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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0화 (10/201)

<10화>

오전 강의 (1)

“반갑습니다. 1년간 여러분의 담임을 맡게 된 데커드입니다.”

F반의 담임은 계약직남이었다. 이름이 데커드였나.

“첫날이고 하니 자기소개 시간을 갖겠습니다. 한 명씩 나오세요.”

데커드는 교탁 옆으로 비켜서선 앞줄 왼쪽에 앉은 여학생을 가리켰다.

“저, 저부터요?”

“네. 도수정 학생.”

앓는 소리를 내며 교탁 앞에 선 도수정은 놀란 참새 같은 표정이었다.

“도, 도수정입니다. 특성은 부분 단절이고…, 취미는 드라이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고는 후다닥 자리에 들어가려던 도수정은 손을 든 나를 발견하곤 멈춰 섰다.

“사용하는 걸 볼 수 있을까?”

“으…, 제 손에 들어오는 사이즈의 물건을 아무도 만질 수 없게 하는 것뿐이에요.”

그리 말하며 교탁 위에 올려져 있던 소형 교장 동상을 양손으로 쥐었다 놓는다.

오.

교실에 흐르는 미약한 탄성.

투명한 상자에 감싸인 채 허공을 부유하는 동상을 데커드가 쥐려 했으나 허공을 만질 뿐이었다.

“얼마나 유지할 수 있지?”

내가 또 손을 들자 도수정의 눈이 날카로워진다.

“크기에 따라 다르고. 내 손으로 완전히 감쌀 수 있으면 3년 7개월 이상이요.”

그러고는 더 이상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듯 자리에 가서 앉는 도수정.

기간이 꽤 디테일하다. 직접 실험하고 있는 건가.

“대단한 특성이네요. 다음은 트레이시 그웬 학생.”

걔다. 토너먼트 때 봤던. 탐색계 특성 보유자.

“안녕? 난 트레이시야. 레이라고 불러도 좋아. 특성은 흔적 발견. 수정이처럼 특별한 능력은 아니고 그냥 내게 도움이 되는 단서를 찾는 정도? 대충 이런 거야.”

트레이시의 눈이 나를 향한다.

“저기 제일 뒤에 앉은 남자애는 성격이 고약해.”

으하하!

요년이?

피식 웃는 내게 눈웃음을 날리고 자리에 들어가려 하기에 도수정 때와 마찬가지로 질문을 던졌다.

“나랑 싸웠을 때는 아니었잖나. 코코넛 안의 아령은 어떻게 찾았지?”

그때는 비밀이라며 넘어갔었다.

“마찬가지야. 내 능력은 나를 기준으로 유리한 단서를 알려줘. 안 다치려면 항복이 최선이었어.”

원하는 목표를 상정하고 특성을 발동하면, 그에 해당하는 단서가 발견되는 식인 모양. 단면을 보는 게 아니었나.

“더 궁금한 건 훈련장에서 확인하도록 하고 지금은 자기소개에 집중해주세요. 괜찮죠? 남만혁 학생.”

시계를 한 번 보고 나를 언급하는 데커드. 적당히 하라는 거로군. 뭐, 차차 알아가면 되겠지.

“예, 실례했습니다.”

그러고 앉자 다음 차례인 카우보이모자를 쓴 학생이 나왔다.

“소구경이다. 특성은.”

탕, 탕탕!

왼손으로 공중에 돌을 뿌리고 오른손으로 리볼버를 꺼내 방아쇠를 당긴다.

이 일련의 행위가 2초 만에 이뤄졌고 학생들은 놀라기도 전에 총을 다시 총집에 집어넣는 소구경을 볼 수 있었다.

“질문?”

명백히 나를 쳐다보며 말하는 녀석.

이 자식, 쿨찐이네.

마음에 든다.

내가 고개를 젓자 희미하게 웃으며 자리로 들어간다.

“다음 학생.”

“나는 리얼블루! 파란색이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어.”

“곽재우. 선조님의 힘을 빌릴 수 있습니다.”

“…블리딩블러드. 나는 피가 좋다.”

“버추얼박스. 가상현실을 체험해보고 싶으면 말해.”

“칸탄테. 너희 혹시 노래 좋아하니?”

“마인 트래퍼. 함정조립.”

“클린에어. 공기 정화기로 변할 수 있어.”

내 차례다.

나는 교실 정면에 부착된 홀로보드에 큼지막하게 내 이름을 쓴 뒤, 교탁의 꼴 보기 싫은 교장 동상을 열어둔 창밖으로 집어 던졌다.

“어어.”

데커드의 당황하는 목소리와 아이들의 시선이 동상에 가 있는 동안 미르토스 해변을 교실 크기로 구현.

쏴아….

끼루룩, 끼룩!

“꺅!”

“앗, 차거!”

“이게 서나무숲에 올라왔던 그거구나.”

“와, 진짜 같네. 구현계는 다 이런가.”

특성을 딱히 소개할 필요는 없는 듯해 그대로 들어가려니 트레이시가 손을 번쩍 든다.

“이거 얼마나 유지할 수 있어?”

대충 20평 남짓이니까, 이틀은 거뜬하다.

“한 3시간? 오래는 유지 못 해.”

“저 해변 의자랑 코코넛은 무한 공급이야?”

“의자는 내가 가져다 놓은 거고. 코코넛은 유지한 시간에 비례해서 공급. 다른 질문?”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지. 바다의 물고기는 잡히느냐부터 시작해서 모래로 유리를 만들어보자는 꽤 창의적이지만 쓸모없는 아이디어까지 쏟아졌다.

내가 데커드에게 끊어 달라고 눈치를 줬으나 그는 마냥 웃을 뿐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이것들이.

“그만. 질문이 너무 많다.”

“야, 너도 그랬잖아.”

그러네.

나 빼고 10명이니까 한 사람당 평균 2개씩은 질문했으니….

“마지막 질문 하나만 받지.”

이제까지 가만히 있던 도수정이 조심스레 팔을 들자 다른 아이들이 짠 것처럼 손을 내린다.

“F반. 왜 왔어요?”

그래. 왜 안 나오나 했다.

“내 주제를 아니까.”

자조적인 말로 들렸는지 몇몇 아이들의 표정이 흐려졌다.

“지금 고개 숙인 놈들. 그래 너희. 말 한마디에 이렇게 빌빌댈 거면 아카데미 때려치워.”

“A반보다 못한 건 사실 아닌가.”

곽재우.

선조를 부른다는 놈이 패기가 없어.

“입학시험을 치러봐서 알겠지만, 서히아는 전투 히어로를 장려한다. 소구경과 곽재우. 너희 둘은 전투 히어로를 지망하지만, 활약을 못 했지. 분발해라.”

“선조님은 하찮은 전쟁에 흥미가 없으시다!”

“골렘에겐 탄이 먹히지 않더군.”

“토너먼트에서도 져 놓고 변명은.”

“큭….”

“음.”

오랜 기간 빌런으로 활동했던 나는 주요 히어로의 특성은 외우고 있다.

저 둘은 소위 말하는 ‘듣보’다. 듣도 보도 못한 특성.

그렇기에 가치가 있다.

평가받지 못한 광석이잖은가. 게다가 내가 보기엔 특성의 잠재력 또한 썩 나쁘지 않다.

저 녀석이 불러내는 선조는 보나 마나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홍의장군 곽재우일 거고, 그의 전술은 정평이 나 있지 않던가.

죽은 자를 빙의시키는 특성의 대부분은 대상이 남긴 개념을 광범위에 부여하는 식이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을 불러내는 보나파나라는 히어로는 세계의 모든 군대 영입 순위 1위로 거론된다.

발사한다는 개념을 가진 무기에서 탄이 하나 더 튀어 나가거든. 그런 의미에서 곽재우는 긁지 않은 복권 같은 녀석이다.

소구경 또한 마찬가지.

무기술 관련 특성은 해당 태그가 걸린 무기를 잡는 즉시 달인처럼 다룰 수 있다. 보아하니 탄창도 없이 쏘던데. 무한 탄창에 달인급 보정이면, 사기 아닌가.

“이 아카데미는 복수 특성 보유자와 구현계는 능력 불문하고 일단 A, B반에 꽂는다. 그렇지 않습니까? 데커드 교수님.”

“…하하.”

어색한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그 모습이 내 발언의 신빙성을 더한다.

“우리는 F잖아. 우리 위로 네 반이나 더 있다고.”

버추얼박스. 머리에 커다란 상자를 쓴 녀석이 툴툴댄다.

아무래도 저 녀석은 F반을 꼴찌반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F반도 A반처럼 대대로 특색이 있다.”

“그게 뭔데?”

“애매함.”

“응?”

“아카데미 커리큘럼으로는 확실하게 성장시킬 자신이 없는, 애매한 특성을 보유한 애들을 F반으로 몰아넣는다. 즉, 다른 반과 달리 평가가 덜 됐다는 뜻이지. 7년 전에 수마트라라는 선배가 F반에서 A반으로 바뀐 기록도 있고.”

내가 확인하듯 데커드를 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럼 나도…?”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지. 하지만 이대로는 졸업장에 F가 찍힐 거다.”

“응? 왜?”

“말 한마디로 기가 꺾이는 놈들이 A반은 무슨.”

“이익!”

곽재우와 도수정이 감정을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냈다.

더 이상 손을 드는 녀석이 없기에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자 앞자리에 앉은 트레이시가 의자를 기울여 내게 몸을 붙이고는.

“애들 달래느라 고생이 많네. 교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만.”

내가 뭐라 말하건 눈을 가늘게 좁히며 웃은 트레이시는 데커드의 지적을 받고서야 앞을 봤다.

“소개는 이것으로 마치고. 오늘 강의 끝나고 반장을 뽑을 테니 누굴 추천할지 정해두세요.”

오전은 필수과목이고 반 단위로 움직인다.

‘1교시 강의가 10시니까, 시간이 좀 남네.’

아침에 일식이에게 지시해둔 장작 모으기가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해 리쳇에게 상황 보고를 좀 받으려는데 트레이시가 다가왔다.

“친구 없지? 같이 가자.”

대뜸 들이붓는 팩트 폭행. 무어라 반박하기에는 너무도 맞는 말이어서 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고작이었다.

강의동으로 이동하는 동안 끊임없이 떠드는 녀석.

“각성은 언제 했어? 뭐? 얼마 안 됐네. 그런데 그 정도 구현이면 너도 나처럼 천재과?”

“데커드 교수님 좀 훈남이더라. 나랑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겠지? 한 번 노려볼까.”

“근데 악역을 자처하는 이유가 뭐야. 혹시 장래 희망이 교관?”

나는 적당히 대답하며 강의실로 들어가 뒷자리에 앉았다.

넓은 강의실에는 선배를 포함해서 다른 반 애들까지 도착해 있었고 상당히 조용한 분위기였다.

그래서인지 질문주크박스 트레이시도 드디어 입을 다물었다.

“프로스트 교수님, 학생들 다 모였습니다.”

“그려? 자아, 주목.”

프로스트라 불린 중년의 사내는 청백색의 머리칼을 길게 늘어트린 채 조수가 건네는 펜마이크를 잡았다.

“처음 보는 학생도 있을 거고. 다시 보는 불쌍한 녀석도 있을 테지. 내가 매년 첫 강의 시간에 하는 말이 있다. 아는 사람?”

“히어로는 정의관을 세워야 빌런이 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한 질문 같은데 조수에게서 답이 들려왔다. 그리고 교수는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듯했고.

“또.”

“멍청한 신념을 세우느니 바람 부는 대로 날아가는 낙엽이 돼라.”

“그렇지. 이 주제에 관해 논해볼 사람 있나? 벡스, 자네는 가만히 있게.”

“예, 교수님.”

‘정의란 무엇인가’란 강의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래. 자네, 또 보는구먼?”

“학점이 필요해서요.”

“내가 B+을 줬던가?”

“C- 받았습니다.”

“열심히 하게.”

“옙.”

“답은?”

“예전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열 명 중 일곱은 공동의 행복이라 하였고 둘은 희생을 거론했으며 한 명은 나 자신이라 하더군요.”

“적극적인 행동이 바람직하구먼. 계속해보게.”

“저는 이 다름에 정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기 삶을 타인의 삶과 부딪치며 살아갑니다. 그 과정에서는 반드시 불협화음이 발생하죠. 예, 범죄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이 범죄가 나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죠. 어째서일까요. 바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불행해졌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만. 그러니까 자네의 주장은 그림자로부터 빛을 찾는다는 소리 아닌가.”

“…예, 대략 그런 느낌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는지 아쉬운 기색을 여실히 드러내며 자리에 앉는 주황 머리칼의 선배.

“진부한 주장이나 틀린 말은 아니지. 자아, 여기에 반론해볼 사람 있나?”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팔을 귀 옆에 붙였다.

“그래, 거기 1학년.”

나를 지목하는 교수.

“저거, 개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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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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