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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화 (1/201)

❖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1화>

빌런&히어로

쇠창살 우리에 갇힌 검은 머리칼의 남자와 제 몸의 몇 배나 되는 그 철창을 한 손으로 들고 바다 위를 날아가는 금발의 여인.

“이봐, 히어로.”

“왜.”

“매번 날 어떻게 찾는 거냐? 정말 대단한걸.”

아마추어 배우처럼 어색하게 대사를 읊는 빌런의 말에 히어로는 주먹을 떨었다.

“네가 불렀잖아!”

“그랬나?”

낄낄.

사고 치는 빌런, 수습하는 히어로.

각성자가 주류를 이루는 현시대를 짧고 정확하게 표현한 문장이라 하겠다.

그런 사회에서 이 두 사람은 유독 자주 충돌하는 빌런과 히어로였다.

큰 사고가 벌어지면 슈퍼히어로 퀸이라 불리는 이 여성이 항상 호출되었고, 그런 사건의 배후에는 마치 수학의 공식처럼 반드시 이 남자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마냥 적대했으나 세월이 흐르자 친구도 적도 아닌 모호한 관계가 되었다.

“로맨. 네가 벌인 소동 때문에 미국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알아?”

“알지. 알고 한 건데.”

“하아…, 기업들 좀 내버려 둬.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어어? 목숨 걸고 사회의 종양을 덜어낸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면 섭하지.”

좁은 철창 안에서 용케도 편한 자세를 취한 그의 모습에 퀸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감옥에서도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을까?”

“못할 것도 없지.”

나는 빌런이다.

내 첫 기억은 외눈 고양이와의 치열한 싸움으로 시작한다. 이 구역의 쓰레기통을 두고 벌이는 생사를 건 결투.

나는 녀석의 노련한 냥펀치를 피하느라 계단에서 구르고 말았다.

그때 죽는구나 싶었지만, 누가 신고를 했는지 구급차가 와 나를 실어 갔다.

응급실에서 치료받은 후 보호자도 아는 사람도, 심지어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다는 내 말에 질색하던 간호사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난다.

병원은 나를 노동착취 전문 보육원에 떠넘겼다. 나는 거기서 세상의 악과 바닥을 봤다.

내게 사탕을 챙겨주던 누나가 옷이 헝클어진 채 원장의 방에서 나왔을 때. 결심했다.

치우자.

이 세상에는 쓰레기가 너무 많아. 누군가는 치워야 해.

더러운 것에 굳이 손대는 사람은 없다. 설령 곪아 썩더라도 남이 대신 칼질을 해 도려내 주길 바란다.

그래, 내가 해줄게. 대신, 아플 거야.

죽음을 각오하고 원장을 자살로 위장한 날. 나는 각성했다.

있는 돈 없는 돈 털어 스테이터스 칩을 사 몸에 박았다.

【특성 : 낭만주의자】

【슬롯1 : 그리스 미르토스 해변】

【슬롯2 : 없음】

내 능력은 단순하다.

진심으로 ‘낭만’을 느꼈다면, 그게 무엇이든 현실에 구현한다.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나 같은 시궁창 인생에 낭만이 있을 리가 있나. 이런 내 생각은 특성을 사용하는 순간 달라졌다.

“하.”

내 주변이 해변으로 변했다. 비록 고시원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지만 보드라운 모래와 지중해의 투명한 물살이 발가락 사이를 파고든 것이다.

기억한다. 수술실로 실려 갈 때 스쳐 지나간 TV에서 봤던 그 해안이다.

그때부터 나는 모든 프로젝트의 끝은 웃음으로 마무리했다. 지금 내가 한 행동이 슬롯에 기록될 낭만이길 바라며.

세상을 좀 먹는 쓰레기들을 끊임없이 치웠고, 이제 좀 볼만해졌다 싶을 때 즈음. 사람들은 나를 슈퍼빌런이라 불렀다.

신기하게도. 내가 부각되자 사람들은 나의 대척점에 있는 히어로를 찾기 시작했다.

그게 저 여자다.

“퀸.”

“왜.”

“예뻐서.”

“…흥. 또 수작질. 이번에는 안 속아.”

* * *

저는 히어로입니다.

역대 히어로 가문을 뽑으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명가의 늦둥이로 태어났어요.

오빠와 언니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인지, 기프트를 받았음에도 정치인과 파일럿으로 진로를 틀었답니다.

강요의 폐단을 자녀를 통해 학습한 아버지는 저에게 단 한 번도 히어로를 권하지 않으셨어요.

계기는 사람들의 웃음이었어요.

화재 속 요구조자를 발견하고 현장으로 뛰어들어 구했어요. 당사자와 부모가 제 손을 붙잡고 고맙다며 울고 웃을 때. 저는 히어로가 되기로 결심했답니다.

그날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께 있었던 일을 말하고 꾸중과 칭찬을 받던 도중, 빛이 저에게 쏟아졌어요.

각성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최고의 스테이터스 칩을 제게 이식했고요.

【특성 : 부유, 내구, 가속】

10억 명 중 한 명 태어난다는 트리플 기프트였어요.

생존 수단만 갖추면 우주에서도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부유, 어떤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내구, 충분한 거리나 공간만 주어지면 음속도 돌파하는 가속.

한때 히어로였던 아버지의 경험과 아카데미에서 익힌 기술이 몸에 익숙해질 무렵 사람들은 저를 히어로라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저 남자를 만났죠.

“와하하하!”

주변 민가의 일조량을 방해하는 기업의 상징물을 화려하게 터트리고는 폭소하는 빌런.

처음에는 제 특성에 취한 미치광이인 줄 알았어요.

폭발의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가 깔아둔 함정에 뛰어들었고, 뭔가 실수가 있었는지 둘 다 고립돼 버렸죠.

“당신은 왜 이런 짓을 하는 건가요!”

“너는 사람을 왜 구하나.”

“그야, 생명은 소중하니까요.”

“마찬가지다.”

이해할 수 없었어요.

‘테러나 다름없는 이 행위가 어떻게 같단 거지?’

어릴 적 순수했던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눈 앞에 있는 저 동년배의 빌런은 아주 속이 시꺼멓다고 여겼죠.

빌런은 자신이 원한 모든 것을 쟁취하고 떠났어요. 정말 분했어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에게 익숙해진 만큼, 그의 계획을 막아내는 경우도 점점 많아졌습니다.

“포기해.”

“내 사전에 그런 말은 없다. 으하하!”

다만, 그의 도주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서 결정적인 순간에 늘 놓쳤어요.

하지만 그것도 특성 무효화 장치가 나오면서 끝났습니다.

지금 제가 들고 있는 이 쇠창살 우리 안쪽으로는 무능력화 필드가 펼쳐져 있어요.

그래도 방심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번을 포함해서 그를 잡아들인 게 벌써 세 번째거든요. 이미 두 번이나 감옥에서 탈출했다는 거죠!

각성자 전용 감옥은 모든 공간이 그 장치로 덮여 있는데도 이 남자는 유령처럼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빠져나옵니다.

‘이번에도 탈출하겠지.’

이쯤 되면 고의로 감옥에 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목적지인 섬에 도착하자 수용소 소장이 직접 나왔습니다.

“또 보자. 퀸.”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로맨.”

참고로 로맨은 로맨티시스트를 말해요. 그의 특성명을 영어로 하면 그렇다고 하네요. 안 어울리죠?

* * *

“알지? 너 전에도 그 말 했던 거.”

“…….”

큭큭. 귀엽긴.

나는 퀸의 저 당황하는 모습이 좋다. 슈퍼히어로의 곤란한 표정이라니!

“닥쳐! 빌런 자식아. 이번에야말로 네놈 인생은 끝이다!”

소장이 쇠창살을 발로 걷어차고는 꺽꺽대며 정강이를 잡고 뛴다. 한심하긴.

“그러다 또 부서질라.”

“이익!”

나는 구속구를 찬 채 감옥섬 지하 깊숙한 곳에 홀로 감금되었다.

고개를 들어 저 하늘 어딘가를 날고 있을 그녀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퀸, 사실 거짓말이야.”

또 보자는 거.

내가 목표로 한 정화 작업은 이번 건으로 초과 달성했다. 처음에는 한국의 오물만 걷어내는 거였는데, 이거 파다 보니까 아시아 찍고 유럽, 아메리카로 연결되더라.

오늘 내가 터트린 기업은 부정 축재로 세계 경제를 제 입맛대로 쥐락펴락하던 놈들의 은밀한 은행이었다.

돈을 영원히 찾을 수 없게 된 것은 물론이고 그들이 자행한 더러운 짓거리들을 SNS에 풀었다. 지금쯤 혈안이 되어 나를 찾고 있겠지.

여기만큼 안전한 곳도 없다.

밥 나오지, 운동도 시켜줘. 운 좋으면 돌고래도 본다.

“나쁘지 않아.”

* * *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쾅!

간수가 들락날락하던 문이 박살 났다. 소리를 들어보니 문짝이 내 발치까지 굴러온 모양이다.

“누군진 몰라도 힘깨나 쓰는 양반이구먼, 그래. 그 남아도는 힘으로 이것도 좀 풀어줄래?”

입만 빼놓고 전신을 감은 구속구를 차고 있는 한, 나는 사지가 마비된 환자나 다름없다.

“정말 여기 있었구나.”

익숙한 목소리.

“…퀸?”

방금과 같은 둔탁한 소리가 내 머리 바로 뒤에서 들렸다. 어깨를 움찔하자 옆에서 녀석이 내 귀 옆에서 킥킥댄다.

오랜만에 벗는 구속구에 나는 해방감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일주일 전부터 간수 놈이 오질 않아서 말야. 자동으로 배급되는 알약만 넘기느라 고역이었, 너-”

“볼품없지?”

각성자는 각성하는 순간 세포의 재생 한계가 큰 폭으로 상승하므로 수명이 상당히 늘어난다.

10년.

그 정도는 이런 쌀쌀맞은 감옥에서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같은 각성자에게 10년은 길지 않은 시간이다.

적어도 한창때의 여성이 할머니가 될 정도의 기간은 절대 아니었다.

“으이그, 그러게 피부미용 좀 받지 그랬냐. 뭐든 어릴 때부터 챙겨야 오래가는 거야.”

풋, 아하하!

한참을 웃던 퀸은 하아, 숨을 길게 쉬더니.

“네가 있었어야 했어.”

자조하듯 중얼거렸다.

“네 손으로 잡아넣을 땐 언제고. 왜? 세상이 망하기라도 했어?”

녀석의 이마를 장난스레 콕 찌르자 퀸은 내 손을 잡고 강제로 일으켰다.

“응.”

“어?”

“외계인 침공.”

“농담하지 말고. …진짜?”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퀸.

퀸과 같은 잠재력 높은 각성자가 고작 10년 만에 이 정도로 노화가 진행됐다는 건, 특성을 개틀링 쏘듯 갈겨댔을 확률이 높다.

총열이 녹고 약실에서 탄이 폭발하는 데도 방아쇠를 당겼겠지.

자신의 한계가 어디인지는 특성을 사용하는 당사자가 가장 잘 안다. 그런데도….

또 쓰레기가 생겼나.

기본적으로 세상은 악하다. 무조건적인 아군은 없다. 필요에 따라 선을 추종하고 치켜세울 뿐.

“도와-”

녀석의 입술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쉿, 나는 지금 탈옥 중이니까 말 걸지 마.”

슈퍼히어로. 그녀는 나 같은 빌런에게 도움을 요청해서는 안 된다.

솔직히 꿈꿔왔던 상황이긴 하지만, 이런 장소와 분위기에서는 아니다.

밖으로 나오니 그녀의 말대로 세상이 망해 있었다.

“야, 이건 나도 어렵겠는데.”

아니, 물리적으로 이미 끝난 거 아닌가. 이걸 뭐 어떻게 하라고.

“너는 할 수 있어.”

아무래도 이 녀석은 내 특성을 너무 높게 평가하는 모양이다.

“지속시간이 있어.”

“알아. 우리는 희망이 필요한 거야.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희망팔이 하는 놈이 가장 나쁜 놈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사이비가 지탄받는 건, 다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이걸 슈퍼히어로인 저 녀석이 모를 리 없다.

‘그런 거라도 필요하다는 건가. 지독하게 망했나 본데.’

예상대로 며칠간 녀석을 따라다니며 사이비 교주 노릇을 했다. 사람들은 의외로 감동했고 내일을 살아갈 기력을 얻었다며 내 손을 잡아 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름 느낀 바가 있어 툴툴대던 것을 그만뒀다.

그렇게 퀸의 등에 올라타 클라우드 서핑을 즐기며 돌아다닌 지 반년. 우리는 인류의 9할을 날려버린 집단에 포위됐다.

“도망쳐.”

“어디로.”

사방이 놈들이다. 녹색 피부의 인간과 파란색 피부의 인간. 퀸과 생존자들은 저것들을 그린과 블루, 통칭 그블린이라고 칭했다.

대체로 그린은 전사, 블루는 마법사다. 본디 서로 전쟁을 벌였으나 지구에 도착한 뒤로는 동맹을 체결해 인류를 몰아내기로 했단다.

“전군 돌격!”

“네놈이 명령하지 마라!”

두 집단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놈들이 호령하자 그린이 달려들고 블루가 마법을 캐스팅한다.

“미안.”

퀸의 사과에 내가 무어라 대답하려는 찰나. 녀석이 대뜸 내 몸에 뭔가를 붙이고 멱살을 잡더니 투포환 자세를 취하는 게 아닌가.

“잠, 잠깐!”

“네가 살아야 해, 로맨. 늙어버린 나보다는 희망을 줄 수 있는 네가.”

“저 연놈이 뭘 하기 전에 해치워!”

KAAAAAT-!

기합과 함께 마법과 투척 무기들이 비처럼 쏟아졌고 나는 팔 하나를 내어주는 대가로 목숨을 부지했다.

구름을 뚫고 올라오자 배에 부착된 기계가 제 모습을 갖췄다. 나는 그제야 이게 로켓의 일종이라는 걸 알아차렸고 미리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그렇게 빌런인 내가 살고, 슈퍼히어로 퀸이 죽었다.

* * *

그날로부터 3년.

“네놈이 마지막이다. 악마.”

나는 그블린 놈들이 세상의 끝이라 칭하는 장소이자 본거지, 그리고 지구의 역작인 그랜드 캐니언에 와 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그런 건 없고. 궁금한 게 있는데.”

처형인이 상석을 올려다본다. 빛으로 된 왕관을 쓴 블루의 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입을 열었다.

“허하셨다.”

“내가 그블린을 얼마나 죽였냐?”

“네놈! 그딴 멸칭으로 우리를 부르지 마라!”

“2억.”

답은 왕좌에서 들려왔다. 동시에 놈의 손가락이 내리그어졌고, 하늘이 굴렀다.

그리고 다시 시야가 밝아졌을 땐.

“남만혁, 이 X만한 새끼야. 대답 안 해?”

노동착취 보육원의 원장이 내 멱살을 붙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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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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