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57화 (57/127)

57. 포렌티아 (3)

로트넬을 끌어내기 위한 계획은 생각대로 착착 맞아떨어졌다.

백작 부인의 병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로트넬에게, 포렌티아로 인한 회복세는 분명 예상치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굳이 로트넬이 보는 앞에서 포렌티아의 양을 늘리겠다 공언한 것도 그녀를 자극하기 위함.

저주를 강화하는 의식을 유도하고 그 현장을 잡기 위해 그녀의 방을 감시할 것까지 제안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대로였다.

아침 일찍 메르윈 백작이 보낸 시종이 레오를 깨웠다.

백작의 호출이었다.

“백작님.”

레오를 맞는 백작의 눈두덩이가 퀭했다. 밤새 한숨도 못 잔 것이 분명하다.

백작은 레오를 보자마자 다가와 양손을 감싸 잡았다.

“자네에게 뭐라 할 말이 없네. 그저 고마울 뿐이야.”

“어젯밤의 소란은 역시 그것이었군요.”

“그래, 모두 자네 예측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지.”

백작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혐의를 부정한 로트넬이었지만 베눔 자작과 주고받은 서신이 발견되자 순순히 죄를 인정했다고, 가족이 인질로 잡혀 어쩔 수 없었다며 선처를 빌었다 했다.

다만 그런 사정이 있다 하여 부인의 목숨을 노린 자를 용서할 리 없었다.

“로트넬의 처분을 어떻게 하실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밤새 그것을 고민했지. 당장 찢어 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겠지만 일단 목숨은 붙여 놓을 생각이네.”

“…베눔 자작을 지켜볼 생각이시군요.”

“그렇네, 로트넬의 필체도 아직 이용 가치가 있을 테니까.”

베눔의 방심을 유도하면서 역으로 정보를 캐낼 생각.

지금 택할 수 있는 최선책이었기에 레오도 별다른 첨언을 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부인께서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충격을 많이 받았네. 그도 그럴 만하지, 친동생처럼 아끼던 이가 사실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암살자였다니.”

“제가 다시 한번 만나 뵈어도 되겠습니까?”

“자네를 보면 조금 기운을 차릴지도 모르겠군. 부탁함세.”

메르윈 백작은 눈은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번득였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치료사 로트넬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암살을 사주한 이가 베눔이라고는 하나 그가 단독으로 벌일 만한 일도 아니다.

베눔을 사주한 진짜 흑막을 파헤쳐야 또다시 같은 꼴이 당하지 않으리라.

“나, 돌로리아 메르윈은 자네를 가문의 은인으로 여길 것이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시게. 무슨 일이 있어도 자네의 편에 설 테니.”

선언과도 같은 백작의 말에 레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단어의 무거움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다.

더욱이 며칠 동안 겪은 백작의 성정을 생각하면 결코 허투루 뱉은 말이 아닐 것이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내가 할 말이네. 이걸 받게, 부족하나마 내 마음이니.”

메르윈 백작이 내민 상자에는 금화와 함께 작은 목함이 들어 있었다.

언뜻 보아도 거금이었으나 목함 내용물이 더 궁금했다.

조심스레 뚜껑을 열자 그 안에 놓인 작은 금속이 눈에 들어온다.

포효하는 적사자의 문양이 새겨진 사각형의 금속 장신구.

레오는 이것이 메르윈 가문의 징표라는 것을 깨달았다.

‘반다이트에 이어 메르윈의 징표라니.’

어쩌다 보니 대귀족의 징표를 두 개나 얻게 됐다.

커다란 두 날개를 얻은 기분이었다.

* * *

레오가 백작 부인을 만난 것은 로트넬이 지하 감옥에 갇히고 이틀이 더 지나서였다.

당연하게도, 응접실에서 다시 본 백작 부인의 얼굴은 편해 보이지 않았다.

“백작님께 모두 전해 들었습니다. 고마워요.”

가장 가까운 이의 배신.

크나큰 상심에도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는 백작 부인.

위로의 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 레오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이쪽은 하나뿐인 딸입니다. 인사드리렴.”

“레이라예요.”

“반갑습니다, 레이라 영애. 아카데미의 레오입니다.”

백작 부인의 곁을 지키던 소녀는 드레스 자락을 잡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름뿐인 간단한 소개였지만 눈동자에는 레오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하다.

“상태를 좀 살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에요.”

백작 부인은 익숙하게 손등을 내밀었다.

초감각을 동원해 확인한 저주의 크기는 처음보다 아주 조금 작아진 상태. 순전히 포렌티아의 기운 덕이다.

‘이런 식이면 완치를 장담하기 힘들지도.’

벌써 한 뿌리 분량으로 만든 약을 절반가량 사용했다.

이대로는 포렌티아를 모두 사용해도 저주의 크기를 줄이는 데 그칠 뿐, 완전히 없앨 수 없다.

역시 저주 자체를 해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로트넬은 아무리 심문해도 해주법을 모른다고만 반복했다.

그녀는 또한 베눔의 꼭두각시였던 것.

‘초감각으로 부인의 마나를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초감각으로 마나에 대한 민감도만 높아진 것이 아니다. 제한적이지만 내 것이 아닌 마나에 간섭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백작 부인의 신뢰를 충분히 쌓은 지금이라면 시도해 볼 만 했다.

초감각과 함께 오러안을 발동하자 레오의 눈동자에 푸른 기운이 서렸다.

백작 부인의 심장에 붙어 있는 저주의 덩어리가 또렷이 보인다. 그 저주를 이루는 구성까지도.

오러안으로 저주의 약점을 노려 조각내는 데 성공한다면, 포렌티아의 기운과 더불어 훨씬 빠르게 저주의 크기를 줄일 수 있을지 모른다.

“부인의 심장에는 아직 저주가 남아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약만으로 저주를 모두 없애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렇군요.”

백작 부인은 힘없이 답했다.

크게 실망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다만 나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기에 그간 너무 지쳤을 뿐.

곁을 지키던 레이라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했다.

‘적어도, 적어도 이 아이의 결혼식만큼은 보고 싶었는데….’

백작 부인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레이라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그저 어리기만 한 딸을 남겨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에 가슴이 아렸다.

“그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한 가지 시도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레오의 제안.

“무엇을 말인가요?”

“제가 부인의 마나를 유도하여 저주를 조각내어 보려고 합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적어도 시도해 볼 가치는 있습니다.”

백작 부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타인의 마나를 유도한다, 지금껏 들어 본 적도 없는 방식이다.

오러도, 마력도 아닌 마나. 그것은 곧 자연적인 생명력과 같다.

그것을 유도해 보겠다니, 지금까지 초빙한 어떤 치료사나 사제도 그와 같은 일은 시도하지 않았다.

잠시 레오를 바라보던 그녀.

“…해 주세요. 적어도 이대로 죽는 날만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어머니!”

“괜찮단다, 레이라. 내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실 거야. 그렇죠, 레오?”

“물론입니다. 위험하다 생각되면 즉시 중단하겠습니다.”

레이라도 아랫입술을 꾹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야와 그 오빠 무무카를 생각하면, 저 사람 또한 믿을 수 있는 사람임은 분명하다.

어머니의 팔에 꼭 붙어 손을 잡는 레이라.

“그러면 시작하겠습니다.”

레오는 백작 부인의 손등에 다시 한번 손을 얹었다.

지금까지는 눈속임 같은 과정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필요에 의한 작업.

눈을 감고 집중하자 백작 부인의 마나가 느껴졌다.

포렌티아의 기운으로 한결 풍성하고 활기를 찾은 기운이다.

레오의 마나가 손을 타고 들어가 부인의 마나를 가볍게 건드렸다.

마치 살며시 말을 거는 듯한 자극.

외부의 자극에 놀라 잠시 흐트러졌던 부인의 마나는 금방 안정세를 찾았다. 백작 부인이 레오를 신뢰하고 있기에 가능한 현상이었다.

‘그렇지.’

자신의 마나로 상대의 마나를 이끄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슈니와 만남으로 마나 친화도가 높아지지 않았다면 엄두도 내지 못한 시도였다.

‘지금 나쁜 녀석과 싸우고 있지? 내가 도와줄게.’

저주의 약점 부위를 떠올리며 마나에 의지를 불어 넣는다.

처음에는 어떻게 반응할지 갈팡질팡하던 부인의 마나는, 반복되어 주입하는 심상에 조금씩 그 의지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잠시 멈춰 볼까?’

레오의 의지에 동조하며.

저주를 향해 무질서하게 달려들기만 하던 부인의 마나가 잠시 공격을 멈췄다.

[너무 단단해.]

[힘들어.]

[지쳤어.]

마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오랫동안 저주와 싸우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나를 한 번만 믿어 봐.’

다시 한번 저주의 약점을 떠올려 심상을 전달한다.

그것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마나의 흐름이 새롭게 전열을 이룬다.

무질서하게 사방에서 달려들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 그 기세가 마치 돌격을 앞둔 군대 같다.

‘그래, 바로 거기가 약점이야. 준비됐어?’

[준비됐어.]

‘가자!’

부인의 마나가 회전하며 하나의 형상을 이룬다. 마치 뾰족한 송곳과 같다.

그 날카로운 기세는 레오가 심상으로 전달한 저주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 다른 기세에 몸부림치던 저주 덩어리가 일순 조각조각으로 부서지며 흩어졌다.

“…아!”

백작 부인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언제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던 답답함, 그것이 시원하게 해소된 것이다.

느낄 수 있다. 그 저주라는 것이 지금 사라졌다는 것을.

‘됐어! 잘했어!’

레오는 끝까지 기세를 밀어붙이며 마나를 독려했다.

큰 조각은 다시 한번 부수었고, 작은 조각은 더 작은 가루로 만들었다. 그보다 작은 것들은 사방에서 공격하는 마나의 공격에 분쇄되어 사라졌다.

심장을 막고 있던 저주가 흩어지고 부인의 마나가 제 길을 찾아 흐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저주는 성공적으로 부수었다.

아직 작은 조각들이 남았지만 부인의 마나가 자력으로 해소할 수 있을 정도.

이제 자연적인 회복력에 맡기면 된다.

레오는 조용히 숨을 내쉬며 자신의 마나를 거두었다.

“후우….”

겨우 십여 분의 짧은 시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만큼 극한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느껴져요…. 가슴 속이 너무 시원해요. 저주가, 저주가 사라진 게 맞나요?”

“맞습니다, 부인. 해주에 성공했습니다. 이제 다시 건강해지실 수 있어요.”

“아아… 정말 고마워요.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흑, 흐흑…!”

“어머니, 울지 마세요. 흐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레오는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녀에게 작게 고개를 숙이고 응접실을 빠져나왔다.

이제 메르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다. 나머지는 백작에게 맡길 차례였다.

* * *

거의 보름 만에 돌아온 기숙사.

캉캉-!

“잘 있었냐?”

방에 들어서자 슈니가 가장 먼저 반기며 달려 든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걸 보니 그간 일레인이 너무 잘 먹인 모양이다.

‘나중에 일레인에게 사례라도 해야겠네.’

어느덧 한밤중.

조금 더 일찍 출발하려고 했는데 백작 부인의 저주가 사라진 것에 기뻐한 메르윈 백작이 한사코 만찬을 권해 어쩔 수가 없었다.

[자네, 내 아들이 될 생각 없나?]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술에 취한 백작이 그런 제안까지 했다.

당연히 단박에 거절했지만.

더 재미있는 건 그 후 백작의 반응이었다.

[혹시 농담이라 여긴 것인가? 뭐? 진심으로 싫다고? 역시 자네는 범상치 않구먼, 하하하핫!]

제국에서도 알짜배기 영지를 보유한 대귀족의 양아들 제안.

그것을 평민이 거절하리라 생각조차 못 했던 것이 틀림없다.

제안을 거절당하고 난 뒤 더 호감이 강해진 것 같지만.

욕조에서 몸을 담그고 조금 쉬다 보니 자정이 가까워졌다.

“마침 만월인가?”

둥글게 찬 달이 환한 빛을 내뿜고 있다. 좀처럼 드문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다.

달을 잠시 바라보던 레오는 주섬주섬 짐을 뒤졌다.

이윽고 꺼낸 것은 백작에게 넘기고 남은 포렌티아 일곱 뿌리.

레오는 그것들을 달빛이 환하게 비추는 테라스 바닥에 늘어뜨렸다.

“오늘 잠자기는 글렀네.”

모처럼 구한 영약을 제대로 써먹을 시간이었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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