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침공 (5)
…마법으로 상대할 생각이 없나? 왜 메이스를 들고 전의를 다지고 있지?
레오가 당황하는 클라인의 어깨를 툭 쳤다.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 둬, 어차피 이 어둠에서 병사들을 내보내 봐야 피해만 생길 테고, 밖에서 휘저어 주는 녀석 하나 있으면 방어하기도 훨씬 수월할 거 아냐. 고민하지 말고 저 녀석을 내보내면 된다.”
“나도 함께 나가지.”
“무무카 너도?”
“나는 밤눈이 좋다. 이 정도 어둠은 아무 방해가 못 돼.”
대도를 들고 채비를 마친 무무카.
덱스는 벌써 요새 정문에 내려가 불붙은 메이스를 붕붕 돌리고 있다.
병사들은 어찌해야 할지 클라인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부탁한다.”
끼기기기긱-!
녹슨 도르래 소리를 배경으로 통나무로 된 요새 정문이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열린다.
틈이 생기자 그 사이를 기어 들어오려 발광하는 시체들.
“흐읍-!”
푸른 투기를 두른 무무카의 검풍에 와르르 시체들이 밖으로 밀려 날아갔다.
그 공간으로 불 몽둥이를 든 덱스가 휙 뛰어들었다.
“일단 하나!”
퍼석-!
머리가 작살난 시체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무너진다.
“레오 말대로야! 머리만 깨면 돼!”
이지(理智)를 상실한 시체들 사이에서 활짝 웃는 덱스.
곧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며 퍽- 퍽- 시체들의 머리를 깨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 위에 광원 하나가 졸졸 따라붙으며 시야를 밝히니, 마치 연극 무대의 주인공 같았다.
요새 위 병사들도 감탄하며 그것을 구경했다.
“캬- 저 몽둥이 나도 한번 써 보고 싶네. 대가리 깨는 소리가 아주 찰져.”
“저 도련님은 마법사라고 하지 않았냐?”
시체 사이를 춤추듯이 지나는 경쾌한 발놀림.
360도 사방을 놓치지 않는 시야와 민첩하고 효율적인 몽둥이질.
그 모습이 마치 왈츠를 추는 듯하여 보는 사람도 흥이 돋을 정도였다.
“와따, 참말로 잘 깨네!”
“저 양반 마법사 아니여, 몽둥이질 하는 거 봐. 대가리 깨려고 태어난 사람이 틀림없구먼!”
덱스가 요리조리 머리만 깨는 깡통따개라면, 무무카는 압도적인 힘으로 다가오는 시체들을 뭉개 버렸다.
“흡-!”
횡으로 그어진 무무카의 대도에 시체들의 키가 일렬로 맞추어졌다.
그 모습은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를 잘라 침대에 맞추어 살해했다는 어느 악당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다행히 별일 없겠어.’
위에서 바라보고 있던 클라인도 그제야 긴장을 조금 풀었다.
덱스와 무무카가 눈에 띄게 시선을 끌어 준 덕에 병사들도 여유 있게 요새 벽을 지킬 수 있었다. 이대로면 금방 바깥이 정리될 것 같다.
“야, 나 좀 나갔다 온다.”
여태껏 난간에 기대어 구경꾼처럼 내려 보던 레오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말했다.
“왜? 무슨 일 있어?”
“별건 아니고. 금방 다녀올 테니 넌 여기나 잘 지키고 있어.”
레오가 훌쩍 요새 밖으로 몸을 날렸다.
마치 뭔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처럼.
* * *
언뜻 난간에 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나, 레오의 눈은 전장을 바삐 훑고 있었다.
시체를 움직이는 사령술.
흑마법이나 사령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대규모의 시체를 일으키는 일이 간단할 리 없다.
그만큼 강력한 무엇인가 있다는 뜻. 그러니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오러안에 비치는 광경은 대부분 움직이는 시체들의 것이었으나, 그것과 별개로 빛을 발하는 것들도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저게 뭐지?’
시체들의 움직임과 달리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으니 땅속에 묻히기라도 한 모양.
그 밝기가 마치 고명한 기사의 단전을 보는 듯했다. 꽤나 강한 에너지가 응축된 것이 틀림없다.
아무래도 직접 확인 해 봐야 할 것 같다.
“좀 다녀올게.”
레오는 훌쩍 요새 밖으로 몸을 던졌다.
키에에엑-!
하늘에서 뚝 떨어진 레오에게 달려든 시체들은 금방 머리통에 구멍이 뚫렸다.
오러 블레이드로 한 번에 쓸어버릴 수도 있지만 클라인 녀석이 아직 오러를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참이다. 만약을 위해 남겨두는 편이 좋다.
물론 굳이 나서지 않더라도 덱스와 무무카가 빠르게 처리하는 중이기도 했고.
어느덧 절반 이하로 줄어든 시체들.
레오는 놈들의 군집을 지나쳐 꽤 고용한 장소에 접어들었다.
수상쩍은 빛의 구슬.
어둠 속이지만 오러안이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게 뭐야?”
그것은 정체는 주먹만 한 크기의 구형(球形) 돌이었다.
까슬한 촉감이 말 그대로 돌이다. 각진 곳 하나 없이 깔끔하게 다듬어진 것으로 보아 인위적으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품고 있는 힘.
겉보기에 그저 장식품 같아 보이는 이것이 도대체 뭐길래 이 정도의 기운이 응축되어 있는 걸까.
“일단 전부 줍고 보자.”
사방을 돌며 나머지 돌을 찾았다.
어느 것은 맨땅에 묻혀 있기도 했고, 어느 것은 군영의 물자 창고 기둥 아래에 숨겨져 있기도 했다.
어디다 쓰는 돌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일부러 놓아 둔 물건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찾다 보니 벌써 다섯 개째.
키기기기긱-!
저 뒤에서 요새의 문이 다시 한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체들 정리가 거의 끝난 모양. 요새 밖으로 나서는 병사들의 목소리가 왁자지껄하다.
어느새 시체들과 함께 나타난 한기도 가라앉았다.
메마른 초원의 밤바람이 레오의 몸을 훑었다.
‘누군가 있다.’
고요함 속에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감.
어둠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 짧은 마법 술식, 그리고 인간의 형상이 레오의 오러안에 비쳤다.
“이런 썅! 어떤 새끼가 다짜고짜…!”
곧바로 투사되는 마법에 욕설부터 튀어나왔다.
마법의 형체는 보이지 않지만 마법 회로는 똑똑히 보인다. 그것도 꽤나 익숙한 회로다.
“씨발놈, 넌 뒤졌다.”
팟!
레오의 검이 마법 회로를 갈랐다.
일검에 바스라지는 마법 잔해에 뒤이어 미풍이 훅 불어왔다.
바람 계열의 공격 마법, 윈드 커터.
보통 고위 마법일수록 마법 술식과 회로가 복잡해진다. 방금 전 투사 마법은 덱스 녀석과 영지에서 질리도록 상대한 윈드 커터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덱스의 술식보다 여기저기 허술했으니 파훼는 더 간단하다.
타다다닥.
마법이 파훼된 것에 당황했는지 공격한 마법사가 허둥지둥 등을 돌려 달아났다.
“어딜 도망가려고!”
가만히 보고 있을 레오가 아니다. 쥐고 있던 돌덩이를 냅다 집어 던졌다.
성질 같아서는 곧바로 대가리를 깨고 싶지만 일단 이것저것 캐낼 생각에 등짝을 노렸다.
으악-!
비명과 함께 마법사가 고꾸라진다.
한달음에 달려가 보니 수상한 남자가 앞으로 엎어진 채 꺽꺽거리고 있다. 갈비뼈라도 몇 개 부러진 모양이다.
“너 뭐 하는 새끼야? 다짜고짜 공격부터 해?”
레오는 던진 돌덩이를 도로 주워 들어 챙기고는 엎어진 마법사를 발로 굴렸다.
움직이는 시체든, 이 수상한 돌덩이든 최소한 어느 한쪽과 연관 있는 놈이 분명했다.
“끄으윽… 너, 너야말로 누구냐? 왜 영혼석에 손을 대는 거지?”
“영혼석?”
미간을 찌푸린 레오가 손에 쥔 돈을 바라보았다.
이게 영혼석이라는 물건인가 보지?
“저 시체는 네 짓이냐?”
꾸욱.
몸을 일으키려는 놈의 가슴을 지그시 밟아 누르자 고통스러운지 도리질을 친다.
“끄으으윽…. 아니다, 시체는 모르는 일이야. 정말이다.”
“헷,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너 이 새끼 흑마법하는 놈 맞지?”
어두침침한 로브, 음흉하기 그지없는 공격.
흑마법사에 대한 편견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이놈들은 편견만으로 대해도 되는 존재다.
“좋아, 그러면 영혼석인지, 뭔지 하는 이 돌에 대해서 말해.”
“말할 수 없… 끄아아아악-!”
흑마법사의 비명이 어둠 속에 울렸다.
레오가 그의 허벅지에 검을 쑤셔 박은 것.
양손으로 휘두르는 중검의 검신이 대퇴골을 부수고 지면에 박혀 들었다.
“내가 너 같은 놈들하고 대화하는 법을 좀 알아. 지난번 만난 네 친구도 이렇게 해 주니까 술술 불더라고.”
“으으윽… 사, 살려 주십시오….”
“이것 봐. 저절로 개념도 박히고 얼마나 좋아. 그래서, 아직도 말할 생각이 안 들어?”
“끄으으으윽….”
검에 기대며 무게를 실으니 흑마법사의 신음이 더욱 커졌다.
“으으… 그, 금제가 걸려 있습니다. 그 밖에는 모두 말할 테니 제발 살려 주십시오…!”
“금제? 말할 수 없다고?”
“그, 그렇습니다. 크흐흑, 정말입니다.”
레오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새끼가 잔머리를 쓰는 건가?
마침 요새 쪽도 거의 정리되어 가는 듯했다.
밝은 데서 제대로 추궁할 생각에 일단 놈을 요새로 끌고 왔다.
* * *
요새 한구석의 골방.
클라인만 불러다가 함께 놈을 취조해 보기로 했다.
먼저 뒈져 버리면 곤란했기에 손에 잡히는 천으로 허벅지를 대충 묶어 주고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혔다.
밝은 곳에서 흑마법사의 행색이 자세히 드러났다.
혈색 없이 창백한 얼굴에 퀭한 눈두덩, 전신을 감싸는 시커먼 로브까지. 한마디로 칙칙하기 그지없는 모습.
“흑마법하는 새끼들은 단체복이라도 맞추냐? 꼬라지가 어째 다들 똑같아?”
쯧쯧, 혀를 찬 레오가 다시 물었다.
“암튼 저 시체는 네놈하고 관계가 없다고?”
“그, 그렇습니다. 애초에 저는 이렇게 많은 시체를 일으킬 능력이 없으니까요…! 움직인다고 해 봐야 작은 동물 한두 마리가 한계입니다, 제발 믿어 주십시오.”
놈은 흑마법사 의혹은 깔끔히 인정하면서 움직이는 시체와 무관하다며 구구절절 설명했다.
자신은 이제 3서클 초입에 불과하며 이런 대규모 사령술은 최소한 5서클 이상의 술자이거나 그에 준하는 제물이 필요하다고. 당연히 제물만 있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일단 이건 거짓말이 아닌 것 같고.’
무엇보다 오러안에 비치는 흑마법사의 가슴에 세 개의 고리가 명확히 보인다.
“그렇다 치고. 그러면 너는 이 영혼석인가 하는 것 때문에 얼쩡거리고 있었다는 거지?”
“…그, 그렇습니다.”
“그런데 금제 때문에 자세한 말은 할 수가 없다? 지금 나랑 장난하냐?”
“죄, 죄송합니다. 할 수 있는 건 모두 말할 테니 살려만 주십시오… 흐흐흑….”
레오는 답답함에 머리는 벅벅 긁었다.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러고 있으니 답답함만 늘었다.
줄곧 굳은 얼굴로 함께 있던 클라인이 물었다.
“영혼석이라고 하는 그 돌은 네 녀석이 설치한 것이냐? 목적이 무엇이지?”
“제, 제가 설치한 것이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저 자세한 것은 말할 수가….”
“으음….”
자신의 군영에 설치되어 있던 수상한 물건.
클라인도 당연히 마음이 편치 않다.
“쓸모도 없는 새끼, 그냥 콱 죽여 버릴까.”
인상을 쓰며 왔다 갔다 하던 레오.
두려움에 질린 흑마법사의 눈동자가 그를 쫓아 좌우로 움직인다.
“아.”
뭔가 생각난 듯 흑마법사의 의자 앞에 쭈그려 앉는 레오.
그러더니 흙바닥에 슥슥 그림을 하나 그려 나갔다.
“요 그림, 꼭 까마귀 같은 그림이 새겨진 메달. 이거 뭔지 알지? 너도 가지고 있냐?”
“…예, 가지고 있습니다.”
순순히 답하는 흑마법사.
메달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어디다 쓰는 건데?”
“…그것도 금제가….”
“야, 이 개새꺄!”
레오는 부르르 떨었다.
까마귀 메달이 통신기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차라리 흑마법사 협회의 기념품이라는 같잖은 변명이라도 했으면 개 패듯 두들기기라도 하지, 저렇게 끝까지 금제를 들먹이며 뻗대는 걸 보면 마냥 거짓말 같지도 않다.
허리를 펴고 일어선 레오.
손가락으로 검 자루를 톡톡 두드리며 잠시 고민하더니 이윽고 표정을 바꿨다.
“야, 내가 그 금제 없앨 수 있을 것 같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까 내가 마법 없애는 거 봤지?”
“아아! 맞습니다. 그거 도대체 어떻게 하신 건지…?”
그 와중에 눈을 반짝이며 묻는 흑마법사 놈.
제 목숨줄이 간당간당한데 저러는 걸 보면 여간 또라이가 아니다.
“닥치고 들어. 그 금제라는 것도 결국 마법이든 저주든, 뭐 그런 것일 거 아냐. 그러니 발현될 때 내가 없애 주겠다고. 아까 네놈의 매가리 없는 윈드 커터 없애 버린 것처럼.”
절반은 추측이고 절반은 허풍이다.
오러안으로 살펴봐도 흑마법사의 몸에 특이할 만한 저주나 술식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는 기색도 아니니, 오히려 놈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진짜 금제라는 것이 발동될 수도 있다. 그걸 없앨 수 있는지 어떤지는 닥쳐 봐야 아는 거고.
까놓고 말해서 저놈이 어떻게 되든 알 바는 아니다.
레오의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