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100화 (100/127)

100. 반란 (3)

“으으으…!”

긴장한 병사들의 이빨이 딱딱 울렸다. 창을 쥔 손도 달달 떨렸다.

그어어어어-!

달려오는 시체들은 어느새 백 걸음 앞.

“덱스…!”

시체들이 가까워져 온다.

줄리앙은 이를 악물고 소리를 삼켰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걸까?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4서클 마법을 쏘아도 저들의 돌격을 저지할 수 없을 텐데…!

이윽고 덱스가 마석이 박힌 그의 메이스를 들었다.

심장의 마력이 주욱 빠져나가더니 완성된 술식이 달려 나간다. 마석을 통해 더욱 세밀히 제어된 마력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허공에 마력진을 실체화했다.

그 신비로운 광경에 베니에르의 병사들은 잠시 두려움을 잊을 정도였다.

“전부 다 태워 주마.”

덱스의 갈색 눈동자가 옅은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그의 영창이 마무리됐다.

퍼버버버벙-!

돌진하는 시체들의 앞에 폭발하듯 화염이 일었다.

대지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솟아난 불길은 곧 들불처럼 번져 시체를 에워쌌다.

무모하게 불길 속에 뛰어든 전열의 시체는 이내 불타고 녹아 쓰러졌으며, 불탄 시체의 잔해와 갑주는 후열의 장애물이 되어 그들을 불길 속에 가두었다.

그어어어어-!

화염 속 망자의 비명과 생살을 태우는 매캐한 냄새가 평원을 채웠다.

“…파이어 필드? 이건 6서클 마법이잖아?”

불길에 스러져 가는 망자의 군대를 보며 줄리앙이 멍하게 되뇌었다.

지정 범위를 화염 대지로 만드는 파이어 필드. 아카데미 교류전에 나타난 수많은 마물을 단번에 불태웠던 메퀸토의 마법이다.

“아니야, 이건 파이어 필드가 아니야.”

곁에 있던 유리아가 입술을 꾹 물며 고개를 저었다.

비슷하지만 파이어 필드가 아니다. 스승이 보인 파이어 필드에 비하면 이 마법은 범위도, 위력도 크게 부족하다.

게다가 덱스의 마법이 발현되기 직전 일순 반짝인 마력진. 그 술식은 그녀에게 너무나 익숙한 모양이었다.

“파이어 월.”

“……?”

“위로 쌓지 않고 옆으로 눕힌 것뿐이야.”

유리아는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개선을 거듭한 파이어 월의 술식. 그것을 변형한 마법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것도 5서클 마법이잖아?”

줄리앙의 대꾸에 유리아는 더 답하지 않았다.

평야 한가운데 생겨난 화염 대지.

그 안에 갇힌 삼백의 불사자 군대가 증발하듯 사라졌다.

그것도 단 한 명의 마법사에 의해서.

“…이, 이럴 순 없다!”

할튼이 절규하듯 비명을 내질렀다.

마탑의 인물인가?

어째서 제국 전체에 열 손가락에 들 고위 마법사가 여기에 있는 거지?

이윽고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불사자의 군대는 없다. 남은 것은 숯덩이가 되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잔해뿐.

“괴물들이 모두 불타 죽었어!”

“이런 마법사님이 계셨다니!”

“이길 수 있어!”

베니에르의 병사들이 환호했다.

“전군 돌격하라!”

줄리앙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검을 들었다.

전투는 이제 시작이다. 할튼을 잡아야 한다.

“베니에르에 승리를! 배신자에게 철퇴를!”

카르파가 검을 뽑아 들고 기병을 이끌었다. 그 뒤를 줄리앙과 세실이 지휘하는 중군이 받쳤다.

두두두두-!

대지를 울리는 굉음.

할튼도 재빨리 냉정함을 되찾았다.

방금 대규모 마법을 사용한 마법사는 후군에 머물러 있다. 황녀도 마찬가지.

‘아직 승기는 남아 있다!’

약으로 감정을 지운 병사들이다. 두 배의 병력이 짓쳐 드는 광경에도 그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이들의 살의와 폭력 본능만을 깨운다면 저들을 능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막 명령을 내리려던 할튼의 눈앞에 새하얀 빛이 번쩍였다.

콰르릉-!

하늘에서 떨어진 한 줄기 벼락.

그것이 할튼이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 * *

헤르만령.

레오가 신전으로 떠나고, 테레사와 패트릭은 곧바로 헤르만 자작의 영주성으로 향했다.

막 동이 트는 이른 아침이었다. 당연히 성 입구 병사들은 강경하게 둘의 앞을 막았다.

“물러서세요. 나는 헤르만 자작에게 양해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니.”

테레사는 단호히 말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이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다.

다만 패트릭은 쓸데없이 시간을 지체할 생각이 없었다.

퍼버벅-!

순간 앞을 막던 병사들의 몸이 무너졌다.

“기절만 시켰습니다.”

패트릭은 거꾸로 잡았던 창을 바로 하며 앞으로 나섰다.

때이른 소란에 병사들이 더 나타났지만, 영주성 내부에 들어선 이상 제압은 어렵지 않았다. 얼마 안 가 기사로 보이는 이까지 나타났지만 패트릭의 상대가 되진 못했다.

이단 심문관과 한 기사가 영주성에 침입했다는 보고에 헤르만 자작이 헐레벌떡 뛰어 내려왔다. 두 사람이 벌써 영주성 3층에 진입한 시점이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오? 아무리 이단 심문관이라 해도 이런 경우 없는 행동이라니!”

헤르만이 얼굴을 붉히며 호통쳤다.

영주도 이단 심문관에게 함부로 할 수 없다지만 이 또한 상호 존중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지금 같은 명백한 침입 행위를 묵과할 이유는 없다.

“헤르만 자작, 당신의 영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습니까?”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당장 물러나시오!”

“신중히 대답하는 게 좋을 텐데요. 대답 여하에 따라 당신이 즉결 처분 대상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이단 심문관의 얼음장 같은 음성.

차가운 분노가 서린 눈동자에는 귀기마저 흘렀다.

헤르만은 뒷골이 서늘했다. 이단 심문관이 즉결 처분을 운운한다는 것은 그만한 사건이 터졌다는 뜻이리라.

이러한 막무가내 침입에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도 뒤늦게 들었다.

그는 결국 한풀 꺾인 목소리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말이오?”

“지난밤 흑마법사의 사술에 도시가 공격당했습니다. 증거가 외성 밖에 있으니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흑마법사? 그게 무슨 소리요? 흑마법사가 어째서?”

“아무것도 모르겠다면 조용히 협조나 하세요.”

테레사와 패트릭은 얼어버린 헤르만 자작을 지나쳐 영주성 가장 위층을 향했다.

자작 부인이 흑마법사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증언은 이미 확보했다. 당사자에게 확인만 하면 될 일.

처음부터 목적은 자작 부인이었다.

“무엇을 찾는 거요? 이 앞은 내 침실이오.”

영주성 가장 위층.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헤르만이 문 앞을 막아서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자작 부인이 아직 침실에 있는 모양이지요?”

“아무리 신전의 일이라 해도 이곳은 내 개인 공간이오. 게다가 안에는 부인이 있소. 이 이상은 나와 내 부인에 대한 모욕으로 여기겠소.”

“비키세요. 흑마법사를 부린 자가 그 방에 있으니.”

“그것이 무슨…?”

테레사는 문 너머에 일렁이는 사악한 기운이 느껴졌다.

브뤼쉬의 마물에게서 느낀 기운과 유사했다. 법구를 꺼내 성력을 주입하자 얇은 막대 같던 법구가 몽둥이 형태로 거대해졌다.

“허락할 수 없소! 물러들 가시오!”

그 모습에 헤르만은 흠칫 뒷걸음질 쳤지만 비켜서지는 않았다.

양팔을 벌려 문 앞을 가로막았다. 어찌 되었든 아내를 지키겠다는 의지였다.

콰직-!

동시에 문을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가슴 한가운데 불에 덴 것 같은 고통에 헤르만의 고개가 아래로 향했다.

“크윽….”

고통의 정체를 확인한 그의 눈동자가 크게 확대됐다.

피를 뒤집어쓴 붉고 검은 것이 가슴을 관통했다. 이윽고 그것이 쑥 빠져나가자 가슴에는 주먹만 한 구멍만 남았다.

아내를 지키고자 한 사내의 순정에 대한 보답이 죽음으로 돌아왔다.

헤르만 자작의 몸은 핏물을 뿜어내며 서서히 무너졌다.

“악마의 종이로구나!”

테레사는 재빨리 성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

황금빛 법구를 휘둘러 문짝을 부수고 들어서니 이미 마물화된 자작 부인이 그들을 맞았다.

“네놈들이었구나, 계획을 망친 건.”

절반은 인간이나, 절반은 검고 뒤틀어진 마물의 얼굴에서 기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간의 형태가 남은 것은 반쪽 얼굴뿐.

그 외에는 자작 부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마물이다.

몸통은 마치 나무 둥치처럼 바닥에 뿌리 박혀 있고, 두 팔이 있어야 할 자리는 길고 검은 촉수가 달려 있었다.

“히이이익-!”

“아, 악마다!”

기괴하게 변한 자작 부인의 모습에 시종과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거나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확실히,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나는군.”

성법구를 쥔 테레사의 곁에 패트릭이 나란히 서서 창을 겨누었다.

레오가 이곳에 남아 도우라 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멍청한 놈들, 그분의 은혜를 받은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더냐!”

두 개의 긴 촉수가 채찍처럼 휘어져 날아들었다.

테레사가 법구를 올려 막으려 하자 촉수는 법구를 휘리릭 휘감아 당겼다.

팽팽해진 촉수.

하지만 테레사는 이내 코웃음을 치며 법구를 강하게 당겼다.

감히 누구에게 힘 싸움을 걸어?

괴력의 성법에 촉수가 주욱 늘어나더니 뚝 끊어졌다. 법구를 떨치자 감겨 있던 촉수가 바닥에 떨어져 생선처럼 파닥였다.

콰직-!

촉수를 밟아 짓이긴 테레사는 확신했다.

뿔이 하나 있던 브뤼쉬의 그것에 비하면 강하지 않다. 악마의 종이라는 이름도 붙이기 힘들 정도.

놈은 그저 마물에 불과했다.

파앗-!

다른 촉수도 패트릭의 창을 뚫어 내지 못했다.

상급 기사 수준에 다다른 패트릭의 오러가 담긴 창에, 촉수는 끝부터 반으로 쩌억 갈라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제법이군. 어디 한번 더 해 보거라.”

마물은 여유롭게 웃었다.

몸통에서 두 개의 촉수가 더 생겨났다. 망가진 촉수도 금방 재생하더니 총 네 개의 촉수를 허공에서 흔들었다.

“…성가신 능력이군요.”

테레사가 혀를 찼다.

힘 대신 재생력이 특징이었나.

“아무래도 본체를 단번에 노려야 할 것 같습니다.”

“성법구로 노리겠습니다. 전위를 맡아 주세요.”

두 개의 촉수 중 패트릭에게 상한 촉수는 그대로 재생했지만, 테레사에게 당한 촉수는 일부러 끊어 낸 뒤 새롭게 만들었다.

테레사는 그것에서 성법구의 성력에 직접 닿으면 재생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간파했다.

패트릭이 창을 앞세워 돌진했고 그 뒤를 테레사가 따랐다.

네 개의 촉수가 사방에서 패트릭을 향했다.

‘단번에 뚫는다!’

패트릭의 눈동자가 네 개의 촉수 궤적을 빠르게 읽었다.

넓은 방향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듯싶었지만 결국 한곳으로 수렴한다. 네 개의 촉수 끝은 결국 그의 창이 닿을 범위에 들어올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창으로 어떻게 막아 내느냐는 것만 남는다.

뇌참(雷斬).

퍼버버벙-!

이윽고 사정권에 들자 번개 같은 찌르기가 네 개의 촉수 끝을 부수었다.

마치 네 개의 창을 동시에 내지른 것 같은 연격.

가문의 비전이던 섬전(閃電)을 더욱 발전시킨 패트릭만의 고유 기술이다. 섬전의 위력을 크게 떨어트리지 않은 채 참격을 두 배로 늘렸다. 포렌티아로 오러가 크게 늘어나면서 완성하게 된 기술이었다.

“……!”

반쪽밖에 표정을 알아볼 수 없는 마물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테라사는 그 절망스러운 얼굴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끝이에요.”

놈에게 재생할 시간을 줄 이유가 없다.

부서진 네 개의 촉수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 패트릭의 뒤에서 테레사가 튀어나왔다.

그녀가 휘두른 황금빛 성법구가 마물의 몸통을 강타하고 이어서 머리 위로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크엑!”

외마디 비명과 함께 마물의 머리가 산산이 부서졌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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