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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95화 (95/127)

95. 여신 아메리아 (1)

브뤼쉬를 떠난 레오 일행은 곧바로 북쪽으로 이동하여 반나절 만에 헤르만 영지에 도착했다.

이곳 또한 켈시온의 봉신인 헤르만 자작의 통치령. 또 하나의 까마귀 회합소가 있다는 곳이었다.

“젠장, 그새 냄새를 맡고 튀었나?”

“아무래도 한발 늦은 것 같네요.”

이번에는 안내해 줄 흑마법사가 없었기에 가장 평판이 나쁜 잡화점부터 수소문했다. 흑마법사 놈들이 근거지로 쓰기 위해서는 당연히 손님이 없어야 할 테니까.

그렇게 방문한 잡화점은 자물쇠가 걸린 채 영업 중단 상태였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브뤼쉬의 것과 비슷한 비밀 통로까지 발견했지만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이제 어쩌지? 무작정 쳐들어갈 수도 없잖아?”

“으음….”

패트릭과 테레사도 난처한 얼굴을 했다.

브뤼쉬에서는 흑마법사를 잡으러 갔다가 운 좋게 브뤼쉬 자작까지 한 번에 엮었지만, 이번에는 그런 요행을 기대하기 힘들다.

“일단 좀 쉬자.”

레오가 혀를 차며 거리로 나섰다.

무작정 도시 안을 헤맨다고 흑마법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헤르만 자작은 어떤 인간이지?”

“중앙의 재무 대신을 맡고 있어. 돈줄을 쥐고 있으니 요직이라 할 수 있지.”

“브뤼쉬처럼 멍청이는 아닌 모양이네.”

대체로 약삭빠르지만 유약한 인물이라는 평.

반나절 정도 도시를 돌며 헤르만 자작과 흑마법사에 대한 정보를 더 긁어모으려 했지만 이렇다 할 내용은 없었다.

그사이 날이 어둑해져 소득 없이 여관으로 돌아왔다.

‘내친김에 헤르만까지 조졌다면 좋았을 텐데….’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여관방에 들어선 레오는 딱딱한 침대에 누웠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 만 것처럼 찝찝했다. 어두운 천장을 배경 삼아 여러 고민을 해도 딱히 떠오르는 수가 없었다.

끼잉-!

부드러운 슈니의 털이 옆구리에 파고들자 굳은 미간이 스르르 풀어졌다.

“그래, 일단 한숨 자자.”

요 며칠 머리가 계속 복잡했다. 아무리 소드 마스터여도 정신적인 피로까지는 어찌할 수 없으니까.

휴식이 필요하다.

레오는 한 손으로 슈니의 등을 쓰다듬으며 잠을 청했다.

…….

…끼잉.

레오는 번쩍 눈을 떴다.

몇 시간이나 잠들어 있던 걸까.

끼잉, 끼잉….

슈니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뭔가를 불편해하면서 레오의 옷을 연신 물어 당긴다.

“왜 그래?”

안 좋은 예감에 서둘러 기척을 감지했지만 수상한 움직임은 없다.

하긴 수상한 기척이 있었다면 진작 깨어났을 터.

“무슨 냄새지?”

그 와중에 미미하지만 이질적인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벌떡 일어난 레오가 나무 창문을 열어젖혔다.

불빛 하나 없는 고요한 거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시간은 가늠이 안 되지만 모두가 잠든 깊은 한밤중이다.

그 속에서 무기 부딪히는 소리가 아스라이 울렸다.

[젠장! 갑자기 어디서 몬스터가 나타난 거야!]

[다 죽여!]

청력을 강화하자 병장기 소리에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경비대가 몬스터를 상대하는 듯한 소리다.

“몬스터라고?”

레오는 미간을 찌푸렸다.

한밤중 도시 한가운데에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심상치 않은 상황 같다.

“슈니! 가 보자!”

레오의 외침과 동시에 슈니가 창문 너머로 길게 뛰었다.

창문 턱을 밟았던 작은 발은 어느새 거대하게 자라 지면을 디뎠다. 그 듬직한 등에 레오를 태우고 불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을 달렸다.

‘또 흑마법사 놈들인가?’

서늘한 공기가 뺨을 때렸다.

소리가 들려온 곳은 도시 중심가 쪽으로, 외성벽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적어도 도시 바깥에서 쳐들어온 것은 아니라는 뜻이 된다.

곧 골목 너머 어른거리는 횃불이 보였다.

이윽고 도착한 곳에서는 곳곳이 상처투성이인 십여 명의 경비병들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런 썅….”

슈니의 등에서 내린 레오가 중얼거렸다.

눈앞에는 서로를 향해 창검을 겨눈 병사들뿐, 몬스터는 어디에도 없다.

“죽여!”

“으아아악-! 오지 마!”

핏발 선 눈으로 서로를 위협하는 병사들.

그들은 마치 서로가 몬스터로 보이는 양 행동했다.

“환각인가.”

레오는 코를 찡그렸다.

병사들의 허리께 아래를 채운 수상한 뿌연 연기. 그제야 아까보다 더 짙어진 냄새의 정체가 기억났다.

타민. 통칭 환각초.

이 풀을 태운 연기를 맡으면 환각을 본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오러를 쓰는 이에게는 전혀 영향을 줄 수 없지만 일반인이라면 저항하기 힘들다.

“더러운 수를…!”

병사들끼리 다시 한번 부딪치기 직전.

레오는 오러를 폭발시켜 공간을 장악했다.

사방에 가득 찬 고밀도의 오러에 그들은 물먹은 솜처럼 바닥에 짓눌려 쓰러졌다.

“끄으으…!”

오러의 물리력에 살기까지 담아 짓누르자 병사들은 결국 눈을 까뒤집으며 전부 혼절했다.

레오는 작게 혀를 찼다. 다소 거친 방법이었으나 이미 환각에 빠진 이들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서로 싸우다 송장이 나오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휘이이잉-!

이번에는 레오를 중심으로 돌풍이 일었다.

상층의 공기를 강제로 끌어다 당장 이 부근의 공기를 희석한 것.

그것도 잠시뿐, 슬금슬금 다시 뿌연 연기가 아래부터 채워졌다.

“도시 전체에 장난질을 하시겠다?”

레오의 입이 비틀렸다.

도시에 독을 푼 놈들은 누구지? 무엇이 목적일까?

한밤중이 아니었다면 이미 도시 전체가 아비규환이 되었을지 모른다.

환각초에 한번 노출되면 대략 이삼십 분가량 부작용을 겪는다. 연기의 발생원을 찾아 제거해야 한다. 고로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라는 뜻이다.

쓰러진 병사들을 2층 건물에 던져 올렸다. 오염된 공기에 노출돼 쓰러져 있는 것보다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게 나을 테니까.

“슈니, 연기가 짙은 곳 찾을 수 있겠어?”

슈니는 코끝을 킁킁거리더니 이내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러를 지닌 레오가 환각초에 영향을 받지 않았듯, 강한 마나를 보유한 슈니도 멀쩡했다.

‘테레사나 패트릭도 걱정할 필요 없겠지.’

다시 슈니의 등에 타고 어두운 거리를 가로질러 달렸다.

곧 도시 중앙의 종탑이 시야에 들어왔다.

시각을 강화하자 종탑 꼭대기에서 아래쪽으로 꾸물꾸물 흐르는 연기가 보인다. 공기보다 무거워 바닥으로 깔리는 연기는 환각초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종탑에 가까워질수록 연기가 짙어져 시각 강화 없이도 뿌연 연기가 눈에 잘 보였다.

타다다닥!

훌쩍 뛴 슈니는 수직에 가까운 벽을 타고 달려 금방 탑 꼭대기에 도달했다.

오래된 청동 종 아래 나무 상자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모두 말린 환각초가 가득한 상자다.

중독 시간이 짧은 점을 고려한 것인지, 한 박스가 전부 타면 다음 박스로 불씨가 이어지도록 설치되어 있다. 이 정도면 해가 뜰 때까지 줄곧 태울 만한 양이다.

“젠장, 많기도 하네.”

정말 도시 전체를 중독시킬 셈이었던가.

바람도 불지 않는 밤.

이대로 연기가 계속 발생한다면 도시 전체를 집어삼켰을 것이다.

레오는 연기를 내고 있는 박스를 발로 차 구석으로 치우고는 불씨를 발로 밟아 껐다. 일단 이것으로 연기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

종탑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탑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환각초의 연기가 이미 도시의 3할 정도를 뒤덮었다. 오러로 전부 희석하기에는 너무 넓은 범위다.

청력을 강화했지만 별다른 소음은 들리지 않는다. 다행히 지금 환각초의 범위에서 깨어 있는 사람은 더 없는 듯했다.

“어떤 놈인지 얼굴은 한번 봐야지.”

레오는 이것이 흑마법사의 소행이라 단정했다.

환각초에 의해 서로를 공격하는 상잔을 노렸을 것이다. 이후 놈들은 어딘가에 설치한 영혼석을 회수하여 유유히 사라질 계획이었을 터.

오러안으로 사방을 훑었지만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일을 꾸민 범인은 진작 이곳을 피해 이동한 것 같다.

‘분명 어디에선가 지켜보려 할 텐데….’

여태껏 만난 흑마법사라는 놈들은 다들 그러했다. 게다가 영혼석 회수라는 목적을 생각하면 도시에서 멀리 떨어졌을 리 없다.

가까우면서도 상황을 관찰하기 좋은 장소.

외성벽.

도시를 감싼 외성벽은 환각초의 연기를 쌓아 두는 훌륭한 울타리가 된다. 그리고 그 위는 가장 좋은 관람석이다.

슈니의 속도라면 도시 성벽을 한 바퀴 휘젓는 데 얼마 걸리지 않을 터. 오래 고민하기보다는 움직여 확인하는 편이 나았다.

슈니는 레오를 태운 채 성벽 위를 나는 듯 달렸다.

반 바퀴 정도 돌았을 무렵, 남쪽 성벽에서 수상한 인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횃불도 없이 어둠에 몸을 숨겼지만 레오의 오러안을 피할 수는 없었다.

“뭐, 뭐냐!”

“크악!”

무서운 속도로 돌진한 슈니의 몸통 박치기에 셋 중 둘이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퍼석- 하고 깨지는 소리로 보아 둘 다 머리부터 떨어진 듯싶다.

“히이이익!”

슈니는 잽싸게 남은 한 놈을 앞발로 눌렀다.

거대한 짐승의 앞발에 깔린 놈이 열심히 몸을 버둥거렸지만 슈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지.”

슈니의 등에서 내린 레오가 혀를 찼다.

놈의 가슴에 보이는 세개의 고리. 흑마법사임이 틀림없다.

“도망쳤나 싶었는데 역시 꿍꿍이가 있었어. 안 그래? 흑마법사 양반?”

“…아무것도 답하지 않겠다.”

“환각초로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려 했지? 보시다시피 이미 실패야.”

흑마법사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레오를 노려봤지만 제 말을 지키겠다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열지 않았다.

“켈시온과 헤르만, 둘 중 누구의 명령을 받았지? 참, 금제 때문에 대답을 제대로 못 하겠군. 질문을 바꿔 주지. 헤르만 자작은 어디까지 엮여 있나? 브뤼쉬처럼 그 또한 악마 숭배자인가?”

여전히 입을 열지 않는 흑마법사.

레오의 입가에서 피식 웃음이 새었다.

“그래, 쉽게 말하면 재미없지.”

어둠 속에 검광이 번득이니 흑마법사의 양 발목이 허공을 날았다.

붉은 피가 울컥 성벽 위에 쏟아졌다.

“끄으으윽…!”

“가만있어. 이제 정강이를 자를 거야. 그다음은 무릎이고. 좀 더 잘 참아 보라고.”

“자, 잠깐만! 말하겠다!”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니까? 어허, 버둥거리지 말고. ”

미친놈을 만났다는 생각에 흑마법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방금 전 비장함은 온데간데없는, 다급하기 그지없는 얼굴이다.

“말할게요! 뭐든 말하겠습니다! 헤르만 자작은 저희의 존재를 모릅니다!”

“…어차피 말할 거 너희들은 꼭 한 군데 잘려야 입을 열더라. 헤르만 자작이 모른다? 그게 말이 되나? 영지 한가운데 흑마법사의 은신처가 있는데?”

다시 한번 검을 치켜들자 흑마법사는 좌우로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외쳤다.

“거, 거짓말이 아닙니다! 자작 부인! 자작 부인이 저희의 뒤를 봐주고 있습니다!”

“자작 부인? 그러니까 헤르만 자작이 아니라 자작 부인이 너희를 관리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흑마법사의 시선이 구름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달로 향했다.

달의 위치를 확인한 것이다.

“곧 불사자(不死者)들이 이 도시로 몰려올 겁니다.”

“불사자?”

“남쪽 묘지의 시체를 일으켰습니다. 불사자들로 도시의 혼란을 가중시킬 계획이었습니다.”

“사령술을 쓴 모양이군.”

레오는 이내 깨달았다.

이놈들이 성벽에서 대기하고 있던 또 한 가지 이유. 사령술로 일으킨 시체들이 도시에 쉽게 입성할 수 있도록 성문을 열고 기다린 것이다.

‘환각초로 누가 적인지 분간 못 하게 한 상태에서 시체들까지 가세했다면….’

더 생각할 것도 없다.

환각으로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는 상태에서 살아 공격하는 시체들까지 더해진다면 도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아마 해가 뜰 때쯤에는 도시에서 산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 지경이 되겠지.

“대량의 영혼을 수집하기 위해 도시 하나를 멸망시키겠다? 많이 급했나 보군.”

“…당신이 그걸 어떻게?”

성벽 위로 바람이 불었다.

바깥에서 불어온 바람에 퀴퀴한 냄새와 한기가 섞여 있다. 자카르도의 사령술로 시체들이 나타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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