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118화 (118/127)

118. 카마르 요새 (1)

남부 대륙의 입구에 자리한 카마르 요새.

성벽에 선 넬슨 자작은 굳은 얼굴로 바위산 아래에서 접근해 오는 제국 연합군을 바라봤다.

“오천, 아니 육천은 훌쩍 넘겠군.”

산 아래에 제국군을 비롯한 갖가지 문양의 연합군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몬스터 이외에 인간을 대상으로 이 정도 대규모 병력을 적으로 맞이한 것은 처음이었다.

“주군, 이 카마르 요새 앞에 적의 숫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설사 소드 마스터라 해도 이곳을 쉬이 넘을 수 없을 겁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기사 유렌이 고개를 조아리며 자신감을 보였다.

중앙 대륙의 반다이트 가문이 국경을 지키는 제국의 방패라면, 넬슨 가문은 중앙 대륙에서 남하하는 몬스터를 막아 내는 남부 대륙의 방패였다.

요새는 수십 년간 단 한 번도 몬스터의 침공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은 설사 인간의 군대라 해도 결코 달라지지 않으리라. 이는 젊은 시절부터 이곳을 지켜 온 노기사 유렌의 자긍심이기도 했다.

“요새는 험준한 데다 병사들도 단련되어 있다. 거기에 그대까지 있으니 실로 든든하다.”

“맡겨만 주십시오. 허무맹랑한 명분으로 주군에게 창검을 들이댄다면 설사 그것이 제국의 황제라 해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유렌은 이를 으드득 갈았다. 진심 어린 분노였다.

노기사는 황제가 악마 추종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재상 아비엘을 살해하고 남부 대륙을 향해 군을 일으켰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것이 남부 대륙 대다수가 믿는 진실이었다.

“…그대만 믿겠다.”

넬슨 자작은 말을 줄였다.

수십 년간 충성해 온 노기사를 속이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은 아니나 어쩔 수 없었기에.

남부의 영주들은 모두 요크 후작에게 영혼의 계약으로 속박되어 있다. 넬슨 자작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배신은 꿈도 꿀 수 없다. 그저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기지 않는 평온한 죽음만을 바랄 뿐이었다.

‘유니트… 죽어서 너를 만난다면 꼭 사죄하겠다.’

넬슨은 멀리 중앙 대륙에서 목숨을 잃은 넷째 아들을 떠올렸다.

아카데미 마법 학부 입학이 결정되어 기뻐하던 아들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그런 아카데미에 마물을 불러내기 위해 아들은 희생양이 되었다. 가족 모두의 목숨을 볼모로 잡힌 넬슨은 요크 후작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아들을 사지로 내몰아야 했다.

‘황제여,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오.’

넬슨 자작은 점차 가까워지는 제국 연합군의 깃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요새를 넘어설 저력도 없다면 결코 후작에게 맞설 수 없다. 그러니 어중간하게 맞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 * *

레오는 미리 예고한대로 출병 나흘째 날에 바위산 중턱에 도착해 진을 쳤다.

여유로운 행군에 병사들의 전력은 충분했고 사기는 드높았다.

제국 연합군 지휘 막사에 레오는 지휘관들을 불러 모았다.

“과연 듣던 대로 험한 요새입니다. 작전이 성공한다면 요새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보다 크게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줄리앙이 회의의 포문을 열었다.

지난 회의에서 요새를 공략하기 위한 여러 의견이 오갔다. 다양한 안이 제시됐지만 가장 파격적인 것은 레오의 작전이었다.

정면에서 요새를 공략하는 척하며 시선을 끌고, 별동대로 바위산을 타고 우회하여 요새 내부로 잠입하는 양동작전.

성공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작전 제안에 당연히 반발은 심했다.

“너무도 위험합니다! 길이 없는 곳을 어찌 행군한다는 말입니까? 애초에 그런 루트가 있다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 우회로가 있었다면 카마르 요새가 난공불락이라 불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산길을 뛰어다니는 몬스터에게도 아직까지 단 한 번의 침입도 허락하지 않은 요새 아닙니까?”

“적은 카마르의 병사뿐만이 아닙니다. 곳곳의 몬스터도 주의해야 할진대 어찌 험한 바위산을 오르라 하십니까? 이는 별동대를 사지로 내모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가장 먼저 난색을 표한 인물은 메르윈군을 이끄는 델리오 자작이었다. 그러자 다른 군소 영주들도 앞다투어 반대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했다. 말 그대로 실패 확률이 높은 도박 같은 작전이었으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모를까, 초전부터 그런 위험한 시도를 할 이유가 없다. 특히 별동대를 맡게 된다면 말 그대로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영주들을 불안하게 했다.

“흐음….”

클라인과 줄리앙만이 신중하게 의견을 고심하며 입을 열지 않았다.

언뜻 무모한 작전처럼 보인다. 그러니 저들이 반대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하나 레오가 그런 작전을 낸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의견들은 잘 들었습니다.”

레오가 입을 열자 웅성임이 멈췄다.

강한 반대에 부딪힌 총사령관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보겠다는 듯, 모두의 눈이 집중되었다.

“별동대는 일백. 바이스만의 올빼미에게 맡기겠습니다.”

총사령관은 뜻을 꺾지 않았다. 대신 가장 위험한 별동대 임무를 바이스만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크, 크흠…!”

“…그러시다면야.”

제국군도 아니고 자신의 병력을 쓰겠다는 말에 극렬했던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졌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작전을 수용하는 것은 속 보이는 일. 군소 영주 중 하나인 블랑 남작이 불퉁하게 말을 이었다.

“별동대가 무사히 요새 내부에 진입한다 해도 그다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겨우 일백 병력으로 내부를 제압하는 것은 어불성설. 또한 그들이 내부에서 제대로 호응을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 아닙니까?”

요새 내부의 추정 병력은 대략 오백가량.

천운이 따라 일백의 별동대가 거의 손실 없이 요새에 진입하더라도 까딱하면 오히려 제압당할 수 있다.

“보통 병사들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오.”

지금껏 들리지 않았던 굵고 낮은 목소리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무무카였다.

“그게 무슨 뜻인가? 게다가 한낱 기사가 영주들의 대화에 끼어들다니, 참으로 무례하지 않은가.”

블랑 남작이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그는 병사 오십여 명을 이끌고 합류한 이였다.

‘이 양반이 미쳤나…?’

우연찮게 그의 옆에 있던 몬젤은 커다란 눈알을 굴리며 레오와 무무카를 번갈아 보았다.

몬젤은 거의 유일하게 회의에서 아무 발언도 내지 않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른 군소 영주들처럼 레오의 작전에 반대하고 싶었으나, 몸에 각인된 두려움 때문인지 쉽게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무무카가 블랑 남작의 목이라도 꺾어 버릴까 조마조마했다.

“무례? 나는 주군으로부터 권한을 받아 바이스만의 지휘관으로 참석했소. 그걸 잊지 않았으면 하오.”

다행히 몬젤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무카는 블랑 남작을 응시하며 낮게 으르렁거렸을 뿐이다.

레오가 제국군의 지휘는 물론 전체 연합군의 총사령관을 맡게 되면서 무무카가 바이스만의 지휘권을 받았다.

바이스만의 병력만 해도 블랑의 열 배에 가깝다. 그러니 까불지 말라는 소리였다.

“크흠…!”

블랑 남작의 콧수염이 파들파들 떨렸다.

괜히 말을 잘못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을 판이다. 하지만 귀족에게 체면은 목숨보다 중요한 것.남작은 구겨진 체면을 만회하기 위해 기어이 말을 보탰다.

“용기와 만용은 한 끗 차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그대의 뜻은 알겠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지적한 것이다.”

“본인이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남작이 알고 있는 현실과 내가 아는 것이 다를 뿐이오.”

“지금 나를 비꼬는 것인가? 대단치 않은 고집을 부리다 귀중한 병사들만 잃는다는 말이다!”

“눈과 귀가 닫힌 이에게 더 이상의 설명은 무의미할 것 같구려.”

“이이잇…! 그것이 고집이고 만용이라는 뜻이다!”

조용한 막사에 무무카를 향한 블랑 남작의 외침만이 울렸다.

흥분하여 씩씩거리는 남작과 달리 무무카는 지긋이 그를 내려다볼 뿐.

그제야 블랑은 아차 싶은 얼굴로 총사령관 레오의 눈치를 보았다. 바이스만의 영주인 총사령관의 앞이다. 이 자존심 싸움에 이겨 본들 득이 없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레오는 그의 언동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의 뜻을 잘 들었습니다. 서로 의견이 합치하지 않더라도 연합군의 승리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것이 내 역할이겠지요.”

레오의 얼굴에서 옅은 미소가 사라졌다. 동시에 지휘 막사 내부에 무형의 기운이 퍼졌다.

지금껏 부드러웠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걷히고 팽팽한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동시에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레오에게서 뿜어졌다.

“총사령관으로서 명령을 내리겠소. 바이스만은 일백 올빼미로 바위산을 넘어 요새를 돌파한다. 나머지 병력은 제국군, 반다이트, 메르윈, 베니에르를 주축으로 정면에서 요새를 공략하겠다. 정면 공격은 적의 이목을 끄는 것이 목적이니 무리하지 말고 병력을 보존해야 함을 명심하라!”

“알겠습니다!”

그 서슬 퍼런 명령에 지금껏 반대 의견을 내던 이들도 더 이상 군소리를 내지 못했다.

셋으로 나눈 제국군과 3대 백작가를 주축으로 각기 군소 영주의 병력과 용병을 붙여 비슷한 규모를 만들었다.

이렇게 예비대를 제외하고 오천의 병사들이 여섯 개 조로 나뉘었다.

이윽고 개전.

“세 시간 간격으로 교대하며 밤낮 없이 공격할 것이다.”

레오가 제국군을 이끌고 첫 번째 전투에 나섰다.

목적은 어디까지나 적의 이목을 끄는 것이니 무리한 공격으로 피해를 입어서는 아니 됨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바위산을 타고 올라라!”

와아아아아-!

제국군을 중심으로 한 첫 번째 공격이 시작되었다.

일천에 가까운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산을 오르자 요새의 방어군도 긴장감에 침을 삼켰다.

“숫자에 겁먹지 마라! 저들은 아직 이 요새의 무서움을 모른다!”

카마르 요새에서 삼십 년을 보낸 기사 유렌, 그가 성벽의 병사들을 독려했다.

화살은 충분히 비축되어 있으며 사방에서 돌과 바위를 공수할 수 있다. 성벽은 높고 단단하며 지형이 험해 웬만한 공성 병기는 접근하기도 힘들다.

그야말로 방어에 최적화된 요새였다.

끼익.

요새의 궁수들이 성벽에 기대어 화살을 메겼고.

“쏴라!”

유렌의 명령에 제국군의 머리 위로 화살 비가 쏟아졌다.

“엄폐하라! 방패를 들어라!”

산을 타던 병사들이 일제히 서로 몸을 붙이더니 방패로 머리 위를 가렸다.

미리 충분히 훈련한 듯 익숙한 움직임.

타다다다닥-!

사방에 화살이 떨어졌지만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방패 내려! 각 십인대는 엄폐를 중시하며 천천히 접근하라!”

첫 번째 공격을 무사히 막아 낸 병사들이 방패를 내리고는 다시 슬금슬금 요새에 접근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애초부터 요새 탈환은 본대의 역할이 아니었으니까.

“잘하고 있군.”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레오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총 여섯 조의 공격대. 세 시간씩 한 순번만 돌아도 열여덟 시간 동안 적을 괴롭힐 수 있다.

요새 성문을 두드리거나 벽을 오르는 등 직접적인 공략은 하지 않는다. 접근과 퇴각을 반복하며 신중한 모습만을 보일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적의 체력을 빼앗을 수 있을 테니.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적군도 이상함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되기 전에 별동대가 요새에 침투하는 것이 작전의 성패였다.

무무카가 이끄는 별동대는 본대의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움직였다.

“출발하겠다. 올빼미의 힘을 보여주자. 단 한 명의 낙오도 허락하지 않겠다.”

“악!”

무무카와 올빼미 일백.

거기에 슈니까지 합류한 별동대가 바위산을 타기 시작했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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