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5화 (5/201)

<5화>

입학시험 (2)

-탈출 루트가 뭔데요?

-약속된 외박권?

-네?

-아카데미 합격하면 바로 기숙사 생활하거든? 근데 말이 기숙사지 감옥이나 다름없어서 나같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든 나가려고 애쓰지. 그때 저런 탈출 루트를 이용하는 거고.

-밖으로 나가는 게 어려운가 봐요?

-당연. 서히아가 괜히 성장률 1위가 아니야. 대학원생도 치를 떤다니까.

-그럼 앞으로 저기로 다니면 되겠네요.

-바보냐, 방송으로 공개됐으니 곧 막겠지.

채팅창에서 얻은 정보의 질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주시하며 산을 올랐다.

그러다 어느 순간 노란 줄이 수평을 그린다. 내가 멈칫하자 리쳇이 확답한다.

-거기 맞아.

나무를 어떻게 뚫고 들어가라고. 무슨 헬리포터도 아니고. …설마?

나는 돌부리에 걸린 척하며 자연스레 나무를 짚었다. 그러자 쑥, 팔이 빨려 들어가는 게 아닌가.

-어?

-블링크?

-저거 간이포탈 같은데.

눈앞에는 전에 봤던 교장이 거대한 동상이 되어 서 있었다.

‘리쳇. 이건?’

-위를 봐.

고개를 들자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나 한참을 주시하니 아주 작게, 방금 내가 짚은 나무로 추정되는 가지 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사라졌다.

-아카데미 삼림관리원들의 통로가 있대서 찾아봤지.

‘대단하네. 역시 리쳇.’

-후후.

나는 최대한 놀란 척하며 일어났다.

“이야, 신기하네요. 이런 통로가 있었을 줄이야.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잠깐!

-아니, 여기서 끈다고?

원성을 무시하고 캠을 해제한 뒤 동상문을 살폈다.

【터치존】

교장의 프로필이 상세히 적힌 기념비에 홀로그램 손 모양이 보였다.

‘내가 1등인가?’

-어. 2등이랑 30분 차이.

시간이 꽤 빈다. 훈련이나 할까. 옆으로 좀 이동해 해변을 불러냈다.

쏴아아-

끼룩, 끼룩.

오늘따라 유독 햇빛이 세다. 보관함에서 선글라스와 해변 의자, 마지막으로 나라가 보던 패션 잡지를 꺼내 펼쳤다.

얼마간 그러고 있자 누군가 헉헉대며 올라온다. 소년이 나를 발견하곤 흠칫하더니.

“교수님. 동상문이 여기 맞습니까?”

교수님?

하긴 자기 앞에 아무도 없었을 테니 착각할 만도 한가.

“이름이?”

“스위프트입니다.”

이름을 물었더니 히어로명을 댄다. 소년은 터치존에 손을 댄 후에 내게 다가왔다.

“여기서 쉬면 됩니까?”

딱딱한 말투에 스위프트라는 히어로명. 바람을 다루는 그놈이 맞지 싶다. 어떻게 부유를 쓰는 퀸보다 빨리 왔나 싶었는데, 이 녀석이라면 가능성이 있다.

“의자. 가져다 써도 좋다.”

“괜찮습니다. 모래가 편합니다.”

그러고는 벌렁 드러누워 호흡을 고르는 소년. 붉은 기가 도는 머리칼에 다부진 몸. 특징으로는 색이 들어간 안경을 꼽을 수 있겠다.

“퀸은?”

“예?”

아, 아직 퀸이 아니지.

퀸은 슈퍼히어로가 되고 나서 붙은 별명이다. 이름은 아마….

뭐였지.

그리고 보니 퀸을 이름으로 부른 기억이 없네.

“금발 머리에 푸른 눈, 날아다니고 빠른 여자.”

“모르겠습니다.”

이상하네, 날아다녔으면 눈에 띄었을 텐데.

곧 다음 녀석이 도착해 스위프트와 같은 표정으로 우리와 동상문을 번갈아 본다.

내가 턱짓으로 터치존을 가리키자 그제야 거기에 손을 대고 안도의 숨을 쉬며 이쪽으로 왔다.

“스프, 너 진짜 빠르다!”

양 갈래 머리칼을 한 소녀. 3m에 달하는 큰 키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스위프트다. 그리고 특성 풀어, 그림자 생긴다.”

“아 참.”

거대화.

강화계 특성 중 희귀한 편에 속한다. 거대 전의 육체를 기준으로 최대 신장이 정해져서 타고난 피지컬이 좋을수록 위력을 발하는 능력.

특성을 해제했음에도 2m에 달하는 큰 키로 나와 스위프트를 내려다보는 소녀.

“이름이?”

“마가렛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반갑다. 의자를 원하면 가져다 써도 좋다.”

“옙!”

갈매기가 어떻다느니 구현계라 부럽다느니 하는 마가렛의 잡담을 듣던 중, 한 무리의 그룹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네로가 3등 찍겠다!”

“자칼이 조금 더 빨라.”

“앗, 그러네.”

다섯 명이 간발의 차로 순위가 정해졌다.

“얘들아!”

그들은 마가렛의 안내를 받아 의자를 가져오더니 주변에 자리 잡았다.

“자칼, 너 치사하게 네 발로 달리는 게 어딨냐.”

“억울하면 너도 동물계 각성하지 그랬어.”

“마가렛. 저분 교수님이셔?”

“응. 이 해변 직접 구현하신 거래.”

“오-”

“서몬 학파의 마법으로도 이 정도는…!”

“안토니오. 아무도 안 물었어. 혼자 화내지 좀 마.”

“흥.”

단숨에 시끌벅적해졌다.

사람이 이렇게 모이면 나를 의심할 만도 한데 전부 그러려니 하는 게 좀 신기하다.

-두 명 온다.

“으아아!”

“비켜!”

소란에 고개를 돌리자 웬 파도와 빙판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영복 차림에 서핑보드를 탄 소녀, 스케이트를 신고 빙판을 내달리는 소년.

‘쌍둥이?’

나는 잡지를 접어 넣고 저들의 레이스를 뒷짐 진 채 구경했다.

“교수님도 다른 구현계는 신기한가요?”

붙임성이 좋은 마가렛이 다가와 묻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주칠 일이 없으니까.”

“예? 어…, 교수님이면 그래도 강의할 때 자주 보는 편 아닌가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동상문에 들이박듯이 터치한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고생했다.”

“으, 누가 이겼나요?”

“이마에 상처부터 치료해라. 저기 애들 모인 곳에 구급상자 있다.”

“네에, 그래서 누가?”

“네가 빨랐다.”

“좋았어! 케롤라인. 앞으로 오빠라 불러.”

“X까.”

“야!”

투닥이며 걸어가는 쌍둥이를 지나쳐 터치존에 손을 올리려는 찰나.

“헤엑, 헥.”

곱게 땋은 머리칼에 큰 뿔테 안경을 쓴 금발의 소녀가 비척대며 걸어온다.

관심을 거두고 몸을 돌리는데.

‘…음?’

우연히 습득한 퀸의 졸업사진이 떠올랐다.

홱.

고개를 돌려 금발소녀를 다시 살폈다. 안경을 치우고 쌍꺼풀을 넣으면….

“퀸?”

다시 보니 이목구비가 확실히 퀸의 것이다.

세상에.

“저….”

터치존을 막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소녀.

“…비켜주세요.”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 내리깐 시선. 왜소한 몸집.

눈앞의 소녀는 내가 아는 자신감 넘치고 파워풀한 퀸이 아니었다.

“기다려라.”

“아, 네.”

당황하면서도 내 말을 수용하는 그 모습에 미간이 좁혀졌다.

퀸에게 학창 시절 이야기를 물으면 늘 말을 돌리던 이유가 이거였나.

삑-

[입학시험 통과]

[순위 : 10]

“아!”

몹시 아쉬워하는 퀸. 나는 빙긋 웃으며 자리를 내어줬다.

“좀 더 열심히 하지 그랬냐.”

퀸이 말없이 노려본다. 저 분위기는 그때랑 똑같네. 나는 여느 때처럼 낄낄 웃었다.

그대로 해변을 회수하고 동상문을 밀고 들어가자 아이들이 경악한다.

“10등? 수험생이었어?”

“우릴 속인 거야!”

“말도 안 돼.”

“야! 마가렛, 네가 교수라며.”

“그게 나는 스위프트가 교수님이래서….”

“에이. 어쩐지 너무 동안이더라.”

“우리도 빨리 가자!”

* * *

[경)입학 시험 합격(축]

오래된 아날로그 플랜카드가 걸린 강당에는 연한 락스향이 풍기고 있었다.

구석 자리에 대충 앉자 녀석들이 들어왔다.

“야, 쟤.”

“놔둬. 튀고 싶어 안달 난 놈에게 관심을 주면 안 된댔어.”

“맞는 말이네.”

저렇게 나를 노려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연기 잘하던데? 선글라스는 어디서 샀어?”

“해변에 파도도 쳐?”

“지중해지? 좀 얼려봐도 돼?”

마가렛이나 쌍둥이 남매처럼 넉살 좋게 질문을 퍼붓는 아이들도 있었다.

적당히 대답하며 한 시간쯤 지나자 비어있던 의자가 전부 채워졌고 정면 단상에 낯익은 사내가 올라왔다.

“합격자를 발표하겠습니다. 특이사항과 공지가 하단에 첨부되어 있으니 꼭 끝까지 확인하세요.”

서히아역에서 내게 드롭킥을 맞았던 그 계약직 남자다.

공석에서는 존대하는구나.

그가 단상에서 뭔가를 조작하자 각자의 얼굴 앞에 홀로카드가 생겨났다.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합격자 명단]

[수석 : 스위프트]

[차석 : 마가렛 저스팅거]

[3등 : 자칼]

….

….

….

[10등 : 남만혁]

[11등 : 그레이스 멜론, 나탈랴 먼로, 드레이크, 롤랑.]

….

….

….

[60등 : 도수정, 포포, 체인갓, 본 러버, 구신선, 곽어사.]

[특이사항]

[시험 도중 발견한 ‘+1’, ‘+2’는 그 숫자만큼 순위가 상승합니다. 이는 최대 11위까지 적용됩니다.]

[공지]

[식사 이후 13:00까지 이곳에 다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남만혁 학생은 이 공지를 보는 즉시 교감실로 가세요.]

내 홀로카드를 흘낏 본 양옆의 쌍둥이가 어깨를 두드린다.

“교감 성격 더럽대. 조심해.”

“들어가자마자 잘 못 했다고 해.”

“그래, 고맙다.”

그대로 일어나려니까 캐롤라인이라는 이름의 서핑소녀가 옷깃을 붙잡는다.

“기다려줄게. 밥 같이 먹자. 마가렛, 너도.”

“좋지!”

“나는?”

“넌 오든가 말든가.”

결국 넷이 교감실로 향하게 됐다. 계약직 남자가 우리를 안내했고 가는 길에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입꼬리를 흔들어댄다.

똑똑.

“교감 선생님, 데려왔습니다.”

“만혁 군만 들어오세요.”

근처에 있겠다며 살아만 오라는 녀석들을 뒤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급진 사무실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한옥의 툇마루가 나왔다.

“앉아요.”

회색빛이 도는 단발머리. 곧게 선 허리와 지혜가 스며들었을 것만 같은 주름. 소싯적에 미녀로 이름을 날리지 않았을까 싶은 흔적이 얼굴 곳곳에서 보인다.

쪼르륵.

초록색 찻물이 찻잔에 흘러든다.

“들어요.”

후릅.

잠시 찻물을 음미하고 있으니 어디선가 청아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헙!’

이 여자. 정신계였나.

순간 완전히 풀어질 뻔했으나 과거 정신계 각성자에게 호되게 당한 기억이 떠올라 간신히 마음을 다잡았다.

“용건이 뭡니까.”

신경질적으로 찻잔을 내려놓자 교감의 눈에 이채가 돈다.

“교장이 출장 가기 전에 제게 그러더군요. 남만혁이라는 수험생이 10등 안에 들 텐데, 영 마뜩잖을 거라고.”

교장은 내 행동을 어느 정도 간파한 모양이다.

구렁이 같은 영감 같으니.

“그렇습니까.”

“그래서 추가 시험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어떤?”

“남만혁 군은 구현계지요?”

우아하게 눈웃음을 짓는 교감.

“예.”

“토너먼트는 어떨까요.”

다기를 정리하다 멈추고 나를 직시하는 회색 눈동자.

“저는 상관없습니다.”

“의외로군요. 해변으로는 전투가 힘들 텐데요.”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지.

“똥개도 제 구역에서는 먹고 들어가는 법입니다.”

“자신감은 보기 좋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추진하도록 하지요. 가보세요.”

일어나서 문을 열려다 가볍게 던지듯 물었다.

“제가 싫다고 하면 다른 종목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까?”

교감은 빙긋 웃더니.

“아니요.”

문을 닫고 나왔다.

* * *

“제 말이 맞죠?”

“그래, 재밌는 아이구나.”

계약직 남자와 교감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식당으로 가는 남만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대화를 이었다.

“크게 될 놈이에요. 운도 좋고. 거기에 관계자포탈이 있을 줄이야.”

“그럴지도.”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교감이자 실질적 교내 최고 권력자인 프리실라 루드라는 제 아들에게 방금 그 아이에게 사용했던 수준의 간섭파를 날렸다.

“으헤헤. 엄마! 좋아!”

그간 당한 게 많아 정신저항이 높은 아들도 이리 걸려드는 것을. 어찌 그리 태연하게 넘겼을까.

게다가 그런 특성으로 망설임 없이 토너먼트를 오케이 한 것도 놀랍다.

며칠 전. 문을 박차고 들어온 교장이 왜 그렇게 즐거워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운이라.”

아니다.

남만혁의 선전은 철저한 정보 수집에서 비롯됐음이 분명하다.

개구멍의 위치는 그렇다 쳐도 관계자포탈을 외부인이 발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내부자가 있나.”

종종 나온다. 아카데미 정보를 외부에 팔아 돈을 챙기는 몰상식한 놈이.

그건 그렇고 남만혁이 정보를 이용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어렵게 구한 정보를 너튜브로 공개해버림으로써 차후 닥칠 비난을 모조리 소거해버렸지 않은가.

갑자기 10등이 나타났다. 어느 방송에서도 저 소년은 없었다. 낙하산 아니냐. 서히아가 썩었다. 같은 말이 분명 나왔을 것이다.

오만인가 자신감인가.

간만에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낀 프리실라는 멀어져가는 남만혁을 응시했다.

“곧 알 수 있겠지.”

* * *

식사 후 강당.

“저기 가장 뒤에 앉은 남만혁 군의 수험 태도로 인해 재시험이 결정됐습니다. 종목은 토너먼트입니다.”

아아악!

백 명에 가까운 숫자가 동시에 나를 쏘아본다.

아니, 저 계약직이 미쳤나. 거기서 내 이름이 왜 나와.

그런 속내와는 별개로. 다수의 시선을 한 몸에 받자 내 안의 빌런 유전자가 멋대로 입을 움직인다.

“뭐. 어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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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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