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61화 (61/127)

61. 바람과 불꽃 (3)

백색 돌기둥이 줄지어 천장을 떠받든 거대한 황궁 대전.

새로운 소드 마스터의 등장은 그 넓은 공간을 열기로 가득 채우기에 충분했다.

“열다섯에 소드 마스터라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군요.”

멋들어진 콧수염을 기른 재무 대신이 고개를 흔들었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법 대신이 꼬장꼬장하게 반박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슈멜린 공이 공언했소. 그것을 의심한다는 말씀이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오. 사실이라면 당연히 제국의 흥복 아니겠소. 다만 중대사인 만큼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오.”

사법 대신의 말꼬리에 잡기에 재무 대신은 짜증을 감추지 못했다.

“그게 그 말이지, 뭐가 다르단 말이오? 재무 대신께서 방금 한 말씀은 슈멜린 공의 판단을 의심해 보자고 말한 것과 다름없소이다.”

“어허…! 같은 말이라 해도 한 끗 차이로 의미가 다르거늘, 사법 대신은 어찌 그리 내 말을 왜곡하시오. 법전만 파다 보니 멀쩡히 대화하는 방법조차 잊은 게요?”

같은 내무부에 속한 두 사람이 목을 높였다.

그 내용도 치졸하고 알맹이 없는 말다툼에 가깝다. 그럼에도 둘은 서로에 대한 비방을 멈추지 않았다.

황제파와 후작파.

두 사람은 각 진영이 부딪힐 때마다 앞으로 나서 싸우는 선봉장이자 불쏘시개였다.

“그만들 하시오.”

중후한 목소리가 대전에 울렸다.

국경을 지키다 오랜만에 대전 회의에 참석한 군무 장관 반다이트 백작이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뼛속까지 무인인 그는 이런 광경 자체가 불편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중앙 정치에 발을 들이지 않으려 했으나 이번 사안만큼은 별수 없었다.

회의를 주관하며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 내무 장관 베니에르 백작 이외에 황제파의 구심점 역할을 할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에.

“크흠….”

“큼!”

반다이트 백작이 나서자 두 불쏘시개가 일단 입을 다물었고.

“내가 직접 검증하겠소. 제국의 중대사에 괜한 의혹은 남길 필요 없겠지.”

“좋은 생각입니다. 다른 분도 아닌 군무 장관께서 그리 해 주신다면 모두 납득하겠지요.”

반다이트 백작의 뒤를 잇는 목소리.

마흔을 갓 넘긴 나이에 제국의 중앙 관료 정점에 오른, 재상 아비엘 요크다.

그는 남부 대륙의 실질적인 지배자 요크 후작의 친동생이기도 했다.

후작파의 수장이 반다이트 백작을 거들고 나서자 대전의 소란은 완전히 진정됐다.

“그러면 본래 회의를 시작하겠소. 그가 소드 마스터임이 증명된다면 제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붙잡아야 할 것이오. 여기에 다른 의견들은 없으시겠지요?”

회의를 주관하는 내무 장관 베니에르 백작이 서두를 뗐다.

새로운 소드 마스터에 대한 처우, 그것이 오늘 회의의 본래 안건이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최악의 경우 그가 타국으로 망명하기라도 한다면 제국으로서 뼈 아픈 손실입니다.”

“무조건 그를 잡아 놓아야 합니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황제파와 후작파가 아무리 사사건건 다투었다 해도 이번 건 만큼은 일치하는 목소리.

베니에르 백작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대우가 좋을지 의견을 듣고 싶소만.”

“그는 변변치 않은 시골 출신이라 들었습니다. 아직 나이도 어리지요. 수도에 좋은 집을 마련해 주고 막대한 금화를 안긴다면 마다할 리 없다고 봅니다.”

재무 대신이 슬쩍 재상의 눈치를 보더니 의견을 냈다.

이번 회의에 대한 재상의 의중을 아직 정확히 전달받지 못했다. 다만 잠자코 있다가 황제파의 분위기에 휩쓸릴 수 있다는 판단에 먼저 움직인 것이다.

“허!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오?”

그에 사법 대신이 기가 차다는 듯 되물었다.

집과 금화라니, 너무도 단순한 발상 아닌가.

“…세상에 돈을 마다하는 사람 봤소? 그러면 어떠한 대우가 적절하다 보시오?”

분위기가 좋지 않자 재무 대신은 애써 당황스러움을 감추며 공을 넘겼다.

슬쩍 눈동자를 굴려 보니, 재상은 옅은 미소를 띤 채 이쪽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제국을 떠나지 못할 확실한 구실을 만드는 것이 이치일 것입니다. 폐하께서 직접 내리는 남작 위라면 어떠할는지요.”

사법 대신이 내무 장관 베니에르 백작을 향해 의견을 올리며 슬쩍 눈을 맞췄다.

이는 황제파 내부에서 미리 합의된 내용이었다.

남작 위는 단순한 신분만이 아닌, 독립된 봉토를 함께 받음을 의미한다. 같은 남작이라 해도 황제가 수여한 작위가 더욱 강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베니에르 백작은 대신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폐하께서 수여하는 남작 위, 이에 대해 어떻게들 생각하시오?”

“적절한 대우라 생각됩니다.”

“자신의 영지가 있다면 더욱 제국에 충성하겠지요.”

찬성과 동의의 의견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모두 황제파의 목소리다.

그 모양새가 마음에 안 든 재무 대신이 발끈했다.

“고작 열다섯의 생도에게 남작 위는 너무 과한…!”

“좋은 생각이라 생각합니다. 자격이 있는 이에게 나이는 중요하지 않겠지요.”

재무 대신의 말을 자르며, 여태껏 잠자코 있던 행정 대신이 나섰다. 그 또한 후작파의 인물이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남작 위는 결코 무리한 보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행여나 나중에 후작파가 탐탁지 않아 했다는 소문이 도는 것이 오히려 곤란했기에 재빨리 시류에 올라탄 것.

뒤늦게 깨달은 재무 대신도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느 봉토를 내릴 것인지가 남았소.”

반다이트 백작이 툭 뱉은 한마디.

이는 남작 위에 대한 합의가 종결되었음을 알렸다.

이제부터는 봉토에 대한 논의다.

이것이 오늘 회의에서 가장 치열한 논제가 될 터.

“흐음….”

소란스럽던 대전에 침묵이 흘렀다. 누구도 먼저 나서기 힘든 논제였기에.

몇 가지 후보군을 미리 준비한 황제파도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며 분위기를 살폈다.

재무 대신이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토구르 지역은 어떻습니까?”

“흐음….”

애매한 반응이다.

황제파는 영 마음에 안 찬다는 표정들이고 같은 후작파의 행정 대신도 마뜩잖은 얼굴.

사법 대신이 다시 나섰다.

“폐하께서 직접 내리는 영지인데 토구르는 좀 부족한 것 같소. 마레스 정도는 되어야 폐하의 권위가 서질 않겠소?”

“마레스는 대규모 밀 경작지가 있는 곳 아니오? 아니 될 말이오.”

“그러면 절반이 황무지나 마찬가지인 토구르는 될 말이라 생각하오?”

두 불쏘시개가 다시 한번 맞붙었다.

미리 황제파 내부에서 입을 맞춘 내용이 있기에 이번에는 사법 대신도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그러면.”

나직한 목소리에 맹렬하게 입씨름하던 두 대신이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재상.

대신들의 시선이 모두 재상 아비엘에게 향했다. 그의 말이 곧 후작파의 뜻과 일치했기에.

“바이스만 지역은 어떠합니까?”

재상의 제안에 황제파, 후작파 할 것 없이 크게 놀랐다.

바이스만.

중앙 대륙의 북서 지역에 위치한 곳이다.

북쪽으로 바다와 인접하고 서쪽으로 시오프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끼고 있다. 남쪽으로는 반다이트령과 맞닿아 있으며 동쪽에는 꽤 질 좋은 밀 경작지를 보유했다.

당초 황제파에서 거론한 후보 중 하나였지만 후작파의 극심한 반대를 예상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재상이 먼저 그곳을 권했다.

베니에르 백작이 조심스레 물었다.

“재상의 뜻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소드 마스터란 두말할 것 없이 귀한 존재입니다. 제국의 흥복에게 쭉정이 같은 영지를 던져 주는 것은 안 될 말이지요. 게다가 바이스만 또한 엄연히 보르트 왕국의 국경 지대 아니겠습니까? 제국 또한 든든한 방패를 얻을 수 있을 테니 서로에게 득이 되리라 봅니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이오.”

반다이트 백작이 찬성을 표했다.

양측 수장의 뜻이 합치하였으니 더 이상 논쟁은 필요 없다.

남은 것은 황제의 재가뿐.

“제가 폐하께 표를 올리지요.”

재상의 미소와 함께 회의가 끝났다.

* * *

황궁이 가까워지는 동안에도 레오는 평온했다.

지난번 아카데미에서 황태자를 알현하기도 했지만 황궁도 처음이고 황제 알현도 처음이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큼 긴장되지 않았다.

“긴장은 안 되나?”

“사람 사는 게 다 똑같겠죠. 왜요, 걱정되십니까?”

“내가? 소드 마스터를 걱정해? 뭐 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나?”

“흐흐흐.”

그래, 소드 마스터.

제국에 단둘밖에 없는 귀한 몸. 그래서 긴장이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음, 그래도 기본적인 예법은 좀 알려 주세요. 황궁 예법, 뭐 그런 거 있을 것 아닙니까.”

“별거 없다. 적당히 나를 따라 하면 된다.”

“학부장님도 워낙 오랜만이라 다 잊으신 거 아녜요?”

“…아니라고는 못 하겠군. 가 보면 생각나겠지.”

이윽고 마차가 멈췄다.

“여기서부터는 걸어 들어간다.”

마차 위로 일직선으로 난 하얀 벽돌 길.

그 끝에 대리석 기둥이 세워진 화려한 건축물에 닿아 있다.

양옆 정원에는 분수대와 조각상이 곳곳에 장식되었고, 그 너머 갖가지 건축물이 위용을 뽐냈다.

“저기가 황궁인가요?”

“아니, 아까부터 황궁이었다. 저 건물이 공식적으로 폐하를 알현하는 대전이지.”

대전은 넓고 높았다.

말끔한 대리석 바닥 위에 고급스러운 자수가 놓인 두툼하고 부드러운 카펫이 깔렸다.

카펫의 끝이 이어진 몇 단의 층계 위에는 크고 화려한 옥좌가 자리했고, 그곳에 앉은 한 노인이 아래를 내려 보았다.

아슐렌 제국의 3대 황제, 바란 드메이르 폰 아슐렌이다.

레오는 카르파를 따라서 좌우로 늘어선 대신들의 사이를 걸었다.

황제의 얼굴이 똑똑히 보일 거리쯤에서 발을 멈추고 왼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이구려, 슈멜린 공.”

황제가 느릿하게 입을 뗐다.

높낮이 없는 건조한 목소리.

“천년 제국 아슐렌에 영광이 있으라. 신 카르파 슈멜린이 폐하를 뵙습니다.”

“딱딱한 인사는 됐네. 그대의 얼굴을 보니 아카데미 생활이 꽤 만족스러운가 보오.”

“장차 제국의 기둥이 될 후학들을 일구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나이다. 성심을 심려케 한 불충을 용서하소서.”

언뜻 비꼬는 듯한 황제의 말에 카르파는 동요하지 않고 답했다.

카르파는 황제의 곁을 가장 가까이서 지키던 검이자 친우였다.

그런 그는 끝까지 만류하는 황제를 뿌리치고 결국 근위기사단을 떠났고, 이후 황궁에 거의 발을 들이지 않았다.

참으로 수년 만의 입궁.

“그것이 어찌 그대의 불충이겠는가. 전부 짐이 부덕한 탓이겠지.”

“그럴 리 있겠사옵니까. 말씀을 거두어 주십시오.”

“흐음, 짐의 부덕이 아니라면 신하의 과오라는 말이겠군?”

건조하게 갈라진 황제의 목소리를 끝으로 적막이 흘렀다.

‘이거 분위기 왜 이래?’

레오는 고개를 숙인 채 슬쩍 눈만 돌려 카르파를 훔쳐봤다.

마찬가지로 고개 숙인 카르파의 얼굴에서는 표정을 읽을 수 없다.

“…하면, 신하에게 과오를 바로잡을 기회를 주는 것 또한 군주의 미덕일 터.”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옅게 웃는 황제.

“슈멜린 공, 그대에게 일주일간 황궁 근신을 명하겠다. 근신하며 본인의 과오를 깨끗이 씻어 내라.”

“신 슈멜린,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레오는 그제야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황제가 오랜만에 찾은 친우에게 잔뜩 서운함을 토로한 것이리라.

“그래, 그대가 함께 온 생도인가.”

“예, 폐하. 레오라고 합니다.”

“농담이라곤 모르는 저 슈멜린 공의 말이니 그대가 소드 마스터임은 틀림없겠지. 허나 직접 보이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을 터.”

“폐하, 제가 어울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기다렸다는 듯 누군가 나선다.

펑퍼짐한 의복에도 두드러질 만큼 단단한 무인의 몸을 가진 남자.

“좋소.”

황제의 명이 떨어지자 한 근위기사가 두 개의 검을 받쳐 들고 다가왔다.

동시에 근위병들이 두 사람의 주변을 감싸며 원을 만드니, 마치 작은 대련 공간과 같았다.

‘그렇구나.’

마치 약속이라도 된 듯 빠르게 흘러가는 일련의 과정.

레오도 깨달았다. 이것은 새로운 소드 마스터의 탄생에 어떠한 잡음도 만들지 않기 위해 짜여진 각본인 것이다.

먼저 검을 집어 든 사내가 말했다.

“미오크 반다이트라 하네. 이제야 그대와 인사를 나누게 되는군.”

“아…!”

제국의 검성이자 소드 마스터, 그리고 클라인의 아버지.

레오는 어째서 상대의 눈빛에 우호적인 감정이 가득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레오입니다.”

“반갑네. 사적인 대화는 나중에 나누세. 지금은 그대를 증명하는 자리이니.”

“그러죠.”

레오는 반다이트 백작을 마주했다.

오러안에 비친 백작의 오러홀은 마치 돌덩이를 보는 것같이 단단해 보였다.

‘한번 봅시다, 검성 양반.’

긴장도 두려움도 없다. 오히려 기대감에 가슴이 뛰었다.

검성의 칭호를 가진 자.

제국 최고의 검을 견식할 둘도 없는 기회였으니까.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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