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3화 (3/201)

<3화>

리쳇

[보육원에서 각성자 탄생! 신의 보살핌? 기적의 순간 포착!]

[남만혁(16)군, “2051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입학 수석은 나!” 당찬 포부 밝혀.]

[국가에서 보장한 보육원 전형의 실체. 연고 없는 각성자에게 목줄을 채우기 위한 원색적인 장치?]

[안소민(17)양, “사회복지사가 꿈이에요.” 보육원을 지키기 위한 소녀의 분투.]

이야, 기자님들 제목 뽑는 실력이 대단하시네.

너튜브 쪽은 감성으로 노선을 잡았는지 쥬리퐁라떼와 소민 누나를 적극 활용해 조회수를 올리는 중이다.

“정말 이렇게 공개해도 괜찮겠니?”

“네.”

얼굴과 이름, 보육원의 위치를 내가 개설한 너튜브 채널에 올리자 오픈 계좌에 억 단위 기부금이 모였다.

이 돈은 딴소리 나올 여지가 없도록 보육원 주변 땅을 사들여 우리가 살 집을 짓는 데 사용했다.

그리고 원하는 사람은 기부한 금액에 따라 우리가 쓰는 물건에 아이디를 새겨 넣었다.

시험 삼아 소민 누나가 텃밭에 모종을 심는 모습을 첫 영상으로 대충 찍어 올렸더니 반응이 좋더라.

-수건에 저거 이름 아님?

-맞네, 기부템인 듯.

-나다! 무야호!

-이야, 진짜 돈 안 빼먹었나 보네.

-ㄹㅇ 채널 커뮤니티 탭에 가보면 어디에 썼는지 싹 공개돼 있음. 그거 보고 좀 감동함.

-저거 내 호미다!

-장화!

-그 와중에 소민 눈나 존예보스….

-저 각도로 이 미모면 실물은 여신일 듯.

영상 마지막에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을 부탁하는 소민 누나의 어색한 애교는 내가 봐도 이건 구독을 누르겠다 싶더라.

똑똑.

“형, 다 모였어.”

“먼저 가 있어.”

“응!”

나는 얼마 전부터 특성 수련을 하고 있다.

첫 번째 슬롯은 해변을 불러내는 낭만인지라, 아이들이 보고는 놀아도 되냐고 묻기에 차마 그 반짝이는 눈에 대고 거절할 수 없었다.

편집하던 영상을 마무리하고 집 뒤편의 공터로 가자 태양, 아인, 나라가 수영복을 입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빨리!”

“형아 얼른~”

“해줘.”

주나라 11세. 특기, 해줘.

쟤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뚱한 표정이다. 저 볼통한 볼살도 그렇고.

“미르토스.”

굳이 입에 담을 필요는 없으나 단어를 되뇌는 게 아무래도 이미지가 선명히 떠올라 구현 속도가 빠르다.

끼룩, 끼룩.

20평 남짓한 좁은 해변. 물 반 모래 반이라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기에 이만한 곳도 없다.

‘좁아서 한눈에 다 들어오고.’

전성기와 비교하면 한참 부족하지만, 성장 속도만큼은 압도적이다.

‘입학하기 전에 100평까지는 키워놔야지.’

그래야 물고기와 야자수 그리고 보관함이 생긴다. 최소한의 음식은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블린에게 쫓기던 당시 내 유일한 보급 수단이었다.

“와아아아!”

“나라 누나, 나 모래성 만들래.”

“도와줄게.”

“고마어!”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풍경을 감상하는 중에 목덜미에 저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손을 대니 시야 한쪽에 창이 떠오른다.

【뇌파 동기화 중…, 완료.】

【네트워크 연결 중…, 완료.】

【사용자 인식 중…, 완료.】

【호출 명령어 : ‘상태창’】

‘됐네.’

이틀 전. 최신 스테이터스 칩이 퀵으로 왔다. 보낸 이는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교장. 동봉된 쪽지엔 짧게 한 줄 적혀 있었다.

[2051 입학 축하 기념 선물]

아직 원서 접수도 안 했다. 퀸에게 들은 대로 행동력이 범상치 않은 양반이다.

‘상태창.’

【시뮬레이션 중…, 완료.】

【알맞은 명칭 탐색 중…, 완료.】

【특성 : 낭만주의자】

【슬롯1 : 그리스 미르토스 해변】

【슬롯2 : 없음】

‘슬롯 두 개. 첫 각성 그대로네.’

슬롯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한 번 채워지면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니 신중히 골라야 하는데, 전생에서는 낭만을 느끼는 족족 채워졌으므로 선택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하나만 고르라면, 역시 리쳇이지.’

눈을 감고 내게 리쳇을 안겨준 영화, 웨더아이를 떠올렸다.

과학이 발달한 세상. 어느 날 기상제어 위성이 오류를 일으켜 지구에 재난이 일어난다.

주인공은 위성을 파괴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위성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인류에 대해 학습한다.

자력으로 자아를 형성한 위성은 약소국에 원하는 기후를 제공하고 그들을 우호 세력으로 끌어들였다.

다수의 거수기를 확보한 기후 위성은 세계 의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기계 최초로 인권을 보장받으며 영화가 끝난다.

속편도 나왔는데, 주인공이 기상 위성을 끝장낸다고 해서 예고편의 하이라이트만 보고 안 봤다.

“으앗, 미안!”

“악! 형아…. 흑.”

“꿇어.”

태양이가 모래사장에서 연속 앞구르기를 하다 아인이와 나라가 공들여 쌓은 모래성을 박살 냈다.

하여튼 저 까불이.

【슬롯2 : 리쳇】

‘오.’

고개를 드니 방금까지만 해도 없었던 발광체 하나가 뻔뻔하게 하늘에 박혀 있다.

츠즉.

이윽고 칩과 리쳇이 연결됐다.

-휘휴, 대단하네. 어떻게 한 거야?

중년 여성의 걸쭉한 목소리.

“뭘?”

-모른 척하긴, 내 마스터 권한. 어떻게 가져갔어?

“순수한 낭만의 힘으로?”

-…겨우 인권 따냈더니, 또 사탕수수 베게 생겼네.

저 무시하는 버릇은 여전하다.

이름 리쳇. 나이 모름. 특기, 블랙 조크 외 다수.

“스캔이나 해 봐.”

-초당 두 명씩 뒈져나가는 거 똑같을 텐데 뭣 하러, …음? 이건 좀 흥미롭네.

그렇겠지. 영화 속 지구보단 여기가 훨씬 재밌게 돌아가거든.

리쳇의 인터넷 접속을 허용하고 1시간. 이 지구를 훑은 그녀가 심각한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댁, 히어로?

“아니.”

-그럼?

“빌런.”

-뭐야, 동업자였어?

* * *

그 시각. 세계 최고 우주 기술 연구기관, 볼트.

“국장님, 이거 좀 보셔야겠습니다.”

정장을 입은 사내가 방금 우연히 찍힌 영상을 국장의 망막에 전송했다.

“저럴 수가 있나?”

영상에는 연료 고갈로 폐기된 인공위성이 재기동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처음 보는 외형으로 변하고 있었다.

“초 원거리 조작계 각성자가 분명합니다.”

“자네는 정지궤도에 있는 인공위성을 저런 식으로 주물러댈 조작계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정지궤도. 지표로부터 36,000km.

거길 지구에서 만진다는 건, 지구의 중력권이 그 각성자의 손에 들어갔다는 소리와 같다. 그 여파를 생각하면 저리 가볍게 단정 지어 뱉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죄송합니다. 다른 가능성은 현격히 낮은지라.”

“됐네, 심볼은?”

위성은 소속을 알 수 있는 고유의 심볼을 반드시 부착해야 한다.

“없습니다.”

“통신도 안 받고?”

“예.”

“직접 가는 수밖에 없겠어. 근처에 미셸 있지?”

“연락하겠습니다.”

* * *

기후 위성 리쳇을 영화에 나오는 그대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현실은 기껏해야 좁은 지역에 잠시 여우비를 뿌리거나 새벽에 짙은 안개를 만드는 수준에 불과하다.

해서 나는 리쳇을 잠입 및 도주, 정찰용으로 사용했었다.

그러나 그녀의 본 모습은 따로 있었고. 이를 제대로 알게 된 건 천 명의 히어로가 나를 포위해올 때였다.

퀸과 또 한 명의 트리플 기프트 아크위저드가 투톱으로 밀어붙이는데. 어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들이 막대한 화력과 기동력으로 몰아쳤음에도 내가 탈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리쳇이 일주일에 딱 한 발.

-중국 소속으로 카모플라쥬한 볼트 측 위성 접근 중. 어쩔래?

“쏴.”

빔을 쏠 수 있더라고.

* * *

퍼펑!

막대한 달러가 폭발하는 광경이 국장의 시각을 강타했다.

상황실은 우주 쓰레기 수거 알바 중이던 미셸의 비명과 욕으로 난자되었고 위력 정찰을 시도한 볼트의 위성은 잿가루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루덴. 저게 뭐지?”

“조사 중입니다.”

쾅!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친 국장은 핏발선 눈으로 호통치듯 지시를 내렸다.

“조사고 나발이고 당장 격추시켜!”

“저희는 그럴 권한이-”

루덴의 어깨를 잡아챈 국장은 정면 화면의 이름 모를 위성을 가리키고는.

“누가 먼저 공격했나?”

“식별 불가 위성입니다.”

“내가 책임질 테니 이참에 써보고 싶었던 무기들 전부 쏴 갈겨!”

“알겠습니다.”

얼마 후.

“국장님, 위성이 사라졌습니다.”

“——!”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이 미셸의 것과 더불어 상황실에 울려 퍼졌다.

* * *

싸움의 최선은 나만 일방적으로 때리는 것이다. 차선은 치고 튀는 거고.

내 특성의 장점 중 하나는 온·오프가 된다는 점이다. 지금쯤 볼트는 리쳇을 찾느라 혈안이 됐겠지.

“혀엉! 조금만 더 있자. 아인이는 아직 발밖에 못 담갔단 말야.”

모래성이 부서져 시무룩한 아인이를 내세워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김태양.

“나 말고 누나한테 허락받아.”

“치.”

시무룩한 아이들을 씻기고 각자 방으로 들여보냈다.

“어디 보자.”

【슬롯2 : 리쳇(7일)】

아무리 숙련도가 없는 상태에서 궁극기를 갈겼기로서니 7일이나 구현 불가라.

갈 길이 멀다.

“형, 들어가도 돼?”

“어.”

태양이가 잠옷 바람으로 와서는 내 눈치를 보다 입을 열었다.

“그…, 형은 꿈이 뭐야?”

14살이 꿈을 묻다. 꼭 책 이름 같네.

“슈퍼빌런.”

“와. 완전 어울려.”

어쭈.

“너는?”

“국가대표 선수!”

“앞구르기로 모래성 부수기는 종목에 없는데.”

“아잇, 그거 말고! 마라톤! 나 달리기 잘하잖아!”

“그렇다 치고.”

“치는 건 뭐야…. 하여튼 어릴 때 심폐기능을 단련해야 어른 돼서도 좋대.”

그래서 물속을 그렇게 뛰어다녔구나. 난 또 새로 개발한 놀이인가 했다.

“그러니까, 해변 이용 시간을 늘려 달라?”

“헤헤.”

머리 잘 돌아가네. 명분이 확실해서 거절하기가 어렵다. 국대가 되려는 이유도 짐작이 가고.

자식이 잘되어서 돌아온 부모가 정말 순수한 마음일까 싶지만, 굳이 언급하진 않았다.

“훈련 시간 알지? 그때 내려와.”

“앗싸! 고마워!”

“대신. 내가 훈련하는 동안 너도 쉴 생각 하지 마.”

“당연하지!”

다음 날.

“어허, 국대가 된다는 녀석이 고작 그거 뛰었다고 헉헉대면 쓰나.”

“힘들어어어!”

“네가 선택한 훈련이다. 악으로 깡으로 달려.”

“윽, 이 악당!”

“극찬 고맙고.”

‘모든 사람이 태양이처럼만 살면 좋을 텐데.’

각성자 전원이 저렇게 단련했다면 그블린에게 몰살당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꿈이라.’

꿈이 뭐냐는 태양이의 말이 귓가에 아른거린다. …꿈은 아직 모르겠고, 확고한 목표는 있다.

그블린 전담 일진.

‘혼자선 안돼.’

그블린은 많고 강하다. 혼자 아득바득 해봐야 고작 2억이었다. 전체의 1%도 안 되는 숫자.

‘쓸만한 녀석을 지금부터 키워야 가망이 있어.’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아카데미 입학이다.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줄여서 서히아는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이고 학생의 성장치만 보면 부동의 1위로 꼽힌다.

뛰어난 히어로 지망생들이 각국에서 몰려들기에 원석 찾기엔 이만한 곳도 없다.

무엇보다, 내년엔 퀸이 입학한다.

괜히 웃음이 나와 그때처럼 낄낄거리니 언제 나왔는지 나라가 뚱한 눈으로, 해변 의자에 반쯤 누워있는 나와 반쯤 죽은 눈으로 물속을 달리는 태양이를 번갈아 보고는.

“악당가태.”

“큼, 나라는 얼른 들어가서 자. 그래야 키 크지.”

“붸에~”

아이구, 귀여워서 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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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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