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80화 (80/127)

80. 진급 시험 (3)

“저 갑옷, 생각보다 안 무거운가?”

“쯧쯧, 하여튼 별난 녀석이야. 저렇게 주목받고 싶을까? 아까 그건 횃불이야, 뭐야?”

“어떻게든 눈에 띄고 싶어 그런 것 아니겠어?”

덱스가 사라지자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면전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다가 뒤늦게 한마디씩 하는 중이었다.

검술 교수인 자크조차 고개를 갸웃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덱스의 마법을 모두 간파한 유리아만이 경악했다.

‘방금 그건 헤이스트였어! 게다가 중첩까지?’

4서클의 보조 마법, 헤이스트.

갑옷이 가벼운 것이 아니다. 덱스의 날쌘 몸놀림은 스트렝스와 헤이스트의 중첩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또한 서로 다른 마법을 중첩하는 것은 같은 마법을 중첩하는 것과 난이도 자체가 달랐다. 각각 마법에 충분히 숙련되어 있어야 함은 기본이다.

최소한 그는 4서클 초입이라 볼 수 없었다.

‘어느새 저만치 앞서고 있어.’

유리아는 두 주먹을 그러쥐었다.

덱스의 재능은 익히 인정했다. 언젠가 뒤처질지 모른다는 것도 예상했다. 그런데 그날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나도, 나도 절실해. 정말 절실하게 노력하고 있다고.’

이를 꾹 물었다.

마법사의 길을 택한 것은 생존을 위해서였다. 황실의 일원이라 해도 스스로 살아남을 힘이 없다면 그저 도구로 전락하기 십상이었으니까.

도구로 쓰이다 버려지기 싫어서, 살고 싶어서 마법에 매달렸다.

…정말 절실했을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치열했다 여긴 것은 어쩌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실상은 온실 속 미풍을 태풍이라 착각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덱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철이 들기 전부터, 그는 말 그대로 살기 위한 투쟁을 했다고 했다. 배를 곯지 않기 위해,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싸웠다고.

그에 비하면 황궁의 삶은 얼마나 풍족했던가.

손짓만 하면 따뜻한 식사와 달콤한 간식이 놓였다. 몸이 피곤하면 폭신하고 커다란 침대가 준비됐다.

독살에 대한 불안감이나 정쟁에 대한 스트레스는 상시 있었지만, 애초에 그것도 배를 곯지 않아야 할 수 있는 고민이다.

아카데미는 일종의 도피처다.

이 짧은 유예가 끝나면 다시 황궁에 몸이 매일 것이다. 황위 계승과 멀어진 황녀의 쓰임새라고는 정략혼의 도구 정도겠지.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어중간한 마법사로 남아서는 안 된다.

누군가 도와주길 기다리기만 해서도 안 된다.

‘황궁에 돌아가지 않겠어.’

여느 때였다면 얌전히 황궁에 돌아가 휴식기를 보냈을 터다. 그녀를 데려갈 황실의 마차도 반대편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유리아는 결심했다.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덱스에게 가르침을 청할 생각이었다.

* * *

덱스는 빠르게 숲을 질주했다.

헤이스트로 가속된 신체가 그리 어색하지는 않다. 4서클에 올라 가장 먼저 습득한 마법이었고, 바이스만에서 틈틈이 연습하며 적응해 뒀기 때문이다.

헤이스트와 스트렝스를 중첩하면 중급 기사 수준의 신체 능력을 낼 수 있다. 이것은 전사 학부에서 직접 몸을 부딪히면서 깨달은 것이었다.

기술을 제외한 신체 능력만이라면 전사 학부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리라.

‘패트릭 정도까지는 비벼 볼 수 있을지도.’

다만 기술적 격차는 아직 크다.

메이스를 다루는 센스가 좋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수년간 엘리트 교육을 받은 전사들의 기술을 단번에 따라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고블린이 보였다.

전사 학부 강의에서 몸을 부대낀 기억이 자연스레 그를 이끌었다.

퍽! 퍽! 퍽!

메이스가 그리는 아름다운 곡선에 비명도 없이 고블린 셋의 머리가 깨졌다.

덱스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었다.

깔끔한 손맛이다. 자신의 몸놀림 또한 더도 덜함도 없이 딱 원한 만큼의 결과였다.

왜 마법사가 근접전에 집착하는가. 그런 눈빛을 지겹게 받았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잘하고 싶어서였을 뿐이다. 뭐든 할 수 있는 게 늘어나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마법사라 해서 항상 보호받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마법에 의지할 수 없는 상황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 때 마지막까지 믿을 것은 맨 몸뚱이뿐이다.

화살표를 따라 방향을 꺾어 달리자 이번에는 오크가 나타난다.

조잡한 날붙이를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녀석.

파지직-!

덱스는 움직이는 발을 멈추지 않으며 작게 영창했다.

라이트닝.

그의 머리 위에 전격이 튀더니 이내 허공을 찢으며 내달렸다.

크익-?

지그재그로 방향을 바꾸며 날아간 전격이 오크의 뒤통수에 직격한다.

살이 타는 냄새와 함께 파들파들 경련하며 녀석은 무너졌다.

머리가 반쯤 숱이 된 시체가 스르륵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붉은 화살표.

쓰읍-!

덱스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아쉽다. 라이트닝도 이제 꽤 숙련된 것 같은데,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 싶다.

쿠아아악-!

조금 이동하자 전방에서 울부짖는 트롤이 보였다.

환영에도 트롤의 재생력이 구현되었을까? 한번 시험해 봐야겠다.

덱스의 메이스에서 다시 한번 화르륵 화염에 피어올랐다.

* * *

“네피르 교수님, 저 친구 마법 학부 생도가 맞습니까?”

숲 반대편에서 거울을 지켜보던 이오페가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분명 마법을 쓰기는 하는데, 대부분 완력으로 숲을 돌파하는 듯 보였으니까.

“허허, 저 친구가 왜 저럴까… 허허허….”

대답이 궁해진 네피르는 연신 정수리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을 닦아 내렸다.

지금껏 수차례 진급 시험을 주관해 왔지만 이런 식으로 시험에 임하는 생도는 처음이다.

시험을 치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모처럼의 환영 몬스터를 상대로 본인이 이것저것 시험해 보는 느낌. 그리고 그 느낌은 마지막에 배치한 트롤을 상대할 때 확신으로 변했다.

덱스는 이리저리 마법을 바꿔 가며 트롤을 두드려 패더니 뒤로 물러나 잠시 휴식했다.

환영 몬스터이기에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처음에는 본인이 지쳐 쉬는 것인가 했는데, 오히려 트롤을 회복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몇 차례 죽기 직전까지 트롤을 두들기고 재생시키기를 반복하더니, 나중에는 메이스를 버려 두고 맨주먹으로 덤벼들었다.

[하… 맷집이 좀 아쉽네.]

주먹을 쥐었다 펴며 중얼거리는 덱스.

그 광경에 네피르는 부르르 몸을 떨었고, 이오페마저 질렸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데, 덱스는 언제부터 저런 식으로 싸운 거야?”

덱스의 이런 면모를 처음 본 패트릭도 충격에 휩싸였다.

그가 청강하는 동안 몇 차례 가볍게 대련하며 그 몸놀림에 감탄하긴 했다만, 이것은 예상한 범주를 훌쩍 넘었다.

마법으로 신체를 강화했다고는 하나, 저 모습은 숫제 전사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썩 나쁘진 않네.”

“음, 저 정도면 훈련 교관으로도 부족하지 않다.”

진작부터 자리 잡고 앉아 있던 레오와 무무카만이 평이하게 감상을 뱉었을 따름이었고.

“훈련 교관이라고?”

바이스만의 올빼미를 조련했다는 교관….

패트릭은 그것이 그냥 뜬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두 번째로 출발한 유리아는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빠르게 전진했다.

등장하는 몬스터의 수준은 대략 알고 있으니 굳이 과하게 경계하며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 있는 화염 마법을 필두로 망설임 없이 코스를 공략해 나갔지만, 마지막 몬스터인 트롤이 보였을 때는 제자리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 앞에 덱스가 보였기 때문에.

‘어째서?’

유리아는 의아했다.

덱스가 출발하고서 10분 뒤에 진입했다. 빠르게 전진했다고는 하나 10분의 차이를 쉽게 따라잡을 정도는 아니다. 그의 실력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일단 기다려 줘야겠지.’

만약 앞 사람을 따라잡게 될 경우에는 일단 기다리는 것이 시험의 룰이다. 단독 시험인 만큼 관여하면 실격 처리를 당하게 되니까.

유리아는 저도 모르게 수풀에 몸을 숨기고 덱스를 지켜봤다.

굳이 숨을 필요는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몸이 그렇게 움직였다.

‘지쳐서 쉬는 걸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헤이스트와 스트렝스를 중첩해서 오랜 시간 쓰는 것은 엄청난 정신력을 소모할 테니. 그보다 4서클 화염 마법을 쓰는 편이 훨씬 효율이 좋을 정도다.

자세히 보니 트롤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군데군데 화상 자국이 남은 것을 보니 벌써 한차례 전투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환영에 트롤의 재생력까지 구현되는지, 수 분이 흐르자 그 화상 자국도 거의 사라졌다.

“자, 이제 마지막이다.”

흙바닥에 앉아 있던 덱스가 일어섰다.

언제나 들고 다니던 메이스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맨주먹으로 터벅터벅 트롤을 향해 걷는다.

‘트롤이 겁을 집어먹었어?’

어느덧 트롤의 범위 안에 들어선 덱스.

호전적으로 달려들어야 할 트롤은 오히려 뒷걸음질을 쳤다.

유리아는 그 불안한 눈빛에서 두려움을 읽었다.

흉폭하다고 알려진 트롤이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니,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헤이스트. 스트렝스.”

다시 한번 신체 강화의 마법이 중첩되었고.

“배리어. 파이어. 라이트닝.”

두 주먹에 화염과 전격이 피어났다.

키이이이익-!

부들부들 떠는 트롤을 향해 덱스가 몸을 던졌다.

이어지는 무자비한 구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뭉개진 트롤의 몸이 뒤로 넘어갔고.

마지막 몬스터까지 공략한 덱스가 자리를 떠났지만 유리아는 한동안 수풀 속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내, 내가 뭘 본 거지?’

저것도 마법사의 싸움인 걸까? 혼란스럽기만 했다.

유리아는 떨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차분히 생각하려 애썼다.

그는 언제나 파격을 보여 주었다. 상식을 깨는 행위를 했다. 그리고 지나서 생각하면 그것은 올바른 상식이 아니었다. 그저 오래되고 불필요한 틀일 뿐이었다.

‘의심하면 안 돼. 배우겠다고 결심했잖아.’

존경하는 스승 메퀸토가 같은 모습을 보였어도 의심했을까? 분명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인정했을 것이다.

덱스가 보인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에 주저함이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주저하는 마음을 지우는 것이 스스로의 다짐을 위한 첫 단추라고, 유리아는 생각했다.

쿠아아아아-!

유리아의 접근을 인식한 마도구가 새로운 트롤의 환영을 불러일으켰다.

방금 덱스에게 무너진 녀석과 꼭 같은 외형이었지만 붉은 두 눈동자에 흉포함이 넘실거렸다.

“스트렝스.”

유리아가 나직이 영창했다.

헤이스트의 중첩은 자신이 없어 그만뒀다. 스트렝스만으로도 몸에 힘이 넘쳤다.

“배리어. 파이어.”

양손에 화염이 일었다.

이런 느낌이구나.

마법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아 쉽게 따라 할 수 있었다.

유리아는 트롤을 올려다보았다.

3미터에 가까운 거체. 여전히 이대로는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 훤하다.

“바인드.”

꾸억-?

무형의 마력이 트롤의 거체를 묶어 짓눌렀다.

양팔이 결박되고 두 무릎이 흙바닥에 쿵 떨어졌다. 허리까지 굽어지자 트롤의 머리가 비로소 시야 아래에 들어왔다.

“이제 됐다.”

유리아가 불붙은 주먹을 치켜들었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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