의 의도를 몰랐다면 카르파도, 메퀸토도 책임감 속에 자리를 내려놓았을 것이다.
또한 황실의 부담을 덜기 위해 낙향까지 고려 했을지 모른다.
“이제 이용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계획대로 되었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상황이 달라졌다.
본래라면 책임감으로 물러났던 자리.
이제는 언제든 무대로 뛰어 올라올 명분이 있다.
“안 그렇습니까?”
레오가 씨익 웃었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