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영지를 부유하게 (3)
마나 화력석.
덱스는 본인의 발명품에 그러한 이름을 붙였다.
표면에 물에 닿으면 저절로 뜨거워지며 물이 없으면 작동이 중지된다. 오직 물을 끓이기 위한 마도구이며, 그 효율은 1서클 파이어보다 훨씬 좋다. 화염의 크기, 모양, 위치 등을 실시간으로 조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물에 던져 넣으면 알아서 작동하고, 작업이 다 끝나 마른 상태에서는 식은 후 회수하면 끝.
마법사가 상주할 필요 없고 스스로 마나를 흡수해 연료로 사용하며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획기적인 발명품.
“도대체 이런 물건을 어떻게 만든 거예요?”
“나라고 종일 여기서 불만 때고 싶겠어요? 살아야 하니까 만든 거지…. 어쨌든 좀 쉬자고요!”
설명을 듣고도 블레아는 쉽게 수긍이 가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히 화력석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같은 원리로 광원(光源)을 만들 수도 있으며, 마르지 않는 수원(水源)을 생성할 수도 있을 터였다. 당장 1서클의 원소 마법만 가지고도 응용할 수 있는 발명품이 무궁무진하게 떠올랐다.
[그놈을 굴리면 방법이 생길 거야.]
영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게 이런 뜻이었다니…!
역시 미리 내다보셨구나! 그래서 걱정할 것 없다고 하셨구나!
“마, 마법사님! 이런 거 더 만들 수 있어요?”
“당연하죠.”
덥썩.
블레이의 눈이 빛났다.
병사들 사이에서 올빼미 노래를 부르고 있던 괴짜 마법사는, 지금 보니 영지를 살릴 인재였다. 아니, 영지를 제국에서 가장 부유하게 만들 보물이었다.
부스스한 머리칼,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멍한 눈동자, 가끔 대화도 핀트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가 천재라는 것을 깨닫고 보니 모두 수긍할 수 있게 됐다.
“성으로 돌아가요!”
블레아는 서둘러 영주성으로 돌아갔고.
집무실에서 흥분한 블레아의 설명을 듣던 레오는 큰 표정 변화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지?”
“일단 염전 터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후에 화력석으로 염전을 운영하면서 가장 효율적인 작업 방법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더 바빠지겠군. 네게 전권을 준다고 했다, 자잘한 것들은 일일이 보고할 필요 없으니 알아서 잘해 봐.”
“감사합니다!”
블레아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얼굴로 집무실을 떠났다.
당장 테스트에 쓸 화력석은 충분했기에 이번에는 덱스 없이 혼자서 갈 참이다.
‘역시! 영주님은 모두 예상하셨어!’
마나 화력선에 대해 듣고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모습.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지만 역시 범상치 않은 분임이 틀림없다.
그런 분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어중간한 결과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바닷가로 향하는 마차에서, 블레아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블레아가 떠나고 영주성 집무실에 둘만 남은 레오와 덱스.
어느새 퍼질러 앉아 반쯤 눈을 감고 있는 덱스에게, 레오가 물었다.
“야, 그러니까 아까 그게 무슨 소리냐?”
“말 걸지 마라.”
눈도 뜨지 않고 답하는 덱스.
그 냉랭한 목소리에 레오도 조금 눈치를 보며 다시 물었다.
“…거기서 고생 많았다며?”
이윽고 덱스가 눈을 떴다.
“영주면 다야? 바닷가에서 짠 내 맡으면서 종일 기계처럼 마법을 쓰는 기분을 네가 알아?”
울분에 찬 목소리였다.
화장실 들어갈 때하고 나올 때 다르다더니, 영지 마법사로 와 달라고 눈치 보며 부탁할 때는 언제고, 이렇게 기계처럼 사람을 부려?
아무리 다 퍼 줄 것 같은 덱스여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레오는 잠자코 덱스의 속이 풀릴 때까지 듣기로 했다. 사실 블레아가 그렇게 험하게 일을 시킬 줄은 몰랐다.
“블레아가 좀 심했네….”
“나, 그 여자 싫어. 바다도 싫어졌어.”
여전히 툴툴거리는 덱스.
그래도 아까보다는 훨씬 기분이 나아진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아까 그게 뭐 어떻게 된 거라고…?”
그제야 레오는 슬쩍 다시 화력석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아까 블레아가 한 이야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에.
* * *
딱 일주일 만에 소금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햇빛에 말리면 턱도 없을 염전에서, 하루 네 번씩 소금을 긁어모을 수 있었다.
처음 긁어모은 걸쭉한 해수는 흙과 모래가 섞여 탁했다. 이를 몇 차례 천에 여과한 뒤 다시 화력석으로 완전히 물기를 날리면 하얀 소금이 탄생했다.
이렇게 생산되는 소금이 하루 2골드 가치에 상당했고, 블레아는 지금보다 생산량을 배로 끌어 올리겠다며 눈을 불을 켜고 일하는 중이었다.
레오는 마나 화력석의 존재를 극비에 부치기로 했다.
이 아티팩트의 존재가 드러나면 바이스만의 염전 경쟁력도 순식간에 떨어질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본다고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야.”
보안을 몇 번이고 강조하는 레오였지만, 덱스는 자신만만하기만 했다.
“페이크 술식까지 넣었다고. 보통 마법사들은 해석도 못 한다니까?”
“하늘 위에 하늘이 있는 법이다. 까놓고 말해서 네가 만든 걸 메퀸토 영감이 못 할 것 같냐? 딱 보고 바로 해석해 낼걸.”
“…그렇긴 하겠네.”
현존하는 대륙 유일의 대마법사를 꺼내자 덱스도 입을 다물었다.
자랑 좀 하게 내버려 두지, 치사하게 그 양반 이야기를 꺼내냐.
덜컹.
“으앗!”
돌을 밟았는지 마차가 한 번 크게 흔들렸다.
레오와 덱스를 태운 마차가 바이스만을 떠나 수도 메프람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카데미 복귀를 위해서다. 무무카는 메르윈에 들렀다가 아카데미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후반기 일정도 벌써 절반은 지났겠다. 우리 이러다 유급되는 거 아냐?”
“유급 안 되니까 걱정 마라. 출석 일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진급 시험만 잘 치르면 돼.”
“그럼 다행이고.”
셋 다 최상위권 실력이라 진급 시험에서 떨어질 염려는 하지 않았다. 특히 레오는 황제가 공인한 소드 마스터이니, 이대로 졸업 시험을 쳐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지오르가 있으니 안심이 되네.’
영지 운영을 맡길 사람이 있으니 걱정이 없었다.
소금 생산에도 더 속도가 붙어 이제는 소금만 가지고도 영지 운영 자금을 충족시킬 정도가 됐다.
이를 기회 삼아 기존 영지민에게는 2년간 세금을 절반으로 감면하기로 하고, 외부에서 새롭게 정착한 이들에게는 2년간 세금을 면제해 주기로 했다. 영지민이 늘어나면 이 또한 영지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덜커덩.
바이스만의 마차가 수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귀족의 마차인가?”
“처음 보는 문양이야. 저거 본 적 있냐?”
외성문을 지키던 병사들의 시선이 가까워지는 마차에 집중됐다. 많은 귀족들의 왕래를 지켜본 베테랑 병사였음에도 마차에 그려진 문양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성문 앞에 마차가 멈췄고, 창을 가린 커튼이 젖혀지며 젊은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실례합니다. 신분을 밝혀 주시겠습니까?”
어려 보이지만 일단 귀족임은 확실해 보였기에 병사는 예의를 갖춰 물었다.
“바이스만 남작이다.”
“바, 바이스만 남작님? 실례했습니다!”
화들짝 놀란 병사가 재빨리 길을 비키더니 창을 세워 경례를 올렸다.
조용히 커튼이 닫히고 다시 출발하는 마차.
마차의 꽁무니를 향해 경례 자세를 유지하는 동료를 보며, 다른 병사가 물었다.
“지금 뭐 하냐? 그냥 남작이라며?”
하루에도 성문을 오가는 귀족이 꽤 많다.
마치 황실의 마차라도 되는 듯 과하게 행동하는 동료의 모습이 의아했다.
“에라이, 무식한 놈아! 그냥 남작이 아니라 바이스만 남작님이라고!”
“바이스만?”
“너는 소문도 못 들었냐? 소드 마스터로 남작 위를 받았다는 그분! 그 바이스만 남작님이라고!”
“어엇! 그러면 아까 그 꼬맹… 그분이 소드 마스터라고?”
“그래, 인마! 보르트의 소드 마스터를 단칼에 베어 버리고 백작 셋을 무찌르며 제국을 구한 영웅 말이다!”
그제야 동료를 타박하던 병사가 헤, 하고 벌렸던 입을 닫았다.
그러니까, 아까 그 사람이 바이스만 남작이라고?
솔방울로 마력탄을 날리고, 모래알로 검을 부수고, 나뭇잎을 밟고 유메른 강을 건넌다는 그분이었다는 말이지?
“그런데 아까 그 문양은 뭐냐? 꼭 새대가리 같이 생겼던데….”
“이 무식한 놈이 큰일 날 소리를 하네. 바이스만의 올빼미라고 못 들어 봤냐?”
“아…!”
바이스만의 올빼미.
용병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바이스만의 정예에게만 주어진다는 칭호. 올빼미에게 포로로 잡힌다면 차라리 자결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잔혹무도하다고 했다.
“한번 사냥감으로 점찍으면 놓치지 않는다고 해서 올빼미라더군.”
커다란 눈동자와 사방으로 돌아가는 목.
과연 어떤 사냥감도 놓칠 것 같지 않은 이미지다.
“그러니 항상 입조심해.”
꿀꺽.
병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덜컹.
마차가 다시 한번 흔들렸다.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멀어지는 마차에서 병사들의 대화를 듣던 레오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언뜻 바이스만 이야기를 하길래 무슨 말을 하나 싶어 귀를 기울였는데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가 절반이다.
솔방울은 뭐고, 나뭇잎은 또 뭐야?
“왜? 아까 그 녀석들이 뭐라고 해?”
“야, 덱스 네 녀석이 이상한 소문 퍼트린 거 아냐? 바이스만의 올빼미가 잔인무도하다는 소문은 또 뭔데?”
“후후훗, 올빼미에게 사로잡히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미친놈아, 너 맞잖아!”
“아아악! 영주가 사람 친다!”
한참 소란이 있은 후에야 마차 안이 고요해졌다.
이윽고 내성에 들어서자 마차가 더욱 부드럽게 나아갔다.
‘보르트에 특사를 보냈다고 했지.’
보르트의 침공 소식에 황제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고 했다. 당장 군을 일으켜 보복하자 주장하는 것을 대신들이 나서서 가까스로 말렸다고.
결국 보르트 국왕의 사죄를 받아 낼 특사를 보내는 것으로 합의했고, 외무 장관 켈시온이 특사로 선정되었다.
‘하필이면 켈시온이라니.’
보르트의 침공도 후작파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데, 하필이면 그 특사도 후작파의 오른팔인 켈시온이다.
특사 선정 과정도 영 신경 쓰이는 레오였다.
“다 왔다! 우리 집이야!”
그 사이 마차가 멈췄다.
문을 열고 먼저 휙 뛰어내리는 덱스.
마차가 멈춘 곳은 두 부모님을 모신 집 앞이었다.
“내일 아침에 보자!”
덱스는 맞은편 제집으로 훌쩍 들어갔다. 슈니도 폴짝 마차에서 뛰어내려 레오를 기다렸다.
레오는 론마르에서 처음 대문을 열었을 때처럼, 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집 안에서는 고소한 빵 냄새가 새어 나왔다. 귀를 세우니 어머니와 여동생의 목소리도 들렸다.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방금 전까지 인상 쓰며 고민하던 것들이 저절로 흩어지는 기분이다.
끼이익-!
레오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에서 빵을 진열하고 있던 어머니 프릴와 여동생 릴리가 돌아본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얼굴이다.
“어머, 우리 아들!”
“오빠다!”
한가득 미소를 품고 달려오는 두 사람.
“다녀왔어.”
레오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났다.
반년 만에 다시 만난 가족의 품은 똑같이 따뜻했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