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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121화 (121/127)

121. 악마 게르베 (2)

퍼버버버벙-!

뜨거운 화염과 폭발이 대지를 수놓았다. 덱스의 마법이다.

그 여파에 사방에서 띠처럼 죄어오던 마물 무리가 혼란에 빠졌다.

강한 불길이 마물의 진군 방향을 강제로 비틀었고, 그것은 비교적 고른 두께였던 포위망에 순간적인 변화를 불러 왔다.

쉬이이익-!

뒤이어 화염 화살 하나가 세차게 허공을 날았다.

마물의 포위망 중 가장 약한 방향을 알리는 신호였다.

“가자-!”

동시에 성벽 아래에서 대기하던 레오가 슈니의 목덜미를 당겼다.

둘의 신형이 탄환처럼 쏘아져 나갔다.

[게르베만 잡으면 끝나는 싸움입니다. 내가 직접 놈을 찾아 목을 딸 때까지만 이 요새에 기대 마물의 북진을 막으십시오.]

회귀 전에 그랬듯, 또한 지난 날 켈시온이 그랬듯.

레오는 악마가 차원문을 열 것이라 확신했다.

그렇다면 카마르 요새라는 거점에서 방어전을 벌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제한된 병력과 보급으로 끝없이 늘어나는 마물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답은 단기 결전이었다.

차원문이 존재하는 이상 남부 대륙의 마물은 끝없이 늘어날 텐데, 그저 요새에서 방어만 굳히고 있다가는 게르베의 힘만 키워 주는 꼴이 된다.

어찌 되었든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이쪽에서 게르베를 잡으러 간다.

‘설마하니 이 정도로 늘어난 마물을 뚫고 역으로 공격하리라고는 예상 못 하겠지.’

슈니는 한달음에 달려 나갔다. 덕분에 마물과 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검을 물결과 조우하기 직전 슈니는 힘차게 뒷발을 뻗으며 길게 뛰었다.

“잡스러운 놈들이 어디를!”

한 손으로 슈니의 목덜미를 쥔 레오가 지상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예기를 담은 오러의 검풍에 허공을 바라보던 마물 무리가 일순 흩어졌다.

텅 비어 버린 지면을 딛고 슈니가 다시 힘차게 뛰어 올랐다. 또다시 수많은 마물의 손톱이 허공을 휘저었지만 슈니에게 닿지 못했다.

슈니는 레오가 만든 빈 공간을 활용하며 곡예 부리듯 날아올랐다. 그렇게 몇 번의 도약으로 포위망을 돌파했다.

레오는 뒤로 고개를 돌려 멀어지는 요새를 바라보았다.

크고 작은 마물이 금세 요새 성벽에 달라붙는 모습이 보인다. 곧 요새로부터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

‘다들 버텨 줘라.’

회귀 전과 다르다.

클라인, 덱스, 무무카, 패트릭.

지금 저 요새를 지키는 이들은 회귀 전보다 훨씬 강하다. 그러니 지금은 그들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정면 방향에 강한 마기예요. 그놈이 틀림없어요.]

게르베의 마기를 확신하는 여신의 목소리.

‘그래, 아마도 저 성인 것 같군.’

레오가 향하는 방향에 요크 후작의 성이 높게 솟아 있었다.

* * *

멀리서 본 카마르 요새의 성벽은 새까만 색으로 보였다.

검은 마물 무리가 성벽에 들러붙어 기어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놈도 기어오르지 못하게 막아!”

“겁먹지 마라! 찔러서 떨어트려!”

마물이라 해도 수직으로 가파른 성벽을 오르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병사들은 돌무더기를 떨어뜨리며 마물의 진로를 방해했다.

키에에에엑-!

성벽에 달라붙은 마물 중 열에 아홉은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가까스로 성벽 위로 고개를 들이밀어도 손쉬운 표적이 될 뿐이었다.

하지만 밀려드는 마물이 늘수록 상황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놈들이 언덕을 쌓는다!”

밀물처럼 밀려온 마물이 제 몸을 성벽 앞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놈들이 따로 마련한 작전은 아니었다. 그저 앞에 있던 놈들이 밀려 발판이 된 것뿐. 그럼에도 효과는 충분했다.

성벽 저 아래에 있던 놈들이 점차 높아지자 성벽 위 병사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 어쩌지? 이대로 성벽을 넘으면 놈들을 막을 수 없어!”

“이쪽을 도와줘! 놈들이 넘어오려 한다!”

한 병사가 외쳤다.

그의 말대로 다른 쪽보다 확연히 마물이 가깝다. 놈들은 서로를 밟고 올라서며 무서운 기세로 성벽 위에 가까워졌다.

“잠시 비켜서라.”

“공자님!”

남벽을 지키는 클라인 반다이트.

검은 물결처럼 밀려드는 마물 무리가 그의 시야에 담겼다.

‘얼마나 통할까.’

그간 영지에서 수련에 매진했다.

더 높은 경지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지금 수준에 머무른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 섬세하고 자유롭게 오러를 다루어야 한다. 모든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았다. 그렇게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화르르륵-!

지체없이 내지른 일검에 화염이 몰아쳤다.

성벽 가장 높은 곳에 손을 걸치려던 마물이 그대로 재가 되어 바스라졌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오러의 불꽃에 지워지듯 마물의 존재가 사라졌다.

하지만 아주 얇은 한 겹을 벗겨냈을 뿐이다. 여전히 그 뒤로 검은 형체가 드글드글하게 움직였다.

이어지는 두 번째 검격.

날카로운 열화(烈火)가 성벽 아래 쌓아 올린 마물의 언덕 한가운데를 찔렀다.

강제로 응축시킨 오러의 불꽃은 마물의 언덕 심부까지 파고들었다. 수십 겹의 마물을 관통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농축된 강한 열기였다.

“터져라.”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서.

클라인은 응축된 열기를 해방했다.

콰앙!

성벽 앞에서 넘실거리던 마물의 언덕이 크게 흔들리더니 우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안쪽에서 일어난 강한 폭발과 그로 인해 발행한 공동(空洞)이 원인이었다.

단순히 오러의 불꽃을 방사했던 첫 일격과는 완전히 다르다.

손을 떠난 오러를 끝까지 제어하여 마지막 순간에 터트린 것.

그간의 수련을 통해 새로운 얻은 기술이었다.

위기를 맞는 듯했던 남벽에 환호성이 울렸다.

“저기! 커다란 놈이 동벽으로 가고 있습니다!”

어느 병사가 외쳤다.

마물의 크기와 형태가 제각각이라지만 크다 해도 대부분 2-3미터 수준이다.

그 가운데 눈에 띄게 커다란 한 개체가 있었다.

네발짐승 형태의 육중한 몸과 길쭉한 주둥이가 두드러지는 마물.

어깨 높이는 다른 마물과 비슷했지만 몸길이가 족히 십수 미터는 되어 보였다.

당연히 동벽을 지키는 무무카와 줄리앙도 놈의 접근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냥 마물이 아니다. 악마로군.”

무무카는 금방 놈의 정체를 알아봤다

뿔 하나를 가진 최하급 악마라 해도 일반 마물과는 풍기는 마기의 질이 다르다. 이미 켈시온과 드잡이를 해본 무무카는 그 차이를 금방 구별했다.

“저 커다란 녀석이 악마란 말이야?”

“줄리앙, 너는 이곳을 지켜라. 내가 가서 놈을 박살 내고 오겠다.”

“저기로 가겠다고? 너무 위험한 생각이야!”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벽 아래는 마물로 가득하다.

성 밖으로 나가 직접 놈과 싸운다는 것은 줄리앙에게 너무도 무모하게 들렸다.

“그게 최선이다. 저 놈이 접근하면 이 성벽이 무사할 수 있을 것 같나?”

무무카의 대답에 줄리앙은 뒤통수를 맞은 듯 했다.

그 말이 맞았다. 저 육중해 보이는 몸과 긴 꼬리로 성벽을 타격한다면 아무리 두터운 돌로 쌓은 석벽이라 해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 뻔했다.

그리고 성벽이 무너지는 순간 이 요새는 끝이다.

“다녀오마.”

무무카는 대도를 집어 들고 망설임 없이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아닛!”

곁에 있던 블랑 남작과 몬젤도 화들짝 놀라 외쳤다.

키에에엑-!

마물의 이빨과 손톱이 위에서 떨어지는 무무카를 향했다.

“흐읍!”

짧게 숨을 들이켠 무무카가 공중에서 대도를 휘두르자 마물로 가득한 검은 물결이 뒤집어지며 메마른 지면이 드러났다.

쿵!

지면에 무사히 안착한 무무카.

그의 주위로 금방 마물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꺼져라.”

무무카는 비껴든 대도를 휘두르며 곧바로 질주했다.

날로 베는 것이 아니라 면으로 후려치며 악마에게 향하는 길을 뚫었다.

퍼억, 퍽-!

무무카의 앞을 가로막던 마물들이 찢기고 으깨졌다.

한 번의 휘두름에 마물 서넛이 종이 인형처럼 흩어지는 비현실적인 광경.

성벽 위의 사람들도 잠시 손을 멈추고 멍하니 그것을 바라볼 정도였다.

“저 무슨 말도 안 되는 힘이란 말인가?”

특히 무무카를 무시했던 블랑 남작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 자신도 검을 수련했기에 지금 무무카가 보이는 용력이 얼마나 상식 밖인지 느낄 수 있다.

소드 엑스퍼트 상급. 아니 최상급이라 칭해도 무리 없을 무용이었으니까.

“아이고, 오랜만에 대장이 흥분한 모습을 보네.”

“하긴 지난번 그 트롤은 한주먹 거리도 아니었으니 스트레스가 좀 쌓였을 거야.”

바이스만 병사들의 태연한 목소리가 블랑 남작의 귀에 들어왔다.

무무카에 대한 걱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대화다. 저들이 보기에 놀랍지도 않다는 말인가?

‘설마 저 모습도 전력이 아니라고?’

블랑 남작은 결국 병사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크흠, 너희들이 말하는 대장이 저 웨어울프를 말하는 것이 맞느냐?”

“당신 뭐요? 우리 대장한테 방금 뭐라 했소? 저 웨어울프?”

바이스만의 선임 올빼미, 발트란이 고리눈을 하며 블랑 남작에게 되물었다.

절대로 일개 병사가 귀족에게 할 수 있는 말투가 아니었다.

“뭐라고 했냐니까?”

발트란뿐만 아니다. 주변의 바이스만 병사들 모두가 사나운 기세를 뿜어냈다.

상관을 모욕한 귀족 하나를 성벽 아래로 던지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였다.

“아, 아니다. 실언을 했다. 그저 기사 무무카 경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였을 뿐이다.”

다행이 블랑 남작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들의 흉흉한 기세에 금방 처지를 깨닫고 말을 정정했다.

“흥, 우리 대장의 실력이라…. 저걸 보고도 모르겠소?”

발트란이 아래를 턱짓했다.

무무카를 가로막은 수많은 마물은 그의 발목조차 잡지 못했다. 이미 그는 거대 도마뱀을 닮은 악마의 앞에 도달해 있었다.

카아아악-!

커다란 입을 쩍 벌리는 악마.

무무카를 향한 붉은 눈동자는 마치 미물을 내려다보는 듯 했다.

“흐으읍!”

무무카는 망설이지 않고 악마의 입으로 달려들었다.

순간 그의 몸이 붉게 빛나는가 싶더니 한층 크게 부풀었다.

웨어울프 일족 고대 전사의 힘을 빌리는 강신(降神).

완력에 집중된 그의 힘을 한 차원 끌어 올리는 일족의 비전 기술이다.

“…?”

악마의 붉은 눈동자에 당혹이 스쳤다.

무무카가 날카로운 이빨로 위협하는 악마의 주둥이를 잡아 멈췄기 때문에.

한 입 거리도 안 될 것 같은 작은 존재에게 움직임을 봉쇄당한 악마.

이리저리 고개를 비틀어 보려 했으나 무무카의 손아귀에 잡힌 주둥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정도군.”

악마의 힘을 가늠한 무무카가 이빨을 드러내며 미소 지었다.

뿔 셋 악마의 힘은 예상한 대로 대단치 않았다. 일시적으로 격을 높였던 켈시온에 비하면 잔챙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와그작-!

소음 가득한 전장 한가운데 무엇인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성벽 위 모두의 눈동자가 경악이 물들었다. 거대한 악마의 아래턱이 뽑혀 나가는 광경을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었기에.

“흐어억!”

블랑 남작과 몬젤은 저도 모르게 제 턱을 어루만졌다. 몸이 달달달 떨렸다.

“대장 만세!”

“역시 악마 따위에 당할 우리 대장이 아니지!”

악마의 아래턱을 부순 무무카는 놈의 긴 주둥이 위로 곧바로 뛰어올랐다.

악마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몸을 흔들었다. 주변 마물들은 악마의 거대한 발과 꼬리에 밟히고 치였다.

콰직-!

이어서 악마의 뿔이 뽑혀 나갔다.

뿔이 사라진 자리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나는 듯 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악마의 몸부림이 멎었다. 이어서 육중한 몸뚱이가 허물어지듯 내려앉았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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