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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2화 (2/201)

<2화>

각성

쿵!

“억! 이게 미쳤나!”

내 멱살을 잡은 원장의 코를 이마로 들이받았다.

무의식적으로 튀어 나간 행동인지라 나도 살짝 당황스럽다만, 이럴수록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

“폭행.”

“뭐?”

“강도, 강간, 약취 및 유인.”

담담하게 원장의 범죄 이력을 읊었다.

“…어디서 약을 처먹고 왔나. 뭔 소리야!”

원장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내 목과 배를 훑는다.

“그거 나도 하게 해줘.”

짝!

활짝 웃으며 말하니 원장이 내 뺨을 올려 친다. 그럼에도 표정을 바꾸지 않자 나를 바닥에 내던졌다.

쿠당탕.

“쯧, 미친놈.”

얼얼한 뺨과 몸. 확실히 꿈이나 주마등은 아니다.

‘진짜 회귀했나.’

보육원에서 믿고 따르던 누나가, 원장의 죽음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길 바랐으나 나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목을 매달았을 때.

나는 진심으로 회귀를 바랐고 기적처럼 2번 슬롯에 회귀가 들어찼다.

하지만 다른 슬롯과는 다르게 발동할 낌새가 없어 자리만 차지하는 계륵 같은 낭만이었는데….

‘죽는 게 조건이었나.’

내심 짐작은 했으나 섣불리 시도할 수 없어서 언젠간 발동하지 않겠느냐는 마음으로 매번 보면서도 넘겼었다.

[15:33]

문득 시야에 들어온 오래된 전자시계. 아쉽게도 날짜와 연도는 없었다.

‘달력이 어딨었더라.’

“야.”

담배 한 갑을 태우고 나서야 입을 여는 원장.

“어.”

“어? 는 X발 반말이고. 진짜 약을 쳐 빨았나. 어휴 됐다. 그동안 기를 쓰고 튀던 놈이 갑자기 왜 한다고 지랄인지나 씨불여봐라.”

“보육원 나가기 전에 돈 버는 기술 하나는 배워야겠다 싶어서.”

그럴듯한 연기는 내 장기 중 하나다. 기업에 작업을 치려면 내부에서 도모하는 게 가장 편하다.

그래서 한때 연기학원 끊어가며 사람 속이는 법을 익혔었다.

“그렇지! 너희 같은 걸뱅이 새끼들은 밑바닥에서 굴러야 돈을 쥘 수 있다니까.”

원장 놈은 인근 폭력 조직에 애들을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남자는 감방, 여자는 룸방.

하나 보육원 출신 선배들의 현재 위치다.

“자, 명함. 내 소개로 전화했다 하면 언제 오라 할 거다.”

“고맙다.”

“꺼져!”

원장실 밖으로 나오자 눈물점이 인상적인 여성이 달려와 걱정스런 얼굴로 내 몸 여기저기를 살핀다.

“안 맞았어?”

안소민, 그 누나다.

가슴에 차오르는 이 먹먹한 느낌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자 누나가 동그란 눈을 크게 뜨며 당장 울 것처럼 눈시울을 붉혔다.

“맞았구나. 많이 아팠지. 미안해.”

그런 누나다. 본인이 잘못한 게 없음에도 아이들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사과하고 보호하고 보살피는.

웃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최대한 평상시처럼 행동하려 애썼다.

“늘 있는 일인데 뭐. 그보다 누나, 달력이 어딨었지?”

“식당에 있잖아. 네가 바꿔 걸었는데 기억 안 나?”

“아, 맞다. 식당. 하하.”

나는 식당에서 내 추측이 맞음을 확인했다.

[2050 - 09 - 17]

9월 17일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원장은 새벽까지 술을 먹고 여자방에 들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보는 앞에서 소민 누나를 제 몸으로 깔아뭉갠다.

그걸 시작으로 틈만 나면 누나를 원장실로 호출해댔다.

다행히 그 일이 벌어지기까지는 몇 시간의 여유가 있다.

“누나, 나랑 산책 좀 하자. 옷 갈아입고 와. 늦을 수도 있으니까 나라는 태양이에게 맡기고.”

“으응.”

의아해하면서도 2층으로 올라가는 누나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명함을 받는 순간 떠오른 계획을 재빨리 진행했다.

반소매 후드를 입고 나온 누나를 데리고 보육원 근처 공원에 왔다.

“너, 무슨 일 있지?”

“그게…, 원장이 누나를 덮칠 생각이야.”

“뭐?”

“나오기 직전에 놈이 혼자 하는 말을 들었어. ‘고년을 룸에 팔기 전에 한 번 자빠뜨리긴 해야 하는데.’ 라더라.”

소민 누나는 침음을 흘릴 뿐 놀란 기색은 아니었다. 의외여서 왜 그렇게 침착하냐고 묻자.

“언니들에게 들은 게 있어서. 마음의 준비는 해왔거든.”

그리 말하면서도 목소리는 떨린다. 내 앞이라고 감정을 숨기는 건가.

“걱정하지 마. 내가 처리할게.”

“처리? 무슨 처리.”

“누나는 오늘 나랑 계속 같이 있었다고 증언만 하면 돼.”

누나는 표정이 급속도로 일그러지며 내 팔을 꽉 붙잡았다.

“만혁아.”

“원장은 쓰레기야. 이대로 두면 누나는 그놈한테 당할 텐데. 나는 그 꼴 못 봐.”

소민 누나는 미간을 좁히며 강하게 내 팔을 당겼다.

“네가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그 짓을 당하는 게 나아!”

아름답다. 누군가는 누나의 헌신과 희생에 감탄하고 박수 치며 눈물을 흘려주겠지.

근데 그뿐이다.

한 번 박힌 트라우마는 절대 없어지지 않고 매 순간 그 사람을 갉아먹는다. 나는 그것의 끝을 목격했다.

끼익, 끼익.

귓가에 울리는 그날의 녹슨 쇳소리. 다시는 듣고 싶지 않다.

“알았어.”

몸에 힘을 빼자 소민 누나가 안도하며 내 등을 두드린다.

“잘 생각했어. 나는 정말 괜찮으니까.”

어떻게 저리 맑게 웃을까. 나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 * *

느긋하게 자판기 율무차를 뽑아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보육원에 돌아가자 경찰차 두 대가 건물 앞을 막고 있었다.

원장이 수갑을 찬 채 경찰차 안으로 구겨져 들어가던 중에 나와 눈이 마주쳤다.

“너! 이 새끼, 내가 널 가만히 둘 줄 알아? 나 없이는 하루도 못 버틸 거다. 이 X신들아!”

나는 총구를 앞에 둔 사람처럼 겁먹은 표정으로 양손을 번쩍 들었다.

“지금 와서 그래봐야 늦었어!”

“공권력 만세.”

“이-”

놈이 준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했더니, 내가 할 일과 그간 얼굴 모르는 선배들이 해왔던 일을 떠들길래 죄다 녹음했다.

그걸 그대로 이곳 주소와 함께 파출소로 보냈다. 그뿐이다. 무서워서 이 단순한 행동을 못 해 그 사달이 났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울분이 인다.

“너희는 괜찮니?”

여경은 아이들의 몸에 난 멍 자국을 이미 확인했는지 심각한 얼굴로 우리에게 물었다.

나는 자랑스럽게 상의를 까뒤집었고 전신의 피멍이 드러났다. 경찰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다.

“삼곡동 종주병원에서 저를 여기로 보냈어요. 그리고 이거 원장이 준 명함인데 받으세요. 조선족 살인청부업자들이에요.”

이 두 곳 제대로 파면 더러운 게 끊임없이 나온다.

남은 경찰들은 우리를 어찌할지 상의하는 듯했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대강 알기에 식구를 불러 모아 당부했다.

“누나가 보육원을 맡아줬으면 해.”

이 사람만큼 아이들이 본받기 좋은 사람은 없다.

내가 원장을 죽일 거라는 뉘앙스를 풍긴 건, 다시 한번 누나의 성향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결과, 내 기준으로 소민 누나는 시대에 이름을 남길 만한 인품과 신념을 갖췄다.

배경만 받쳐주면 다음 세기의 역사서에 누나 이름이 나올지도.

‘시기가 좋아.’

이번 정부는 ‘부정부패 척결’이 화두다. 우리는 시범 사례가 돼서 그 덕을 엄청나게 본다.

매 맞은 아이들, 소녀의 자살, 범죄자 원장. 펜대 굴리기 좋은 소재들 아닌가.

예전의 나는 누나의 죽음에 멘탈이 터져서 생판 남이 지원금과 물품을 채가는데도 멀뚱히 보고만 있었다.

그러니 이 사람 좋은 누나와 순진한 아이들은 나처럼 눈 뜨고 코 베이지 않도록 나름의 충고를 했다.

“앞으로 각자 통장과 카드를 만들게 될 거야. 비밀번호는 누구에게도 절대 알려주지 마.”

“응.”

“특히 너, 까불이.”

김태양 14세. 특기, 잘 까붐.

우리 다섯 식구 중 셋째다.

“아, 형.”

“동생들 잘 지켜.”

또 구박할 거라 생각했는지 무어라 하려던 입을 꾹 닫고 고개를 끄덕이는 태양이.

“우리는 비가 쏟아져도 우산을 씌워줄 사람이 없어. 그러니 크고 무거운 우산을 언제든 홀로 쓸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해야 해.”

“만혁아.”

누나는 아이들의 상처를 들쑤시는 발언에는 늘 저렇게 눈꼬리를 끌어 올린다.

“알았어. 태양아, 애들 데리고 들어가. 누나랑 나는 경찰 아저씨랑 이야기 좀 하다 갈게.”

“TV 봐도 돼?”

원장 놈은 건방져진다는 이유로 TV도 못 보게 했었다.

“그럼. 밤새도록 봐.”

“앗싸!”

“안돼. 10시에는 자. 그래야 키 커.”

“힝, 알았어.”

역시 소민 누나. 최고의 원장감이 아닐 수 없다.

신났다가 처졌다가 다시 신난 초등학생 둘을 데리고 방으로 올라가는 태양이.

“어떻게 된 거야.”

애들이 들어가자 누나가 내 옆구리를 찔렀고, 나는 원장을 구치소로 보낸 계획을 읊었다.

“범인들 출소하면 보복한다던데. 괜찮을까?”

“무조건 하지. 원장 놈 성깔 더럽잖아.”

“어쩌지….”

“괜찮아. 1년 형은 받을 거고. 그거면 충분해.”

내가 각성만 하면 원장 따위는 아무도 모르게 증발시킬 수 있다.

“정말?”

“그럼, 나중에 지금 걱정한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걸.”

경찰과의 대화, 앞으로 보육원에 벌어질 일, 대처할 방안 등을 논의하던 중에 기지개를 켤 겸 허리를 젖히니 시야 저 끝에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누나, 해 뜬다.”

“벌써? 애들 밥해야겠네.”

2050년 9월 18일.

여름이 끝났다.

* * *

2주 후.

기자와 너튜버가 떼거리로 찾아왔다. 처음에는 서넛에 불과했는데 내가 아직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고사하자 매일 숫자가 늘더니 이렇게 됐다.

물론 의도된 퍼포먼스다. 사람의 관심도 낚시와 유사해서 입질이 온다고 바로 당겨서는 다 잡은 고기도 허무하게 놓치는 법.

나는 메이저 일간지 기자와 십만 구독자를 넘긴 너튜버 열 이상 모이고 나서야 어쩔 수 없다는 양, 그들을 보육원 식당으로 들였다.

간식 및 음료로 쥬리퐁에 우유를 타서 대접하자 몇몇 여기자들이 눈물을 터트렸다.

그릇을 받았을 때만 해도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으나 우리 막내 아인이가 어느 여기자 옆에서 손가락을 입에 물고 한 말이 트리거가 됐다.

“맛있겠다….”

꼬르륵.

“손님 거야, 이리와. 아인이는 나중에 줄게.”

“웅.”

거기에 깡마르고 볼이 홀쭉한 누나가 아인이를 달래 데려가자 기자들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이더라.

질문 하나 없었음에도 기사가 쏟아져 나갔다.

“질문받겠습니다. 예, 앞의 기자님. 말씀하세요.”

“남만혁 군과 안소민 양은 어른들이 어떻게 해주길 바라나요?”

완전 애 취급이네.

“제 뒤에 계신 안소민 씨가 원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두 분 모두 아직 학생인 거로 압니다.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을까요?”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그날 와주신 경찰 누나가 대신 일을 봐주기로 하셨습니다. 반년만 부탁드려도 되겠냐니까 선뜻 받아주셨죠. 이 자리를 빌려 다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현 누나, 고마워요.”

식당 입구에 서 있던 여경이 내 돌발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손을 흔들어 인사를 받았다.

공직자는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하지만 그녀는 가능하다. 경찰청 국장의 외조카거든.

그렇기에 부담될 정도로 띄워 줄 필요가 있다.

높은 자리에 앉은 인물 대부분은 자신의 치적을 생에 최대 목표로 하기에 조금이라도 자기 얼굴에 금칠이 되겠다 싶으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니 여기서 내가 어떻게 혀를 놀리느냐에 따라 지원의 질과 양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쉽지 않을 텐데요.”

“어려울 거라는 건 저희도 압니다. 나름의 대책으로 내년에 소민 누나가 한국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해 필요 자격증들을 취득할 예정입니다.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패스하고요.”

대한민국 최고 대학으로 치는 한국대를 언급하자 고개를 주억이는 중년 기자들이 보인다.

같은 학교 출신이려나.

“냉정한 질문이 될 수 있겠습니다만, 등록금은 어떻게 해결하실 예정입니까?”

“도와주시는 분이 계세요. 저는 그분을 하얀 은사님이라고 부르죠.”

“혹시 성함을 들어볼 수 있나요?”

“죄송합니다. 익명을 원하셔서요.”

없다. 그런 사람. 있었으면 진작 원장이 떨어져 나갔거나 더 크게 일을 벌였겠지.

이건 비즈니스다.

내가 내놓은 품목은 고아들의 은사라는 따뜻한 이미지. 대선에도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포텐셜이 좋은 상품이다.

“나중에 은사님께서 허락하시면 따로 말씀드릴게요.”

이 시그널을 못 알아먹을 정치인은 없으리라 믿는다.

“고구려일보의 김태수입니다. 종주병원 게이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며칠 전 종주병원의 내막이 드러났다. 병원장과 의사들이 작정하고 고아와 노숙자를 빼돌린 것.

“앞으로 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해동TV의 박기권입니다. 혹시 쥬리퐁 라떼에 사연이라도 있습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그저 저희가 먹었던 음식 중에 가장 맛있는 것을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으니 아닌듯해서 부끄럽네요.”

“어허.”

“큼!”

“거, 젊은 사람이 인정머리 없긴.”

“쓰읍.”

슬슬 시간이 됐는데.

“그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마지막 질문받겠습니다.”

“취업TV의 공기다운입니다. 남만혁 군의 진로는, 헉!”

왔다.

오직 이 순간을 위해 식당 천장 일부를 부쉈다.

하늘에서 쏘아진 빛줄기가 나를 덮쳤고, 반사신경 좋은 기자들은 셔터를 갈겨댄다.

내게 온전히 빨려든 빛의 입자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광란의 플래시 세례가 차츰 멎었다.

“그….”

모두의 시선이 내게 닿는다. 말꼬리를 길게 늘이자 홀로그램 키보드에 손을 올리는 기자들.

꿀꺽.

“히어로 아카데미에 보육원 전형이 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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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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