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44화 (44/127)

44. 시오프 산맥 (3)

선두의 레오가 용병들의 마차를 지나 불길이 솟는 방향으로 날듯이 달렸고, 그 뒤를 팀원들이 따랐다.

“어어? 지금 저길 뛰어든다고?”

“트롤이 섞여 있는 게 안 보이는 건가?”

“객기 부리는 놈들이 가장 먼저 개죽음당하지, 내버려 둬!”

용병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지만 전부 흘렸다.

길에 늘어선 마차 행렬에서 빠져나오자 몬스터 무리가 똑똑히 보이기 시작한다.

조잡한 날붙이로 무장한 숲 고블린이 수십 마리. 그리고 눈에 보이는 트롤만 둘이다.

그것이 용병들이 주저하는 또 다른 이유였다.

‘트롤이 어째서 마을까지? 게다가 다른 무리와 섞여 있다고?’

의아했다.

숲 고블린이야 가끔 영역을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지만 트롤은 다르다.

성체 트롤은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려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영역 본능이 강해 침범한 상대는 동족이라 해도 목숨을 걸고 격퇴한다.

그런데 그런 트롤이 사이좋게 모여서 마을을 습격한다고?

일반적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분명 무언가 있다.

‘일단 죽여 놓고 생각하자!’

촤악-!

마을 입구에 다다른 레오의 검이 가장 먼저 가장 몬스터에 닿았다.

깨끗한 수평 베기에 막 뒤를 돌아보던 고블린의 머리가 깡통 뚜껑처럼 열렸다.

동료의 피보라와 뇌수에 다른 놈들이 키에엑, 소리를 내며 몰려들기 시작했다.

“빠르게 돌파한다!”

“알았어!”

레오가 선두에서 길을 열었다.

일단 트롤부터 잡을 생각이다. 트롤만 없어도 용병들의 망설임이 사라질 터.

화아악-!

뜨거운 열기가 머리 위를 스친다 싶더니 머리통만 한 불덩이가 날아들어 전방에서 폭발했다.

고블린 무리가 밀집된 한가운데다.

키에에엑-!

불덩이에 직격당한 고블린의 머리가 숯이 되어 바스라졌다. 폭발에 휘말린 주변 녀석들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덱스의 마법, 파이어볼.

얼마 전 3서클이 되었다고 하더니 벌써 새로운 마법을 익힌 모양이다.

드디어 3서클이라고 가슴을 펴고 이야기하는데, 어디 가서 자랑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까놓고 지금 아카데미 애들 중에 3서클 아닌 애가 없다며? 쪽팔린 줄을 알라고.

그래도 동기 중에 자기가 가장 강하다고 반론하길래, 그건 걔들이 병신이라 그렇다고 쏘아줬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시무룩해지는 꼴을 보니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 너를 위해서라니까?

쿠아아아악-!

가까이 있던 트롤도 그 불똥에 맞았는지 괴성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녀석은 한창 씹고 있던 살덩이를 바닥에 내던지고 레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르륵-!

다시 한번 후방에서 날아드는 마법.

이번에는 화염 화살 몇 개가 트롤의 얼굴을 향했다.

“타이밍 좋고!”

퍼버버벙-!

쿠에에엑-!

불꽃에 직격당한 트롤.

놈이 양팔로 얼굴을 가리며 괴로워하는 사이, 레오가 코앞까지 짓쳐 들었다.

한 발, 두 발, 세 발.

마지막 도약으로 몸을 띄우더니 뒤에서부터 검을 끌어당기며 몸을 회전한다.

푸른 오러가 맺힌 묵직한 검신이 거칠게 회전하며 트롤의 허리에 짓쳐 들었다.

풍참風斬.

서걱-!

왼쪽 겨드랑이부터 오른쪽 골반까지, 양단되는 트롤의 몸뚱이. 아무리 회복력이 뛰어나도 어찌할 수 없는 치명상이다.

레오는 흙바닥에 쓰러진 트롤의 목에 다시 한번 검을 꽂더니 휙 비틀었다.

‘혼자서도 충분하겠어.’

트롤은 생각보다 손쉬운 상대였다.

덱스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혼자서도 썰어 버릴 자신 있다.

‘이 녀석도 마음에 들고.’

새로운 검도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특히 검의 무게감과 밸런스가 마음에 든다. 무게 중심이 조금 바깥쪽에 실린 것이 지금처럼 회전으로 파괴력을 높이는 검술에 꼭 맞았다.

역시 장인의 작품이라 할 만했다.

“클라인! 무무카! 둘은 생존자 보호를 우선해! 나는 트롤부터 처리할게!”

“알았어!”

“알았다.”

트롤이 쓰러지자 근방의 고블린들은 겁을 집어먹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지금 고블린 하나하나를 상대하는 건 시간 낭비.

레오는 놈들을 무시하며 마을 중앙으로 뛰어들었다.

쿠아아아악-!

또다른 트롤의 괴성이 들리는 방향이었다.

* * *

마차에 남겨진 줄리앙 일행은 혼란스러웠다.

몬스터의 습격을 받으리라는 것도, 그런데도 용병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도 모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다.

“줄리앙, 어떡하지?”

“…일단 앞쪽으로 가자.”

줄리앙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일단 정확한 상황부터 확인해야 했다.

용병들을 헤치고 앞으로 이동했다.

몬스터의 괴성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은 더 강하게 쿵쾅거렸다.

마침내 행렬의 선두에 도달하자 시야가 트였다.

“흐읍….”

니앙이 숨을 들이켰다.

인간과 고블린 사체가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처참한 광경.

사지가 멀쩡한 사체는 거의 없다.

팔다리가 뜯긴 인간의 시체가 간간이 보이는 와중, 깔끔하게 양단되거나 머리통이 곤죽이 된 고블린 사체가 하나둘 늘어 갔다.

그리고 죽은 고블린을 만들어 내고 있는 건 앞서 달려 나간 클라인과 무무카였다.

쿠아아아아-!

이어지는 트롤의 괴성.

동시에 검광이 번뜩이더니 트롤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트롤의 목에 검을 꽂아 마무리하는 레오의 모습.

그 광경을 본 줄리앙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줄리앙 아무래도 위험해. 고블린이 너무 많아. 뒤로 물러나 있자.”

“그래, 용병들도 여기에서 안 움직이고 있잖아.”

만류하는 파블로와 니앙.

“그러면 저기 저 녀석들은?”

줄리앙이 목소리를 높였다.

딱히 정의감 때문은 아니다. 스스로 그런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으니.

둘에게 화풀이할 생각도 없었다. 다만 가슴에 답답함이 치밀어 어떻게든 토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으으으…!”

줄리앙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저런 난전에 뛰어들려면 최소한 자기 몸은 지킬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냉정히 판단했을 때 자신은 아직 그 정도 마법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걸 하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조급했던 것 같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면 될 일이다.

“미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스스로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나직이 말하는 줄리앙.

전위 없이 뛰어드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안다. 자신은 레오 일행처럼 강하지도 않다.

그래도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다만 두 사람에게까지 강요할 수는 없는 일.

“줄리앙…!”

파블로와 니앙의 눈동자가 떨린다.

서로를 바라보더니 금방 결심을 굳히는 두 사람.

“우리도 간다.”

“같은 팀이잖아, 혼자 보낼 수 없지.”

“…고맙다.”

줄리앙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뒤에 여전히 멀뚱히 현장을 보고만 있는 용병들이 있었다.

* * *

“언니, 무서워….”

“괜찮아, 괴물은 우리 집에 절대 못 들어올 거야.”

“아빠는 괜찮을까?”

“무사히 돌아온다고 약속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마을의 유일한 사냥꾼, 누벤의 집.

누벤의 어린 두 딸은 숨죽인 채 비밀 공간에 숨어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

언니 티리아가 어른스럽게 동생을 다독이고 있었지만 그녀 또한 겨우 아홉 살의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아빠 무서워….’

티리아는 동생 로아를 꼭 끌어안으며 눈을 감았다.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티리아 일어나라, 빨리.]

항상 상냥한 아빠가 한밤중 티리아와 동생을 거칠게 흔들어 깨웠다.

밖은 사람들의 비명과 알 수 없는 짐승 소리로 시끄러웠고, 아빠는 잠에서 덜 깬 두 자매를 이중벽 안쪽의 비밀 공간에 밀어 넣었다.

[티리아, 잘 들어라. 밖에 무서운 몬스터가 있어. 절대로 여기에서 나오면 안 된다. 알았지?]

[몬스터?]

[금방 돌아올게. 아빠가 오기 전까지 잘 숨어 있어야 해. 약속할 수 있지?]

[응….]

[티리아, 로아. 사랑한다.]

그렇게 아빠가 사라지고 나서야 티리아는 밖의 짐승 소리가 몬스터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을 어른들은 항상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산속에는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있으니 절대 숲속 깊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그 몬스터가 마을에 내려온 걸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빠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밖은 점점 더 시끄러워졌다.

콰직-!

가까이서 들리는 뭔가 부서지는 소리에 티리아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콰직, 콰직- 우드득-!

그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몬스터가 문을 부수고 있어?’

티리아는 작은 틈새로 밖을 내다보았다.

나무로 만든 현관문이 조금씩 부서지고 있다. 바깥의 불빛 때문인지 문이 부서질수록 집 안쪽으로 더 많은 빛이 새어 나왔다.

케르륵-!

벌써 얼굴만 한 구멍이 생겨난 문. 그 너머로 몬스터의 얼굴이 슬쩍 비쳤다.

붉게 충혈된 눈. 양옆으로 찢어진 입. 그리고 날카로운 이빨.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그 몬스터가 분명했다.

‘흐윽!”

티리아는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꾹 참았다.

저 이빨에 물리면 많이 아프겠지? 그러면 고통스럽게 죽게 되는 걸까? 아빠는 괜찮을까?

두려움에 눈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콰직, 콰지직-!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문을 부수는 기세는 더욱 강해졌고.

마침내 고블린들이 집 안으로 하나둘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티리아는 동생 로아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으며 숨을 죽였다.

‘이 안에 조용히 있으면 몬스터가 분명히 못 찾을 거라고 했어.’

아빠가 그렇게 말했다. 비밀 공간이 있는 벽에는 몬스터가 싫어하는 냄새를 뿌려 뒀다고.

키에에….

고블린은 총 세 마리였다.

놈들은 집 안을 기웃거리며 이불을 들쳐 보기도 하고 테이블 위의 음식을 뒤적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자매가 있는 벽 쪽으로는 다가오지 않았다.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킥킥거리던 고블린들이 드디어 흥미를 잃고 발을 돌리려던 차.

“콜록-!”

티리아의 품에서 작은 기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천식이 있는 로아가 긴장감에 참지 못한 소리.

뒤늦게 로아가 양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이미 고블린의 고개가 이쪽을 향했다.

‘들켰어…!’

누런 이빨을 드러낸 괴물들이 다가오고 있다.

티리아는 두려움 속에서도 재빨리 판단을 마쳤다.

현관문도 부순 놈들이다. 이 얇은 나무 벽을 부수지 못할 리 없다. 벽이 부서져 발견되면 둘 다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동생은 살려야 해!’

티리아는 품에 안고 있던 로아를 떼어 냈다.

동생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검지를 세워 입술에 갖다 댔다. 그리고 잠금장치를 열고 스스로 비밀 공간에서 빠져나왔다.

스스로 미끼가 될 셈.

케헤헤-!

고블린 셋의 시선이 일제히 티리아에게 향했다.

더럽고 날카로운 이빨이 흉물스러운 미소 사이로 삐져나왔다.

벽을 부술 생각이었는데 저절로 나와 주다니.

“꺄아아악-!”

놈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티리아는 길게 비명을 내지르고는 좁은 집 안을 달렸다.

테이블 아래를 구르듯 통과했고 손에 잡히는 것을 던지며 현관으로 향했다.

다만 고블린의 발이 더 빨랐다.

한 녀석이 티리아보다 먼저 현관을 가로막았고, 결국 티리아는 앞뒤에 고블린을 두게 됐다.

“아…!”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이제 죽는 걸까? 너무 무서워…. 그렇지만 동생을 살릴 수 있으니까 괜찮아.

눈을 감았다. 이빨이 딱딱 부딪히는 두려움 속에서도 어린 소녀는 동생을 떠올리며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푸욱-!

날붙이가 살점을 가르는 소리.

눈을 뜬 티리아의 앞에는 가슴에 검이 돋아난 고블린이 있었다.

크에엑….

눈알을 뒤집어 깐 채 무너지는 녀석.

쑥-!

검이 사라진 자리에서 붉은 피가 울컥 솟는다.

고블린의 뒤에서 반짝이는 갑옷을 입은 붉은 머리칼의 남자가 나타났다.

“잠시만 기다리렴.”

남자는 티리아를 재빠르게 자신의 등 뒤로 돌리더니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어진 짧은 검광.

순식간에 나머지 두 마리 괴물도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괜찮니?”

티리아는 멍한 얼굴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무시무시한 고블린을 단번에 처치한 남자의 얼굴은 꽤 앳되어 보였다.

“…기사님?”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몬스터를 무찌르는, 붉은 머리칼의 기사님.

그래, 눈앞의 남자는 분명히 기사님이 틀림없다.

“일어날 수 있겠어?”

티리아는 남자가 내민 손을 잡았다.

기사님의 손은 크고 따뜻했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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