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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9화 (9/201)

<9화>

검은 게 좋았던 마법 소년

‘뾰로롱☆마법소녀’는 제목의 이미지와는 달리 19금 게임이다.

제작사는 넥씨. 720일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야근을 돌린 쓰레기 회사.

뉴스에 과로로 죽은 사람이 나오는 걸 보고 치우기로 결심했다.

내부 공작을 위해 면접을 준비하던 중 해당 게임을 플레이 해봤다. 인정하긴 싫지만 잘 만들었더라.

주인공, 핑크 위치의 설정과 스토리는 작중 대사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아저씨. 좀비가 되었다고 슬퍼하지 마요. 제가…, 위로해드릴게요.”

핑크 위치가 좀비의 기억을 읽고, 가지고 있던 미련을 해소하면 좀비는 눈물을 흘리고는 영면에 든다.

나중에는 그 멈춘 좀비를 조종하는 능력까지 각성하게 되는데, 하여튼. 나는 그 기억을 읽는 능력을 원했다.

각자 다들 사연 하나씩 있잖아? 그걸 이용하면 보다 효율적인 육성이 가능할 거라는 계산이었다.

【슬롯3 : 뾰로롱☆마법소녀 블랙 위치】

문제는 막상 슬롯에 들어온 게 핑크 위치가 아니라는 것.

블랙 위치는 게임 내 막판 보스다.

뭐, 사실 이렇게 된 이유는 짐작이 간다.

좀비와 신파극을 찍는 핑크보단 쿨하게 들이받는 블랙이 더 낭만적이긴 했거든.

“블랙의 특성이 아마, ‘언데드 생성’이었지.”

이 특성은 모종의 장소에서 언데드를 불러온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사물에도 이 특성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 경우 해당 매개의 특징을 살린 언데드가 탄생한다.

블랙 위치가 사기적인 게, 이 매개에는 제한이 없다. 동물, 식물, 심지어 사람까지. 가리지 않고 오브젝트만 존재하면 전부 오케이.

다시 말해 블랙 위치가 마음을 달리 먹었다면 아웃소싱계의 여왕이 될 수도 있었던 것!

핑크 위치의 기억 읽기와 언데드 생성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언데드지!’

바뀐 게 오히려 좋아.

“블랙 위치.”

차마 뾰로롱☆을 읽을 용기가 없어 뒷부분만 입에 담았다.

“으음. 음!”

낭만을 느낀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구현되는 방식이 다른데. 지금처럼 사람일 경우엔 대부분 빙의다.

숙련도에 따라 지속시간이 늘고 그 사람의 능력을 온전히 가져온다.

빙의는 다 좋은데 대상의 욕망도 딸려와서 문제다. 지금 내게는 두 가지 욕망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변신. 그리고 마법봉.

다행히 블랙 위치는 신비주의 콘셉트인지라 짙은 보라색 수트와 검은 망토를 두른 모습으로 변신한다.

급한 대로 입고 온 저지를 벗어 망토처럼 어깨에 걸치자 답답하던 가슴이 한결 편해졌다.

마법봉은….

당장 눈에 띄는 게 없어 거미줄 제거에 썼던 나뭇가지와 창문 틈에 끼워뒀던 은석이를 조합해 만들었다.

돌 맛 츄파춥스 같은 모양새지만, 이 역시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준비는 끝났다.

“루루리 루루.”

마법봉을 흔들며 블랙 위치의 주문을 읊자 허공에 정육면체의 검은 상자가 생겼다.

“라랄리 라라.”

다음 주문을 외우니 상자의 윗면이 텅, 소리를 내며 열렸고 새하얀 손가락뼈가 튀어나온다.

좁은 공간에 뭉쳐져 있던 뼈들이 연신 달그락거리며 움직여 내 앞에 바로 섰다.

나보다 조금 큰 골격. 눈구멍 여섯 개. 이마에 달린 하얀 뿔.

게임상에 등장하는 이족보행 괴수와 흡사한 외형. 블랙 위치가 인외종을 부리는 모습은 못 봤지만…, 하여간 같은 세계관 내의 캐릭터이긴 하다.

‘이게 나온다는 건, 뾰로롱 마법 소녀에 등장하는 다른 괴물들도 소환할 수 있는 건가? 다른 세상의 존재를 부르기도 하던데.’

이건 꽤 흥분되는 일이다. 설정에 충실한 넥씨 게임답게 몬스터의 종류는 다 세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았으니까.

“네 이름은 일식이다.”

달각.

일식이에게 이런저런 명령을 내리다 보니 기력이 쭉 빨려 나가는 게 느껴졌다.

‘당분간 블랙 위치에 시간을 투자해야겠어.’

여기서 생활하려면 노동력이 필수. 삼식이까지만 불러내도 굉장히 윤택한 삼림 라이프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블랙 위치를 해제하기 전에 매개를 통한 언데드 생성를 시험하고자 교감이 내게 줬던 주머니를 대상으로 사용했다.

데굴.

주머니에 눈알이 하나 생긴 게 전부.

‘어디서 봤더라. …아!’

블랙 위치가 마법봉을 꺼내는 핸드백에 이 눈알 장식이 있었다.

곧장 돌법봉을 손바닥 반쪽 크기인 주머니에 밀어 넣자 잘 들어간다.

어디까지 넣을 수 있나 싶어 밖으로 나와 돌과 흙을 담아봤다.

어느 순간 눈알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 흙을 뱉었다.

대충 30kg 정도.

그만한 무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아예 다른 공간으로 이동되는 걸까.

“너는 앞으로 카츄다.”

주머니 괴물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데구륵.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해 블랙 위치를 해제했다. 그럼에도 일식이와 카츄는 여전히 활성화된 상태다.

훌륭하다.

“일식아, 가서 나무좀 주워 와.”

해골은 희미한 안광만 빛낼 뿐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쳐다보자 녀석의 집게손가락이 원을 그린다.

“돈 달라고?”

달각.

“카츄, 너도 돈 필요하냐?”

눈알이 좌우로 움직인다.

이식이를 소환해 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아무래도 매개 없이 소환한 언데드를 움직이려면 대가가 필요한 모양이다.

블랙 위치는 그걸 마나로 대신한 거였나. 당장 현금이 없는데.

“외상은 안 되냐?”

고개를 젓는 일식이.

에이, 어쩔 수 없지.

나는 녀석의 뿔을 한 손으로 잡고 뒤뜰 벽돌무덤 앞으로 왔다.

“잘 봐둬.”

벽돌을 정리해 작은 화덕을 하나 만든 뒤 일식이에게 똑같은 거 만들 수 있겠냐고 물었다.

달각.

위아래로 끄덕이는 일식.

“이거 얼마면 할래.”

녀석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뼈 손가락 세 개를 폈다.

“그만큼이나 받겠다고?”

사실 나는 저 손가락 세 개가 얼만지도 모른다.

녀석은 움찔하더니 슬며시 손가락 하나를 접기에 내가 나머지 하나도 움켜쥐듯 쥐어 접었다.

남은 손가락 한 개가 처량하게 흔들렸으나 나는 강하게 밀어붙였다.

“우리가 하루 이틀 볼 것도 아니고. 이 정도 노동은 앞으로 하나에 하자.”

달…각.

힘겹게 수긍하는 녀석의 모습에 만족한 나는 앞으로 산장에서 해야 할 일을 녀석에게 가르쳤다.

그러던 와중 밤이 깊었고 슬슬 자야겠다 싶을 때 하늘 저편에서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밝은 빛을 내며 날아온 것은 남자 세 명을 합쳐 놓은 크기의 대형 드론이었다.

조명이 바닥을 비췄고 이내 종이 한 장이 드론에서 떨어졌다.

[생필품. -프리실라 루드라]

그러고는 줄에 묶인 상자를 내려놓더니 산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래. 이래야지. 아카데미가 말이야. 17살짜리에게 노숙을 시키는 게 말이 되냐고.

내가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는지는 좀 궁금하긴 하나 일단 젖혀두고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방한용품과 랜턴, 텐트, 간이침대, 음식이 들어 있었다.

나는 막 불이 피워진 화덕 옆에 텐트를 설치하고 침대를 설치했다.

오. 생각보다 넓은데?

저 곰팡내 나는 산장보다는 훨씬 아늑하다.

텐트 천장에 랜턴을 걸어 놓고 드러눕자 힐링 캠프가 따로 없다.

핫팩을 터트려 침낭에 넣어 두고 밖으로 나왔다. 매서운 산바람이 얼굴을 할퀸다.

허으으. 춥다 추워.

아직 3월이라 그런지 쌀쌀하다. 팔을 쓸며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화덕 옆에 쭈그리고 앉은 일식이가 보였다.

궁상맞게 저기서 뭐해.

가까이 가자 녀석은 좀 전보다 더 희미해 눈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화덕?

내가 알려준 화덕 쌓는 방법을 흙바닥에 그리는 일식이.

짜식.

녀석을 안으로 데리고 와 은색 돗자리에 앉혀 놓고 상자에 있던 모둠 어묵탕을 꺼내 끓였다.

“일식아, 한 입 할래?”

달각거리지도 않기에 돌아보니 녀석의 안광이 사라진 상태였다.

“…거, 형이 이야기하는데 자고 말이야.”

내일 시간 날 때 돈 좀 뽑아 놔야겠어.

후르릅, 후릅. 아뜨뜨.

크으- 이거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어묵 꼬치를 한 입 베어 무니 육즙과 육수가 입 안에서 폭죽처럼 터진다.

햇반을 꺼내 남은 국물에 넣고 데웠다. 그럴듯한 어묵 죽 완성.

든든하게 챙겨 먹으니 절로 눈이 감겼고 간이침대에 누워 극세사 이불을 덮자마자 곯아떨어졌다.

* * *

짹짹- 짹.

“끄으윽.”

새소리에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자 온몸이 뻐근하다. 홀로폰을 켜 시간을 확인하니 토요일 아침.

“어으, 눈이 왜 이렇게 부셔.”

텐트 입구로 빛이 새어 들어왔고 그게 일식이의 반들거리는 두개골에 반사되었던 것.

나는 픽 웃고는 블랙 위치로 변해 돌법봉을 휘둘렀다.

“샤랄리 샤랄라.”

마법 소녀다운 주문을 외우자 내 속의 무언가가 일식이에게 흘러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게 마나인가.

마나는 마법사가 다루는 에너지로 유명하다.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평생 노력해도 최하급 스펠조차 익힐 수 없어, 과거에는 선택받은 자들의 학문이라 불리기도 했단다.

히어로 사회가 도래하고 특성이 마법을 대체하자 자연스레 세간의 평가와 관심이 줄었다.

아무튼 내 마나를 받아먹은 일식이의 안광이 새파랗게 빛나더니 나를 발견하곤 달각거리며 일어섰다.

“가서 나무 좀 해와.”

일식이가 곧장 밖으로 나가더니 주변의 나뭇가지들을 주워 텐트 옆에 쌓았다.

옳지.

“리쳇.”

-굿모닝.

“근처에 정수기 없어?”

교감이 보내준 생필품에 물은 2l 한 통만 들어 있었고 어제 밥해 먹는다고 다 썼다.

-잠시만, …우물은 있네.

“수도가 아니라, 우물?”

-우물.

2051년에 우물이 웬 말이냐.

어쩔 수 없다. 물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어려우니 아쉬운 대로 가 보는 수밖에.

나는 어제 쓰고 구겨 놓은 페트병을 들고 리쳇의 안내를 따라 우물로 향했다.

“저거?”

10분쯤 걸었나. 덮개가 없어 그대로 자연을 받아들인 우물을 발견. 내부는 흙으로 가득 차 있었고. 썩은 내가 진동했다.

“일식아. 네 차례다.”

텐트 용품에 들어 있던 삽을 녀석에게 들려주자 익숙하게 쥐더니 삽질을 해댄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두 시간쯤 걸리려나.”

그동안 나는 선택과목이나 골라야겠다 싶어 냄새나는 우물에서 떨어져 홀로카드를 꺼냈다.

[공지사항 미확인(1)]

새로운 공지라도 올라온 모양. 미확인을 누르자 새 창이 뜬다.

[입학생 전원에게]

[주말은 잘 보내고 계신가요. 여러분의 입학을 다시 한번 축하드린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몇 가지 안내를…]

요약하면, 흥분해서 문제 일으키지 말라. 올해 선택과목은 선착순으로 받는다.

기숙사야 나와는 관계없었기에 넘어가고 선택과목이 선착순이라는 공지에 마음이 급해졌다.

공지가 언제 올라왔는지 보니 어제 내가 잠든 직후였다.

쓰읍.

급히 강의 목록을 펼치자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이 닫혀 있었다.

남은 거라곤.

[야전 요리 (3) - 게타]

[36개 학파의 마법들 (9) - 매저드]

[십자수와 명상, 특성의 상관관계 (7) - 홀른]

[도박판을 지배하는 법 (8) - 고스트핸드]

왜 지금까지 자리가 비었는지 알만한 강의명들이었다.

‘옆의 숫자는 남은 자리겠고.’

한 과목당 총원이 10명이랬으니까 매저드 교수의 강의는 한 명만 신청한 셈이다.

음…. 키워야 할 애들은 필수과목에서 만날 테니, 선택과목 정도는 편하게 골라도 괜찮겠지.

매저드와 고스트핸드 교수의 강의를 체크해 등록을 누르자 같이 듣는 학생의 이름이 떴다.

[36개 학파의 마법들 - 안토니오 골든우드]

[도박판을 지배하는 법 - 그레이스 멜론, 도수정]

순간 잘 못 봤나 싶었다.

멜론아. 네가 왜 거기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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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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