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축출 (1)
악마 숭배자 켈시온 백작을 성공적으로 토벌했다는 소식.
제국군의 승전보가 황궁에 도착했다.
“악마 숭배뿐만 아니라 제 스스로 악마가 되었구나! 그런 자를 지금이라도 토벌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제국의 복이다. 개선군을 성대하게 맞을 준비를 하라!”
승리 소식과 함께 켈시온의 수급도 도착했다. 황제는 그의 머리에 솟은 뿔에 크게 놀라면서도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반대로 토벌령을 섣부른 결정이라 지적하던 후작파는 불안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스스로 악마였다는 최악의 결과만을 남기고 중앙 대륙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졌던 후작파 거두가 사라졌다. 이번 일로 지금껏 유지된 황제파와 후작파의 균형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었다.
“정말 켈시온 백작이 악마였다는 말이오? 나는 아직도 믿을 수가 없구려.”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있소. 재상께서도 가만히 계시지만은 않을 테니 일단 조금 두고 봅시다.”
후작파라고 해서 전부 악마 숭배자만 모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악마와 관계없이 그저 정치적인 이득을 위해 줄을 선 이들이 더 많았다.
그러니 이들이 이번 토벌령을 후작파 숙청을 위한 음해라 추측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차피 황제가 한통속이라면 시체의 머리에 뿔을 심어 눈속임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테니.
“쯧쯧,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는 게요? 조작이든 아니든 이제 그런 것은 하등 중요하지 않게 되었소. 황제가 칼을 빼 들었단 말이오.”
“그 말이 맞소. 중요한 것은 진위가 아니라 황제의 의중이오.”
“…아무래도 피바람이 불 것 같구려.”
오랫동안 기다려 온 황제가 드디어 움직인다.
그것만으로도 황궁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얼어붙었다. 후작파 인물들은 입을 꾹 다문 채 그저 재상만을 바라보며 이번 위기를 잘 넘겨주기를 바랐다.
반대로 수십 년 만의 개선식 준비에 수도의 거리는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황제가 친히 명한 승전 개선식이다. 도시는 며칠 전부터 축제 분위기 속에서 악마를 토벌한 영웅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총사령관께서 돌아오십니다!”
마침내 제국군의 모습이 보이자 북문 망루에 올라 있던 병사가 외쳤다.
제국군의 깃발을 세우고 총사령관 카르파 슈멜린 백작이 가장 앞에서 군을 이끌었다. 그 오른편에는 레오 바이스만 남작과 가신들이 함께 했으며, 왼편에는 줄리앙과 세실 등 베니에르가의 가신들이 따랐다.
“성문을 활짝 열어라! 뿔 나팔을 불어 제국의 영웅들이 돌아왔음을 알려라!”
드르르르륵-!
무거운 도르래 소리와 함께 평소 절반만 열어 두던 거대한 성문이 시원하게 개방됐다.
북문 경비 대장 니콜란은 슈멜린 백작의 승전군을 가장 먼저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에 꽤 흥분했다.
“충! 총사령관님,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니콜란의 경례에 말 위의 슈멜린 백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그와 눈을 마주친 니콜란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얼굴의 깊은 주름에서 쉰을 훌쩍 넘긴 나이가 짐작된다. 하지만 짙고 곧은 눈썹과 번득이는 안광의 위압감은 여느 기사보다도 강렬했다.
‘그리고 저분이 소드 마스터인 바이스만 남작.’
그런 슈멜린 백작의 곁을 나란히 하는 젊은 남자.
올빼미 형상의 문장으로 보건데 그 유명한 소드 마스터 바이스만 남작이 분명하다.
그는 그저 젊은 기사처럼 보였다. 솔직히 말해 슈멜린 백작 같은 위압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평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폄하할 만큼 니콜란은 멍청하지 않았다.
기사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 이가 어찌 소드 마스터를 재단할 수 있을까. 황제께서 직접 인정하고 작위까지 내렸다면 당연히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척, 척, 척.
성으로 귀환하는 병사들은 더욱 가슴을 폈다. 처음에는 지친 얼굴이었던 병사들도 성 내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점점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니콜란은 후미의 병사에게 슬쩍 붙어 물었다.
“살아 돌아온 것을 축하하네. 전투는 어땠나? 켈시온 백작의 군대라 하면 결코 만만치 않았을 텐데 말이야.”
켈시온 백작은 중앙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세력을 가진 대귀족이다.
영지의 규모는 물론 병력도 손에 꼽힐 정도다. 때문에 켈시온 백작 토벌 소문이 돌았을 때 제국군의 패배를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후… 내 생전 그런 전투는 처음이었지.”
후미를 이끌던 제국군 어느 십인장의 대꾸에 니콜란은 더욱 몸이 달았다. 저도 모르게 제일 궁금했던 것부터 묻고 말았다.
“거, 말 좀 해 보게. 켈시온 백작이 정말로 악마 숭배자였나?”
“악마 숭배자? 아니야, 그놈은 악마 그 자체였어.”
십인장은 몸서리를 쳤다.
약에 취해 달려드는 휘하의 병사들은 둘째 치고, 백작이 직접 거대한 악마로 변하던 광경은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악마가 발산했던 악의는 그대로 공포가 되어 몸을 짓눌렀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저 죽음만을 기다려야 했던 기억에 십인장의 얼굴은 다시금 새하얗게 질렸다.
“악마? 그가 정말 악마였다고?”
니콜란은 믿기 힘들다는 듯 되물었다.
‘켈시온 백작 그 자신이 영혼을 팔고 악마가 되었더라.’라는 소문은 이미 수도 전역에 퍼져 있었다. 그것을 못 들은 바 아니나, 믿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오히려 토벌의 당위성을 위한 과장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거참, 사람 답답하게 하네, 말을 좀 해 보게.”
이어지는 니콜란의 추궁에 혈색이 돌아온 십인장이 씨익 웃었다.
“맨입으로 들을 셈이야? 궁금하면 이따가 주점으로 오라고!”
“이잇!”
발을 동동 구르는 니콜란을 뒤에 두고 십인장이 손을 흔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공짜로 해 줄 리 있나. 최소한 시원한 맥주 몇 잔은 얻어먹어야 할 것 같다.
* * *
북문에서 내성까지 이어지는 대로 주변에 시민들이 가득 찼다.
곳곳에 악단의 흥겨운 연주가 흐르고 노점이 열렸다. 개선군이 성내에 들어섰다는 소식에 축제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제국군 만세! 황제 폐하 만세!”
총사령관 카르파 슈멜린 백작을 필두로 개선군이 들어서자 곳곳에서 만세가 터졌다.
저절로 병사들의 턱이 높아지고 가슴이 펴진다. 목숨을 건 전투에서 승리하고 살아남은 이들만 누릴 수 있는 명예로운 순간이었다.
개선식을 처음 겪는 레오도 사방의 환호가 의식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 영웅께서는 기분이 좀 어떠신가?”
“…놀리지 마십쇼.”
“놀리는 게 아니네만? 악마의 목을 벤 이가 영웅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레오는 짐짓 목소리를 높이는 카르파를 슬쩍 노려봤다.
진지한 얼굴을 하는 척 하지만 눈동자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그의 입가에 아주 작은 떨림이 이는 것이 보였다. 소드 마스터가 아니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미세한 경련이었다.
“놀리는 거 맞잖아요!”
“하하핫! 역시 소드 마스터의 눈썰미는 피할 수가 없구먼. 너무 긴장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네. 다들 환영하고 있지 않은가, 목석처럼 가만히 있지 말고 손이라도 좀 흔들게.”
“쳇.”
와-!
카르파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가장 선두의 그들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그 중에서도 총사령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레오는 더욱 두드러졌으니까.
“바이스만 남작님이야!”
“소드 마스터! 제국의 수호신!”
와, 못 견디겠네, 이거.
카르파가 호응에 답해야지 뭐 하느냐는 눈짓을 했다. 결국 레오가 마지못해 손을 흔드는 시늉을 하자 환호가 터졌다. 그 소리에 가방에서 자고 있던 슈니가 잠깐 깼다가 도로 눈을 감았다.
“레오-!”
“오빠다!”
함성 속에서 레오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구별해 냈다.
수많은 소음을 뚫고 나올 정도의 소리는 아니었지만 귀에 명확히 걸리는 익숙한 음성이다.
‘어머니!’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군중 저편에서 어머니와 여동생이 손을 흔들며 소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는 덱스의 부모님도 함께였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지금은 이대로 황제를 알현해야 한다. 레오는 아쉬는 마음을 눌러 담으며 힘껏 어머니와 여동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제 영지로 불러들여도 될 것 같네.’
그간 가족을 수도에 머무르게 한 것은 안전 때문이었다.
켈시온 이라는 불안 요소가 제거되었으니 바이스만 영지에서도 충분히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이제 가족을 불러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레오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었다.
“와! 우리 아빠, 엄마가 저기에 있어!”
곁에 있던 덱스도 부모님을 발견하고는 힘껏 손을 흔들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부모님 곁에 낯익은 얼굴이 한 명 더 있었기 때문에.
“샤를롯이 왜 우리 부모님하고 같이 있지?”
그제야 레오도 샤를롯을 발견했다.
양 갈래로 땋아 탱글거리던 머리 스타일이 차분하게 바뀌어 한눈에 못 알아본 것 같다. 샤를롯은 덱스의 부모님과 담소를 나누며 이쪽을 향해 조신하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응원한다.”
“뭘 응원해?”
“나쁘지 않은 상대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뭐가? 무슨 상대?”
눈치 없는 놈 같으니.
아무래도 녀석이 뭔가 눈치챌 즈음에는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지 않을까.
뭐라 한마디 해 주려던 레오는 그냥 못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당사자 둘이서 알아서 하라고 해야지.
어느새 내성에 접어들었다.
제국군 주둔지에 도착한 슈멜린 백작은 짧게 병사들을 격려하고 해산시켰다.
병사들은 밝은 표정으로 흩어졌다. 며칠간의 휴가 뒤에는 얼마 간의 공로금도 받을 수 있으리라.
장구류만 반납하고 곧바로 주점으로 달려가려는 이들도 있었다. 북문 경비 대장 니콜란과 대화를 나눈 십인장도 그중 하나였다.
“황궁으로 가세,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는군. 곧바로 논공행상을 하시려는 모양이야.”
카르파가 왠지 모르게 서두르는 것 같더니 그런 이유였나.
레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
“잘됐네요. 후딱 끝내고 돌아갈 수 있을 테니.”
“그것도 그렇겠군. 자네는 뭐 하나, 안 따라오고?”
카르파의 시선을 받은 줄리앙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저, 저도 폐하를 뵙는 겁니까?”
“베니에르군을 이끌고 함께 싸우지 않았나? 당연히 치하를 받아야지.”
베니에르와 바이스만은 자발적으로 제국군에 힘을 더했다.
각자의 이유가 있다지만 이들이 합류는 황제의 토벌령에 긍정적인 명분을 더하는 데 도움이 됐다. 승리에 크게 기여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어서 가세요, 오라버니.”
세실이 줄리앙의 등을 슬쩍 떠밀었다.
줄리앙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재빨리 따라붙었다. 베니에르를 대표하여 황제 폐하를 뵙는다니 도저히 실감나지 않는다.
“테레사도 가야지.”
“저도요?”
“아니면 왜 따라왔겠어?”
바이스만 병사들과 함께 테레사가 전장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전투가 끝난 후였다.
레오는 패트릭에게 올빼미들을 포함한 바이스만 병사를 인솔해 영지로 귀환하라 명했다. 수도에는 무무카, 덱스, 테레사를 대동했다.
무무카와 덱스를 데려온 것은 가족들과 만나게 해 주려는 의도였기에, 무무카는 도중에 메르윈령으로 향했다. 덱스도 황궁에 들어서기 전에 행렬에서 빠져나간 상태였다. 그렇기에 혼자 남은 테레사는 이유도 모른 채 일단 레오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여신의 힘을 빠르게 회복하려면 신도를 늘리는 게 제일 아니야? 지금처럼 해서는 너무 늦어. 폐하께 도움을 청하는 게 빠르지.”
“…그래도 되는 건가요?”
“안될 게 뭐 있는데?”
테레사는 어깨를 으쓱하고 돌아서는 레오를 멍하게 쳐다보다가 서둘러 뒤쫓았다.
곧 황제를 알현한다 생각하니 뒤늦게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