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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7화 (7/201)

<7화>

소꿉장난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허허, 너는 현직 히어로도 망설였던 화재 현장에서 메이든 일가를 구했잖느냐. 자신을 믿거라.”

“우리 딸, 망설이지 말렴. 너는 위기에 강한 아이란다.”

“저, 해볼게요!”

제 목표는 10등 안에 드는 거예요. 부모님과 메이든 가족 앞에서 부끄럽지 않으려면 그 정도 순위는 따야겠죠.

시험 당일.

“악!”

감독관으로 보이는 분께 드롭킥을 날리는 해괴한 학생도 있네요.

오르막길을 달려가며 뒤를 돌아보니 그는 아예 앉아서 감독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더군요.

굉장히 여유로운 모습이었어요. 거리를 제 집으로 아는 노숙자도 저렇진 않을 거예요.

동상문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답니다. 저를 비롯한 수험생들은 필사적으로 골렘을 무너트리고 함정을 돌파해 목적지에 도달했죠.

마지막 고개를 넘기 직전, 비장의 특성. 부유로 경쟁자들을 앞지르려는 순간.

태어날 때부터 각성한 것으로 유명한 스위프트가 자기 주변으로 돌풍을 일으켰어요.

저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슬프게도 공중에 떠 있던 저는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멀리 날려가고 말았죠.

부유는 너무도 불안정해서 한 번 흐트러지면 다시 폼을 되찾는 데 오래 걸려요. 그래서 차라리 달리기로 마음먹었죠. 겨우 선두 그룹을 따라잡아 고지에 오른 순간.

그가 있었어요.

기다리라는 말에 멍청하게 ‘네’라고 답한 저 자신이 너무 싫었어요.

[10등]

그의 어깨 너머로 숫자만 보였죠. 이 이상한 남자는 대체 언제 저를 앞지른 걸까요.

“좀 더 열심히 하지 그랬냐.”

낄낄.

얄미워요. 정말. 너무. 어떻게 사람이 이렇죠. 겸손을 모르는 걸까요!

다시는 이 남자와 부딪히지 말자고 속으로 맹세한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있을 수 없는 치욕을 당했어요.

“가자! 퀸 보드! 으하하하하!”

등에 올라타다니!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어요. 이게 사람의 유전자를 지닌 인간일까요?

사람 말을 하는 유사 인간이 분명해요. 인간화하는 특성을 각성한 원숭이일지도 모르겠어요.

위기가 있었지만 어떻게든 떨쳐냈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사람에게 욕을 했답니다.

“죽어버려!”

아! 속이 시원하네요. 저대로 탈락하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그는 바닥을 물로 바꿔 살아남고 말았어요.

스위프트와의 대련을 끝낸 마가렛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어요. 바다를 구현하는 능력이라고 해요. 히어로에는 어울리지 않는 특성이에요.

조금 기뻤어요.

“남만혁. 그리고.”

이름이 남만혁이로군요.

“그레이스 멜론.”

저 무도한 작자가 제 상대라네요. 굉장히 불쾌하지만, 합법적으로 때려도 되는 기회라 여기니 나쁘지 않은 것도 같아요.

그가 하는 행동과 말투는 전형적인 3류 빌런의 작태에요.

달려가서 머리를 쥐어박으면 엎드려서 빌겠죠. 제게 혼난 럭비부 애들처럼 말이죠.

후후.

달렸어요. 역시나 잔재주를 부리는군요. 반응하기에는 늦었어요. 하지만 이럴 때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몸에 맡기면 대체로 해결돼요.

자, 이것 보세요. 잘 피했습니다. …저건 뭐죠. 왜 저런 안쓰러워하는 눈으로 저를 보는지 모르겠네요.

3류 빌런은 몸을 돌려 걸었습니다. 바다로 들어가는군요. 포기하는 걸까요?

“드루와. 야자열매로 확 담가버릴라니까.”

갱단의 흉내라도 내는 걸까요. 하나도 무섭지 않네요.

그때 척추를 관통하는 찌릿한 감각이 느껴졌습니다.

왔어요!

이럴 때는 세 특성이 모두 잘 사용된답니다. 이유는 닥터도 아버지도 몰라요. 그냥 제 징크스 같은 거죠.

날았습니다.

그가 원숭이처럼 야자열매를 들어 올리네요. 던진다 해도 제 가속을 따라올 수는 없겠죠.

원을 그리며 경기장 위를 계속 돌았어요. 어느 순간 충격파가 터졌고 그걸 신호로 내구 특성을 강하게 의식하며 그가 있는 곳으로 떨어졌어요.

삐이-

으, 아직 내장과 고막은 완벽하게 보호되지 않아요. 지금과 같은 수준의 다이브를 자주 해야 단련이 된다고 해요.

아카데미에서 도움을 받아 훈련할 생각이랍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이런 수준의 힘이 가해지면 멀리 날려가거나 비명이 들려야 하는데. 너무 조용해요.

“야.”

“읏?”

뒷목을 잡혔습니다. 돌아봤을 땐 제 얼굴 앞에 ‘Q’가 음각된 야자열매가 있-

퍽!

* * *

천장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퀸.

어이구, 애쓴다 애써.

가속해봐야 음속이지. 물론 그것도 대단하다만은 유니버스 다이브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을 세웠었던 내게는 하등 부질없는 행동으로 보였다.

실제로 꼬라박는 타이밍과 각도가 너무도 잘 보였다.

나는 퀸을 안다. 눈빛. 몸짓. 사소한 버릇까지도 기억한다.

다이브 직전 목표지점을 확인하고 숨을 고른 뒤, 주먹을 꽉 쥐었다 핀다. 저건 어른이 돼서도 안 변한다.

징크스라나 뭐라나.

그 덕에 어렵지 않게 유도, 회피에 성공. 지면이 아니라 물이라는 점이 내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땅이면 크레이터가 생겼겠으나 우리 미르토스 해변은 저 폭력적인 여자마저도 너그러이 수용하는 담대함을 갖췄거든.

쾅!

잠수하고 있던 나는 물살에 밀려나기만 했을 뿐, 생채기조차 생기지 않았다.

어리둥절하며 수면 위로 헤엄치는 퀸을 뒤따랐다.

주변을 둘러보곤 내가 없자 의아해하다 이내 의기양양하게 코웃음을 친다.

어린 것.

아직 배울 게 많구나.

빌런의 시체를 확인하지도 않고 안심하면 안 되지.

“야.”

어깨를 움찔하며 놀라는 모습이 어째 애잔하다.

삐걱대며 돌아보는 퀸의 안면에 코코넛Q를 내리쳤다.

그대로 널브러지는 퀸. 나는 녀석의 허리를 받쳐 물에 잠기는 것을 막고 헤드록 하듯 팔로 목을 감아 해변으로 올라왔다.

뽀각.

오.

퀸을 보내버린 야자열매가 때맞춰 갈라졌다. 나는 마침 잘됐다 싶어 입을 가져다 대고 양껏 마셨다.

“크으, 이거지.”

팔로 입을 닦고 호쾌하게 코코넛을 옆으로 던진 뒤 고개를 들자 모두의 눈이 내게 꽂혀 있었다.

코코넛 먹는 사람 처음 보나.

“뭘 봐.”

“큭, 큼. 남만혁 예비 입학생이 구현을 해제하면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이후 경기장의 보수, 부상자의 치료가 이어졌다.

마가렛과 쌍둥이 남매 그리고 나는 경기장 외곽에 세워져 있는 간이 바디 스캐너를 통해 몸 상태를 점검했다.

나와 쌍둥이는 ‘이상 없음’으로 떴으나.

[마가렛 예프소비치]

[발목염좌, 2주 요양 권장]

“안 돼!”

“마가렛, 괜찮을 거야. 너 엄청났잖아. 무조건 A반이야.”

“케롤라인….”

2회전에선 1회전 승자끼리 맞붙고 무승부 경기는 재경기를 치른다. 다만, 부상자는 열외란다.

나도 케롤라인의 생각과 같다. 평가단의 눈이 옹이구멍이 아니고서야 마가렛 정도 되는 수험생은 무조건 A반이다.

휴식이 끝나고 경기가 재개되었다. 2회전의 내 상대는 아담한 키의 여자아이였다.

노란색 모자의 챙을 잡았다 놓으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트레이시 그웬이야.”

“남만혁.”

양손에 야자열매 하나씩 잡고 전투 태세를 갖추자 녀석은 입을 가리고 킥킥 웃더니.

“항복.”

호각을 입에 물고 있던 계약직남이 다가와 물었다.

“항복 맞나요?”

“넵! 제 특성은 전투에 맞지 않아서요. 1회전에선 상대가 먼저 항복했고요.”

“알겠습니다. 승자, 남만혁.”

다가와 악수를 청하는 트레이시. 작은 손을 붙잡자 내게 몸을 바짝 붙이며 작게 소곤거린다.

“코코넛 안에 쇠 넣은 거, 심판도 알아?”

어쭈.

정확하게는 태양이가 운동할 때 쓰던 아령이다. 휴식 시간 동안 해변의 보관함에서 꺼내 은밀히 욱여넣느라 꽤 고생했다.

“어떻게 알았지?”

“비밀.”

그러곤 발랄하게 웃으며 경기장을 내려가는 트레이시.

탐색계 특성인가.

녀석은 경기장에 올라올 때 손에는 너클. 허리엔 고무 단도를 차고 있었다. 바로 항복할 사람이 굳이 무장을 갖출 리 없다. 녀석은 싸울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경기 시작을 외치고 몇 초 지나지도 않아 항복한다는 건, 그 사이에 아령을 발견했다는 건데.

탐색계 각성자는 희귀하다. 엄밀히, 저렇게 신속 정확하게 위협을 감지하는 이는 정말 드물다.

좋아. 너는 내 전용 레이더다. 트레이시 그웬.

싱겁게 2회전이 끝나고 부상자가 쏟아져나온 격전의 3회전을 거쳐 4회전이 되었을 때.

나를 포함해 8명. 전원 10등 안에 들었던 녀석들만 남아 있었다.

“스위프트, 남만혁. 올라오세요.”

레디, 파이트를 외친 계약직남이 뒤로 빠지고 한참이 지났으나 스위프트는 공세를 취하지 않았다. 그저 팔짱을 낀 채 나를 주시하고 있을 뿐.

왜 저래 저거.

휘오오-

“윽!”

앞에서 불어오는 강풍에 눈을 한 번 깜빡였을 뿐인데,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러다 천장에 부닥치겠다 싶은 순간. 옆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정체가 뭐지?”

정체?

“너는 가장 먼저 도착했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순위를 양보했다. 그리고 상대의 무모한 돌격을 바다로 유인해 큰 부상 없이 경기를 끝냈지.”

혼자 뭐라는 거야.

“정말 교수 행세라도 할 셈인가? 아니면, 아카데미에서 심은 스파이인가?”

스파이는 너무 간 거 아니냐.

“스위프트.”

내 진중한 목소리에 녀석의 목울대가 꿀렁인다.

나는 천천히 두 글자를 입에 담았다.

“항복.”

일그러지는 스위프트의 얼굴에서 약간의 쾌감을 느낀 나는 볼품없이 흔들리는 얼굴 가죽을 추스르며 재차 말했다.

“항복이라고. 이러다가는 다…, 죽어.”

“쯧. 말할 생각이 없나.”

스위프트와 지상에 내려온 나는 발이 지면에 닿자마자.

“항복이요.”

“승자, 스위프트.”

트레이시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녀석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녀석은 무표정으로 손을 잡았다.

“비밀로 해.”

네 추측이 맞다. 그러니까. 비밀로 해라. 그런 뉘앙스를 풍기자 눈을 부릅뜬 스위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알겠다. 무덤까지 가져가지.”

생각해보니까, 이 녀석의 의심을 빨리 종식시키는 게 낫겠더라고. 괜히 내게 관심을 가져 사사건건 참견하면 귀찮아지지 않겠는가.

스위프트의 결승전 상대는 의외로 소환 학파의 마법사였다.

“안토니오 골드우드. 스위프트. 올라오세요.”

정령과 맹수를 소환해 스위프트를 상대하게 하고 자신은 캐스팅이 들어가는 안토니오.

스위프트는 염동력으로 정령을 밀쳐내고 자연체로 맹수의 공격을 흘리며 빠르게 안토니오에게 접근한다.

적이 가까이 도달했음에도 마법사는 팔뚝 길이만 한 지팡이를 움켜쥐고 흔들림 없이 주문을 읊었다.

“…나 바라노니, 청백색의 창이여.”

참고로 골드우드 가문은 소환 마법으로 유명하다. 지금 주문은 번개를 부르는 영국 마법식이고.

그나저나 신기하네.

저 정도 수준이면 마탑에 들어가는 게 엘리트 코스의 정석일 텐데. 히어로 아카데미에는 왜 왔지.

“적을 격멸하라.”

어, 여기서 주문강화를 쓴다고? 스위프트를 죽일 셈인가.

마법의 최종 형태와 위력은 해당 마법사가 마지막에 읊는 단어를 들으면 대강 짐작할 수 있다.

투자한 마나와 고른 단어에 따라 위력이 정해지는데, 격멸이면 숫제 죽이겠다는 뜻이다. 얼굴이 창백한 걸 보면 마나도 거의 다 때려 박았고.

원한이라도 있나.

계약직남은 멀뚱히 그냥 보고만 있고, 저 멀리 이곳을 지켜보던 아카데미 교수들만이 벌떡 일어나 급하게 무어라 외친다.

저래서는 늦다.

나는 할 수 없이 마가렛에게 야자열매를 쥐여줬다.

“아무것도 묻지 말고 이걸 전력으로 던져. 빨리.”

갑작스러운 요구에 놀랄 법도 하건만, 마가렛은 순순히 내 말대로 움직여줬다.

거대화한 우완의 끝에서 야자열매가 로켓처럼 튀어 나갔고 천장에 닿으려는 찰나.

콰릉-

번개가 야자열매를 관통해 경기장 바닥에 내리꽂혔다.

푸른 그을음이 잔류하는 광경을 바라보던 계약직남은 그제야 매우 놀라며 안토니오를 제압했고.

이를 한 박자 늦게 알아차린 스위프트는 경기장 구석을 굴러가는 아령을 보며 짓씹듯이 말을 뱉었다.

“졌…습니다.”

아령이 없었다면 맞았을 것이라는 걸 안 모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체는 자연 속성에 취약하다.

어쨌든 늦지 않았다.

아령이 번개를 아주 미세하게 유도했기 때문인지, 마법사의 실수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으나 미래의 병사가 다치는 일 없이 끝났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계약직남과 교수들이 이쪽으로 몰려왔다. 그들이 무어라 입을 열기 전에 내가 선수를 쳤다.

“마가렛, 네가 스위프트를 살렸다!”

“응? …어?”

“자네였구먼! 나는 응급구조 및 탈출을 가르치는 쓰레셔라고 하네. 꼭 내 강의를 들으러 와주게.”

“뭐? 시켜서 했다고? 겸손하군. 인간은 누구나 뇌가 시켜서 몸이 움직인다네.”

“자자, 조용한 곳에서 마저 이야기하지. 가세들.”

슥 옆으로 빠져나가는 나를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는 마가렛.

고생해라. 노인네의 관심은 교장으로 충분한지라.

녀석의 시선을 외면하고 소란스러운 틈을 타, 벼락 맞은 아령을 챙겨 쌍둥이 남매 사이로 몸을 숨겼다.

악당은 언제나 은밀히 사라지는 법 아니겠는가.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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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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