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59화 (59/127)

59. 바람과 불꽃 (1)

‘아니, 이 양반은 갑자기 왜 이래?’

훅 들어오는 자크 교수의 도발.

적잖이 당황했지만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포렌티아의 기운을 흡수하고 그 힘을 제대로 시험해 보지 못한 상태다. 클라인도 없는 상황에서 생도 중에 힘을 받아 줄 만한 마땅한 상대도 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좋은 기회 아닌가.

카르파만큼은 아니지만, 자크 교수 또한 일류의 수준에 오른 검사였으니까.

‘설마 부담스러운가? 그저 패배를 피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자크의 눈에는 망설이는 듯한 레오의 모습이 썩 달갑지 않았다.

그는 클라인 반다이트라는 인물을 꺾으며 화려하게 등장한 신예다. 같은 학년은 물론이고 재학 중인 선배를 통틀어도 대등하게 겨룰 상대가 손을 꼽을 것이다.

그런 출중한 재능을 가진 이가 과연 얼마나 패배를 맛보았을까? 제대로 된 패배를 경험한 적이나 있을까?

어쩌면 패배 자체를 피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그 또한 내 역할이겠지.’

역사상 천재라 불리는 이들은 다수 등장했지만 그 재능을 끝까지 피워 낸 이는 매우 드물다.

단 한 번의 좌절에 무너져 일찍 사그라진 재능만 해도 별처럼 많다.

그러니 적절한 시점에서 경험하는 좌절감은 오히려 더 크게 성장하는 자양분이 되리라.

“나를 상대로 5분을 버티면 만점을 주겠다. 당연히 이후 강의도 나올 필요가 없지. 그 정도면 의욕이 생기겠나?”

채찍 다음에는 당근.

“…좋습니다. 그리고 교수님, 오러 소드를 사용하게 해 주십쇼.”

“그러면 네가 더 불리할 텐데?”

자크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오러 소드를 사용하면 승산이 있다고 본 건가?

“글쎄요, 해 봐야 알지 않을까요?”

“건방을 떠는군. 좋다, 첫수를 양보하지. 전력으로 덤벼라.”

자크의 연습용 검에 푸른 오러가 깃들었다.

그 오러의 밀도는 그가 소드 엑스퍼트 최상급 수준임을 잘 나타냈다.

“그러면 사양하지 않고.”

레오는 검을 어깨 위로 올려 들며 상단세를 취했다.

이내 단전에 압축된 오러가 폭발하듯 체내를 내달리며 전신의 감각을 열었다.

발바닥으로 지면을 찍어 내디디며 푸른 오러를 내리쳤다.

카앙-!

제국 검술 3형(形) 대각선 베기.

정직하지만 힘으로 찍어 누르는 대표적인 기술이다.

상단에서 대각으로 휘두르는 강력한 베기를 막아 낸 자크의 동공이 흔들렸다.

무릎이 후들거릴 정도의 강력한 일격이었다.

‘더 성장했다고?’

불과 석 달 전의 입학시험.

그때의 실력을 상정하고 있던 자크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적당히 기를 꺾겠다는 처음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게 된다는 위기감이 그 자리를 채웠다.

카강! 캉!

제국 검술의 기본형으로 시작한 레오의 공격은 변칙적인 연격으로 이어졌다.

가슴을 향하던 검이 일순 팔목을 노리는가 하면 시선과 어깨로 계속해서 혼란을 줬다.

정석과 변칙과 섞인 변화무쌍한 공격에 자크의 손발이 바쁘게 움직였다.

‘뭔가 달라졌어.’

쉴새 없이 연격을 이어 가는 와중.

레오는 모든 감각이 고요하고 차분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이내 반격하는 자크 교수의 검이 모두 눈에 들어왔다.

오러안이나 초감각을 사용하고 있지 않음에도 그의 시선, 어깨와 발끝 방향, 무게 중심의 변화… 심지어 호흡과 심박수까지.

모든 것이 보이고 느껴진다.

감각이 확장되자 세계가 달라졌다.

레오의 본능은 처음 경험하는 이 세계의 감각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다.

카가가강-!

두 사람은 검이 빠르게 교차했다.

자크는 이를 악물고 레오의 검을 버텨 냈다.

초반에는 간간이 반격도 시도했지만 수십 합을 교차한 지금은 막아 내기에도 급급할 지경이다.

‘…모두 읽히고 있다!’

검을 뻗을 때부터 준비된 방어와 반격이 동시에 들어온다.

자신의 검로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음이 틀림없다.

마음만 먹으면 단번에 끝낼 수도 있을 터. 그런데도 마지막 일격만큼은 피하는 것 같다.

어째서? 교수의 자존심을 세워 주려고? 아니면 반대로 실력 차이를 더 과시하고 싶어서?

아니,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자크는 레오의 눈을 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그런 감정이 일절 비치지 않는다. 오히려 무아지경에 빠져 온전히 검술 자체에 집중하는 눈이다.

‘설마…?’

지금 성취를 얻고 있는 중이었던가?

그래, 그랬군.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경지를, 지금 여기서 엿보고 있던 것이었나!

자크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 시간을 단 일 초라도 늘려 주는 것이 스승 나부랭이의 역할일 터.

‘끝까지… 어울려 주마!’

이를 관전하는 생도들의 수군거림이 점차 커졌다.

“뭐야? 지금 자크 교수님이 밀리고 있는 거야?”

“말도 안 돼. 아무리 현역에서 물러나셨다지만 한때 검귀라 불렸던 분이라고.”

“…뭐 저런 괴물 같은 자식이 다 있어?”

오러 소드의 충격음과 검풍이 연무장을 가득 메웠다.

그 소음 속에서 레오는 여전히 자신을 관조하는 데 집중했다.

‘신기한 감각이다.’

지금까지는 그저 오러를 제어하는 데 치중했다.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더 세밀하게.

지금 본능은 그 반대를 외친다.

폭발적으로 흘러넘치는 오러를 제어하려 하지 말라고, 그저 의지를 담으라고.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조금씩 편안해졌다.

카앙! 캉!

자크 교수의 검을 뚫어 내기란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검 하나로 남작 위를 받은 인물이라더니, 결코 허명이 아니었다.

‘더 강하게! 더 날카롭게!’

프로인 숲의 오우거를 베지 못했다.

혼신을 다한 일격은 겨우 가죽을 가르는 데 그쳤다.

오우거의 목도 단번에 쳐 낼 힘을 가지고 싶다.

그 이상의 존재도 베고 부술 수 있는 강력한 검을 가지고 싶다.

수천, 수만의 검은 마물이 몰려와도 상대할 수 있는.

그런 강한 힘을 원한다.

우웅-!

작은 검명이 울렸다.

검이 교차하는 소음 속에서 누구도 듣지 못한 미약한 검명.

오러 소드에 의지가 깃드는 시작이었다.

눈앞의 자크 교수가 사라졌다.

보이는 것은 마른 흙과 붉은 바위로 가득한 황야와 그 너머에서 밀려오는 검은 마물.

절망했다.

결국 스러졌다.

두 번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

한 번이 안 되면 백 번을.

백 번이 안 되면 만 번을 베겠다.

그러니.

저것들을 모두 부수어 버릴 힘을.

내게.

우우웅-!

다시 한번 검명이 울렸다.

아까보다 조금 더 크고 선명한 검명.

검신에서 뿜어지는 오러가 공명하는 소리였다.

푸른 오러는 점차 창백히 옅어지며 흰빛을 더했다. 빛은 검신 전체를 감싸며 회전하더니 점차 거대한 나선을 형성했다.

카가가가각-!

그와 맞부딪힌 자크의 검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빠르게 회전하는 나선의 검풍에 그의 검신이 갉아 먹히듯 소멸한 것.

“이게 무슨…!”

자크는 넋을 잃고 검 자루만 남은 팔을 늘어트렸다.

후우우웅-!

휘몰아치는 검풍와 검명이 한데 섞여 기이한 소리를 냈다.

레오는 하늘을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치켜든 검 끝에서 돌풍이 피어났다.

한 줄기, 한 줄기에 예기를 담은 바람이 모인 돌풍이 점차 길게 자라났다.

마치 승천하는 용의 형상.

그리고 하늘에 용이 닿았다.

화악-!

태양을 두텁게 가리던 먹구름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다.

그 사이로 내리쬔 빛이 호흡을 갈무리하는 레오를 감쌌다.

소드 마스터가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 * *

소드 마스터는 그 존재 자체가 국가 간의 우열을 가르는 전략 병기다.

그런 의미에서 아슐렌 제국의 전략 병기는 대대로 소드 마스터를 배출하는 반다이트 가문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제국의 서쪽을 굳건히 지키는 반다이트 가문이 없었다면 국경을 맞댄 보르트 왕국이 제국의 신하를 자처하는 일 또한 없었을 테니까.

단 한 명의 소드 마스터가 발휘하는 영향력이 이 정도다.

그런데 또 하나의 소드 마스터가 탄생한다면? 게다가 그 소드 마스터가 평민 출신에 아카데미에 입한 한 지 석 달도 안 된 소년이라면?

단순히 제국의 국력이 강해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현 황제와 반다이트 가문 사이에 굳건한 신뢰가 있다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황제가 반다이트에 많은 이권을 허락한 것은 소드 마스터라는 강력한 힘으로 자신을 지지해 주길 바랐기 때문이고, 반다이트는 기꺼이 황제파가 되었다.

그런데 지지 기반이 없는 어린 소드 마스터가 나타났다?

모든 귀족들의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이 뻔한 일이었다.

“학부장님!”

자크 교수가 학부장실에 뛰어들며 외쳤다.

커다란 창 너머, 구멍 난 구름이 서서히 아물고 있었다.

“나도 보았네. 아니, 느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군.”

힉부장 카르파는 창가에 서서 방금 본 광경을 곱씹었다.

막대한 오러의 기운에 문득 고개를 드니, 연무장 한가운데서 솟아오른 오러의 돌풍이 하늘을 꿰뚫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는 각자의 심상으로 자신만의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 낸다고 했다.

언젠가 보았던 반다이트 백작의 오러 블레이드는 업화처럼 뜨거운 불길이었다.

연무장에 돌연 나타난 새로운 소드 마스터는 시리도록 푸르고 날카로운 돌풍을 불러냈다.

“레오, 그 친구인가.”

“뛰어난 생도입니다. 천재라는 말로도 부족하겠지요. 하지만 아직 어립니다. 무엇보다 지지 기반이 없는 것이 염려스럽습니다. 혹시 후작파에서 접근하기라도 한다면….”

“…자네가 뭘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네.”

아슐렌 제국의 귀족들은 오래 전부터 크게 양분된 상태다.

황제 바란 드메이르 폰 아슐렌을 지지하는 황제파.

황제의 숙부인 크라젠 요크 후작을 중심으로 하는 후작파.

양 세력은 각기 1황자와 2황자를 황태자로 지지했다.

5년 전, 1황자 슈나이더가 황태자로 책봉되며 후작파가 급격히 힘을 잃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2황자 크롬멜에게 가능성을 걸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후작파가 어린 소드 마스터를 가만히 둘 리 없다.

“걱정 말게. 생도를 보호하는 것 또한 내 일이니.”

카르파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적어도 아카데미의 생도에게 승냥이 떼의 접근을 허락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 * *

아카데미 내의 소문은 바람처럼 빨랐다.

강의실의 마법 학부 생도들도 하늘에 구멍이 뚫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이 새로운 소드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라는 것과 그 주인공이 1학년 레오라는 소문에 모두가 경악했다.

물론 모두가 놀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야, 그거 들었냐? 레오, 네가 소드 마스터래. 내가 그걸 듣고 어찌나 웃기던지, 크큭.”

점심시간.

레오를 만난 덱스는 굉장한 농담을 알려 준다는 듯 배를 잡고 웃었다.

얼마나 재미있어 보이는지 레오도 함께 끄덕여 주고 싶을 정도.

“그거 진짠데.”

“에이, 그걸 믿으라고?”

“진짜라니까?”

레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대꾸하자 여태 웃던 덱스가 조금 정색했다.

“너, 내가 바보인 줄 알아?”

“갑자기 뭔 소리야? 네가 분위기 파악 잘 못 하고 눈치가 좀 없긴 해도 바보는 아니지.”

“…이게? 암튼 나 놀려 먹으려고 그러는 거잖아. 제국에 소드 마스터가 딱 한 명 있는데, 두 번째가 너라고? 그 말을 퍽이나 믿겠다.”

“에휴, 믿든 말든 맘대로 해라.”

그사이 무무카는 묵묵하게 레오의 기운을 가늠하고 있었다.

만나자마자 풍기는 기세가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훨씬 깊어졌군.”

“그러냐?”

“그래, 이전의 네가 저 높은 곳에 있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아예 거리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단시간에 어떻게 이런 성취를 얻은 것인지 궁금하긴 하군.”

슬쩍 눈치를 보며 혀를 날름거려 보이는 무무카.

그 또한 무인이다. 더 강해지고자 하는 순수한 욕망과 호기심은 당연한 것.

“오후 강의 째면 비법을 알려 주지.”

“정말인가?”

“그래, 그까짓 거 뭐 비밀이라고.”

어차피 두 사람에게 포렌티아를 흡수시킬 생각이었으니 굳이 미룰 이유도 없다.

반색하는 무무카와 어리둥절한 덱스.

“어어? 둘이 지금 무슨 이야기하는 거야?”

“시끄러워, 덱스 넌 따라올 생각하지 마.”

덱스의 눈동자가 커지더니 두어 번 꿈뻑인다.

“뭔데? 진짜 뭐 있는 거야?”

“쓰읍! 알 것 없어.”

“어어? 호, 혹시 진짜냐? 소드 마스터 그거, 진짜야?”

다급한 덱스의 목소리.

평소 눈치 챙기라는 말을 밥 먹듯이 듣지 않았던가. 방금 전에도 뭔가 놓친 게 분명하다!

“소드 마스터님! 잘못했습니다! 소드 마스터님!”

얼른 레오의 꽁무니를 쫓아가는 덱스였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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