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52화 (52/127)

52. 숲의 조율자 (4)

레오 일행이 숲에 들어선 지 약 한 시간.

숲은 깊었고 포렌티아가 있을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더 깊숙한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아.”

전문 약초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유일하게 약초 채집 경험이 있는 덱스가 앞서서 방향을 잡았다.

“저쪽 경사면으로 넘어가 보자.”

포렌티아는 그늘지고 습한 환경에서 자생한다고 했다.

일단 해가 오래 들기 어려운 지형 위주로 탐색하는 것이 좋았다.

덱스가 방향을 잡고 레오와 무무카가 주변을 경계하며 함께 나아갔다.

고블린 몇과 마주친 것 외에 이렇다 할 일은 없었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제국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프로인 숲이다. 깊은 곳은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 남아 있다.

낮은 언덕을 넘으니 깊은 계곡이 나타났다.

계곡 인근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반대편 경사면을 따라 오르막을 올랐다.

어느 순간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당장 나무둥치의 두께만 해도 숲 초입의 것과 다르다.

빽빽한 녹음 때문에 태양이 중천임에도 서늘한 한기가 느껴질 정도다.

“저쪽으로 가 보자.”

“이번에는 저쪽.”

“으음, 저기로 가 볼까?”

“후… 저긴 어때 보여?”

어느덧 날이 저물어 간다.

시간이 갈수록 덱스의 자신감은 점점 떨어졌다.

“괜찮다고. 첫날에 발견하리라고는 기대도 안 했어. 최소한 일주일은 헤맬 생각이었다고.”

“일단 아까 그 동굴로 돌아갈까.”

마침 도중에 야영하기 괜찮아 보이는 동굴을 발견한 터였다.

그렇게 이튿날을 맞았다.

경사면을 타 넘으며 숲을 뒤졌지만 종일 조우한 것은 트롤 하나와 다크 코볼트, 그리고 숲 고블린 무리가 전부.

결국 해 질 무렵 다시 같은 동굴로 돌아왔다.

“…미안해.”

“쫄보 자식, 신경 쓰지 말라고. 뭣하면 내일은 내가 앞장선다?”

포렌티아는 베테랑 약초꾼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약초가 아니다.

누가 길잡이를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니 조급해할 것도, 탓할 것도 없다.

그렇게 소득 없이 닷새째를 맞았다.

이틀간 야영했던 동굴을 떠나 다시 이틀을 숲 안쪽으로 이동한 시점이었다.

“이상하게 조용한데.”

레오는 날카롭게 기감을 세우며 말했다.

그간 소소하게 몬스터와 조우하기도 했지만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사방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반나절을 움직이는 동안 몬스터는커녕 소동물의 기척도 없는, 불길할 정도의 고요함.

“음, 무엇인가의 영역에 들어섰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하다못해 트롤의 영역에도 고블린 같은 놈들은 얼씬도 못 하니까.”

“영역이라고 하기에 우리가 오전 내내 돌아다닌 곳은 너무 넓지 않아?”

“그만큼 강한 놈일 수도 있지.”

“나 지금 굉장히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데, 그건 아니겠지…?”

덱스가 불안한 눈동자를 굴렸다.

오는 동안 했던 오우거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쿠아아아아아악-!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괴성이 숲을 뒤흔들었다.

푸드드득- 날아오르는 산 새들.

팽팽한 긴장감이 숲을 드리웠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아.”

귀를 세운 레오가 대략적인 방향과 거리를 유추했다.

“왜 그래, 레오. 도망치는 거 아니었어?”

“쫄보 녀석, 아직 오우거라고 확인한 것도 아니잖아. 그냥 목청 좀 큰 트롤일 수도 있고.”

“아냐, 저건 트롤일 리가 없어. 절대, 절대로 아니야.”

덱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트롤은 벌써 몇 번이나 경험했다. 저 괴성은 트롤과 근본적인 공포감이 다르다.

“그러니까 일단 보기만 하자고. 무무카, 넌 어떻게 생각해?”

“네가 하자는 대로 하겠다.”

“좋아, 찬성이 둘이다. 가자!”

“으으… 불공평해….”

툴툴거리면서도 덱스는 레오의 뒤를 쫓았다.

몇 분이나 이동했을까.

다시 한번 괴성이 울려 퍼졌다. 아까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

“저쪽이야.”

골짜기 아래 무무카가 가리킨 곳에 두 괴수가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쿠아아악-!

아름드리나무를 뿌리째 뽑아 휘두르고 있는 거인.

그리고 흰 털을 흩날리며 거인과 상대하는 거대한 짐승.

“저거, 오우거 맞지?”

덱스가 거인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체고가 족히 4~5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인.

무릎 아래까지 늘어진 기다란 팔은 넓은 공격 범위를 자랑했으며, 몸통은 수백 년 묵은 나무둥치처럼 두껍고 단단해 보였다.

두꺼운 근육으로 채워진 몸뚱이는 그 자체로 육중한 둔기였고, 거대한 체구에서 뿜어지는 괴력은 과연 지상 최강의 몬스터라 불릴 만했다.

“…맞지 않을까? 저런 괴물이 오우거 말고 또 있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인데.”

“저 녀석도 몬스터인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놈이다.”

카아아앗-!

그런 오우거의 공격을 회피하며 반격을 가하는 흰 짐승.

몸길이는 오우거의 체고에 필적했지만 전체적으로 얇고 긴 몸통이다. 그렇다 보니 오우거의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질 것처럼 위태해 보였다.

짐승은 민첩하게 오우거의 주변을 날듯이 뛰며 공격과 회피를 이어 갔다.

바짝 솟은 작은 귀와 역삼각의 얼굴 형태는 마치 늑대를 연상시켰는데, 삐쭉 튀어나온 굵고 날카로운 송곳니는 검치호의 것을 떠올리게 했다.

“늑대 같기도 하고.”

“저 송곳니만 빼면? 생전 처음 보는데 저거 도대체 뭔 동물이냐? 늑대는 아니지?”

레오와 덱스가 동시에 무무카를 바라봤다.

“…왜 내가 알 거라고 생각하지?”

“그냥 물어본 거야.”

레오는 적당히 손을 휘저으며 얼버무렸다.

늑대끼리라 혹시 알아볼까 했는데 아닌가 보네.

카아악-!

그때, 날렵하게 오우거의 뒤를 잡은 늑대 몬스터가 거대한 송곳니를 오우거의 목에 박아 넣는 데 성공했다.

“오우거가 당했어!”

“아직 아니야.”

치명상이라기에는 부족하다.

녀석의 이빨은 오우거의 가죽에 간신히 구멍을 뚫었을 뿐 그 이상의 피해를 주지 못했다.

오우거가 세차게 팔을 휘두르자 늑대는 이내 오우거의 등에서 떨어지며 다시 거리를 벌렸다.

지금까지 그런 식의 공격이 반복됐는지 오우거의 전신에는 자잘한 상처가 제법 있었다. 다만 번번이 치명상을 입히는 데는 실패한 것 같았다.

그만큼 오우거의 가죽이 두껍고 단단하다는 증거다.

“저쪽 좀 봐!”

두 괴수의 싸움에 정신이 팔린 사이, 덱스가 조금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커다란 나무 아래, 작은 열매처럼 노란색 꽃이 방울방울 달린 풀이 모여 자라고 있는 장소.

“저거 포렌티아 꽃 아냐?”

“맞는 것 같은데? 이 계절에 피어 있는 노란 꽃은 포렌티아밖에 없다고 했으니까.”

“저놈들 싸우는 사이에 살짝 캘 수 있을까? 잘하면 안 들킬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되겠냐?”

포렌티아로 추정되는 풀은 두 괴수와 십여 미터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다.

몸을 숨길 곳도 없어 몰래 다가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

잘못하면 두 괴수를 동시에 적으로 돌릴 위험성이 있다.

“그러면 기다려? 저놈들 싸움이 끝날 때까지?”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지?”

두 괴수의 주변은 태풍이라도 휩쓸고 간 듯 엉망진창이다.

나무가 뽑히고 흙이 뒤집히기 십상. 자칫 저들에 휘말리면 땅에 묻힌 포렌티아도 무사할 리 없다.

카앙-!

오우거의 주먹을 피하지 못한 늑대가 높은 비명과 함께 나가떨어졌다.

하필이면 포렌티아 꽃이 피어 있는 부근이다.

녀석은 비틀거리며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아무래도 제대로 일격을 맞은 모양.

쿠오오오!

승리를 확신한 오우거가 포효를 질렀고.

싸움을 마무리 짓기 위해 늑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늑대도 포렌티아도, 모두 위기였다.

“젠장!”

“에라, 모르겠다!”

레오가 날듯이 비탈길을 달려 내려갔고 무무카와 덱스가 그 뒤를 따랐다.

“아쿠아!”

물 덩어리가 오우거의 얼굴을 감싸 생성되며 호흡을 방해한다.

기습적인 공격에 당황한 오우거. 곧 양손으로 물 덩어리를 긁어 털어 낸다.

쿠아아아악-!

몸을 돌려 새로운 적을 발견한 오우거가 흥분해 괴성을 질렀다.

“무무카, 한 번 더 주의를 끌어 줘!”

“알았다!”

투기를 끌어 올린 무무카가 앞장서서 오우거를 향했다.

긴 오우거의 팔을 피해 품속으로 파고든 무무카가 놈의 두툼한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쾅-!

단단한 바위를 때리는 소리가 울렸다.

트롤의 머리도 단번에 뭉개 버린 무무카의 주먹이지만 오우거의 두꺼운 근육을 뚫고 타격을 주기에는 역부족.

오우거는 거칠게 콧김을 뿜으며 손을 뻗었고, 무무카는 빠르게 거리를 벌리며 바윗덩이 같은 주먹을 피해 냈다.

빈 약병이 굴렀다.

흑마법사의 마비 독을 검날에 바른 레오.

오우거의 시야를 피해 등 뒤에서 접근하며 몸을 띄웠다.

휘리릭-!

회귀 전에도 오우거를 상대해 본 적은 없다. 그러니 이 기술을 오우거에게 써보는 것도 당연히 처음이다.

“하앗-!”

레오가 몸을 띄웠다.

오우거가 등 뒤를 눈치챘을 때는 이미 지척.

풍참(風斬).

폭발적인 회전력을 실어낸 검이 오우거의 허벅지 뒷면을 강타했다.

키아아악-!

고통 섞인 괴성과 함께 오우거의 허벅지에 붉은 자상이 피었다.

‘얕아!’

레오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오러를 담아낸 검으로 간신히 베어 내는 데 그치다니 과연 오우거의 가죽이다.

가죽을 가르고 근육에도 어느 정도 타격을 주었지만 기대한 만큼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파이어 애로우!”

덱스의 화염 화살이 날아들며 레오와 무무카가 거리를 벌릴 틈을 만들었다.

다섯 개의 화염 화살이 거의 동시에 오우거의 얼굴에 날아들었다.

퍼버버버벙-!

재빨리 팔을 들어 얼굴을 가로막는 오우거.

두꺼운 양팔 위에서 불꽃이 터졌지만 그을린 자국이 전부다.

덱스의 마법도 오우거를 잠시 멈추게 하는 데 그쳤다.

“뭐 이리 단단해!”

“일단 거리부터 벌려. 뒤로 물러나!”

오우거가 레오와 무무카에게 끌려 나오며 당장 포렌티아의 안전은 확보됐다.

흰 늑대는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

크으으으으….

오우거가 와락 인상을 썼다.

마비 독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듯 한쪽 다리를 절뚝이기 시작했지만 그 흉포함은 더욱 거세졌다.

‘이제 다음이 문제인데….’

레오와 무무카가 번갈아 오우거의 주의를 흩어 가며 공격을 이어 나갔지만 치명상을 입히기에는 부족했다.

콰앙-!

오우거의 주먹이 레오가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지면이 쪼개질 듯한 충격에 돌과 흙이 사방으로 튄다.

늑대를 상대하다 다시 새로운 적을 맞아 싸우는 오우거의 체력이 경이롭다.

저 괴물은 지친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게 아닐까?

“라이트!”

눈부신 광원이 오우거의 눈앞에서 번쩍였다.

시야를 잃은 오우거가 괴성을 지르며 양팔을 휘저었고, 무무카가 투기를 내뿜으며 오우거의 신경을 묶었다.

그사이 다시 한번 사각에서 뛰어든 레오가 오우거의 몸을 난자했다.

“젠장, 가죽을 베는 게 고작이야!”

레오는 오러안을 발동했다.

심장을 중심으로 세차게 요동치는 붉은 선.

대번에 오우거를 움직이게 하는 굵직한 힘의 흐름이 드러났다.

‘도저히 약점이 없나?’

한 번 더 눈에 오러를 집중시켰다.

오우거라는 한 개체에 맞춰졌던 초점이 오우거의 가죽 표면으로 이동하여 가슴, 배, 팔, 다리 등 녀석의 전신을 훑는다.

치밀하게 얽히고설킨 수많은 연결 구조. 어디 한군데 만만해 보이는 곳이 없어 오러를 담은 찌르기로도 쉽게 뚫기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어디 한 군데 정도는…!’

레오는 오우거의 가죽 중 가장 연약한 부위를 찾았다.

극심한 마나 소모로 두통이 극심하다. 입안에 비릿한 혈향이 도는 것이 코피라도 터진 모양.

하지만 무조건 실마리를 찾아야 했다.

“파이어볼!”

화염구가 하늘로 치솟더니 오우거의 정수리로 떨어진다.

무무카를 상대하느라 화염구의 존재를 뒤늦게 발견한 오우거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화염구가 그 손등에서 그대로 폭발했고 불꽃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파어어 애로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열기.

지근거리에서 폭발한 열기에 오우거도 고통스러운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악-!

놈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고개를 젖힌 순간.

레오의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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