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119화 (119/127)

119. 카마르 요새 (2)

“이쪽인가?”

무무카가 레오에게 받은 지도를 보며 방향을 잡으면.

슈니는 바람처럼 달려 지형을 확인하며 길을 이끌었다.

[이 방향대로 나아가면 반드시 요새로 이어진다. 계획대로 움직이면 자정이 지날 무렵에 요새에 침투할 수 있을 거야.]

레오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믿고 따를 뿐이다.

후욱-!

무무카는 거친 숨을 토해가며 앞서서 별동대를 이끌었다.

바위로 이루어진 암벽 지대를 오르고 낭떠러지 위를 걸었다.

체력은 둘째 치고 집중력이 가장 중요했다. 까딱 한눈을 팔았다가는 그대로 떨어져 뼈도 못 추릴 곳이었으니.

오전에 출발하여 쉼 없이 움직였으나 벌써 늦은 오후가 되었다.

다행히 몬스터와 교전은 없었다. 잡스러운 놈들은 슈니를 보자마자 꽁무니를 뺐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저 지도를 보며 나아갈 뿐.

투두둑.

무무카의 발아래로 작은 돌덩이가 굴러떨어진다.

수 시간째 칼날 같은 절벽을 옆에 두고 발 디딜 곳조차 찾기 힘든 경로로 이동했다.

도저히 지날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 않는 험지. 웬만한 몬스터도 피해 갈 지형이었으니 누구도 제국군이 이 경로를 이용해 요새를 공략할 거라고는 상상 못할 터였다.

해가 떨어지기 직전이 되어서야 절벽을 통과했다. 구릉 너머 짧은 숲이 보였다.

지도에 표시된 두 번째 포인트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슈니가 무언가 눈치챈 듯 귀를 쫑긋 세웠다.

“왜 그러지?”

바람처럼 뛰어 언덕을 넘어가는 슈니.

무무카는 올빼미들에게 잠시 대기하라 손짓한 후 슈니를 따라 달렸다. 발트란을 포함한 선임 올빼미 몇이 따라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크르르륵-!

반대편 언덕 아래에 거대한 트롤이 보였다.

막 사냥을 끝낸 듯 짐승을 뜯어 먹는 중이었다.

“트롤이군.”

“몬스터가 이쪽에서 접근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군요.”

무무카의 곁에서 발트란이 말을 보탰다.

트롤은 영역 본능이 특히나 강한 몬스터다. 같은 트롤끼리도 영역이 겹치면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러니 웬만한 몬스터는 이쪽에 얼씬도 안했으리라.

“트롤 영역을 가로지르면 요새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를 것이라 했다.”

레오는 트롤의 영역을 미리 알렸다.

그것은 길을 제대로 찾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 거의 다 왔다는 뜻이군요.”

발트란도 무무카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오러를 쓰지 못하는 일반 병사들에게 트롤은 무시무시한 몬스터이지만 무무카가 함께 있다. 악마가 된 켈시온에게도 밀리지 않던 대장이다.

그런 대장이 고작 트롤 때문에 발목 잡힐 리 없다.

“예전에 대장은 맨손으로 트롤의 머리를 부수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무무카의 무용은 올빼미들의 자랑이기도 하다.

괴력을 자랑하는 트롤을, 오로지 완력만으로 부수었다는 무무카의 무용담은 올빼미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했다.

“그랬지. 직접 보고 싶은가?”

“다들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발트란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난다.

뒤따라온 몇몇 선임 올빼미들도 마찬가지로 눈을 빛냈다.

“못 보여 줄 것도 없지.”

어차피 트롤의 영역을 통과해야 한다. 이동 중에 맞닥뜨리는 것보다 이렇게 먼저 발견한 상황이 훨씬 나았다.

무무카는 허리에 찬 대도를 바닥에 두고 너클도 없는 맨손으로 성큼성큼 산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시오프 산맥의 아랫마을에서 트롤과 싸웠던 것이 작년 이맘 때였던가.’

문득 작년 일이 생각났다. 당시 독화살에 맞은 트롤을 상대했지만 꽤나 팽팽했다.

얼마나 더 성장했을까.

그 생각에 조금 기대도 되었다.

크륵-?

식사를 하던 트롤이 무무카를 발견하고는 거친 숨을 토했다.

3미터는 훌쩍 넘는 거체와 꿈틀거리는 근육. 전신에 훈장처럼 새겨진 자잘한 흉터는 놈이 이 영역의 패자라는 증거였다.

“식사 중에 미안하군. 길을 비켜 줘야겠다.”

웬만한 이들이라면 오금이 저려 몸이 굳었을 광경이었으나 무무카는 담담히 오러를 끌어 올렸다.

지난 켈시온과의 전투는 그를 한층 성장시켰다. 일족의 오랜 혼령들 덕분에 오러를 담을 그릇은 한층 깊고 거대해졌으며, 한계를 경험한 육체도 더욱 단단해졌다.

트롤 따위는 이미 무무카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크아아악-!

트롤은 뼈째로 씹던 고깃덩이를 퉤 뱉었다.

비약적으로 발달한 상체를 무무카 쪽으로 향하며 피딱지가 엉겨 붙은 양손을 쥐었다 폈다.

“곰이었군.’

트롤이 먹던 짐승은 곰이었다.

그것도 붉은 털이 섞여 곰 중에 가장 포악하다 알려진 레드 베어. 목이 길게 뽑힌 것을 보니 저 커다란 손에 단번에 목뼈가 부서진 모양이다.

꿀꺽.

올빼미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들을 지켜보았다.

그들 모두 무무카의 승리 자체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저 과연 어떤 싸움을 볼 수 있을지, 그것만이 관심이다.

크아아아아-!

침입자를 향한 트롤의 괴성이 숲을 뒤흔들었다.

동시에 무무카의 눈이 푸르게 빛나는가 싶더니 그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어?”

“품 안이다!”

무무카를 시야에서 놓친 어느 올빼미에게 발트란이 답했다.

그 말처럼 무무카는 이미 트롤의 긴 팔을 피해 품 안으로 돌진해 있었다.

옅은 미소를 띠는 무무카.

당황하여 커지는 트롤의 눈동자.

쿠엑-!

고통 가득한 비명과 함께 트롤의 허리가 구부러졌다.

무무카의 손이 지난 트롤의 옆구리가 너덜너덜하다. 녀석은 흘러내리는 창자를 부여 쥐며 고통스러운 숨을 토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동자가 무무카의 푸른 눈을 마주했다. 짐승의 노란 눈동자에 고통과 공포가 가득 물들었다.

“금방 편하게 해 주마.”

그 눈에 웨어 울프의 주먹이 한가득 담겼다.

퍼석-!

머리가 사라진 트롤의 거체가 쓰러졌다.

순간 기습 작전조차 잊었는지 올빼미 몇몇이 자신도 모르게 환호를 내지르려다 제 입을 막기도 했다.

“역시 대장이야!”

흥분한 올빼미들이 우르르 달려 내려왔다.

머리가 사라진 트롤을 바라보던 무무카는 무던히 고개를 돌려 올빼미들을 맞이했다.

말 그대로 한 주먹 거리.

불과 일 년 만에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하겠다. 숲을 가로지르면 목적지는 금방이겠군.”

하늘을 바라본 무무카는 달의 위치를 확인했다.

달이 가장 높은 곳에 뜨기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 * *

쉬익- 쉭-!

쉴 새 없이 화살이 날아들었고.

틱, 틱.

방패나 바위에 맞아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반복됐다.

“이놈들! 하루 종일 뭣들 하는 게냐!”

유렌은 성벽 위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벌써 열두 시간 넘게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제국 연합군은 제대로 된 공격은 해 오지 않았다. 그저 사정거리를 넘나들며 계속해서 아군의 진을 뺄 뿐이었다.

“이런 기개 없는 놈들 같으니! 그러고도 네놈들이 불알 달린 사내놈이냐! 제국도 이제 갈 데까지 간 모양이구나!”

성벽 위로 몸을 드러내며 욕을 내뱉어도 적은 절대 달려들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것을 신중함이라 여겼지만 이제는 아니다.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다.’

감각은 그렇게 외치고 있으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집히는 것이 없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군의 체력과 정신력을 소모하기 위한 차륜전이라 여겼다. 그러니 이쪽도 병사들의 휴식 시간을 분배하며 체력을 보존하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다른 속내가 의심되었다.

‘도대체 뭘 기다리고 있는 거지?’

그 찜찜함이 가신 것은 그로부터 몇 시간이 더 지나서였다.

요새 내부에 화광 한줄기가 피어나는 듯싶더니.

“불이야!”

어느 병사의 외침을 기점으로, 순식간에 요새 곳곳에서 불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적이다! 제국군이 요새에 침입했다!”

“젠장! 어째서 괴물이 여기에…!”

어느새 요새에 침투한 무무카와 올빼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 초소와 창고에 불을 지르며 빠르게 요새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질렀다.

전투 중인 북쪽 성벽 이외에는 휴식하는 병사들이 산개되어 있었기에 갑자기 들이닥친 올빼미들을 당해 낼 수 없었다. 더욱이 선두에서 무무카와 슈니가 거칠게 휘저으니 더욱 그랬다.

“이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잠시 지휘 초소에서 휴식을 취하던 넬슨 자작이 빠르게 병사를 모아 반격했으나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로잡혔다.

3서클 초입 마법 수준으로 상대하기에 무무카는 너무나도 버거웠다.

마지막으로 북쪽 성벽.

“네 주인을 살리고 싶다면 항복하라.”

“으으으…!”

수장이 잡힌 순간 전투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

사로잡힌 넬슨 자작을 확인한 노기사 유렌은 참담한 얼굴로 검을 내던졌다.

끼이이익-!

얼마 안 가 성문이 열리고 레오를 필두로 제국 연합군이 입성했다.

남부의 관문 카마르 요새가 제국 연합군의 수중에 떨어진 순간이었다.

* * *

제국 연합군에 요새를 점령했다는 소식은 금방 전해졌다.

“이리 쉽게 뚫리다니…!”

요크 후작은 허망하게 되뇌었다.

넬슨 자작만으로 제국 연합군을 막아 내리라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나 예상과 달리 너무나 빨리 무너졌다.

치열한 전투를 기대하고 성벽 인근 곳곳에 준비한 영혼석도 전혀 회수하지 못했다. 이래서는 계획했던 공물에 차질이 생길 것이 뻔했다.

“놈들은 어찌하고 있느냐?”

“요새를 점령한 지 이틀이 지났으나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재정비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넬슨 자작령과 가까이 붙어 있던 그랜트 자작이 답했다.

그랜트 자작도 넬슨 자작과 마찬가지로 아카데미에서 아들을 희생당했다. 그 역시 계약으로 묶여 후작에게 거역하지 못하는 몸이었다.

“시간이 없다. 놈들을 끌어내야 한다.”

요크 후작은 초조하게 말했다.

아비엘에게 문제가 생긴 이후, 악마 게르베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다행히 준비하던 그릇이 사라진 것은 추궁하지 않았지만 부족한 공물을 최대한 빨리 채워야 했다.

마냥 기다릴 수 없는 상황. 오히려 급한 것은 요크 후작 쪽이 되었다.

“그랜트 자작, 다리안 남작. 두 사람은 요새를 수복하고 적을 밀어내라! 당장 채비하여 출병할 것을 명한다!”

두 사람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제 난공불락의 카마르 요새는 제국 연합군이 점령했다. 그들만으로 요새를 수복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그것을 모르는 요크 후작이 아닐 터.

다른 속내가 있다는 것쯤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들의 병력을 희생해 영혼석을 채우려는 것이 후작의 목적.

그럼에도 그랜트 자작과 다리안 남작은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다.

회의를 끝낸 요크 후작은 악마의 제단 앞에서 얼마 채워지지 않은 영혼석을 바쳤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충분한 공물을 준비하겠나이다.”

[도래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릇은 어찌 되었느냐?]

요크 후작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미 거짓을 고할 수 없게 된 요크는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열었다.

“송구하오나 준비하던 그릇을 도중에 빼앗겼나이다. 최대한 빨리 그릇을 되찾을 터이니 부디 노여워 마시옵소서….”

[흠….]

짧은 탄식 이후 악마는 한참이나 침묵했다.

요크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반드시 그릇을 다시 찾겠나이다! 제가 책임지고 도래의 날에 차질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믿어도 되겠느냐?]

“무, 물론입니다. 놈들도 그릇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반드시…!”

[그럴 필요 없다.]

“…예?”

요크가 힘 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릇은 악마의 본래 힘을 손실 없이 인간계에 가져오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 중요성은 두 번 설명할 필요도 없다.

[걱정할 것 없다는 말이다. 내가 마련한 그릇이 하나 더 있으니.]

“정말이십니까?”

창백했던 요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직접 준비하던 그릇이 따로 있었다니! 그 안도감에 저도 모르게 엎드렸던 상체를 일으켰다.

[허나 그것을 사용하는 데에는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를 돕겠느냐?]

“물론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입니다!”

요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이번 도래의 날을 맞추지 못하면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이미 제국과 전쟁까지 벌인 상황에서 무조건 이번 기회를 잡아야만 했다.

악마의 부활만 성공한다면 아슐렌 제국은 물론 전 대륙의 패자가 될 수 있으리라!

[그럼 되었다. 방금 대답으로 계약은 성립되었으니.]

“…무슨 말씀이신지?”

[너 또한 좋은 그릇이라는 의미이다.]

요크는 고개를 갸웃하며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악마의 말뜻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린 탓이다.

그러든 말든 제단에 놓인 악마의 상에서는 검은 마기가 꾸물꾸물 피어나더니 요크 후작의 코와 입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이런 법이…!”

화들짝 놀란 요크 후작이 손을 휘저으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이미 몸의 통제권이 사라지고 있었다.

몸은 젖은 솜처럼 무거워 움직이지 않고 정신도 점차 몽롱하다. 스스로 다섯 개의 뿔을 가진 악마였으나 그 자체가 악마 게르베의 그릇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받아들이면 되느니라, 흐흐흐흐흐…!]

악마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어두운 공간을 울렸다.

그것이 요크 후작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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