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예상치 못한 선물
시험 종료 후 평가단 회의.
“프리실라 교감 선생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글쎄요.”
“그럼 제 의견부터 밝히겠습니다. 수석이라는 것이 마냥 시험 내용만으로 정하기에는 우리 아카데미의 사회적 위치가 너무 높습니다. 하여, 차후 아카데미에 누가 되지 않도록 개인의 성품과 외부의 인지도 또한 고려해야 마땅합니다. 결승전에서 승리를 목전에 뒀음에도 상대를 배려해 항복한 스위프트 학생이, 이런 수석의 자리에 가장 부합되지 않나.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금일 회의의 최대 화두는 결승전의 결과를 어떻게 결정하느냐였고, 교수들의 대화가 격해지자 프리실라 교감이 둘 다 패배한 것으로 처리했다.
“수석은 마가렛 학생이 좋겠네요.”
“예? …사고를 막아서 그러십니까? 그렇다고 한들 2차전에 오르지도 못한 아이를 합격시킬 수는.”
“불만이세요?”
“아, 아닙니다.”
아카데미 내에서만큼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교감이다.
그녀의 가문과 인맥. 그리고 국가 공인 간섭계 특성 보유자라는 타이틀이 스위프트를 지지하던 교수의 의지를 꺾었다.
“스위프트는 차석으로 하지요.”
“…알겠습니다.”
교감의 독단적인 결정에 교수들의 안색이 흐려졌으나 프리실라 루드라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또 받아먹었다지.’
스위프트의 부모가 저 게타 교수에게 뇌물을 건넨 정황이 잡혔다.
큰 금액은 아니어서 공론화해도 식사 대접을 거하게 받았다는 식으로 넘어가면 그만인 수준인지라 찍어내기도 애매하다.
“3등은 골드우드 가문의 자제가 어울리지요?”
게타의 옆에 앉은 매저드 교수.
자신이 평생을 바쳐온 마도학에 무조건 긍정하는 자로 흑마법과 혈마법도 주류마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법사.
그런데도 교수로 데려온 이유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성인으로 통하는 데다 유능하기 때문. 학파를 가리지 않는 마법 그 자체에 대한 사랑과 완전 기억 특성을 보유했기에 누구보다 교육자로서의 소양은 뛰어나다.
그러나 가끔 마법을 배운 아이가 들어오면, 저렇게 도를 넘는 애정 공세를 펼치는 게 문제다.
“반대합니다. 안토니오 골드우드는 히어로의 재목이 아닙니다.”
교감 대신 반론을 펼치는 프로스트 교수.
“어째서 그렇습니까?”
“몰라서 묻습니까. 대련에서 ‘격멸’을 외웠습니다. 그건 사람을 죽일 생각이었던 겁니다.”
“과격한 주문은 맞지만 꼭 그렇다고 보기에는-”
또 갑론을박이 시작되려 하자 교감이 나섰다.
“그레이스 멜론이 괜찮겠네요.”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나왔으나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게타 교수가 고개를 들고 입술을 벌리려는 순간 교감의 시선이 그에게 닿았고 석상이 된 것처럼 굳었다.
수군거리는 교수들.
‘간섭파를 쏘셨나.’
‘게타가 또 받아먹었구나.’
‘쯔쯔, 교수라는 작자가 한심하게.’
“골드우드는 4등…, 이 적당한 듯하고. 5, 6등은 쌍둥이 남매가.”
교감의 눈치를 보며 순위를 정하는 교수들.
10등 차례가 되자 교감의 찻잔 내려놓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여러분은 남만혁 학생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남만혁? 아, 마가렛 양이 언급한 학생 말씀이시군요.”
“기교에 능하고 판단력이 좋습니다. 그리고 구현의 숙련도가 대단합니다.”
구현계 각성자도 종류가 많은데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환영과 실체.
단어 뜻 그대로 환영은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실체는 각성자의 의지에 따라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각기 장단점이 있고 활용하기 나름이지만, 실체화의 난이도가 높아 가산점을 받는다.
“그러나 히어로로 활동하기에는 아쉬운 특성입니다.”
“구조 전문가로서의 장래는 매우 기대됩니다. 소방관을 권유하는 건 어떨는지.”
“10등입니다.”
“예?”
“계속 회의 진행하세요.”
몇몇 교수의 입이 아이처럼 튀어나왔으나 끝내 불만을 토로하진 않았다.
교감은 찻잔을 들어 입을 가린 채 조소를 머금었다. 녀석은 시험을 시작하고 고작 6시간 만에 히어로 유망주들에게 빚을 안겼다.
그 모습에서 노련한 정치인의 정략이 떠오르는 건 착각일까.
탁.
“뒤는 맡기겠습니다.”
“예!”
다른 학생에게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 교감이 먼저 일어나고 나서야 게타 교수의 입이 트였고 회의에 활기가 생겼다.
그렇게 정해진 합격자, 총 60명.
예년과 다를 바 없는 숫자였다.
* * *
수석으로 합격한 마가렛이 강당에서 눈물의 소감문을 발표한 다음에야 학생들의 최대 관심사인 반 배정이 시작됐다.
A에서 F반.
A가 엘리트 클래스고 F는 성적이 떨어지거나 상대적으로 모호한 특성을 보유한 아이들을 모아둔 반이다.
“배정 끝났습니다. 홀로카드를 확인해주세요.”
계약직남이 공지하자 아이들은 서둘러 받은 카드를 훑었다.
[A Class]
[마가렛 예프소비치]
[스위프트]
….
….
….
[남만혁]
“1등부터 10등까지 학생들은 반을 변경할 수 있으니 언제든 말씀하세요.”
아이들이 농담으로 여기며 웃을 때, 내가 손을 들었다.
“F반으로 가겠습니다.”
마가렛과 쌍둥이 남매. 심지어 그레이스까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스위프트만이 뭔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인가요?”
“저는 저를 잘 압니다. 10등이 된 건 우연이 겹쳤을 뿐이죠. 저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기회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허어.”
단상 뒤편에 앉아 있던 어느 교수가 탄성을 흘린다.
“알겠습니다. 남만혁 학생의 의견을 반영하죠. 여러분, 열심히 해야겠네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들이 고개를 기울이자 교감이 그의 마이크를 빼앗았다.
“한 반의 정원은 10명입니다. 한 자리가 비는군요.”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A반에 들어가면 받을 수 있는 장학금과 졸업 후까지 이어지는 케어.
나같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원할 것이다.
“월말 평가전에서 여러분의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A반 학생을 뽑겠다는 교감의 선언.
오오오!
계약직남이 교감에게서 마이크를 공손한 자세로 건네받았다.
“이어서 기숙사 배정이 있겠습니다.”
이번에도 카드를 통해 공지되었다. 나는 내 이름을 검색했는데, 이상하게 검색 결과가 ‘없음’으로 떴다.
옆에 앉은 마가렛의 홀로카드로 해봐도 마찬가지.
‘뭔가 잘못됐다.’
나는 계약직남에게 이런 상황이라는 걸 알렸고 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눈으로 교감을 가리켰다.
“프리실라 교감 선생님, 제게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내가 대놓고 물을 줄은 몰랐는지 주변 교수들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방이 없어요.”
세계 최대 아카데미 중 하나인 서히아에 방이 없다니? 대놓고 날 엿 먹이겠다는 뜻 아닌가.
10등 한 게 그렇게 고까웠나.
“남만혁 학생, 오해하는 거 같아서 말합니다만.”
“예?”
“교장의 지시입니다. 방과 후의 자유. 합격하면 주기로 한 선물이라더군요.”
교수들의 묘한 눈길이 교감의 뒤통수에 꽂힌다.
이 영감탱이가?
“진정하세요. 그 늙은 해충과 달리 저는 남만혁 군을 높게 보고 있습니다. 해서, 소소하게 지원을 해드리려 하는데. 어떻습니까.”
“믿고 있었습니다. 교감 선생님.”
이미 결정이 난 상황. 여기서 내가 왈가왈부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줄 때 받아야지.
교감은 미리 준비한 듯, 주머니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집어서 안을 확인하니 들어 있는 거라곤.
“부싯돌?”
철기 시대에도 버림받았을 못난 돌멩이를 꺼내자 아이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교감을 쳐다보니 그녀는 입꼬리를 당겨 올릴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금년도 입학식을 모두 마칩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등교하면 되고, 그전까지 선택과목 신청 잊지 마세요.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입학, 축하합니다.”
우오오!
환호와 환희로 가득한 강당에서 나만이 웃지 못했다.
* * *
각자 배급된 홀로카드를 들고 흩어질 때, 나는 시험을 치르는 동안 친해진 아이들을 찾아가 하룻밤만 재워달라 부탁했다.
“그…, 미안. 부모님이 오시기로 해서.”
“우리도.”
“다음에 초대할게. 쏘리.”
마가렛과 쌍둥이 남매는 광탈. 스위프트는 식이 끝나자마자 바람처럼 사라졌고. …이제 희망은 그 녀석밖에 없다.
“저기 멜론? 나 좀. 큭, 푸하핫!”
눈이 시퍼렇게 부은 채 돌아보는 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크게 웃고 말았다.
녀석의 얼굴이 붉게 물들더니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죽어!”
그러고는 가버렸다.
아, Q모양으로 생긴 멍을 보고 어떻게 참냐고.
“망했네.”
-로맨. 너처럼 버려진 산장 찾았는데, 가 볼래?
‘으아, 리쳇 눈나. 날 가져!’
-으.
큼.
“어디?”
-…잠시만, 산 타면 30분, 길 따라가면 2시간.
산장이 있는 곳까지 거리가 꽤 된다. 곧 해가 떨어질 테니 가능하면 빠르게 도착하는 게 좋다.
“흐억, 헉. 여긴. 그거, 없어?”
-삼림관리자 통로? 없어, 없어. 사람이 안 다닌 지 10년은 넘은 거 같아.
거의 절벽을 오르는 수준의 등산 끝에 리쳇이 말한 산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산장 맞아?”
-맞아. 응? …볼트측 위성 조우. 구현 해제 요청.
긴급 상황이 되면 리쳇의 말투가 바뀐다. 이전처럼 빔을 쏴서 격추하는 방법도 있지만, 7일간 사용 불가가 뜨면 내 생활이 불편하다.
오늘부터 길거리에서 살아야 하는데, 리쳇의 도움은 필수다.
요청대로 리쳇을 구현 해제하고 적당한 크기의 막대기를 주워 거미줄로 칭칭 감긴 산장의 문을 열었다.
“계십니까.”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다. 테이블이나 의자, 식기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으며 기껏해야 화덕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돌무더기만 뒤뜰에서 발견됐다.
“그래도 지붕이 있는 게 어디냐.”
예전에 해봤던 노숙자 생활에 비하면 이 정도는 양호하다.
어둡고 폐쇄적인 공간이어서 그런지 문득 퀸과 벙커에 갇혔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가 첫 대화였던가.’
당시의 완성된 퀸과 지금 어설픈 퀸을 대조하니 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몇 년 안에 내가 아는 퀸이 된다 생각하니 좀 신기하기도 하다.
‘음?’
산장 2층, 그나마 멀쩡한 방을 침실로 정하고 청소하며 잡생각을 이어가던 중. 갑자기 심장이 뛰고 사고가 가속되었다.
이건 그거다.
급히 상태창을 열었다.
【특성 : 낭만주의자】
【슬롯1 : 그리스 미르토스 해변】
【슬롯2 : 리쳇】
【슬롯3 : 없음】
세 번째 슬롯이 생겼다.
“이게 왜 벌써 열려? 이유가 뭐지. 퀸을 떠올려서?”
그렇다기엔 지금까지 녀석과의 접점이 너무 많았다. 그게 트리거였다면 더 일찍 열렸어야지.
얇은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빗자루를 놓고 생각에 잠겼다. 슬롯을 여는 것과 슬롯을 채우는 건 별개다.
슬롯을 여는 데는 계기가 필요하며 이는 매번 다르다. 일례로 회귀 전에는 오래된 요리 만화책이 트리거였지만, 이번 생에는 효과가 없었다.
계기가 될 만한 게 뭐였을까.
소거법으로 몇 개 쳐 내고 나니 그럴듯한 가설 하나가 남았다.
“진짜 이거라고?”
청소를 위해 잠시 상의 주머니에 넣어 뒀던 부싯돌. 그것을 꺼내 움켜쥐자.
두근.
확실하다. 이거다. 이게 내 슬롯을 열었다.
돌을 쥐고 정신을 집중하니 점차 심장의 고동이 안정되었고 세 번째 슬롯이 완전히 자리 잡는 게 느껴졌다.
“고맙다, 돌멩아. 앞으로 너는 은석이다.”
은혜로운 돌!
은석이를 부서진 창틈에 끼워두고 바닥에 앉아 눈을 감았다.
세 번째 슬롯에 뭘 넣을지는 이미 정해뒀다.
짧은 회고 끝에 슬롯이 채워졌다.
【슬롯3 : 뾰로롱☆마법소녀 블랙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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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