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66화 (66/127)

66. 바이스만의 신임 영주 (2)

바이스만의 세금 징수관 누벨.

그는 지금 일생일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황제가 직접 남작 위를 내린 이가 바이스만을 봉토로 받았다는 소문은 익히 알고 있었다. 당연히 영주 대리도 신임 영주를 성대하게 맞을 준비를 마치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는 중이었고.

그런데 이런 촌구석에 나타난, 저 수염도 없는 꼬마가 신임 영주 레오 바이스만이라고?

“뭐 하냐? 네 주인 앞에 꿇지 않고.”

영주를 자칭하는 소년의 목소리는 담백하기 그지없었고.

누벨은 판단해야 했다.

당장 그의 앞에 꿇어 엎드려 사죄를 청할 것인지를.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가 소년의 곳곳을 탐색했다.

굵은 얼굴선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뽀얀 얼굴.

어딘가의 제복 같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수수한 디자인의 복장.

허리에 찬 검도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누벨의 눈은 최고급 소재임에도 수수한 디자인을 차용한 아카데미 제복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 아래 숨겨진 단련된 신체도 눈치채지 못했으며, 검을 보는 안목도 없었다.

명확히 본 것이라고는 그의 앳된 얼굴뿐.

그에 더해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고집이 가장 잘못된 선택으로 그를 이끌고야 말았다.

“이놈! 네가 감히 신임 영주님을 사칭하려 드느냐? 귀족 사칭은 즉시 참형에 처해도 무방한 중죄!”

아카데미의 생도가 제국의 두 번째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는 소문만 들었더라면.

그래서 역대 최연소 남작 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판단.

“지금 참형이라 했나?”

레오가 검을 뽑았다.

중얼거리는 듯한 그 낮은 목소리가 뽑은 날붙이만큼이나 서늘하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지. 내가 레오 바이스만 남작이라고 했다.”

“뭣들 하느냐! 당장 저 사기꾼을 참해라!”

눈앞의 존재를 부정하겠다는 듯, 누벨은 레오를 손가락질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레오의 미간이 움찔하더니 팔이 잠깐 움직였다.

툭.

무엇인가 흙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아?”

누벨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팔 한 짝과 자신의 휑한 어깨로 이어졌다.

이어지는 불같은 고통.

“아아악-!”

돼지 멱 따는 비명이 울렸다.

땅바닥의 살집 가득한 팔에서 퍼진 피가 마른 흙을 붉게 적셨다.

꿀꺽.

누벨의 뒤에 서 있던 병사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레오가 휘두르는 검을 보지 못했을뿐더러, 그 검에 푸른 오러가 서려 있음을 뒤늦게 발견했기 때문에.

오러 소드.

저 정도 오러 소드를 쓸 줄 아는 이가 사기꾼이나 허풍쟁이일 확률은 한없이 낮을 것이다.

“십인장!”

“예, 옛!”

레오의 호명에 병사 하나가 앞으로 나선다.

오러 소드의 위엄에 병사에게서 절로 경어가 튀어나왔다.

“글을 읽을 줄 아나?”

“예, 압니다!”

“저거 주워서 읽어라,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십인장 발트란이 봉랍된 문서를 집어 들었다.

그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헝클었다.

정말로 그가 영주인 걸까? 내가 방금 뭘 했더라? 영주에게 창을 겨눴던가?

돌돌 말린 문서를 펴는 손이 떨렸다.

“아, 아슐렌 제국의 황제 바란 드메이르 폰 아슐렌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제국의 새로운 소드 마스터에게 남작 위를 하사하고 그와 함께 바이스만을 봉토로 내리노라. 레오 바이스만 남작은 제국의 검과 방패로서 의무를 다하며, 제국의 영광과 명예에 헌신하라.”

히끅!

염소처럼 달달 떨린 목소리가 딸꾹질로 끝났다.

중간에 분명 엄청난 단어가 있었는데? 소드 마스터? 잘못 읽었던가?

아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소드 마스터라 쓰여 있다.

다행히 발트란은 누벨보다 똑똑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일단 제쳐 두고 지금 해야 할 행동을 곧바로 실천한 것.

“충! 영주님을 뵙습니다!”

“충!”

발트란이 들고 있던 창을 가슴 가운데로 세우며 경례를 올리자 다른 병사들도 곧 따랐다.

“그리고 베크!”

“여, 영주님?”

촌장의 곁을 지키던 베크가 깜짝 놀라 대답했다.

그 또한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

“징수관을 묶어라. 여죄를 물어야 하니 목숨은 붙여 놔.”

“예?”

“혓바닥만 움직이면 된다. 무슨 말인지 알지?”

“예, 옛!”

레오는 베크에게만 보이도록 살짝 눈을 찡긋했다.

그간 마을을 쥐어짜는 징수관의 폭거에도 목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했던 이들이다.

작은 복수의 기회 정도는 못 줄 것도 없지.

“히이이익-!”

징수관을 묶으러 다가가는 마을 사내들의 눈에 불이 붙었고.

뒷걸음질 치던 누벨은 추하게 바닥을 구르며 기었다.

“십인장!”

“옛!”

“이름이 뭐지?”

“바, 발트란입니다!”

“좋다. 너희는 지금부터 나를 따라 도적을 궤멸하러 간다.”

이어지는 레오의 명령.

꿀꺽!

병사들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백에 달하는 도적이라니, 당연히 병사 몇 정도로 토벌할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무려 소드 마스터가 함께한다.

그렇다.

침을 삼킨 것은 전설처럼 전해지는 그 무력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길잡이 한 명이 필요하겠는데….”

“제, 제가 할게요!”

“좋아. 미타, 네가 앞장서라.”

레오를 바라보는 미타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여행자님이 우리의 새 영주였다니! 게다가 동경하던 소드 마스터라니!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 * *

쌍도끼 바할.

피 눈깔 블랑코.

두 도적 무리의 산채를 탈탈 털고 수괴의 목을 자르는 데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붉은 귀 군트가 이끌고 있다는 마지막 무리.

“영주님! 붉은 귀의 산채는 이쪽이에요!”

미타가 앞서 걸으며 방향을 이끌었다.

도적들의 산채를 어찌 알고 있느냐 물었더니 마을에서 상납금을 내지 못하면 노동으로 대신하기도 했단다. 미타도 끌려가서 잔심부름한 적이 있다고.

“천천히 가라.”

레오는 초감각을 동원해 주변을 살폈다.

근방에 수상한 낌새는 없다. 만약 뭔가 느껴진다면 미타부터 보호할 참이다.

가장 긴장한 것은 병사들이었다.

특히 십인장 발트란은 처음 입대한 날만큼이나 빳빳하게 군기 든 모습.

앞서 도적이 궤멸되는 장면을 직접 지켜보았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나설 틈도 없었지.’

영주님은 꼬마 녀석이나 잘 지키고 있으라 명하고 홀로 도적의 소굴로 걸어 들어가더니 검으로 폭풍을 불러냈다.

말 그대로 진짜 폭풍.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콰지직-!

칼날 같은 예기를 담은 폭풍에 산채가 반파되었다.

통나무를 쌓고 흙을 발라 지은 집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팔다리가 하나둘씩 떨어진 도적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산책하듯 그사이를 걸어간 영주님은 간단히 수괴의 목을 베어 버렸다.

상식을 훌쩍 넘는 무력.

태어나 처음 본 소드 마스터의 검은 그야말로 경악스러웠다.

“미타, 뒤로 물러서라.”

“네!”

레오가 명하자 두어 걸음 앞서 산길을 오르던 미타가 눈치 빠르게 걸음을 늦춘다.

십인장 발트란이 눈짓하자 병사들이 미타의 주위에 서며 보호한다. 앞서 두 번이나 경험했기 때문에 익숙한 전개다.

뎅뎅뎅-!

산채 주변에 거닐던 놈이 레오와 병사들을 발견하더니 잽싸게 종을 울렸다.

곧 우르르 놈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 뻔하다.

“여기서 대기해.”

“옛!”

레오는 검을 빼 들고 터벅터벅 산채에 다가갔다.

얼기설기 엮은 나무로 벽을 두르고 망루 비슷한 곳도 갖춘 산채. 꼴에 앞서 두 곳보다는 조금 더 테가 잡힌 모습이다.

콰직-!

그래 봐야 도적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오러 소드에 베인 벽이 우르르 무너졌다.

“오러다!”

“씨발! 기사가 왜 여기에?”

날붙이를 든 놈들이 모여들어 레오를 맞았다.

검에 맺힌 푸른 오러를 보고 당황하는 모양새.

“항복하면 팔다리 중에 딱 하나만 자른다. 지금 항복할 사람?”

서로 쳐다보며 눈을 뒤룩뒤룩 굴리는 도적들.

그 와중에 되묻는 놈이 있다.

“…항복 안 하면?”

“깔끔하게 목을 잘라 주지.”

레오의 대답에 냉랭해진 분위기.

“꼬마야, 오러 좀 쓴다고 그렇게 나대다가 비명횡사한다.”

무리를 헤치며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거의 자기 키만 한 대검을 어깨에 걸친 거구였는데, 자세히 보니 한쪽 귀가 잘려 없었다.

“붉은 귀 군트가 너구나?”

“군트 님이라고 불러라, 꼬마야.”

오러안으로 들여다보니 엑스퍼트 중급을 상회하는 수준. 웬만한 영지에서도 기사로 대접받을 실력자다.

그런 녀석이 이런 곳에 처박혀 도적질이나 한다는 건….

“너, 피에 미친놈이구나?”

예민해진 감각이 녀석의 몸에 배인 짙은 혈향을 감지했다.

한순간에 알았다.

놈은 명예와 풍족한 삶을 내버릴 만큼 살육에 미쳤다는 것을.

이내 느물거리던 군트의 미소가 비틀리더니, 휑한 눈동자에 순식간에 살기가 차올랐다.

“영주님!”

저 뒤에서 지켜보던 십인장 발트란이 저도 모르게 고함쳤다.

빠르게 쇄도한 군트가 어느새 영주님의 앞에 나타났기에.

거구가 원심력을 실어 후려치는 대검이 레오의 머리를 쪼갤 듯 떨어졌다.

“느려.”

쾅-!

검은 허공을 갈라 지면을 찍었고.

레오의 목소리가 스치듯 군트의 옆을 지났다.

“뭣!”

소리가 지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 한 군트는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시야가 점점 기울어지더니 바닥에 처박혔다.

그는 뒤늦게 자신의 목이 떨어졌음을 알았다.

“군트님!”

“두목!”

데구르르- 구르는 군트의 목.

남은 도적들이 동요했다.

웬만한 기사에게도 쉽게 당하지 않을 강자 군트가 한칼에 목이 떨어지다니!

“이제 너희에게 선택지는 없다.”

남은 도적놈들에게서도 혈향이 짙다.

갱생의 여지 따위 없는 쓰레기들.

수평으로 푸른 선이 그어졌다.

푸슛-!

동시에 떨어진 도적들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 * *

“샅샅이 뒤져라!”

발트란은 병사들과 군트의 산채를 수색했다.

살아남은 도적의 씨를 말리고 혹시나 갇혀 있을지 모를 생존자를 찾기 위해서.

‘소드 마스터란 정말 무서운 존재로군.’

발트란의 시선이 바위에 앉아 하얀 늑대와 놀아 주는 어린 영주를 스쳤다.

반나절도 안 되는 동안 백여 명에 가까운 도적을 모두 토벌했다. 그중 영주가 직접 목을 날린 숫자가 절반이다.

죽일 때도, 그 후에도. 어린 영주에게서 감정의 동요가 느껴지지 않았다.

“으아악! 십인장님, 여기 좀 와 보십쇼!”

병사의 비명이 들린 곳은 군트의 것으로 보이는 집 안쪽.

안으로 들어간 발트란은 지독한 썩은 내에 코부터 막았다.

“젠장! 이게 무슨 냄새야?”

짚을 채워 넣은 침대를 지나 쪽문을 열었다.

“…세상에.”

공간 한가운데 놓인 검붉은 테이블.

그 얼룩덜룩한 흔적은 피딱지가 눌어붙은 것임이 분명했다.

벽에는 꼬챙이에 꿰인 잘린 머리가 장식처럼 달려 있고, 한구석에는 아직 붉은 핏기가 가시지 않은 뼈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씨발, 완전히 정신 나간 새끼였네.”

뒤따라 들어온 레오도 코를 막았다.

군트라는 놈은 생각보다 훨씬 미친 새끼였던 것 같다. 이런 공간을 옆에 두고 먹고 자고 했다니.

“영주님, 이쪽에서 이런 걸 발견했습니다.”

작은 목함.

그 안에는 주먹만 한 구형(球形) 돌덩이 하나와 까마귀가 음각된 메달이 들어 있다.

‘그 흑마법사 놈이 가지고 있던 것하고 같은 거잖아?’

돌덩이는 처음 보지만 메달은 눈에 익다.

원거리 통신 마법이 부여되었다는 까마귀 메달.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과연 이 메달이 누구와 연결되는지, 어떻게든 확인해야 할 것 같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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