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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108화 (108/127)

108. 악마 켈시온 (5)

“크으으으윽-!”

덱스는 이를 악물고 마력을 짜냈다.

병사들을 물렸기 때문에 다음 공격이 이렇게 한 점에 집중되는 체인 라이트닝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다. 그래서 몇 겹이나 배리어를 펼쳤는데….

쩌적, 쩌적-!

벌써 네 번째 배리어가 갈라지고 있다. 수복 속도가 배리어의 손상을 따라가지 못한다.

수복을 위해 서클에서 강제로 마력을 뽑아내니 머리가 팽팽 돌았다.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지만 혀를 씹으며 버텼다. 얼마나 잘근잘근 씹었는지 혀끝이 이빨에 걸리지 않을 정도다.

‘지금 정신을 놓으면 모두 죽는다.’

레오는 한 번만 더 막아 달라고 했다. 그러니 이다음은 어떻게든 해 주지 않을까.

배리어의 균열과 수복이 반복되며 맞서는 십수 초.

그 짧은 시간이 덱스에게는 영겁과 같았다.

쩌저적- 쾅-!

결국 네 번째 배리어마저 부서졌고.

“흐으읍-!”

덱스는 눈을 부릅뜨며 마지막 배리어에 마력을 쏟아 부었다.

배리어를 갉아 먹는 전격이 마치 수십 마리의 뱀처럼 보인다. 배리어 너머 보이는 악마의 뿔에서는 아직도 검은 전격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이렇게나 길게 이어지는 체인 라이트닝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거대한 마력이어야 가능할까.

다시 한번 이를 악문다. 집중력이 무너지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부서지는 곳을 수복하고 다시 수복한다.

쩌쩌적-!

마지막 배리어에 커다란 금이 번졌다.

필사적으로 맞섰지만 덱스의 마력이 한계에 달했다. 심장의 서클을 아무리 짜내도 더 이상 마력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씨발.”

콰직!

잇새로 새어 나오는 욕설과 함께, 결국 마지막 배리어가 깨졌다.

서클이 완전히 비어 버리자 전신의 힘이 쭉 빠지며 시야가 흐려졌다. 마련 탈진이었다.

동시에 악마의 뿔이 뿜어내던 전격도 마침내 끝이 났다.

휙-!

무무카의 억센 손아귀가 무너지려는 덱스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기절해서 축 늘어진 덱스의 몸뚱이를 뒤로 잡아 던지더니 앞으로 나서 잔여 마법을 온몸으로 받아 낸다.

“으으읍-!”

무무카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전신의 털이 그슬리며 연기가 피어난다. 투기를 둘러 얻는 마법 저항 효과는 미미했다. 그럼에도 버티고 선 두 발은 무너지지 않았다.

겨우 체인 라이트닝의 끄트머리.

그것만으로도 뇌가 타버릴 것 같은 고통이었으나 무무카는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흐아아앗!”

잔여 체인 라이트닝을 버텨내고는 앞으로 달려 나가는 무무카.

대도를 든 웨어울프의 눈이 푸른 안광을 뿌렸다.

파밧-!

동시에 슈니가 달린다. 무무카와 거리를 벌리며 살짝 돌아 달리는 코스. 그 등에는 몸을 낮춘 레오가 있다.

“같잖은 수를 쓰는구나.”

푸르릉-!

콧김을 내뿜은 켈시온의 시선이 무무카와 레오를 번갈아 담았다.

마법을 쓴다고 하여 접근하면 승산이 있으리라 여긴 것인가? 그야말로 멍청한 판단이다.

오히려 네 발로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가는 켈시온.

달려오는 무무카를 날려 버리겠다는 듯 머리를 바짝 숙인 자세였다.

“와라!”

무무카는 전신에 오러를 폭발시켰다.

단 한 번에 충돌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셈이다. 뒤는 생각하지 않았다. 틈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성공일 테니.

오러의 격류.

이 정도의 오러를 한 번에 운용하기는 처음이다. 몸이 부서질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이까짓 것!’

고통 따위에 질 수 없다.

덱스는 저 무자비한 검은 전격을 수십 초나 막아 주면서도 정신을 잃는 순간까지 눈을 감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목숨은 너에게 넘긴 지 오래다.’

무무카는 힐끗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 덕분에 여동생을 찾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지금 삶은 그가 준 선물이나 마찬가지. 필요하다면 언제든 갚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러를 한층 해방했다.

오직 악마와의 한 합을 버티는 것이 목적이다. 그 뒤에 일어날 일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세찬 격류가 전신을 맴돌았다. 팔과 다리가 아리고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오러의 격류가 머리를 지날 때는 눈앞이 아찔해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아이야.]

그래서 어느 목소리가 들렸을 때는 환청이라 여겼다.

[아이야, 들리느냐? 우리의 목소리가 닿고 있느냐?]

하나의 목소리라고 하지만 수많은 목소리가 합쳐진 느낌.

낯설지만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는 음성.

정신을 다잡은 무무카는 본능적으로 목소리의 정체를 깨달았다.

‘선조의 목소리…!’

[오랫동안 기다렸다. 이제야 비로소 그릇을 갖춘 아이가 나타났구나.]

선조의 목소리를 듣는 전사는 위대한 힘을 가지게 되리라, 웨어울프 일족에게 전설처럼 전해지던 이야기다.

일족의 수많은 전사가 선조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으나 응답을 들은 이는 없다 했다. 그런데 그것이 단지 전설만은 아니었다는 말인가.

‘저 악마를 막을 힘을 빌려주시겠소.’

많은 대화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

켈시온은 이미 지척에서 돌진해 오고 있었으니까.

[물론이다, 자랑스러운 일족의 아이야. 지금 그대로 우리를 받아들이거라.]

무무카는 요구했고.

웨어울프 일족의 오랜 혼령들이 답했다.

“흐으으읍-!”

무무카의 안광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육체도 같은 색으로 빛나며 부풀었다. 본디 2미터 이상의 거구가 한층 팽창하여 3미터 가까이 거대해졌다.

일족의 선택받은 전사만 사용할 수 있다는 강신(降神).

그것이 무무카의 몸을 통해 수백 년 만에 재현되었다.

쾅!

무무카와 켈시온이 충돌했다.

“수인족 주제에 해괴한 힘을 쓰는구나!”

“우습구나, 그것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자가 할 말인가!”

무무카는 켈시온의 박치기를 몸통으로 받아 내며 버티더니 이내 양손으로 뿔을 잡았다.

“뭐, 뭐 하는 짓이냐!”

돌진이 막힐 줄 몰랐던 켈시온은 뿔마저 잡히자 크게 당황했다. 마법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다.

고개를 비틀어 무무카의 팔을 떼어 놓으려 했지만 오히려 고개가 움직이지 않았다. 무무카의 괴력에 옴짝달싹도 못 하게 된 쪽은 오히려 켈시온이었다.

“흐아아압!”

무무카의 기합과 함께 네발 달린 거대한 악마의 몸뚱이가 허공에 떠올랐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켈시온은 네 발로 허공을 휘저으며 탄식했다.

익숙하지 않은 부유감.

곧 그의 몸뚱이가 둔탁하게 지면에 처박히며 크게 흙먼지가 일었다.

케엑-!

켈시온의 입에서 짐승의 비명이 튀어나왔다.

보기보다 몸은 단단하지 않은지 한 번의 충격에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이런 벌써 한계인가….”

땅에 처박힌 악마에게 다가가려던 무무카는 시야가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불과 몇 초의 강신. 위대한 선조들의 혼령을 담기에 그의 그릇은 아직 작았다.

[아이야, 또 보자꾸나.]

음성이 아스라이 멀어지며 눈앞이 흐려졌다.

‘뒤를 부탁한다.’

벌써 눈앞까지 달려온 레오와 슈니의 모습을 눈동자에 담으며, 무무카의 의식도 꺼졌다.

콰직-!

길게 뛴 슈니가 악마의 몸뚱이를 덮치며 목덜미에 물어뜯었고, 발버둥 치며 일어서려던 켈시온은 재차 짐승 소리를 내며 지면을 굴렀다.

가죽이 얼마나 단단한지 슈니의 어금니가 전혀 박히지 않았다. 그러니 몸으로 누른 것이 전부였다.

“떨어져라! 짐승 주제에!”

그럼에도 켈시온을 당황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가 슈니를 떨쳐 내려 몸을 흔드는 사이, 검을 뽑아 든 레오가 사각에서 접근했다.

‘아메리아!’

레오는 여신의 이름을 불렀다.

품속 성자의 방울로부터 성력이 폭발하더니 레오의 몸과 검을 황금색으로 물들였다.

악마를 상대하는 데에 성력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듀발과 싸우며 그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여신의 힘을 활용할 수 있는 지금은 성력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그 힘은 성력이 아니냐! 어째서 네놈이 성력을 다룬다는 말이냐!”

그제야 고개를 젖힌 켈시온이 레오를 발견했다.

악마에게 가장 치명적인 힘인 성력. 가로로 길게 찢어진 짐승의 눈동자에 혼란과 공포가 넘실댔다.

스윽-!

레오의 검은 악마에게 여지를 주지 않았다.

오러안으로 확인한 뿔의 경계면을 잘라 내자 세 개의 뿔은 손쉽게 떨어져 나갔다.

계약의 매개이자 결과였던 뿔은 곧 검은 연기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끄아아아아악-!

켈시온의 비명의 평야에 메아리쳤다. 뿔이 잘린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뒹굴었다.

[놈의 격이 떨어지고 있어요. 대가를 치르고 빌린 힘을 강제로 뜯어 버렸으니 정신적으로도 큰 타격을 받았을 거예요.]

여신의 말처럼 켈시온은 신체와 정신, 양쪽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거대한 네발짐승의 형상이 점차 인간 켈시온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온몸의 뼈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상급 악마와 연결되어 있던 영혼의 일부가 강제로 뜯겨 나갔다. 그 또한 형용할 수 없는 상실감이었다.

“흐어어어….”

이윽고 드러난 켈시온의 꼴은 초라했다.

그는 여전히 네 개의 뿔을 가진 악마였으나, 초점 없는 눈동자는 허공을 향했고, 입가에는 침을 질질 흘렸다. 창백한 알몸으로 부들부들 떠는 모습에 반격의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영혼이 손상되었군요. 본래 영혼을 절반도 지키지 못한 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에요.]

‘다른 이의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도 거래에 사용한 것인가.’

레오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 켈시온에게 다가가 다시 한번 검을 치켜들었다.

이지(理智)를 완전히 잃었는지 어떠한 반항도 없는 모습. 그렇다 해서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다.

서걱-!

켈시온의 목이 몸뚱이에서 떨어져 흙바닥을 굴렀다.

머리에 남은 네 개의 뿔은 그가 악마 숭배자였으며, 결국 악마가 된 사실을 증명할 것이다.

“하….”

레오는 검을 아래로 떨구고 짧은 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켈시온 백작을 죽였다.

전생의 그는 붉은 이리 용병대를 마물에 내던진 배신자이자 원수였으며, 현생의 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급기야 제스스로 악마가 되어 제국을 전복시키려 한 역적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은 아니지.’

[악마 게르베, 그놈을 없애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어요.]

‘그렇겠지. 켈시온이 죽었으니 그놈의 계획도 어느 정도 어그러졌을까?’

[저 악마는 게르베로부터 권능을 나누어 받았겠죠. 그런 악마가 죽었으니 게르베 또한 꽤 타격을 입었을 거예요.]

‘좋은 소식이군.’

이내 몸을 돌린 레오.

“악마를 죽였군.”

금방 눈을 떴는지 덱스를 어깨에 들쳐 멘 무무카가 그 앞에 있었다.

“무무카, 넌 괜찮은 거냐?”

“그래, 선조의 힘을 사용하기에 내 그릇이 부족했을 뿐이다.”

선조의 힘이라니, 아까 그 신비로운 능력을 말하는 걸까.

레오는 고개를 갸웃하며 덱스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 녀석은 어때?”

“괜찮을 거다. 강한 사내이니 금방 일어나겠지.”

“그래.”

강한 사내라….

덱스 놈이 무무카의 말을 직접 들었다면 좋아했을 텐데.

“보아라! 제국의 역적 켈시온의 머리를 베었다! 우리는 마침내 마물을 불러들인 악마 토벌에 성공했다!”

레오는 머리 위로 검을 높게 들며 외쳤다.

승리 선언이었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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