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86화 (86/127)

86. 스승과 제자 (3)

마탑에서 수도 메프람으로, 메퀸토의 유해가 옮겨지고 있었다.

마차로 일주일이면 충분한 거리였지만 마탑의 마법사들은 그러한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마탑주 데르파를 포함하여 일백 명의 마법사가 돌아가며 관을 지고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마법사들의 운구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황야를 건너 몇 개의 마을을 지나 수도로 향하는 행렬.

모두 검은 로브를 입었지만 그들을 흑마법사와 착각할 일은 없었다. 그 등에 마탑의 문양이 선명했기에.

마침내 한 달에 걸친 운구 행렬이 수도 메프람에 도달했다.

메퀸토의 유해를 맞기 위해 성벽에 올라 기다리는 이는 다름 아닌 황제였다.

“이제 오는가….”

황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때 철혈의 황제라 불린 그였지만 젊은 시절을 함께한 수십 년 지기의 죽음에 가슴이 일렁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폐하….”

“무릎을 꿇지 말게. 단지 친우를 마중 나왔을 뿐이니.”

황제는 묵묵히 운구 행렬의 뒤를 따랐다.

그저 느릿한 속도에 보폭을 맞추며 친구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 광경을 본 수도의 제국인들도 무릎을 꿇으며 애도에 동참했다.

아카데미 대강당에서 장례식이 거행됐다.

수도 중앙에 자리한 첨탑의 종이 일곱 번 울렸다. 7서클이라는 전인미답의 경지를 이룬 마법사의 마지막을 추모하는 의미였다.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

관 속에 잠든 메퀸토의 모습에 유리아는 다시 한번 눈물을 터트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애도하며 배웅했다.

레오도 꽤 오랜 기다림 뒤에야 관에 다가갈 수 있었다.

온화해 보이나 깊은 주름 속 고집이 엿보이는 노인의 얼굴.

‘미안합니다, 영감님.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십시오.’

레오는 짧은 추모를 마치고 돌아섰다. 그런 그에게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거는 이가 있었다.

“레오 바이스만 남작이신가?”

마탑의 검은 로브를 입은 남자. 메퀸토의 관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키던 이였다.

레오는 그가 마탑주 데르파라는 것을 금방 눈치챘다.

“마탑주님을 뵙습니다. 제게 전할 말이 있다고 하셨지요.”

“그렇네. 조용한 곳으로 가지 않겠는가.”

“그러시지요.”

두 사람은 사람들이 몰린 대강당 주변을 떠나 마법동 벨라토르관 쪽으로 걸었다. 사방이 금방 한적해졌다.

“너무 자책하지 말게.”

데르파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카데미의 생도라고 들었지만 직접 만나니 너무도 앳된 얼굴. 레오를 처음 본 순간 메퀸토의 죽음에 자책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찌 된 일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기 위해 자네를 보자고 했지. 스승님께서 남긴 말도 있고.”

데르파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스승님은 갑자기 마탑을 찾으셨지.”

부서진 마도구를 들고 갑자기 마탑에 나타난 스승은 곧장 방에 틀어박혀 연구를 시작했다.

거기에 흑마법사의 메달, 영혼석 등으로 스승은 악마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 전해진 악마의 진명은 그 결심을 굳히게 했다. 그리고 정신체가 되어 악마를 추적하고자 한 스승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북부의 신전 아래 봉마석은 이미 제힘을 잃었으며, 악마는 이미 본체를 형성하고 있다고 하셨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악마가 힘을 모두 되찾는다면 인간계에 큰 위험이 닥칠 걸세.”

레오는 조용히 데르파의 말을 경청했다.

악마가 연 차원문, 그로부터 쏟아지는 검은 마물. 그 위험이 무엇인지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스승님께서는 이걸 자네에게 전하길 원하셨네.”

작은 상자 안에는 손가락 두 개 굵기의 붉은 루비가 있었다.

메퀸토가 악마에게 남긴 표식과 연동된, 악마가 인간계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를 알리는 마도구였다.

“이걸 제게….”

레오는 양손으로 상자를 받아 들었다.

이것은 단순한 마도구가 아니었다. 악마를 끝까지 쫓고자 했던 메퀸토의 유지(遺志)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하나 더.”

데르파는 검은 봉투를 내밀었다.

종이의 질은 고급이었으나 봉투 겉면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다. 봉납에도 아무 문양이 없어서 누가 보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봉투를 살핀 레오가 고개를 갸웃했다.

“폐하께서 자네에게 전해 달라 한 것이야.”

“폐하께서요? …밀서라는 말씀이십니까?”

“스승님께서 안배해 두신 듯싶네,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에 폐하게 직접 연통이 가도록…. 나도 그 내용을 모르니 뭐라 더 해 줄 말이 없군.”

레오는 굳은 얼굴로 봉투를 품에 넣었다.

이 정도로 안배를 했다는 것. 메퀸토는 악마를 쫓기 위해 죽음을 각오한 것뿐만 아니라 예견했을지도 모른다.

“내 용건은 이걸로 끝이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마탑으로 연락하시게.”

데르파가 떠나고 아무도 없는 마법동 건물 뒤.

주변 기척을 다시 한번 확인한 레오는 조심스럽게 황제의 밀서를 확인했다.

[나는 아직도 친우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

황제의 밀서는 메퀸토에 대한 슬픔으로부터 시작됐다.

오랜 벗을 떠나보낸 충격과 공허함, 황제의 친필을 통해 그것들이 절절히 느껴졌다.

[…남부 대륙은 이미 요크 후작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내가 전면에 나서서 후작과 적대한다면 제국은 분열될 것이다. 그것만큼은 바라지 않는 일이다.]

쯧.

레오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요크 후작의 세력은 제국의 황제도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졌다. 황제가 그에 대한 적대를 공식화한다면, 후작은 세력의 독립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반기를 들 가능성까지 있다. 그러니 황제도 표면적으로는 중립을 표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레오 바이스만 남작, 그대에게 악마 숭배자와 관련된 세력을 처단하고 악마의 부활을 막아 줄 것을 명한다. 이는 그대가 소드 마스터여서가 아니라, 내 벗과 함께 악마의 뒤를 쫓던 자이기에 하는 부탁이기도 하다. 그대의 뒤에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밀서를 모두 읽은 레오는 숨을 토해 냈다.

황제의 의도는 명확했다.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자신을 대신해 후작파를 쳐내 달라는 뜻.

“못할 것도 없지.”

어차피 악마를 잡기 위해 걸어야 할 길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황제가 명분을 만들어 준 셈.

봉투를 다시 품속에 갈무리한 레오는 대강당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일단 신전으로 간다.’

악마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여신의 힘이 필요하다.

그를 위해 신전에서 여신의 부활을 위한 단서부터 찾을 셈이었다.

* * *

그믐달마저 구름에 가려 어두운 늦은 밤.

조용히 침소를 나서는 요크 후작의 표정은 평소보다 더욱 어두웠다.

터벅터벅.

그의 걸음이 영주성의 지하, 포도주를 숙성시키는 오크통 창고로 향했다.

이동하는 동안 몇 차례나 병사와 시종과 마주칠 뻔했으나 그때마다 마법으로 재웠다. 매번 있는 일이다. 얼굴을 보기도 전에 잠에 빠져들었으니 후작을 기억한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철컥.

잠긴 창고 문을 딴다.

요크 영지는 제국에서 가장 질 좋은 포도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 매년 가장 좋은 품질의 포도주를 엄선해 이 창고에서 숙성을 이어 간다. 그만큼 귀한 곳이기에 영주가 직접 열쇠를 관리했다.

숙성 창고의 서늘한 공기가 후작의 몸을 휘감았다.

수십 개의 오크통을 지나 창고 가장 깊은 곳에 다다른 후작은 군데군데 설치된 나무 발판 중 하나의 앞에 쭈그려 앉더니 마력을 불어 넣었다.

이윽고 발판을 치우니 그 아래 공간에 계단이 드러났다. 평소 바닥으로 덧씌워 놓은 환영 마법으로 해제한 것이다.

어둡고 긴 계단을 끝까지 내려가자 꽤 넓은 공동(空洞)이 나타났다.

공동 좌우에는 조잡한 진열대가 자리했다. 한쪽에는 각종 마도구와 흑마법 재료가 가득했고, 다른 한쪽에는 이 세계의 것이 아닌 생물의 조각상이 여럿 채워져 있었다.

후작은 곧장 공동의 끝으로 향했다.

그곳의 작은 제단에는 돌을 깎아 만든 아홉 개의 뿔이 달린 악마의 흉상이 있었다.

제단 위에 영혼석을 올린 후작은 곧 소매에서 꺼낸 칼로 자신의 손바닥을 그었다. 주르륵 흐르는 피를 악마의 석상 머리에 뿌리더니 곧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사아아-!

석상의 눈에서 붉은빛이 뿜어졌다. 제단 위 영혼석도 붉은빛을 발하더니 곧 사그라들었다.

“미천한 종복이 위대하신 분을 뵙나이다.”

후작의 목소리가 습한 동굴을 작게 울렸다.

평소 차갑고 위엄 있던 것과 전혀 다른, 두려움을 내포한 목소리였다.

[부족하구나.]

거칠고 갈라지는 듯한 목소리가 석상에서 울렸다.

후작은 목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많은 영혼을 준비하지 못해 송구합니다. 다음 그믐에는 반드시 만족하실 만큼의 공물을 바치겠나이다. 부디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제국의 기념식을 기해 전쟁을 일으키고 대량의 영혼을 수확하려던 계획이 무참히 실패했다. 여러 변수를 고려해 작전을 세웠지만, 영혼석의 존재를 들켜 모두 빼앗긴 것은 상정 범위 밖이었다.

그 때문에 이번 그믐에는 크게 부족한 공물을 바칠 수밖에 없었다.

[충실한 종에게 어찌 노여워하겠느냐. 고작 이런 것으로 네게 내린 권능을 빼앗지 않을 것이다. 내가 부활하는 날 나의 종복 또한 함께 영광을 누리리라.]

잠시간의 침묵 뒤에 석상이 답했다.

“오오오…! 위대하신 분이시여! 구원자시여!”

악마의 대답에 후작은 안도했다.

위대하신 분께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 것이다. 긴장이 풀리자 딱딱했던 몸이 스르르 늘어지는 듯했다.

[메퀸토라 하는 인간을 아느냐?]

“…그는 제국의 대마법사로 위명을 떨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위대하신 분 앞에서는 한낱 인간에 불과할 뿐이지요. 어찌 사소한 이름에 관심을 두셨는지 여쭈어도 되겠나이까?”

후작은 의아했다. 어째서 위대하신 분이 그의 이름을 알고 있단 말인가?

[대마법사라…. 하긴 그 정도의 인물이니 나를 찾은 것이겠지. 재미있구나, 크크크큭…!]

악마의 웃음이 공동을 채웠다.

[그의 혼은 이미 내 손아귀에 있다. 천천히 절망으로 물들여 내 일부로 만들 것을 생각하니 즐겁기 그지없도다.]

석상의 붉은 빛이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의식의 끝을 알리는 신호.

후작은 눈치 빠르게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렸다.

“다음 그믐까지 만족하실 만큼 영혼을 준비하겠나이다.”

[기대하겠다, 나의 충실한 종복 크라젠 요크여.]

붉은빛이 완전히 사라지고서야 후작은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등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공동 한구석의 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 후작은 낡은 책상 위 거울을 향해 손가락을 튀겼다.

지잉- 하고 거울이 작게 울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후작이 아닌 남자의 얼굴이 비쳤다.

“켈시온.”

그를 향해 말한 후작의 목소리는 얼음장 같았다.

[후, 후작님. 송구합니다.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시면 반드시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두말하지 않겠다. 최대한 빠르게 많은 영혼을 모아라.”

[예! 감사합니다, 결코 실망을 드리지….]

요크 후작은 통신을 끊었다.

위대하신 분의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 이번에도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켈시온에 대한 기대를 접을 생각이었다.

“멍청한 놈 같으니.”

어디에서 꼬리를 밟혔는지 신전의 이단 심문관까지 붙이고 나타났다. 그 꼬리를 떼기 위해 굳이 켈시온을 보르트의 특사로 만들어 외부로 돌려야 했다.

톡, 톡.

후작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위대하신 분에게 받은 권능은 영혼으로만 갚을 수 있다. 이번에는 다행히 유예받을 수 있었지만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북부 정도는 상관없겠지.”

켈시온도 영 미덥지 않다. 그가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북부 대륙에 직접 마물을 불러내 영혼을 회수할 생각이었다.

* * *

한편, 통신을 끝낸 켈시온 백작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불안을 달랬다.

거울 너머 후작의 차가운 눈빛이 심장을 쑤시는 듯했다. 차라리 호되게 질책받았다면 마음이 더 편했을지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제국 기념식에 맞춘 보르트의 침공은 대량의 영혼을 수집하기 위해 요크 후작의 큰 그림이었다.

반다이트 백작이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는 날을 골랐으며, 악마에게 받은 권능으로 강제로 각성시킨 소드 마스터까지 만들어 냈다.

오랜 기간 준비한 계획이었으나 결국 실패했다. 영혼석의 존재를 들켰으며 까마귀는 사로잡혀 죽었다.

전쟁 장기화는커녕 반다이트 세력에 힘만 더 실어 주었다.

그 실패로 켈시온은 더욱 초조해졌다.

주어진 시간은 한 달. 그 안에 대량의 영혼을 수확해야만 한다. 아직 거리를 두고 이곳을 주시할 이단 심문관에게도 여지를 주지 않아야 한다.

켈시온은 자신의 봉신 브뤼쉬를 이용하려던 계획을 떠올렸다.

‘그때는 운이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아카데미의 놈들이 용병에 섞였었으니.’

시오프 산맥의 몬스터를 자극하여 산맥 아랫마을을 공격하려 했던 계획.

지난번에는 괜히 용병까지 동원해 일을 키워 보려 했기에 차질이 생겼다. 마을 사람들만 희생시킨다면 변수는 줄어들 터.

켈시온은 브뤼쉬의 까마귀에게 연락을 넣었다.

신전으로 향하던 레오가 시오프 산맥 아랫마을에 머무르고 있음을 알았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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