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71화 (71/127)

71. 침공 (3)

대롱대롱.

카바넬의 시체 앞에서 기운을 갈무리한 레오 옆에 둥둥 떠 있는 다리가 나타났다.

보르트의 1군 사령관 귀슈 백작의 다리. 슈니가 후군의 삼백 병사를 개미처럼 흩어 낸 뒤 적의 사령관만 쏙 물고 온 것이다.

“잘했다. 대충 저기에 던져 놔.”

레오의 칭찬에 슈니가 기쁜 듯 고개를 흔들었고, 그 입에 매달린 귀슈 백작의 비명도 위아래로 출렁였다.

“으아아아아!”

이윽고 귀슈 백작이 흙바닥에 떨어지자 반다이트 병사들이 재빨리 다가가 그를 포박했다.

정신을 차린 귀슈 백작이 무릎 꿇은 채 눈을 치켜떴다.

“으으… 나는 보르트 왕국의 백작이자 군부장관 귀슈다. 이런 치욕을 주다니 어불성설! 전쟁 포로로서 정당히 대우할 것을 요구한다!”

“시체에 이빨 자국을 남기고 싶나?”

“……?”

“정당한 대우? 내 참 어이가 없어서.”

귀슈는 말문이 막혔다.

비록 패배하여 사로잡혔지만 본인은 고귀한 귀족이다. 그것도 보르트 왕국의 고위직이자 넓은 영지를 가진 변경백이다. 그런데 이리 대우한다고?

“귀슈라고 했냐? 몸값이고 나발이고 저 녀석 먹이로 던져 주는 수가 있어. 살고 싶으면 얌전히 있어, 눈 착하게 뜨고.”

탁탁.

허리를 숙인 레오가 귀슈의 뺨을 치며 충고했다.

침략자 주제에 어디서 개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건지.

귀슈의 동공이 흔들렸다.

대귀족으로서 처음 당하는 치욕도, 족히 스무 살은 어려 보이는 놈의 망발도 모두 혼란스러웠지만, 살고자 하는 본능만은 솔직했다.

부릅뜬 그의 눈매가 스르르 풀어졌다.

“그래, 그게 착한 눈이야. 잘하네.”

“레오!”

“여, 어떠냐? 내 말이 맞았지?”

여느 때와 같은 레오의 장난스러운 대꾸에 클라인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적 소드 마스터의 죽음부터 사령관 포획까지, 무엇 하나 충격적이지 않은 장면이 없다. 특히 공간을 장악하는 그의 강력한 오러와 거대한 신수의 존재는 불가사의할 정도였다.

지난번 반다이트에 머물 때도 강했지만 한 달 만에 다시 본 레오는 더 압도적으로 강해졌다.

하지만 저 점잖지 못한 언동만큼은 클라인이 알고 있던 그 레오가 맞았다.

안도감도 잠시, 클라인은 다급히 외쳤다.

“레오, 적은 세 갈래에서 공격해 들어왔다. 남은 구원을 도와줘! 이렇게 부탁한다!”

레오의 구원은 기적 같았으나 여전히 전황은 어둡다.

아직 두 갈래의 적이 남아 있으며, 쪼개어 그들을 막고 있던 국경 수비대가 지금까지 버티고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새끼 급하기는. 걱정하지 마라.”

“…? 무슨 말이야?”

“형님이 다 알아서 했다고.”

여유를 부리는 레오.

클라인은 속이 타들어 갔다.

그때, 반다이트의 전령이 달려와 외쳤다.

“사령관님, 멜핀님이 이끄는 2군으로부터 승전 보고입니다! 적을 대파하고 사령관 자카르도 백작을 생포하였다 합니다!”

“그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바이스만, 바이스만군이 구원을 왔습니다!”

바이스만!

클라인이 레오를 휙 돌아봤다.

이곳에만 구원을 온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이제 와 살피니 그가 끌고 온 병력은 고작 이백이 되지 않아 보였다.

“걱정 말라고 했잖아, 덱스하고 무무카 둘이서 죄다 때려잡았을걸.”

“하지만 3군, 3군도 있어!”

3군의 위치는 국경의 가장 남쪽. 바이스만의 영지에서도 거리가 가장 먼 곳이다.

반다이트 영지를 한참 가로지르지 않고서는 바이스만의 구원이 닿을 수 없는 위치였다.

“3군으로부터 급보입니다! 적 칠백을 괴멸시키고 승전하였다 합니다!”

“…어떻게?”

3군마저 승전했다는 보고.

잠시 멍해 있던 클라인이 이내 전령을 채근했다.

“자세히, 자세히 보고하라. 어떻게 된 것이냐?”

“예, 사령관님. 약 일천에 달하는 붉은 사자의 군대가 구원을 왔습니다. 저희 군이 정면에서 놈들을 묶어 두는 사이, 구원이 적의 측면을 부수었습니다.”

“붉은 사자? 붉은 사자라면….”

“그 양반도 안 늦은 모양이네.”

레오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생각났다.

포효하는 적사자, 메르윈의 문양이다.

반다이트의 남쪽에 자리한 또 하나의 백작 가문, 메르윈.

‘하지만 어째서 메르윈 백작이?’

돌로리아 메르윈 백작, 유서 깊은 가문이나 제국 요직의 인물은 아니다.

반다이트와 영지가 인접해 있다 하나 강폭이 넓은 유메른 강이 그사이에 흘러 실질적인 접점도 거의 없다.

어찌 그가 유메른 강을 넘어 이곳까지 구원을 왔단 말인가.

긴장이 풀린 클라인이 휘청하며 한 손으로 무릎을 짚었다.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 모든 외적을 물리쳤다는 사실만은 명확하다.

일시에 긴장이 풀렸다.

“나, 나는….”

“짜샤, 아직 안 끝났다.”

“…어?”

끝나지 않았다니?

레오는 의아해하는 클라인의 등을 팡- 소리 나게 두드렸다.

“끝맺음을 지어야지.”

그제야 느껴지는 수많은 시선.

반다이트 병사들이 모든 시선이 어린 사령관을 향하고 있었다.

성치 않은 병사들, 그럼에도 만면에 웃음을 띤 자랑스러운 방패들.

그 광경에 울컥, 클라인의 가슴에 무언가 치밀어 올랐다.

천천히, 하지만 높게.

클라인은 머리 위로 검을 치켜들었다.

“우리가, 이겼다.”

겨우 쥐여 짜낸 짧은 한마디.

그 한마디를 내뱉는 동안 목울대가 몇 번이고 울컥거렸다.

“우리가 승리했다!”

다시 한번, 클라인의 포효가 터졌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랑스러운 반다이트의 방패들아, 너희는 훌륭히 지켜 냈다!”

어린 사령관의 승전 선언.

와아아아아아-!

살아남은 병사들의 우뢰 같은 함성이 국경의 초원을 뒤흔들었다.

* * *

시간을 돌려 한 달 전.

메르윈 백작은 하나의 서신을 받았다.

발신자는 레오 바이스만 남작.

처음 보는 가문의 봉납과 레오 바이스만이라는 서명이 그를 미소 짓게 했다.

“허허허, 제법 태가 나는구먼.”

그를 만난 기억이 아직 새록새록 하다.

유망한 생도였던 그가 이제 소드 마스터가 되며 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되다니, 역시 세상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글을 읽어 내려가던 메르윈 백작의 미간이 서서히 굳어졌다.

기대했던 평범한 안부 서신이 아니었다. 더욱이 그 내용은 무겁기 그지없다.

제국 기념식을 기해 보르트 왕국의 침공이 예상된다는 내용.

그러니 세 갈래의 침공군 중 하나를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허허, 참….”

농담이라기에는 질이 나빴고, 뜬구름 잡는 소리라기에는 너무도 구체적이다.

봉투 안에는 침공군의 경로를 예상한 전술 지도까지 동봉되어 있었으니까.

[추신. 뭐든 도와준다고 인장까지 주셔 놓고 모른 척하시면 안 됩니다?]

“…이러면 출병을 안 할 수 없지 않나.”

그렇게 메르윈 백작은 사병 팔백을 이끌고 유메른 강을 도하하여 북쪽으로 진군하게 된 것이다.

* * *

다시 현재.

“반다이트 백작의 아들, 클라인 반다이트입니다. 구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국경의 지휘관실에서.

클라인은 메르윈 백작을 향해 깊게 허리를 숙였다.

그가 이끌고 온 팔백 병력은 본인의 영지를 지킬 최소 병력을 제외한 거의 전부일 것이다. 그만큼 진심으로 구원을 온 백작에게 한없이 고마울 뿐이었다.

“메르윈일세, 이렇게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로군. 듣던 대로 훤칠한 청년이야, 허허허!”

메르윈 백작은 예의 푸근한 얼굴로 답했다.

백작 부인이 날로 건강해져서 그런지 전보다 훨씬 밝은 표정이다.

“반다이트는 은혜를 절대 잊지 않습니다. 저희는 메르윈의 가장 가까운 우방이 될 것이며, 도움을 청한다면 언제든 달려갈 것이라고. 아버님께서도 분명 이렇게 말하셨을 겁니다.”

“하하하, 너무 딱딱하게 그럴 것 없네. 나 또한 반다이트의 헌신에 항상 감사하는 바이니. 그러고 보니 춘부장을 뵌 지도 꽤 오래전이군. 여전히 건강하신가?”

“예, 너무 건강하시죠.”

편안한 메르윈 백작의 화법에 클라인도 한결 어깨에 힘을 풀었다.

“한데 어떻게 구원을 오시게 된 건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가장 궁금했던 것이다.

레오야 당초 이 전쟁을 예견한 당사자라지만, 어째서 메르윈 백작까지 알고 참전한 것일까.

“흐음…. 협박을 당했다네.”

“협박요?”

놀라 되묻는 클라인.

그 표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장난스럽게 웃음 지은 메르윈 백작, 그의 시선이 레오에게 향했다.

백작의 눈을 피해 딴청을 피우는 레오.

“이야, 백작님한테 협박을 하는 놈이 있어요? 그거, 크게 될 놈이네.”

“그러게 말이야. 자네들, 혹시 소드 마스터한테 협박 편지 받아 본 적 있나? 그거 꽤 무섭다네. 밤에 잠도 안 올 정도더군.”

“에이, 뭘 또 그렇게까지….”

역시 레오였구나, 클라인도 금방 깨달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의 안배가 없었다면 반다이트는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국경에서 밀려나는 것은 당연했고, 결국 영주성에서 농성해야 했을지 모른다.

가문의 은인.

아니, 은인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다.

“마침 숲을 빠져나오니 군이 밀려오고 있지 않은가? 보아하니 옆구리를 팍 들이치면 좋겠다 싶었지.”

“그거 너무 얌체 짓 아닙니까? 앞에서 무너지면 어쩌려고요?”

“그 유명한 반다이트의 방패인데 그리 쉽게 무너질 리 없지 않은가? 여하튼 제대로 측면을 들이치니 와르르 무너지더란 말이야, 하하핫!”

“예이예이, 어련하시겠어요.”

아직도 승리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메르윈 백작이 무용담을 자랑했다.

레오가 대놓고 건성으로 대꾸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렇게 세 사람이 웃고 떠드는 데 지휘관실 문이 활짝 열렸다.

“우리 왔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은 덱스.

그 뒤에는 무무카와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의 멜핀이 보였다.

“얘들아! 멜핀 경!”

“사령관님!”

벌떡 일어나 반갑게 맞는 클라인.

멜핀의 경례를 받아 주는 눈이 그렁그렁하다.

“멜핀 경, 정말 잘해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무사하여 천만다행입니다.”

“부끄럽습니다. 구원이 아니었다면….”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병사들을 푹 쉬게 해 주시고, 멜핀 경도 쉬십시오, 이건 사령관 명령입니다.”

“알겠습니다. 공자님도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경례를 올리고 빠져나가는 멜핀.

그사이 덱스와 무무카는 벌써 적당히 의자를 끌어다 놓고 수다에 합류해 있었다.

“자네들도 오랜만이군.”

“메를린 백작님이죠! 이야, 그때 먹은 하얀 밀빵 정말 맛있었는데!”

“하하핫, 메르윈일세.”

“아하!”

반갑게 알은척하는 덱스, 그 옆에서 레오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백작의 면전에서 이름을 잘못 말하는 건 둘째치고, 빵 이야기나 하고 있다니.

“네 목이 아직 붙어 있는 게 신기하군. 때로는 침묵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가만히 눈을 감는 무무카.

제대로 기억 못 할 거면 자기처럼 입 다물고 있으라는 뜻이었다.

“무무카 너까지 그러기냐? 나 좀 상처받는데?”

“됐네, 됐어. 아무렴 어떤가, 하하하핫!”

승리의 주역들이 모두 모였다.

이제 슬슬 진지한 이야기로 넘어갈 시간.

전후 처리에 대한 논의다.

“아시다시피 저는 권한을 가지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논의된 내용을 아버님께서 받아들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클라인이 좌중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보르트 왕국은 아마 이번 일과 관련이 없다며 선을 그을 겁니다. 세 백작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겠지요. 이를 생각하면 우리가 실질적으로 얻어 낼 수 있는 것은 백작들의 몸값을 포함한 배상금이 될 것입니다.”

귀슈, 자카르도, 판테오.

보르트 왕국의 세 백작을 생포했다.

각 영지의 가주이니만큼 그 몸값은 적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배상금까지 추가로 얻으면 이번 전쟁의 승리로 기대되는 금전적 이득은 상당하다.

그 이득을 누가 얼마나 취할 것인가.

그것이 이 자리에서 논의될 과제였다.

“내가 먼저 의견을 내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메르윈 백작님.”

“마침 우리도 셋, 놈들도 셋이군. 하나씩 가르는 것은 어떻겠나?”

“명쾌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백작님께서 판테온의 군을 부수었으니 판테온 백작의 배상금 권리를 가져가시는 것 또한 이치에 맞다 생각합니다.”

클라인은 깔끔히 메르윈 백작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굳이 따지고 들면 모루 역할을 한 반다이트에게도 지분이 있으나, 당초 메르윈의 구원이 없다면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었다.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 좋네. 그러면 판테온의 몸값과 배상금 권리를 내가 가지겠네. 이의 있는가?”

“그러시지요. 그것이면 되겠습니까?”

“아니, 아직 안 끝났네.”

메르윈 백작이 매섭게 눈을 번쩍였다.

방금 전까지 허허 웃던 것과 사뭇 다른 얼굴.

제 권리를 주장하는 메르윈의 요구에 클라인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걸 바이스만 남작에게 양도하도록 하지.”

“에?”

이어진 메르윈 백작의 말에 레오가 바람 빠진 소리로 되물었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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