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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4화 (4/201)

<4화>

입학시험 (1)

어느덧 봄이 되었다.

그간 정, 재계 인사의 메신저가 많이도 찾아왔다. 그들에게서 뜯어낸 돈을 식구들에게 알리자.

“네가 만든 돈이니까. 우리 신경 쓰지 말고 맘대로 써.”

“형, 나는 아니야. 컴퓨터랑 홀로타이머, 바이탈칩이 필요해.”

“형아, 난 쥬리퐁 한 트럭!”

“해피 프린세스 히어로 피규어 1:1 비율 플래티넘 리미티드 에디션, 사줘.”

받은 액수에 비해 소소한 소원들인지라 부담 없이 들어줬다. 참고로 누나에게 선물한 유명 브랜드의 밀리그램 노트북보다 나라의 인형이 훨씬 고액이었다.

어린 것이 벌써 한정판에 눈이 멀어 가지고. 에잉!

이후 돈은 전부 리쳇을 통해 세탁한 뒤, 각종 시장에 투입됐다. 미래 지식을 기반으로 굴리는지라 실시간으로 불어나는 숫자가 아주 아름답다.

불린 돈의 일부는 특성을 무효화시키는 역장, VZ(Void Zone)를 연구하는 회사에 투자했다.

코인판도 빠질 수 없다. 날짜까지는 명확하게 기억 못 해도 고점과 저점은 알기에 과감한 투자를 지시해뒀다.

이렇게 불린 돈은 침공의 날에 인류가 우산을 들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딩동.

“내 컴퓨터 왔다!”

호다닥 달려가는 태양이 곧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머리칼 잃어버린 아저씨가 형 찾아.”

나는 태양이의 지독한 언사에 혀를 내두르며 현관문을 열었다.

마당의 텃밭을 보며 뒷짐을 지고 선 남자.

“뉘슈?”

“날세.”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벌리는데,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어 그를 입에 담았다.

“아카데미 교장?”

“알아보는구먼!”

서히아의 교장은 대통령보다 바쁜 사람이다. 스케줄의 대부분은 해외 일정이고 만나는 사람은 해당 국가의 실세.

그들과의 미팅을 미루고 나를 만나러 왔다라…, 칩 하나 던져준 거로는 불안했나?

“여기는 어쩐 일로?”

“자네 보러 왔지. 곧 입학시험이 시작될 텐데 준비는 잘 돼 가는가?”

아무리 매스컴을 탄 입학 예정자라 해도 저 무거운 몸이 이리 쉽게 움직일 리 없다.

게다가 주변이 조용한 거로 봐선 혼자 온 거 같고. 사적인 목적으로 방문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 뻔하지.

“양효민 의원이 매제라죠?”

곧 당 대표 선출 기간이다. 양효민은 당내에서 상대적으로 연차가 부족하니 그럴듯한 푸쉬가 필요할 터.

“허어…, 어찌 알았나?”

“두 분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더 적지 않을까요. 한참 시끄러웠는데. 하여튼 알겠습니다. 제 채널에 하얀 은사님이라고 살짝 흘리겠습니다. 들어가십쇼.”

몸을 돌리자 교장이 헛기침으로 나를 붙잡는다.

“젊은 사람이 뭐가 그리 급하나. 그러지 말고 차 한잔하세.”

진짜 오늘 일정 다 비웠나 보네.

“예, 뭐. 그럼 들어오시죠.”

“아닐세, 누추한 곳에 귀한 내가 갈 순 없는 노릇 아니겠나.”

뻔뻔한 양반 같으니. 저게 노인네 나름의 배려라는 걸 알면서도 아니꼽다.

“말실수 아니죠?”

“뭐가?”

“…됐습니다. 아는 찻집이 있는데 그리 가죠.”

“그러세.”

나는 그를 데리고 인적이 드문 공원의 으슥한 곳으로 안내했다.

“여기는 왜 왔나?”

“드십쇼.”

방금 자판기에서 뽑은 로열 율무차를 그의 손에 쥐여줬다.

뚱한 표정으로 율무차를 바라보던 교장은 종이컵을 그대로 벤치에 내려놓곤.

“자네. 힘들걸세.”

“압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나?”

“아카데미 생활 말하는 거 아닙니까.”

“…다시 느끼네만 눈치가 비상하구먼? 맞네. 입학시험이야 어떻게 통과한다 해도 본 교육에 들어가면 힘들게야.”

“그래서요?”

“돕겠네.”

“들어보죠.”

“A반에 꽂아주지.”

난 또 뭐라고.

“됐습니다.”

A반은 알아서 잘 크는 놈들이라 갈 생각이 없다. 그깟 반 때문에 온 거면 좀 실망인데.

“음, 자네가 싫다면야 어쩔 수 없지. 그럼 돈은 어떤가?”

“고맙습니다, 하얀 은사님. 얼마나 주실 건가요?”

“10억은 어떤가.”

“너무 좋죠.”

“단, 조건이 있네.”

에라이.

“뭡니까.”

“입학시험에서 10등 안에 들게.”

장난하나.

“제가 10등을 어떻게 합니까.”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지.”

능글맞게 빙글 웃는 교장. 성격 더럽네 이 인간. 내가 반에 연연하지 않으니까 돈을 건 거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설령 1등을 해도 A반에는 안 갑니다.”

당장 퀸을 만날 생각은 없다. 이유는 말했듯, 알아서 잘 클 테니까. 내 목적은 아카데미 내에서 빛을 받지 못한 저평가 우량주를 찾는 거다.

그러려면 최소한 C반 아래, 가능하면 F반이 가장 좋다.

“단순한 반발심은 아니겠고. 원하는 게 있나 보구먼? 자네 마음대로 해도 좋네. 하나 명심하게. 10위 안에 못 들면 입학은 취소일세.”

이 노인네가?

“그런 교칙은 없습니다.”

“내가 곧 교칙이야. 대신 합격하기만 하면 돈 말고도 특별한 선물을 주지.”

내 참, 더러워서.

“알겠습니다. 잘 가십쇼.”

벤치에 그를 남겨두고 일어서자 뒤통수에 노인네의 목소리가 꽂혔다.

“아, 자네에게 준 칩 말일세. 그거 아주 귀한 물건이야. 10등 안에 못 들면 그것도 가져감세.”

퉤!

“내 계좌 입금 한도나 뚫어놓으쇼.”

* * *

입학시험 당일.

“잘하고 와. 근데 정말 같이 안 가도 되겠어?”

소민 누나와 아이들이 문 앞에서 나를 배웅하는 중이다.

“괜찮아. 궁금하면 채널로 봐.”

“궁금한 게 아니라, 너만 혼자일까 봐…, 알잖아.”

잘 알지. 그런데 그런 거로 슬퍼하기에는 내가 나이를 너무 먹었다.

빵빵.

콜택시가 왔다.

계속 같이 가겠다는 소민 누나를 간신히 말리고 차에 오르자 택시 기사가 나를 아는 체한다.

“맞죠?”

“예?”

“남만혁 씨 아니세요?”

“아, 맞습니다.”

“인터뷰 봤어요. 서히아에 가시나 봅니다.”

“네.”

“제 딸도 거기 수험생입니다. 막 데려주고 오는 길이에요.”

“그래요?”

“네, 도수정이라고. 애가 낯가림은 심해도 마음은 착해요.”

“예에.”

택시 기사와 잡담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서히아역에 도착했다. 여기서 저 산비탈을 오르면 유명한 동상문이 나온다.

교장의 모습을 본떠 만든 67빌딩급 동상. 내 기준으로는 추악하기 그지없지만,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데다 가까이 안 가면 있는지도 모른다고 해서 굳이 건드리진 않았었다.

끼익.

“다 왔습니다.”

“좀 더 가야 하지 않나요?”

“수험생은 여기부터 시작입니다. 자자, 힘내세요. 저는 온 김에 딸내미 응원하고 가야겠습니다.”

거의 쫓겨나듯 택시에서 나온 나는 허공 곳곳에 부유하는 홀로카드 중 하나를 잡아 들었다.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입학시험 안내】

【1. 09:00 시작, 늦게 도착한 학생은 자격 박탈.】

【2. 수험생 간 폭력 및 약탈 금지.】

【3. 상위 10명 안에 드는 학생은 반 선택권이 주어진다.】

【현재 시각 – 08:55】

아슬아슬했네.

택시 기사 아저씨가 지름길을 안다며 막히는 구간을 우회해서 오지 않았으면 늦었을지도 모르겠다.

“수험생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곧 시험이 시작되오니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막 성인이 되었을 법한 젊은 남자가 소리치자 수험생들의 고개가 일시에 그쪽으로 향한다.

그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태연하게 사위를 둘러보곤 재차 입을 열었다.

“앞으로 30초.”

【08:57】

다르다.

저 남자의 초읽기와 이 안내서에 나오는 시간대에는 차이가 있다.

‘재밌네.’

둘 중 하나는 가짜. 나는 남자와 홀로카드를 상세히 살폈다.

공통점. 안내 중이며 아카데미 문양이 박혀 있다. 중년은 재킷의 등에. 종이는 글자 뒷배경에…, 아.

‘이게 가짜네.’

팔을 X자로 교차한 사람의 실루엣이 아카데미의 상징이다.

나는 안내서를 눈앞에서 치우고 남자를 향해 달렸다.

“10초, 억!”

그에게 드롭킥을 먹여 넘어트리고 재킷을 벗겼다. 그러자 당황하던 그의 표정이 차분해지더니 싱긋 웃는다.

안내서와 달리 손가락이 하나 펴진 상징이 장식된 재킷 안쪽엔 ‘시작’과 ‘+1’이 적혀 있었다.

【시험 목표 : 아카데미 동상문 터치】

바로 홀로카드에 문구가 추가되는 거로 보아 짐작이 맞은 모양이다.

“도수정 화이티이잉!”

저 뒤에서 택시 기사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고, 마치 그게 신호탄이라도 된 양. 수험생들이 산길로 튀어 가기 시작했다.

나와 넘어진 중년의 남자를 스쳐 지나는 이들이 이쪽에 눈짓을 주긴 했으나 딱히 별다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하아, 오늘 산 건데.”

셔츠에 난 발자국 두 개를 내려다보는 그에게 다시 재킷을 입혔다.

“큼, 고생 많으시네요.”

“계약직이 다 그렇지 뭐, 근데 너는 왜 안 가냐?”

어느새 주변은 나와 그 밖에 남지 않았다.

“살아보니까, 빨리 간다고 다 능사가 아니더라고요.”

“엥, 너 몇 살이야.”

“열여섯요.”

“…그래?”

실은 리쳇이 최단 경로를 탐색 중이다.

아무래도 목적지까지 가는 시험인 듯한데, 중간에 방해물이 등장할 게 뻔하다. 그러면 정찰이 끝난 다음에 가도 늦지 않다.

적당히 간 보다가 9등이나 10등으로 들어가는 게 베스트.

‘리쳇, 얼마나 걸려?’

-10분은 더 필요해.

그렇다면야.

“미르토스.”

휴양 좀 즐기고 있지 뭐.

“네 특성이냐?”

그의 손에 야자 주스가 든 잔을 쥐여주자 말없이 빨대를 빨았다. 그리고는 내 옆에 앉더니.

“구현계?”

“그렇죠.”

“각성한 지 반년 만에 이 넓이라. 수련 열심히 했나 봐?”

반년?

“저 아세요?”

“‘보육원 전형이 있던가요?’, 그거 너 아냐?”

그는 꼭 지금 보고 있는 것처럼 나도 기억나지 않는 내 몸짓과 목소리를 따라 했다.

“맞아요.”

“크, 맛있네. 그런데 여기서 힘 빼면 좋을 게 없을 텐데. 나는 모른다?”

“네.”

-끝. 노란 선 따라면 돼.

시야에 살랑거리는 끈이 생겼고 그건 엉뚱하게도 아카데미 밖을 향하고 있었다. 의아했으나 리쳇이 내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기에 일단 따랐다.

“가게?”

내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자 그가 아쉬운 듯 빈 잔을 내게 흔든다.

“네.”

해변을 해제하자 야자열매는 물론이고 잔도 사라졌다. 그는 나이에 맞지 않게 볼살을 축 늘어트리고는.

“잠깐, 왜 그리로 가?”

“돌아가는 길에도 배울 게 있다잖아요. 한 번 가보려고요.”

대충 변명을 던지고는 리쳇의 안내를 따라 걸었다. 아카데미의 높은 담장을 끼고 한참을 이동하니 사람 한 명 간신히 통과할 법한 작은 개구멍이 나왔다.

기어들어 가 뒤를 돌아보자 벽에 글씨가 적혀 있었다.

[스토퍼 찰리의 탈출 루트 5번]

[본좌에게 감사혀라 중생들아!]

‘이거 어떻게 찾았냐.’

-여기만 빛이 희미하게 들길래 좀 당겨 봤지.

리쳇의 이런 관찰력 덕에 위기를 모면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잘했어.’

-뭘 이 정도로. 그리고 이쪽은 함정도 없어. 그냥 올라가기만 하면 돼.

나는 느긋하게 숲의 정취를 즐기며 산을 탔다.

참, 애들 걱정할 테니 방송 잠깐 킬까.

가방에서 휴대용 아울캠을 꺼내 어깨에 장착했다.

아울캠은 칩과 연동되어 내가 보는 시야와 나를 삼인칭으로 촬영하는 기술이 탑재된 기기다.

[서히아 시험 중, 꿀 루트 발견!]

제목을 대충 정하고 스트리밍을 시작하자 시야 좌측 하단에 뜬 창에 채팅이 주르륵 올라간다.

-혁아, 힘내!

-형, 합격하고 와!

-떨어지면 올 때 망고나.

켜지자마자 소민 누나와 태양이, 그리고 나라가 응원을 보내왔다.

-헉, 여기 어디야.

-얘는 왜 혼자 삼림욕하고 있냐.

-다른 방송이랑 배경 자체가 다름.

-옆 동네는 골렘이랑 치고받고 난리 났던데.

“안녕하세요.”

-ㅎㅇㅎㅇ

-뭐야, 여기 어디야.

-시험 아닌 거 아님?

“시험 맞고. 여기는…, 스토퍼 찰리님의 루트를 우연히 발견해서 오게 됐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스토퍼 찰리가 뭐야. 아는 사람?

-검색해보니까 퇴직한 히어로네. 25년 서히아 졸업생.

-헐…, 우리 만혁이에게 빽이 있었던 것임?

“아니요, 우연히 발견했어요.”

퇴직했으면 상관없겠네.

나는 그대로 카메라를 돌려 저 멀리 보이는 장벽의 아래를 찍었다. 거기를 확대해서 전송하자.

-미친, 탈출 루트를 입학시험에서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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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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