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42화 (42/127)

42. 시오프 산맥 (1)

마법동의 강의실에서 발견된 두 구의 시신.

“마법 학부 2학년 페르시 그랜트, 마찬가지로 2학년인 유니트 넬슨입니다.”

교수 네피르의 입으로 다시 한번 시신의 신원을 확인한 메퀸토는 눈을 감으며 침통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연무장에서 사라진 마법 학부 2학년 대표들이다.

그 시신 옆에는 반으로 쪼개진 마력 구슬이 흩어져 있었다.

“으음….”

메퀸토는 침음을 삼켰다.

마물의 흔적을 거슬러 올라가 도달한 곳이 이곳 강의실이다.

그곳에 아카데미 생도의 시신과 수상한 마도구의 흔적이 남아 있다니, 이들의 관련성이 너무도 높아 보이는 상황.

“네피르, 당분간 이 내용은 함구해 주게.”

“학부장님.”

“오래 걸리진 않을 걸세. 일단 이 마력 구슬부터 분석해 봐야겠어.”

메퀸토는 쪼개진 마력 구슬을 집어 들었다.

이 정도 사건에 관계된 물건이라면 구슬 안의 술식 흔적은 진작 지워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실마리를 찾아야만 한다.

“이 두 사람은 마물에 휘말려 목숨을 잃은 것으로 해 두세. 진상도 모른 채 이들을 심판대에 세울 수는 없으니.”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고맙네.”

메퀸토는 직감했다.

두 생도는 이용당했다는 것을.

‘더러운 수를 쓰는구나….’

쪼개진 마력 구슬 조각을 회수했다.

술자의 마력을 한계 이상 강제로 빨아들여 발동하는 마도구임이 분명하다.

이런 마도구 하나만 있으면 1서클 견습 마법사도 두세 단계 위의 마법을 발동할 수 있다. 그 한 번의 대가로 목숨을 지불해야 하지만 말이다.

마법사가 전장에서 제 몫을 하려면 최소한 3서클 이상에 풍부한 전투 경험을 가져야 하나, 그 옛날 전장에는 이런 마도구 하나를 쥐고 전선에 밀려 나온 초급 마법사도 많았다.

적진에서 폭사를 명령받은 어린 초급 마법사의 눈동자가 아직 메퀸토의 뇌리에 뚜렷하다.

“당분간 자리를 비울 생각이네. 내가 없는 동안 부탁하지.”

“…행선지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마탑에 일을 좀 줘야겠어.”

10년 넘게 발을 끊었던 마탑.

그곳에서 마도구를 분석할 생각이었다.

* * *

마법동 마기쿠스관을 포함하여 아카데미 시설 3할 전소.

두 생도의 사망이 알려지며 총 사망자는 19명으로 최종 집계되었다.

그 와중에 기숙사가 화를 피해간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당장 잘 곳을 새로 구해야 했으니.

덕분에 강의 커리큘럼에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두 학부 공통 강의가 끝나고 조교가 공지 사항을 알렸다.

“1학년들은 이제부터 길드의 임무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길드 임무.

원래는 후반기부터 예정된 과정이다.

황립 아카데미는 단순한 교육 기관이 아니다.

미래에 제국을 이끌어 갈 우수한 인재를 선별하고 담금질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실전적인 커리큘럼을 중시한다.

길드 임무는 생도가 직접 길드의 의뢰를 해결하며 학점으로 인정받는 시스템이었다.

“길드 임무를 통한 필수 학점이 있으니 각자 연간 계획을 잘 세우도록 하세요.”

보통 과목당 보통 3~4학점으로 구성되는 아카데미 강의.

오전 오후로 하루 세 개의 강의가 배정되고 일주일에 최대 열 개라는 점을 고려하면, 1학년의 한 학기 최대 학점은 40학점, 두 학기로 구성되는 1년에 80학점이다.

그런데 1학년을 제대로 마치기 위한 최소 학점은 100학점이라 공지되어 있다.

비어 있는 20학점의 비밀이 바로 길드 임무였던 것이다.

“최소한 20학점 이상을 길드 임무로 채워야 한다는 말이네.”

“미리미리 채워 놓으면 후반기에 더 여유 있을 테고.”

길드 임무를 학점으로 전환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10실버짜리 임무를 성공하면 고스란히 10학점을 인정받는 방식.

한 가지 임무를 여러 명이 함께 수행하면 학점을 인원수로 나눠 받는다. 그러니 임무에 맞게 적절한 인원수로 팀을 꾸리는 것이 상식이었고, 보통 서너 명이 팀을 이루곤 했다.

‘중급 이상의 임무를 몇 개 해야 하는 수준이군.’

용병 경험이 풍부한 레오는 금방 견적이 나왔다.

사흘 일정의 소규모 호위 임무가 대략 10실버 선이다. 당연히 혼자 임무에 들어가기 힘들 테니 적어도 셋은 필요하다.

이 경우 한 사람이 얻는 학점은 약 3~4학점. 이와 비슷한 임무를 6~7차례 성공해야 20학점을 채울 수 있다.

길드 임무로 강의를 결석하는 것에는 불이익이 없지만 뒤처진 수업은 따라가는 것은 본인의 역량. 따라서 학기 중에는 최대한 주말을 활용하는 이들이 많았다.

“미리 팀을 짜 놓는 게 좋겠네. 주기적으로 길드 임무도 확인하고.”

“그러게. 클라인 너도 같이할 거지?”

“안 불러 주면 섭섭할 뻔했어.”

나란히 앉아 있던 레오, 덱스, 무무카, 클라인이 손쉽게 한 팀을 꾸리자 강의실 여기저기에서 탄식이 일었다.

누가 뭐래도 1학년 최고 실력자들이 모인 팀이었으니까.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어.’

레오가 픽 웃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눈빛이 느껴진다. 저 녀석들끼리 모이면 사기 아니냐는 속삭임도 언뜻 들린다.

그래도 입학 당시와 비교하면 훨씬 부드러운 반응이다. 최소한 이제 실력을 제대로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교류전이 그 기점이었다.

2학년 대표를 두들기며 선전한 것은 차치하고, 연무장에서 마물과 직접 드잡이하며 버텨 준 이들을 폄하하는 멍청이는 없었다.

레오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은 패트릭과도 눈이 마주쳤다.

‘너도 할래?’

눈빛으로 의향을 물었지만, 패트릭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에 레오도 더 권하지 않았다.

누구를 영입할 것인가, 어느 팀에 속할 것인가.

아직 팀을 완성하지 못한 생도들이 눈치 게임.

내심 덱스와 팀을 이루면 어떨까 생각했던 유리아도 그중 하나였다.

‘아쉽네.’

마법 학부에서 특별히 친한 무리가 없어 보여 권해 볼까 했는데 전사 학부 친구들과 팀을 금방 이뤄 버렸다.

그 그룹에 클라인도 끼어 있는 것은 좀 의외이긴 했다.

덱스를 놓치긴 했지만 유리아와 세실도 당연 최상위 그룹.

“팀 임무라니 왠지 두근거리네.”

“전사 학부에서 한 명 정도 영입하면 딱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 누구와 같이하면 좋을까?”

팀을 구하지 못한 전사 학부 생도들은 유리아와 세실의 대화에 귀를 바짝 기울였다.

서로 눈치를 보는 와중 누군가 벌떡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갔다.

“황녀님, 북부 대륙 마이어 가문의 차남 패트릭 마이어라고 합니다. 팀에 함께 할 영광을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패트릭 마이어는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두 사람 앞에 섰다.

레오의 제안은 고마웠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저들 사이에서 자신은 발목만 잡는 존재일 테니까.

오히려 황녀의 그룹이라면 전사로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으리라.

꿀꺽.

패트릭은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은 아카데미에서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한 남작 가문의 차남. 그리고 상대는 황족.

거절당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반가워요. 편하게 유리아라고 부르세요. 잘 부탁해요.”

싱긋 웃으며 화답하는 유리아.

그 화사한 미소를 잠시 멍하게 보던 패트릭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저를 받아 주시는 겁니까?”

“안 될 이유가 있나요? 그렇지 세실?”

“물론이지. 게다가 마이어 가문이라면 그 유명한 ‘북방의 창’ 아닌가요? 너무 든든한데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말부터 편하게 할까?”

이렇게 또 하나의 팀이 완성되었고.

다시 한번 곳곳에서 탄식이 흘렀다.

* * *

그리고 줄리앙, 파블로, 니앙.

“줄리앙, 우리는 어떻게 할까?”

파블로가 슬그머니 줄리앙에게 물었다.

지난번 줄리앙이 갑자기 싸워 보자느니 하는 말을 꺼냈을 때는 정말 당황했다.

새로운 방법의 괴롭힘인가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주, 줄리앙 무슨 말이야? 우리가 왜 너하고 싸워.]

[아니 그냥…. 생각해 보니까 우리들 싸워 본 적이 없더라고.]

[그거야 싸울 일이 없었으니까 그렇지. 맞지 니앙?]

[그렇지, 안 싸우는 게 최고 아닐까?]

필사적으로 만류한 끝에 일단 그때 일은 일단락이 됐다.

줄리앙의 표정이 좀 불만스러워 보였지만 그 이후에도 다행히 별일 없었고.

‘그러고 보니 요즘 줄리앙이 좀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줄리앙의 말수가 조금 줄었다.

쓸데없는 자랑이나 허세도 부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게 많이 신경 쓰이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훨씬 편하다.

‘그러고 보니 훨씬 유해진 것 같기도 해.’

꼭 집어 말할 순 없지만 말투나 눈빛이 부드러워진 건 확실했다.

니앙도 똑같이 느끼고 있다고 했으니까.

“우리하고 같이할 거지?”

“당연하지. 너희들 말고 내가 누구하고 팀을 하겠냐.”

재차 물어보는 니앙에게 슬며시 웃으며 대답하는 줄리앙.

예전같이 면박을 주는 듯한 말투도 아니다.

“무슨 소리야, 줄리앙이 우리를 챙겨주는 거지. 안 그랬으면 다른 팀에서 서로 모셔 가려고 할걸.”

“니앙 말이 맞아.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습관적인 칭찬과 치켜 세우기를 시전하는 두 사람.

“나도 고맙다.”

“……?”

예상하지 못한 줄리앙의 대답에 둘은 고장 난 듯 몸이 굳었다.

“왜? 내가 이상한 소리라도 했어? 밥이나 먹으러 가자.”

줄리앙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리더니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주춤주춤 따라 일어선 파블로와 니앙 사이에 부지런히 눈짓이 오갔다.

‘방금 고맙다고 했지?’

‘나도 들었어.’

‘뭘 잘못 먹었나? 요즘 왜 저래?’

‘난들 아냐.’

파블로와 니앙은 동시에 생각했다.

줄리앙이 확실히 이상해졌다고.

* * *

레오, 덱스, 무무카, 클라인.

이들은 오후 수업이 끝나자 곧장 길드를 찾았다.

미리미리 임무를 확인하고 선점하는 편이 좋았기에.

외구역에 위치한 길드 본부.

일단 접수처에서 간단한 절차를 통해 중급 용병패를 발급받았다. 이것도 아카데미 생도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아카데미 생도에게 중급 용병 수준의 임무를 모두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개 중에는 경험이 중요한 임무도 있기 때문에 철저히 길드의 판단하에 임무 배분이 이루어졌다.

“중급 임무 중에 골라 보는 게 좋겠지?”

“그래, 하급 임무는 효율이 너무 떨어지겠어.”

중급 임무의 보수는 보통 5~20실버 정도로 형성되어 있다.

몬스터 사냥부터, 호위 임무나 채집, 사람 찾기까지 다양한 의뢰들.

그중 하나가 레오의 눈에 띄었다.

[시오프 산맥 몬스터 토벌]

“이거 괜찮겠는데?”

시오프 산맥은 수도 북쪽 방향의 브뤼쉬 자작령이다.

거리도 그리 멀지 않으니 주말을 활용하기 딱 좋다.

“요즘 시오프의 몬스터 때문에 북쪽 물류 상황이 영 좋지 않다더니 결국 브뤼쉬에서 직접 나선 모양이네.”

간단한 내용만 보고 클라인이 배경을 유추해냈다.

제국 전체에서 가장 큰 소비 도시는 단연 수도 메프람이다.

메프람을 중심으로 동, 서, 남쪽 방면은 대부분 개활지이나 유독 북쪽만 시오프 산맥이 가로막고 있다.

이 산맥의 몬스터 때문에 상행이 힘들어질수록 고통받는 쪽은 브뤼쉬였기에 직접 나서게 된 것이다.

“꽤 대규모 토벌대를 구성된다는 소문이야.”

브뤼쉬 입장에서는 산맥 몬스터를 씨를 완전히 말리고 싶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결국 주기적으로 토벌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번에 꽤 작심했다는 소문이다.

“그래서, 이거 어때?”

“난 좋아.”

“나도 찬성.”

“상관없다.”

다들 시원하게 찬성표를 던졌다.

마침 같은 임무에 참여할 용병들이 모레 저녁부터 브뤼쉬로 이동한다는 소식. 그때 다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 * *

시오프 산맥 출발 당일.

레오와 덱스는 도리안의 공방부터 들렀다.

“오! 드디어 왔구먼.”

레오 일행이 찾는다는 소식에 도리안이 직접 나와 두 사람을 맞았다.

방금 전까지 작업 중이었는지 땀투성이였지만 아주 밝은 얼굴로 손을 내민다.

“잘 지냈어요? 무기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궁금해서 와봤는데.”

“광산이 금방 정상화가 된 덕에 한숨 돌렸지. 납기를 겨우 맞출 수 있었거든. 자네들 무기도 다 만들었으니 기대하라고, 하하핫!”

“그것참 다행이네요.”

꾸욱.

도리안의 손을 맞잡으며 레오도 웃으며 대꾸했다.

표정이 나쁘지 않을 걸 보니 미스릴 가격이 요동칠 때도 큰 피해는 없었나 보다.

“이쪽으로 따라오게.”

도리안의 뒤를 따라 공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공방 안쪽은 넓었다. 철과 쇠를 두드리는 작업장의 장인들만 해도 대여섯 이상 쇠를 두드리고 있고, 일을 돕는 사람들을 합치면 족히 스물 이상이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하긴, 제국 최고의 공방이라 불리는 곳이니 이 정도 규모도 충분하지 않을지도.’

후끈한 공방 열기가 희미해지고 제법 선선한 공기가 느껴졌다.

공방에 딸린 야외 공간이다. 작은 마당 정도 넓이의 연무장이랄까.

“여기는 뭐 하는 데죠?”

“직접 휘둘러 봐야 제대로 만들었는지 알 것 아닌가.”

언제 가져다 놨는지 도리안이 눈짓하는 곳에 검과 메이스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오….”

광택을 죽인 은빛 검신이 레오의 눈을 사로잡았다.

보통 아밍소드보다 조금 더 길어 보이는 검신. 거기에 두께감도 있어 묵직한 맛을 더했다.

갈색 가죽을 덧댄 그립이 손에 착 감겨든다. 전에 주워 쓰던 검보다 무겁지만 오히려 안정적인 느낌이다.

자연스럽게 양손으로 그립을 쥐고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와, 씨발.”

감탄이 나왔다.

한마디로 죽여줬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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