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91화 (91/127)

91. 브뤼쉬 (5)

“그대의 마음을 잘 알았습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여신의 뜻을 막는 자가 있다면 처단할 뿐, 또한 그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이대로 영주성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하지만 상급 기사가…!”

율브렌은 식은땀을 흘리며 주저했다.

이단 심문관이 성법을 사용한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상급 기사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인가? 저 여려 보이는 사제가 듀발 경을 물리치는 그림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거, 말귀 못 알아듣네. 이쪽에 붙기로 했으면 대가리 팍 수그리고 하라는 대로 할 것이지, 뭐가 이리 잔말이 많아?”

“네, 네놈이 낄 자리가 아니다! 감히 줄리앙 공자를 등에 업고자 하느냐!”

“율브렌, 시간이 없습니다. 영주성으로 안내하세요.”

“…이단 심문관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결국 이들은 그대로 영주성으로 향했다.

앞장서서 걷는 레오와 테레사, 그 뒤를 바짝 따르며 안내하는 율브렌.

그리고 이들이 브뤼쉬 영주와 맞닥뜨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영지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들이 네놈들이렷다? 감히 신전의 이단 심문관을 사칭하다니 겁도 없는 놈들이구나!”

검은 흑마를 탄 사내, 요한 브뤼쉬 자작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외쳤다. 말을 탄 거구의 기사와 그 뒤에 중장갑으로 무장한 병사 수십이 함께였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레오는 새어 나오는 헛웃음을 겨우 참았다.

저들이 생각하는 바가 너무도 단순하여 훤히 보였기 때문에.

방금 전까지 뒤에 바짝 붙어 있던 율브렌의 기척도 사라졌다.

‘웃기는 놈이네.’

기감을 멀리 확장할 것도 없다. 방금 지나친 담장 뒤에서 익숙한 율브렌의 기척이 느껴졌다.

아마 브뤼쉬 영주를 보자마자 잽싸게 숨은 모양.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레오는 말안장에 앉아 있는 브뤼쉬 자작을 올려다보며 외쳤다.

“브뤼쉬 자작! 그대는 흑마법사를 영지에 숨겼으며 그들에게 활동비를 지원하였다. 이 모든 사실을 신전의 이단 심문관이 직접 확인한바! 순순히 죄를 인정하라!”

“어디서 헛소리를 지껄이느냐! 뭣들 하느냐! 저놈들을 체포해라!”

창을 꼬나쥔 병사들이 달려 나왔으나, 레오가 한번 검을 휘두르니 병사들이 우수수 넘어갔다.

오러가 섞인 검풍이었기에 크게 다친 이들은 없었다.

“브뤼쉬 자작은 이단 심문관의 지시에 불응하였다. 이에 여신의 뜻을 받드는 자로서, 나 레오 바이스만 남작은 이단 심판에 손을 보태도록 하겠다.”

“레오 바이스만 남작?”

검풍에 흑마 위에서 떨어질 뻔한 브뤼쉬 자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단 심문관의 종자라 생각했던 자가 소드 마스터인 그 레오 바이스만 남작이라고?

이래서는 이단 심문관을 제압하여 입막음한다는 계획이 완전히 틀어진다.

레오가 검 끝을 자작에게 향했다.

“지금 꿇으면 팔다리는 성하게 해 준다.”

“브뤼쉬 자작,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그대가 흑마법사와 연루되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 조사에 협조하지 않겠다면 무력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테레사도 법구를 내보이며 차갑게 말했다.

이미 흑마법사의 근거지를 확인했고 전투까지 치렀으며 그들의 증언까지 확보했다.

남은 것은 자작의 실토뿐.

브뤼쉬 자작이 이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듀발 경! 귀족과 사제를 사칭하는 저들을 당장 참하라!”

얌전히 실토할 생각이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

어떻게든 제압하여 없는 일로 만들어야 한다.

상대가 소드 마스터라 해도 브뤼쉬 자작은 믿는 바가 있었다.

브뤼쉬 자작의 명령에 목석처럼 곁을 지키던 기사가 앞으로 나섰다.

레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거구. 덩치에 걸맞은 거대한 대검을 든 기사였다.

타앗-!

듀발은 곧바로 대검을 뽑아 달려들었다.

그 짧은 사이에 농밀한 오러 소드를 두른 것을 보면 최소한 소드 엑스퍼트 상급의 기사다. 제국에서 최소한 스무 명 안에 들 만한 실력.

다만 상대가 나빴다.

“왜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할까.”

쩡-!

기사의 대검을 맞받아쳐 튕겨 내는 레오.

오러가 충돌하는 충격에 병사들은 반사적으로 귀를 막았다.

“흐으읍-!”

듀발은 표정 변화도 없이 연이어 공격을 이었다.

일격, 일격이 치명적인 검격.

그러나 레오에게는 그리 무겁지 않은 검이다.

우웅-!

오러 블레이드를 미세하게 컨트롤하는 것도 이제 꽤 익숙하다.

얇은 바람이 레오의 검을 감싸 회전했다.

오러로 절삭력을 강화한 날카로운 바람, 그것은 상대의 오러 소드마저도 분쇄했다.

카가각-!

얇디얇은 바람이 듀발의 오러 소드를 먹어 치우며 소음을 냈다.

흠칫 놀란 듀발이 맞댄 검신을 떼며 뒤로 물러났지만, 가만히 두고 볼 레오가 아니었다.

“어딜 내빼!”

크게 발을 내디디며 듀발과 거리를 좁힌다.

회전력을 실은 레오의 검이 방어를 위해 들어 올린 대검의 넓은 검면을 그대로 강타한다.

그에 듀발의 대검에 코팅된 오러 소드가 폭발하듯 사라졌다.

뎅강-!

두 동강 난 검신이 바닥을 굴렀다.

듀발의 시선이 반토막 남은 검에서 자작에게 옮겨졌다.

“말도 안 돼! 듀발 님이 졌다고?”

“레오 바이스만 남작…? 기, 기억났어, 그 소드 마스터로 작위를 받았다던!”

충격적인 결과에 병사들의 수군거림이 높아졌다.

브뤼쉬 자작이 제아무리 사칭범 누명을 씌워도 결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소드 엑스퍼트 상급을 바라보는 기사 듀발은 패배했고, 소드 마스터 레오 바이스만 남작이라면 그러한 결과를 내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그러면 저 여자가 신전의 이단 심문관이라는 것도 사실이야??”

“우리 자작님이 흑마법사와 한패라고?”

레오와 테레사 주위를 둥글게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 사이에 동요가 일었다.

흑마법사를 비호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리 없다. 몇몇 병사는 침음을 흘리며 일찌감치 창을 내던지기까지 했다.

‘아직이다! 이대로 끝낼 수 없어…!’

어금니를 꽉 문 브뤼쉬 자작이 눈동자를 굴렸다.

영주성 언덕을 막 내려온 참이다. 이곳 병사들 외에 달리 구경꾼도 없다. 최악의 경우 이들을 모두 입막음하면 될 일이다.

“듀발 경, 그것을 써라.”

스릉-!

듀발은 아무 말 없이 허리춤에서 새로운 검을 꺼냈다.

방금 전 대검과는 상이한 평범한 크기의 롱 소드.

다만 어둡고 칙칙한 검신에서 기분 나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다시 해 봐도 똑같을 텐데?”

고개를 까딱인 레오가 다시 검 자루를 그러쥐었다.

충직한 기사라는 생각에 검만 두 동강 냈더니 역시 무른 판단이었나. 이번에는 최소한 팔이라도 잘라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카앙!

듀발의 검을 다시 한 번 받아 낸 레오는 스멀스멀 느껴지는 음울한 기운에 미간을 찌푸렸다.

‘마기?’

틀림없다.

그의 검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검은 마물의 것과 매우 닮아 있었다.

카가가각-!

게다가 바람의 오러 블레이드에도 검날이 상하지 않는다.

오러가 아닌 다른 기운이 듀발의 검에 넘실대더니 이내 그의 팔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갔다.

“으읏!”

다시 한 번 듀발을 검을 받아 낸 레오는 처음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아까와 차원이 다른 괴력이다. 오러로 신체 강화를 했음에도 받아 내기 버거울 정도.

절대로 평범한 소드 엑스퍼트의 기사가 낼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심상치 않은 기척을 감지한 테레사가 성력을 개방했다.

“어리석은 종에게 사악의 무리를 심판할 힘을 주소서!”

테레사의 법구에 황금빛 빛이 일었다.

그녀가 레오의 곁에서 듀발의 검을 함께 밀어내자, 법구에 닿은 검이 기이한 비명을 냈다. 사람도, 동물의 것도 아닌, 불쾌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

카아아악-!

듀발 또한 기이한 기합성을 내질렀다.

그의 흰자위는 어느새 검게 물들었다. 내뿜는 숨결 또한 탁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마기다!”

듀발의 검을 밀쳐내며 레오가 외쳤다.

그 말대로 듀발은 빠르게 마기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검에 스몄던 마기가 듀발의 몸으로 완전히 옮겨 갔다. 그 증거로 칙칙했던 검신은 어느덧 평범한 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듀발은 쥐고 있던 검을 내던졌다.

그의 상반신이 기형적으로 두꺼워지며 양손에 손톱이 자라났다. 목이 굽어지며 위아래 송곳니가 돋았다. 급기야 한쪽 이마에 뿔까지 돋기 시작했다.

허리를 굽히고 레오와 테레사를 노려보는 그의 모습은 수준 높은 기사가 아니라 한 마리 마수의 모습이었다.

“히이익-!”

“듀발 님이 몬스터가 됐어!”

브뤼쉬의 병사들이 흩어졌다. 자작의 곁을 지키는 병사도 마찬가지.

구석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율브렌 또한 몸을 떨었다.

그 광경을 동요 없이 지켜보는 이는 브뤼쉬 자작뿐이었다.

“모두 죽여라!”

브뤼쉬 자작의 명령과 함께 듀발이 돌진한다.

기다란 양팔을 좌우로 벌리고 달려드는 기세는 마치 코뿔소를 보는 듯했다.

쾅!

앞으로 나선 것은 테레사였다.

그녀는 길게 늘린 성법구를 가로로 쥐고 맨몸으로 듀발의 몸통 박치기를 받아 냈다.

괴력의 성법으로도 버거웠다. 땅에 박아 넣은 그녀의 뒷발이 주르륵 밀려 쟁기처럼 땅을 뒤엎었다.

카아아악-!

다만 듀발도 명백한 고통을 토해냈다.

테레사의 성력은 그에게 상극이다. 전신에서 뿜어지던 마기가 일순 옅어졌다.

그의 날카로운 손톱이 테레사의 몸뚱이를 노리려는 차.

“잘 막았어!”

레오가 뛰어들었다.

한 점에 집중한 오러 블레이드가 단숨에 듀발의 굵은 목을 꿰뚫었다.

짐승의 비명과 함께 주먹만 한 구멍에서 검은 피가 뿜어졌다.

테레사의 성법구에 닿은 검은 피는 치이익- 소리를 내며 연기가 되어 흩어졌으며, 검은 피가 스며든 땅은 짙은 회색빛으로 변했다.

끄으으으….

고통에 몸부림치며 검은 피를 울컥 쏟아 낸 듀발은 이내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뿔을 가진 검은 짐승… 악마의 종은 목을 잘라야만 해요.”

테레사는 언젠가 읽었던 내용을 되새기며 중얼거렸다.

그 말에 레오가 재차 검을 휘두르자 한때 기사였던 짐승의 목이 떨어졌다.

그 머리에서 듀발의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 굴러가는 머리는 털이 북슬북슬한 짐승의 그것에 가까웠다.

“이, 이럴 리가 없다…! 그분의 은혜까지 사용하고서 패배하다니!”

믿을 수 없다는 듯 횡설수설하는 브뤼쉬 자작.

테레사는 냉담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더니 성법구를 치켜들었다.

이단 심문관의 가장 큰 힘은 이단에 대한 즉결 처분권이다. 그것은 상대가 고위 귀족이거나 황족이라 해도 상관없다. 황제라 해도 여신의 대리자는 막을 수 없기에.

그만큼 확실한 증거와 책임이 필요하지만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증거로 삼기에 충분했다.

“멈춰라! 나를 해하면 그분께서 가만있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

“켈시온 백작을 말하나 보군요.”

테레사가 멈칫하자 브뤼쉬 자작이 더욱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그렇다! 백작은 위대하신 분으로부터 깊은 은혜를 받으셨다! 감히 네놈들이 적대할 분이 아니다!”

테레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고개를 돌려 레오와 눈을 맞추고 빙긋 웃더니 그대로 성법구를 내리쳤다.

“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브뤼쉬 자작의 머리가 깨졌다.

“멍청한 놈, 제 입으로 켈시온이 악마와 붙어먹었다고 알려 주는군.”

“덕분에 몰아붙일 수 있게 되었어요. 이리 많은 사람들이 함께 들었으니 증언으로 충분하겠죠.”

주위 병사들은 모두 무기를 내던진 채 여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있었다.

“켈시온에게 당장 덤벼들 생각은 아니겠지?”

“…지금은 무리겠죠.”

테레사는 고개를 저었다.

당장이라도 켈시온 백작을 심판하고 싶지만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레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 듀발이라는 자조차 당해 내지 못했겠지.

레오도 깨달은 것이 있었다.

악마의 힘을 상대하는 데에는 오러만으로 부족하다. 테레사의 성력이 아니었다면 듀발에게 고전했을지 모른다.

“당신은 우리의 목적이 같다고 했죠. 계획이 있나요?”

“계획이라면 처음부터 알려 줬는데.”

“네?”

“신전으로 간다고 했잖아.”

신전에 있다는 봉마석.

제 기능을 잃었다 해도 분명 여신의 힘이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일단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율브렌!”

“예잇!”

저 멀리 떨어져 지켜보던 율브렌이 후다닥 뛰어왔다.

그 와중에 여기저기 도망갔던 병사들까지 수습한 모양.

“영주성으로 간다. 자작의 이단 증거를 찾아내라.”

“맡겨만 주십시오!”

율브렌은 후들거리는 무릎을 부여잡고 앞장섰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쿵쾅거렸다. 뒤를 따르는 병사들의 표정도 반쯤 얼이 빠져 있었다.

‘살았어…!’

일찌감치 레오에게 달려온 율브렌, 이상함을 느끼고 창을 던진 병사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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