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2황자 크롬멜 (1)
“샅샅이 뒤져라!”
수도의 내성 구역에서 가장 호화로운 건물 중 하나.
아비엘 요크의 저택에 제국군 병사들이 들이쳤다.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아비엘이 마물이 되어 두 동강 난 지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상황.
소식이 아직 전해지지 않았으니 저택을 지키던 병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제국군을 맞이해야 했다.
“황명이다! 무기를 버리고 길을 열어라! 반항하는 자는 반역으로 간주하고 참수하겠다!”
제국군을 직접 인솔한 레오의 서슬 퍼런 외침.
반역이라는 말에 찔끔 겁을 먹은 병사들이 금방 길을 터 주자, 레오와 병사들이 저택 입구로 쏟아져 들어갔다.
‘마기가 느껴지면 바로 알려 줘.’
[그럴게요.]
입구의 병사들을 무장해제하고 안으로 들어선 레오는 곧바로 오러안을 발동했다.
여신이 마기를 감지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마도구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오러안이 유용했다.
‘분명 뭔가 남아 있을 거야.’
저택 수색을 자처한 것은 레오였다.
아비엘이 요크 후작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분명 저택에는 악마와 관련된 증거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 증거를 찾기 위해 서둘러 병사를 이끌고 달려 왔다.
“저택에 남아 있는 자는 모두 한곳으로 모아라!”
레오의 명령에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중에 아비엘과 같은 마도구를 가진 이가 있을지 모르는 일.
상황 설명을 핑계로 일단 모두 모아 놓고, 이후 오러안으로 수상한 마도구가 없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멈춰라! 너희들의 책임자는 누구냐? 재상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신가?”
병사들이 실내로 막 진입하려던 차.
맞은편에서 오러를 담은 목소리가 울렸다.
커다란 덩치와 부리부리한 눈, 체구만큼이나 두툼한 검을 쥔 그는 아비엘의 기사 데칸이었다. 그 뒤로 십수 명의 무장한 병사들이 함께 나타났다.
“너희들은 물러서라.”
그를 발견한 레오가 병사들 앞으로 나섰다.
처음부터 황명이라는 말로 전부 제압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비엘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라면 황제보다 아비엘을 우선하는 것이 당연할 테니.
“검을 버려라. 악마 숭배자 아비엘은 제 스스로 마물이 되어 폐하를 위협했다가 이미 척살되었다. 얌전히 통제에 따른다면 해치지 않을 것이다.”
“재상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이냐? 악마 숭배자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네놈은 누구냐! 소속과 이름을 밝혀라!”
데칸은 더욱 흥분하여 소리쳤다.
얼굴을 보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 레오는 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황명이라는 말이 들리지 않았는가? 통제에 따라라. 이것이 마지막 경고다.”
그렇게 말하며 검자루를 쥐어 보이는 레오.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무력을 쓰겠다는 경고였다.
“흥! 웃기는 소리! 헛소리에 현혹당할 줄 아느냐!”
레오의 곁에 있던 병사가 황제의 인장이 찍힌 명령서까지 펼쳐 보였지만 데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가 눈짓하자 아비엘의 병사들이 창검을 곧추세웠다.
충돌을 예감한 제국군 병사들도 긴장하며 무기를 그러쥐는 순간.
스윽-.
레오의 손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으윽-!”
호선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짧은 신음과 함께 검을 쥔 팔뚝 하나가 바닥에 뒹굴었다.
데칸의 팔이었다.
피를 뿜는 팔뚝을 부여잡으며 데칸은 어금니를 물었다. 울긋불긋하던 그의 얼굴이 금방 창백해졌다.
‘보이지 않았다!’
남자와의 거리는 족히 네다섯 발자국 이상.
언제 검이 닿은 것일까? 움직임을 눈치챘을 때 이미 남자는 검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자신은 소드 엑스퍼트 상급을 바라보고 있다. 결코 낮지 않은 경지임에도 눈앞의 남자와 격차는 감히 짐작도 되지 않았다.
“얌전히 통제에 따라라. 다음은 팔로 끝나지 않을 테니.”
레오는 턱을 까딱이며 떨어질 팔을 가리켰고.
데칸은 이를 악물고 조용히 팔을 챙겨 들었다. 그러자 그의 뒤에 있던 병사들도 자연히 무기를 내렸다.
“남작님, 저택의 모든 이들이 모였습니다.”
“좋다. 가자.”
화려한 정원.
저택의 시종과 병사를 포함해 오십여 명가량이 모였다. 그 안에는 붉게 물든 붕대로 팔을 감싼 데칸도 섞였다.
당연히 모인 이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들은 두려운 눈으로 레오를 힐끔거리며 아비엘의 안위에 대해 속삭였다.
곧 그들의 앞에 레오가 나섰다.
“아비엘 요크가 악마 숭배자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악마의 힘을 빌고 마물이 되어 황제 폐하의 안위를 위협했기에 척살당했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커졌다.
대부분 믿기 힘들어하는 반응이다.
제국 관료의 정점이자 대륙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진 요크 후작의 친동생인 아비엘 요크가 악마 숭배자라니?
[저들에게 마기는 느껴지지 않아요.]
여신의 목소리.
레오도 오러안으로 꼼꼼하게 사람들을 살폈으나 수상한 마도구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이에 나, 바이스만 남작은 황명을 받들어 아비엘의 저택을 수색하고 악마 숭배의 흔적을 찾아내려 한다. 그러니 모두 협력해 주기 바란다.”
바이스만 남작이라는 말에 몇몇 이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소드 마스터 바이스만 남작.
특히 검의 길을 걷는 자라면 그 이름을 모를 리 없었으니 데칸도 마찬가지였다.
레오의 검을 직접 보지 못했다면 황제의 명령서도, 바이스만 남작이라 자칭하는 것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의 말이 사실이라니….’
데칸은 그가 소드 마스터라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었다.
그런 자가 황명까지 받아 왔으니 재상이 죽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리라.
“너희들의 신병을 구속할 생각은 없다! 저택을 수색하는 동안 이곳에서 얌전히 대기한다면 어떠한 위협도 가하지 않을 것이니 안심해도 좋다. 또한 저택을 안내할 사람이 필요하다. 도움을 줄 이가 있는가?”
레오는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들에게 특별한 마도구나 마기를 감지하지 못했지만 다들 결백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아무것도 모르고 손발이 되어 움직인 이가 있는가 하면, 악마 숭배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살아온 이도 있을 수 있다.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마기나 오러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함이었다.
“아무도 없는가?”
몇몇 사람들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저택 수색에 협조하는 것은 그들 사이에 배신자처럼 비칠지 모르는 일.
하지만 아비엘이 악마 숭배자로 낙인찍힌 이상,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이는 혐의를 빨리 벗을 수 있을 것이다.
‘머리를 굴리는 놈들이 보이는군.’
물론 그런 계산을 한다고 해서 악마 숭배자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일단 파문을 일으키고 반응을 보는 것도 레오의 목적이었다.
“제, 제가 저택을 안내하겠습니다.”
겁에 질린 듯 떨리는 목소리로 앞으로 나선 한 젊은 남자.
옷차림으로 보아 저택의 시종 중 한 명으로 보였다. 남자는 다소 창백한 얼굴로 비척거리며 앞으로 몇 발자국 걸어 나왔다.
“마르킨이라고 합니다. 15년간 이 저택에서 일해 왔으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택의 시종인가? 무슨 일을 하였나?”
“…주인님을 가까이서 모시며 잡다한 심부름을 하였습니다.”
“좋다 마르킨, 앞장서라.”
아비엘의 전담 시종인가.
레오는 흔쾌히 답했다.
어차피 찾으려 했던 인물이다. 제 발로 나서 주니 오히려 좋았다.
“그리고….”
“제대로 도움만 준다면 네가 악마 숭배자와 무관하다고 믿겠다.”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원하는 답을 들은 마르킨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과연 어떨까.’
그 뒤를 따르는 레오의 입꼬리가 슬쩍 움직였다.
정말 악마와 무관한 자일지, 아니면 혐의를 빨리 벗기 위한 꼼수일지 한번 지켜볼 생각이었다.
* * *
아비엘이 척살당했다는 말을 듣자 마르킨의 등줄기는 축축하게 젖었다.
그는 아비엘이 악마를 숭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저택의 유일한 시종이었다.
‘어떻게든 살아 나가야 해.’
지난 10여 년간 아비엘 가장 가까이서 시중을 들면서, 악마 숭배 의식 등을 위한 각종 준비를 도맡았던 마르킨이다.
그도 처음부터 눈치챘던 것은 아니다.
의아한 명령에도 의문을 갖지 않고 행하는 것이 시종의 본분이라 생각했으니 그저 따랐을 뿐. 그러다 자연스럽게 의심이 싹텄고, 그 의심은 시간이 지나며 확신으로 자라났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킨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상대는 제국의 재상이고 자신은 일개 시종이다. 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충실한 시종을 연기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뿐.
[마르킨, 너도 눈치챘겠지?]
어느 날 아비엘이 그렇게 말했을 때는 이제 죽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마르킨의 목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비엘은 자신의 비밀을 알면서도 도와줄 이가 필요했고, 마르킨을 그 상대로 낙점했을 뿐이다. 그렇게 마르킨은 공범이 되어 버렸다.
‘그런 변명이 먹힐 리 없겠지.’
이대로라면 아비엘의 가장 가까운 시종인 자신이 의심을 받을 것이 당연하다. 어쩌면 그냥 죄를 뒤집어 씌워 처벌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마르킨은 살아남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혹여 처벌을 받게 되더라도 최대한 협조하는 모습을 통해 참작을 바라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저택은 총 3층입니다. 1층에는 시종들의 방과 창고 등이 있고, 2층 공간은 주로 손님을 맞는 응접실이나 회의실로 씁니다. 3층에는 주인님의 방과 서재 등 개인적인 공간이 있습니다.”
영주성의 축소판이라고 할 정도의 대저택.
1층부터 본격적인 수색이 시작됐다.
“샅샅이 뒤져! 의심 가는 것은 모두 가지고 나와라!”
“벽도 바닥도 모두 확인해!”
병사들은 각 방의 모든 집기를 들어냈다. 무기로 벽과 바닥을 두드리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럽다 싶으면 모두 뜯어내 안쪽을 확인했다.
레오도 오러안을 유지한 채 모든 방을 직접 확인했다.
특별한 성과 없이 1, 2층 수색이 끝나고 이윽고 아비엘의 개인적인 공간이 있는 3층에 도달했다.
“이곳이 서재입니다.”
마르킨이 서재의 문을 열었다.
살짝 흔들리는 눈동자와 마른침을 삼키며 움직이는 목울대.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움직임이었으나 레오의 눈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저 벽 너머에서 뭔가 느껴져요.]
줄곧 잠자코 있던 여신이 가리킨 곳은 서재 중앙의 책장.
벽 하나를 가득 채운 책장 뒤에 비밀 공간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레오가 잠자코 눈짓하자 병사들이 서재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바닥과 벽을 확인하고 가구를 들어냈다. 작은 서랍장 내부까지 샅샅이 뒤지고 나서야 마지막으로 책장 앞으로 모여들었다. 벽을 채운 책을 와르르 쏟아 내고 밖으로 꺼냈다.
“흐음, 아무것도 없군.”
레오는 짐짓 실망한 티를 내며 마르킨을 살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확인한 상황이다. 다른 방도 이런 식으로 수색을 끝냈다. 과연 이대로 돌아서면 마르킨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남은 공간은 침실뿐인가?”
“그렇습니다.”
“그곳마저 소득이 없다면 곤란할 것 같군.”
“소, 송구합니다!”
은근한 압력을 가하자 마르킨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서재의 문을 열었을 때 그의 반응은 다른 곳을 안내할 때와 명확히 달랐다. 분명히 이 방의 비밀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수색 협조에서 성과를 얻으려면 지금이다. 그런데도 입을 다물 생각일까?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