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46화 (46/127)

46. 시오프 산맥 (5)

쿵.

깔끔하게 목이 떨어진 트롤이 바닥에 쓰러졌다.

이걸로 세 마리째.

검을 뿌려 피를 털어낸 레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와아아아-!”

지켜보던 대피소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누벤이 트롤을 유인해 사라진 얼마 후 또 다른 트롤이 나타났다. 모두가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에 나타난 검사가 순식간에 트롤의 목을 베어냈다.

지붕에서 뛰어내리며 단번에 목을 따는 그의 검술은 기예에 가까웠으며, 뒤이어 등장한 마법사의 실력도 예사롭지 않았다.

“파이어 애로우-!”

작은 영창 소리와 함께 십여 개의 화염 화살이 동시에 떠오르더니 각기 다른 방향으로 쇄도했고.

곧 화염의 숫자만큼 고블린의 머리가 불타 나뒹굴었다.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광경이었다.

‘이제 열 개도 충분히 컨트롤 된다.’

덱스는 새로운 마석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맨 처음 싸구려 마석을 쓰다가 샤를롯의 지팡이를 빌렸을 때의 느낌은 발목의 모래주머니를 풀고 달리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마석은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마력 순환이 배는 가속된 느낌이다.

어느새 주변 고블린은 채 열 마리도 남지 않았다.

오히려 대피소를 지키던 사내들의 숫자가 더 많아지자 고블린 무리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한다.

전세가 역전된 것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두고 볼 사람들이 아니었다.

“우리도 가세한다!”

루크의 외침에 대피소를 지키던 사내들이 바리케이트 밖으로 뛰쳐나왔다.

분노에 찬 사내들의 공격에 고블린들은 제대로 반항도 못 하고 죽임을 당했다. 그 와중 덱스도 신상 메이스를 짧게 쥐고 고블린 대가리를 두들기는 데 합류했다.

마침내 광장의 몬스터가 모두 쓰러졌다.

“이겼다! 이제 살았어!”

“와아아-!”

살아남은 이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 사이 다수의 용병이 생존자와 함께 대피소에 도착했다. 줄리앙 일행도 함께였다.

“수고 많았다.”

“너희도.”

레오는 클라인과 무무카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진심이었다. 믿을 수 있는 동료가 있기에 먼저 트롤을 사냥할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많은 사상자가 생겼겠지.

“용병들도 움직인 거야?”

“도중에 합류했어. 그 덕에 생존자 수색이 빨랐지.”

“어쩐 일이래? 처음에는 꼼짝도 안 하고 있더니.”

“아… 그거.”

클라인이 슬쩍 줄리앙 일행 쪽을 돌아보았다.

줄리앙도 열심히 뛰어다닌 모양인지 꽤 지쳐 보였지만 표정은 나쁘지 않은 모습이다.

“줄리앙이 용병들을 움직인 모양이야.”

“줄리앙이? 어떻게?”

“뭐겠어?”

클라인이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쥐어 보인다.

그럼 그렇지. 돈 귀신들이 공짜로 움직일 리가 있나.

레오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 막돼 먹은 녀석은 아니었네.’

줄리앙에 대한 평가가 한 단계 높아졌다.

귀족의 시각에서 보자면 브뤼쉬 영지민의 생사는 줄리앙과 아무 관계 없다. 사람이 죽건 마을이 사라지건 그가 돈을 써가며 도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더 큰 이득을 위해 자신의 영지도 위험에 빠트리는 인간도 있는 마당에 줄리앙의 행동은 충분히 칭찬받아 마땅했다.

‘켈시온 같은 쓰레기도 있는데 말이지.’

후작파에 붙어 자신의 영지를 스스로 위험에 빠트리는 선택을 한 켈시온 백작이 떠올랐다.

어쨌든 귀족에 대한 불신감이 높은 레오에게 줄리앙의 행동은 꽤 인상적이었다.

“저어-쪽 트롤을 박살 낸 게 형씨 맞소? 확실히 그 주먹에 맞으면 트롤 대가리도 부서질 것 같긴 하네.”

용병 하나가 무무카에게 슬쩍 다가가 말을 걸었다.

용병들 사이에서 가장 처음 뛰어든 삼인방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다. 특히 트롤을 양단하고 안쪽으로 사라진 레오를 흘끔거리는 이들이 가장 많다.

그럼에도 아카데미 생도라고 하면 귀족이라는 신분이 떠오르기에 웨어울프인 무무카에게 접근한 것이다.

적어도 제국에 수인 귀족이 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으니까.

“그렇소. 생각보다 단단하진 않더군.”

“휘유-!”

“댁도 아카데미 생도요? 거, 혹시 용병이 될 생각은 없소?”

“에라이, 멍청한 놈아! 지금 기사에 비견할 양반한테 용병질을 권하는 거야?”

“아니,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 아냐!”

모여든 용병 몇이 투닥거리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이, 레오가 끼어들었다.

“어허! 안 돼요, 어디서 내 친구를 빼가려고.”

“헙! 아닙니다, 나리. 저희끼리 하는 농담입죠. 그런데 친구분이시라고요?”

“친구 맞는데요?”

“그… 나리는 나리가 아니신가요…? 저쪽 나리는 베니에르가의 공자님이라고 하시던데….”

“흐흐흐….”

혹시 귀족이 아니었냐는 말.

귀족 도련님과 일행이니 귀족인 줄 알았는데 말투는 그렇지가 않으니 하는 말이다.

그에 레오가 그냥 웃어 주던 차.

쿠궁-!

지면을 울리는 둔중한 충격음이 전해졌다.

파드드득-!

숲이 흔들리고 산새들이 날아오른다.

“이게 무슨 소리지?”

“북쪽 숲 방향이야, 설마 몬스터가 더 남아 있는 건가?”

살아남은 사람들의 눈동자에 다시 한번 불안이 깃든다. 풀었던 긴장이 다시 팽팽히 조여들었다.

악몽 같던 밤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인가.

까악- 까악-!

머리 위를 선회하는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불길했다.

쿵- 쿵-!

충격음은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졌다.

느리지만 착실히, 그것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쯧.”

레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번 몬스터의 습격은 절대로 정상적이지 않다.

고블린 무리가 인근 마을을 습격하는 사건은 가끔 발생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무리에 트롤이 섞여 있다?

완전히 의미가 다르다.

흑마법사가 정신 지배로 몬스터를 조종했을 확률이 높다.

마을 습격에 실패하자 흑마법사가 다른 수를 쓴 것이 틀림없겠지.

까악-!

회귀 전 흑마법사에 의해 준동한 몬스터 토벌 임무를 맡은 적이 있다.

당시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빌어먹을 까마귀 새끼.”

레오는 나직이 욕지기를 뱉었다.

* * *

시오프 산의 야트막한 중턱에 자리한 동굴.

“트롤이 넷이나 있었는데 실패?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까마귀의 눈을 통해 마을 상황을 엿보고 있던 남자가 분통을 터트렸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흑마법사 네메이르.

레오의 추측대로 몬스터를 조종하여 마을을 습격하게 한 장본인이다.

“제기랄….”

네메이르는 잡다한 도구가 너저분하게 쌓인 동굴 안을 불안한 걸음걸이로 배회했다.

동굴 안에는 바닥에 까는 거적은 물론 각종 시약과 실험 재료로 보이는 갖가지 것들이 널려 있다. 동굴에서 생활한 지 최소한 한 달은 되어 모이는 광경이다.

“으으으…!”

그는 거칠게 머리를 헝클었다.

몬스터를 준동시켜 마을 주민을 학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용병들이 온다는 소식에 일부러 때를 맞췄다. 되도록 수많은 인간의 목숨이 필요했으니까.

애초에 몬스터의 패배는 계획에 없었다.

고블린 수십과 트롤 넷을 상대하려면 최소한 백 단위의 용병이 필요하다. 브뤼쉬에서 고용할 숫자는 기껏해야 오십 아래일 테니까.

여기까지는 예상대로였다.

그런데 트롤을 단번에 제압할 정도의 실력자가 함께 나타날 줄은 몰랐다. 저 정도면 상급 용병 중에서도 베테랑이고 능히 기사에 필적하는 실력이다.

그런 이가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 있다니.

“무조건 성공해야 해….”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

네메이르는 품속에서 꼬깃꼬깃한 종이를 하나를 꺼냈다.

고가의 마법 시약을 소모해가며 만든 골렘 생성 주문서. 한 장을 만드는 데 오 년이나 걸린 것이다.

“으으으….”

많은 돈이 들어간 주문서를 쓰는 게 아까워 죽을 것 같았지만 임무에 실패했을 때의 뒷감당은 더 두렵다.

게다가 성공하기만 하면 꽤 많은 보수를 기대할 수 있다.

‘동굴에서 생활하며 만든 각종 시약을 판매하면 새로운 주문서를 만들 시간도 꽤 단축할 수 있겠지.’

결국 네메이르는 주문서를 찢었다.

주문서가 바스라지며 마법 술식이 허공에 나타난다.

네메이르는 자신의 마력을 일으켜 허공의 술식에 연결하자 주인 없는 술식은 저항 없이 그에게 귀속되었다.

“일어나라. 네 주인의 의지를 따르라-!”

영창과 함께 그가 가리킨 곳의 지면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바위와 흙이 모여 형태를 만들었고 곧 불쑥 몸을 일으켰다.

트롤만큼이나 거대한 크기의 골렘.

그그극-!

골렘이 고개를 돌리자 바위 긁히는 소리가 났다.

돌가루와 흙이 우수수 떨어졌다.

“가라. 저 아래의 모든 생명을 짓밟아라.”

자유 의지가 없는 골렘은 오직 술자의 명령을 따른다.

골렘은 네메이르의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지면을 울리는 둔중한 발걸음에 산새들이 푸드덕 날아올랐다.

* * *

“파이어볼!”

퍼엉-!

덱스의 마법이 가장 먼저 골렘에 직격했다.

주변이 환하게 빛날 정도로 큰 폭발이 일었지만 골렘의 발걸음을 멈출 순 없었다.

이어서 화염 화살 여러 개가 다시 한번 날아들었다. 각 관절부를 노린 공격도 아무 소용 없었다.

“하….”

덱스는 망연자실하게 숨을 토해 냈다.

지금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에도 끄떡하지 않다니, 처음으로 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도망가야 하는 것 아냐?”

“지금 도망가면 돈은 어떻게 받으려고?”

마을 북쪽 입구까지 따라 나온 용병들도 골렘의 위용에 뒷걸음질 쳤다.

살면서 끽해야 몬스터 몇 종류 마주친 것이 전부인 그들이다. 골렘이라니 그런 건 술자리의 허풍에나 등장하는 것인 줄 알았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지금 발을 뺐다가는 줄리앙에게 받을 돈도 못 받을 것이기에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후….”

긴장한 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클라인은 길게 숨을 내쉬며 검에 오러를 둘렀고, 무무카도 투기를 끌어 올렸다.

‘지금으로서는 공략할 부분이 보이질 않아.’

레오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골렘의 등장과 함께 오러안으로 약점을 찾으려 했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복부 부분에 흐릿하게 뭔가 보이는 것 같지만 저 두꺼운 바위 몸통을 뚫지 않고서는 타격을 줄 방법이 없다.

“일단 두드려 보자. 때리다 보면 깨지겠지.”

레오가 가장 먼저 몸을 날렸다.

둔중한 주먹이 당겨지는 사이 오러를 두른 강검이 먼저 골렘의 몸체를 후려쳤다.

캉-!

불꽃이 튀며 돌조각이 비산했다.

커대한 바위 몸체를 부수기는 역부족. 이어서 묵직한 주먹이 레오가 있던 바닥에 꽂히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하앗!”

“흐읍-!”

이어서 클라인과 무무카도 달려들었다.

“복부를 노려. 거기를 깨야 해.”

레오는 흐릿하게나마 본 약점을 모두에게 공유했다.

골렘을 움직이게 하는 마력원의 위치. 다만 거기에 검이 닿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바윗덩이를 깨야 한다.

“넘어트릴게! 그리스!”

덱스의 마법.

잠시 후 골렘의 몸이 붕 뜨는 듯하더니 바닥에 떨어진다.

거대한 몸이 무방비하게 쓰러진 사이 다시 한번 셋의 공격이 집중되었지만, 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일어났다.

전혀 충격을 받지 않은 모습.

“젠장, 말 그대로 벽하고 싸우는 기분이네.”

허억- 허억-!

레오의 호흡이 점차 거칠어졌다.

상대는 아픔도 느끼지 않고 감정도 없는 무생물이다. 반대로 인간은 시간이 갈수록 체력은 소진된다. 막막함이 더해졌다.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덱스가 어금니를 물었다.

접근전을 벌이는 세 사람이 힘내고 있지만 그저 골렘의 발을 묶는 것 이외에는 큰 효과가 없다.

이대로는 공격하는 쪽이 먼저 지쳐 떨어져 나갈 것이다.

“어쩌면…!”

가능할까?

아니, 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덱스는 마법 학부 친구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