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125화 (125/127)

125. 악마 게르베 (6)

처음 카마르 요새에 몰려든 것들은 남부 대륙에 퍼진 마물 전체 중 일부에 불과했다.

놈들은 후작의 성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 나가 남부 대륙 전체를 휩쓸었다. 지금 나타난 놈들은 처음부터 요새를 향하지 않았던 무리가 뒤늦게 게르베의 의지에 감응하여 합세한 것뿐이었다.

“…이젠 다 틀렸어. 끝이야. 여기에서 죽는구나.”

몬젤도 덜덜 떨며 주저앉았다.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은 없을 것이라 여기면서도 내심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저 멀리서 밀물처럼 몰려오는 마물의 대군을 보니 맥이 탁 풀려 버린 것이다.

넘실대는 화염 장벽도 잠시 마물의 진격을 늦출 뿐이다. 저 불꽃이 사그라들면 남은 것은 숫자도 짐작되지도 않을 정도의 마물의 대군과 벌이는 마지막 백병전일 것이다.

…그 결말은 고민할 것도 없이 뻔했다.

“내 부모님은 중부에 있어.”

귀로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인지한 덱스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운 좋게 수도에 멋진 이층집을 준비해 드렸지. 수도로 이사 오는 날, 그렇게 기뻐하는 부모님의 얼굴은 처음 봤어.”

몬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덱스는 말을 이었다.

“엄마는 일 층에서 소소하게 파이를 만들어 팔았지. 생각보다 장사는 잘 안 되나 봐. 사실 나는 진즉에 알았지, 우리 엄마가 요리에 소질이 없다는 걸.”

“….”

말끝에 킥킥거리며 웃는 덱스.

몬젤은 조용히 그 이야기를 들었다.

홀로 악마 마법사를 무찔렀으며 지금껏 마물의 대군을 막아 내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마법사.

그가 없었다면 이미 이 요새는 무너졌을 것이다. 그것은 마법에 무지한 자신이 보아도 알 정도였다.

그렇기에 몬젤은 어쩌면 이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너무 행복해하더라고. 장사가 잘되고 못 되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나 봐. 어쨌든 엄마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

“…그런가.”

“몬젤이라고 했지? 당신은 지켜야 할 것이 있나?”

“….”

대답은 금방 들려오지 않았다.

그동안 흐릿했던 덱스의 시야가 점차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또렷해진 눈으로 고개를 들자 멋들어진 옷을 입고 울음을 삼키고 있는 또래의 남자가 있었다.

“부축해 줘서 고맙다.”

덱스는 부스스 일어섰다.

“방패를 세워라! 전열을 정비하라! 절대 이 요새를 내줘서는 안 된다!”

멀리서 클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화염 장벽 안쪽의 마물을 모두 정리한 모양이다. 얼마 후 장벽이 사라지면 다시 한번 놈들과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

남은 마력을 모두 쏟아붓긴 했는데 저 장벽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아마 길어야 몇 분 내외겠지.

“바이스만의 병사들아! 마지막까지 무기를 놓지 마라! 오늘 살아남는 녀석들이야말로 진정한 올빼미가 되는 것이다!”

“아악-!”

무무카의 우렁찬 음성과 익숙한 대답 소리도 들린다.

2차 방어선으로 퇴각을 언급하는 지휘관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기대하기 힘든 희망이었을지 모른다.

병사들도 진작 눈치챘을 것이다. 저 화염 장벽이 사라진 후의 전투가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것을.

크르르륵-!

넘실대던 화염 장벽의 키가 점차 낮아졌다.

날름대는 불꽃 너머 진격을 기다리는 마물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불꽃이 더욱 잦아들자 잔불이 남은 언덕 위로 마물의 진격이 재개되었다.

후방에서 몰려드는 지원군 덕분인지 그 기세는 더욱 매서웠다.

“네놈들은 절대 이곳을 지날 수 없다!”

콰과과과광-!

클라인이 일으킨 오러가 폭발을 일으켰다.

샛노란 화염이 마물을 꿰뚫는가 싶더니 중심부에서 화려하게 폭발했다.

지반이 움푹 내려앉고 폭사한 마물의 잔해가 비처럼 떨어졌다. 폭발의 충격에 놈들의 전진이 주춤하는 듯했으나 그 또한 잠시였다.

“흐아압-!”

무무카도 붉은 안광을 뿌리며 가장 전면에서 마물과 대치했다.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몸. 또다시 옛 혼령의 힘을 빌었다.

오러가 담긴 대도의 검풍에 마물 무리는 잡풀처럼 베여 사라졌다. 하지만 그 자리에 금방 새로운 마물이 들어찼다. 마치 물을 베는 것처럼, 아무리 베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진형을 유지해라! 동료를 믿고 버텨라!”

방패를 땅에 박아 넣고 마물의 진격을 버텨 내는 병사들.

패트릭은 그들과 함께였다.

한 손으로 방패를 잡고 반대 손으로 부지런히 창을 놀려 마물을 찔렀다.

바람구멍이 난 마물이 제자리에서 연기로 변해 사그라졌지만 줄어드는 기미는 없다.

방패가 밀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를 악물며 버티고 있지만 이대로 놈들의 진격을 막아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파이어 볼.”

줄리앙의 의식도 한계에 달했다.

머리가 깨질 듯 울리고 내장이 진탕된 듯 울렁거렸다.

이미 마력 고갈 상태다. 용케 기절하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바닥 난 마력을 끌어 모아 던진 파이어 볼은 미미한 폭발과 함께 금방 사그라들었다. 마치 거대한 바닷물을 한 손으로 떠낸 기분이었다.

줄리앙은 눈앞에 닥쳐오는 검은 바다를 보며 의식을 잃어 갔다.

“후우….”

그 광경을 바라보던 덱스는 이내 결심한 듯 주먹을 들어 가슴을 때렸다.

마지막 패치, 네 번째 회복제가 주입된다. 고농도의 마나가 서클을 통과하며 빈 서클을 다시 채웠다.

순간적으로 의식을 놓칠 뻔했으나 혀를 씹으며 그 고통으로 버텨 냈다.

퉤.

비릿한 핏물을 뱉어 내며 몸을 일으켰다.

고통이 느껴진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뜻이다.

일단 마력을 채우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사용하는 것도 버틸 수 있을까?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몰랐다.

“이, 이봐…!”

몬젤은 몸을 일으킨 덱스의 곁에서 안절부절못했다.

방금 전까지 당장 죽을 듯하던 마법사가 아니었던가.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그가 또다시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뒤는 돌이킬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강하게 일었다.

“몬젤이라고 했지?”

“그, 그래.”

“혹시 내가 죽으면 말이야. 내 친구한테 말 좀 전해 줄래. 끝까지 같이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몬젤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 마법사는 자신이 죽을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히려 거의 확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왜 멈추지 않는다는 말인가.

“…알겠다. 케링턴가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전해 주겠다.”

몬젤은 눈물이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문의 명예는 함부로 거론하는 것이 아니라 배웠다. 이 마법사가 누군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껏 곁에서 본 그의 모습은 존경과 존중을 바치기에 충분했다.

“당신과 친구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겠나? 반드시 찾아서 당신의 뜻을 전하겠다.”

“아, 나는 덱스, 그리고 친구는 찾기 어렵지 않을 거야. 레오라고, 바이스만의 영주를 하는 놈이거든.”

바이스만이라는 말에 몬젤은 눈을 끔뻑거렸다.

잘못 들었나?

바이스만의 영주라면 바로 그…?

“…레오 바이스만 남작? 이 연합군의 총사령관을 말하는 건가?”

“어, 맞아.”

몬젤은 더 놀랄 기운도 없었다.

그럼 이 마법사도 혹시 아카데미의…? 황립 아카데미가 그렇게 수준이 놓은 곳이었나?

레오와 그의 기사 무무카가 떠올랐다. 거기에 이 마법사까지 더해 보니 자신이 아카데미 시험에 떨어진 것이 납득되었다.

입을 벌린 채 몸이 굳어 버린 몬젤.

그러거나 말거나 덱스의 눈은 전장을 향했다.

이왕 마지막 마법이라면 최대한 광범위하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마법이 좋겠지.

…화염의 대지를 만드는 6서클 마법, 파이어 필드(Fire field)처럼.

‘어차피 마지막이라면 시도해 볼 만도 하잖아?’

메퀸토가 보인 파이어 필드의 잔상이 아직도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다.

히죽 웃으며 마력을 순환시키는 덱스.

심장의 고리가 삐걱대며 비명을 질렀다.

‘딱 한 번만 버텨 줘라.’

찢어질 듯한 심장의 고통을 참아 내며.

과부하된 서클에 다시 한번 마력을 순환시킨다.

서서히 회전하는 마력을 가속하며 마력 회로를 형성하려는 찰나.

두두두두두-!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웬만한 소음과 진동은 무시될 만한 전장이었지만 심상치 않은 흔들림이었다.

“가, 갑자기 뭐야? 지진인가?”

“저길 봐! 땅이 갈라지고 있어!”

지면이 크게 흔들리는가 싶더니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쩌저적-!

마물이 진격해 오던 대지 곳곳이 찢어지며 요동쳤다.

멀쩡하던 대지가 갈라지면서 바닥도 보이지 않는 깊은 균열이 곳곳에 발생했다. 공교롭게도 그 균열은 대부분 성벽의 바로 앞쪽이었다.

크에에에엑-!

어느새 크게 벌어진 균열은 요새의 성벽과 마물을 멀리 떨어뜨렸다.

수많은 마물이 단말마를 내지르며 깊은 균열 속으로 사라졌다.

거대한 무리의 진군이 한순간에 멈출 수 있을 리 없다. 놈들은 밀고 밀리며 바닥도 보이지 않는 무저갱 속으로 끊임없이 낙하했다.

‘마법이다!’

덱스는 한눈에 알아봤다.

마법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지각 변동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 깊은 균열이 성벽 주위를 감싸듯 균일하게 발생할 리 없다.

그리고 그가 아는 한 이 정도 규모의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는 제국에서 단 한 명뿐이었다.

“저쪽을 봐! 마탑의 마법사들이다!”

“저건 마탑주의 깃발이야! 마탑주가 직접 나섰다!”

북쪽 하늘에서 수십 명의 인영이 가까워지고 있다.

마탑의 배틀 메이지들. 그 선두에는 마탑주 데르파가 있었다.

“이제 살았어! 우린 살았다고!”

“…그런가 보네.”

몬젤이 호들갑을 떨며 방방 뛰었다.

기운이 쭉 빠진 덱스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서서히 마력 순환을 멈추자 깨질 듯 비명을 내지르던 심장의 고리도 잠잠해졌다.

덱스는 뒤늦게 밀려드는 안도감과 피로감에 그대로 눈을 감았다.

기절해 버린 것이다.

한편 요새의 허공에 멈춘 데르파는 지상을 내려다보며 침음했다.

“세상이 끝난 듯한 광경이로구나….”

죽음의 대지.

상공에서 바라본 남부 대륙은 이미 폐허나 다름없었다.

마물이 쓸고 간 자리는 풀 한 포기도 살아남지 못했으니.

그 참상을 만든 존재가 이 카마르 요새를 넘었다면 중부 대륙도 머지않아 같은 꼴을 맞았을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그렇지요. 그 말씀대로입니다.”

데르파는 곁에 다가온 은발의 소녀, 유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수많은 마물이 아가리를 벌리고 포효하고 있다. 또한 진짜 적은 이들을 불러낸 그 악마일 것이다.

게르베.

스승 메퀸토의 원수.

스승의 마지막을 한시도 잊은 적 없다.

데르파는 굳은 얼굴로 마력을 섞은 음성을 방출했다.

“마탑주가 명한다. 1형 포격 마법 준비. 목표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어느새 일렬로 넓게 늘어선 마법사들에게 마탑주의 명령이 전해졌다.

서로의 상성을 죽이지 않는 화염, 전격, 바람의 1형 조합.

마탑주의 곁에 있던 유리아와 세실도 그들과 함께 마법을 준비했다.

“쏟아부어라. 전부 쓸어버릴 때까지.”

슈우우우우웅-!

상공에서 수십 개의 마법이 유성우처럼 떨어져 내렸다.

지상을 향하는 환한 빛줄기는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퍼버버버버버벙-!

마법사들의 쉴 새 없는 폭격.

크고 작은 폭발이 끝없이 이어졌다. 대지에는 폭발음과 마물의 비명만 울려 퍼졌다.

그렇게 죽여 대도 줄지 않던 마물 무리도 상공에서 떨어지는 마법 포격 앞에서는 그저 옴짝달싹 못하는 사냥감에 불과했다.

이윽고 수십 분 동안 이어진 마법 포격이 끝났을 때, 대지 위에 남은 마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회귀 용병은 아카데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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