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골쟁호투
아우우우-
크르릉!
서히아는 산맥을 끼고 있어서 캠퍼스 안에 다수의 산이 존재한다.
리쳇을 통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 현재 내가 있는 산은 사람의 발길이 끊겨 완전히 야생의 영역이다.
“일식아! 고기 탄다. 얼른 뒤집어.”
달각달각.
저녁을 먹고자 재워둔 삼겹살을 꺼내 굽자 동물들이 몰렸다.
개중 사나운 놈들도 있었는데, 두식이가 대장 격으로 보이는 놈을 걷어차 산 저편으로 날려버리자 주변을 맴돌기만 할 뿐 접근하진 않았다.
치이익.
하지만 랜턴 아래에 비친 삼겹살의 자태는 아주 아름다웠고 이는 깊은 산 속에 사는 짐승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크헝!
깨갱, 깽.
“음?”
덩치 큰 놈이 나타나 울자 미련을 못 버리고 질척대던 늑대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수풀 저편에서 빨간 눈깔을 치켜뜨며 튀어나온 놈은, 내 살면서 한 번도 마주한 적 없었던 동물이었다.
“호랑이!”
게다가 하얀색.
이 미친 아카데미. 산에 무슨 백호가 돌아다녀.
“두식아.”
자신 있게 나선 두식이는 백호의 앞발치기 한 방에 무너졌다.
백호와의 일전은 골드우드 때와 같은 양상이었다. 파괴와 복구의 반복.
‘두식이로는 안 되겠네.’
그냥 건드리면 부서지는 수준인지라 마나만 날리고 있다.
백호는 몇 번이나 부활하는 두식이가 영 마음에 안 들었는지 두개골을 물어 박살 내버렸다.
【이름 : 두식】
【힘 : 18->20】
【지 : 11->13】
【마 : 15->18】
【*부활까지 24시간】
이런.
어슬렁대며 다가오는 백호. 이대로는 꼼짝없이 삼겹살을 뺏기게 생겼다.
“리쳇.”
-쏴?
내가 긍정하려는 찰나. 마지막 삼겹살을 접시에 옮겨놓은 일식이가 하나 있는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며 일어섰다.
“일식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언포스로 일식이의 스텟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이 능력을 얻기 전에 소환해서 그런 듯하다.
하여튼. 조금이라도 스텟이 오르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식이가 나서는 것을 말리진 않았다.
나의 부름에 돌아보는 일식이.
“힘내라.”
달각.
뭐야. 그냥 하관을 열었다 닫는 것뿐인데, 왜 멋있냐.
스컬러 부여 이후. 흐늘거리던 안광이 점차 확장하더니 지금은 두개골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묘한 기대감을 품고 일식이와 백호의 결전을 관람했으나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백호 놈이 두식이를 통해 학습했는지 한 번 부수고 다시 일어나자 이번에는 곧장 두개골을 깨문다.
그러나 두식이 때와는 다르게 송곳니를 두개골에 박아넣지 못하는 백호.
“오?”
침을 질질 흘리며 일식이를 붙잡고 바닥을 구르던 백호는 이내 숲 저편으로 일식이 머리를 뱉어버리고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육중한 체중으로 땅을 박차며 달려오는 호랑이. 나는 황급히 삼겹살이 담긴 접시를 들고 몸을 피하며.
“리쳇, 쏴.”
-다음 주에 봐. 목화밭 사장.
빛의 창이 되어 쏘아진 하이퍼이온캐논이 점프하는 백호의 등을 정확하게 노리고 떨어졌다.
이대로면 착지하기 전에 잿더미가 되어 바닥을 뒹굴 터.
나는 안심하며 입 안에 있는 삼겹살을 음미했다.
그러나.
백호가 대뜸 공중에서 횡이동을 하는 게 아닌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현상에 놀라는 것도 잠시.
백호의 옆구리에 틀어박힌 두개골과 시야 구석에 몸체만 조립된 일식이가 보였다.
허리를 틀어 충격을 해소한 백호가 어리둥절하는 것과 동시에 일식이의 머리에 빔이 떨어졌다.
당장 물리력을 동원할 수 있는 무기가 모두 사라진 나는 욕지기를 뱉지 않을 수 없었다.
“X됐네.”
구조요청을 하고 해변의 바다로 들어가 시간을 끌려는 계획을 신속하게 세우는 와중, 빔에 꿰뚫렸어야 할 머리뼈가 멀쩡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일식이의 안광은 사라졌다. 다만, 녀석에게 새롭게 돋아난 검은 머리칼 하나가 마치 바람에 나부끼는 망토처럼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크릉…, 어흐응!
내장을 뒤흔드는 백호의 포효. 무언가에 위협을 느낀 걸까.
놈은 나를 안중에도 없는 양 행동하며 두개골을 중심에 두고 원을 그리며 돌았다.
공을 던지는 자세로 굳어 있던 일식이의 몸통이 갑자기 바닥으로 꺼지듯 사라지고 두개골 아래에서 올라와 합체했다.
나부끼던 머리칼의 움직임이 멎는다.
일식이의 하관이 열렸다.
“그우우-”
소중한 것을 잃은 이의 통곡 같기도, 전장에 나선 군인의 노래 같기도 한 저음이 산장에 울려 퍼진다.
등줄기를 치고 오르는 소름에 하마터면 삼겹살 접시를 떨어트릴 뻔했다.
그르릉…. 크헝!
백호의 선공. 앞발로 일식이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그러나 대번에 부서져 날아가야 할 일식이의 몸은 미동도 없다.
어느새 피어난 두개골 속 흑청색 안광이 흔들림 없이 백호를 내려다볼 뿐.
일식이가 걸었다.
내 눈에는 그저 한 걸음을 움직인 게 전부였으나 어째서인지 백호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턱이 위로 들린 것을 보아 어퍼컷을 맞은 듯하다.
일식이는 어느새 버둥거리며 중심을 잡고 낙하하는 놈의 착지 지점으로 가 정확한 타이밍에 니킥을 놈의 복부에 올려 꽂았다.
우드득.
끄헝!
백호의 괴로운 몸부림과 비명. 일식이가 나를 돌아본다.
죽일 건지 묻는 건가.
“네 마음대로 해.”
우물거리던 삼겹살을 마저 삼키고 말하자 일식이는 백호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더니 흑청색 안광을 내뿜었다.
백호는 일식이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흔들었으나 소용없었다.
한참 그러다 내가 코펠을 씻어 정리해 넣을 때쯤.
일식이가 백호의 등에 올라탄 채로 내게 왔다. 호랑이는 나와 일식이의 눈치를 보고 있고.
…뭐야, 어떻게 한 건데.
일단 주인으로서의 위신을 지키고자 나는 이 광경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다.”
달각.
* * *
다음날.
이얏호!
“더 빨리!”
백호를 타고 산을 질주해 내려오는 이 쾌감이란!
겨우 3분 만에 30분 거리를 주파한 백호에게 나는 어제 보급품으로 왔던 육포 한 봉지를 통 채로 물려주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르릉, 그릉.
“참, 장작은 그만하면 충분하니까 너도 두식이 도와서 땅 고르고 있어.”
대꾸 없이 나를 주시하는 녀석에게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보였다.
반응이 없다.
두 장.
미세하게 턱을 연다.
세 장.
그제야 달각. 대답하는 일식이.
이 자식….
* * *
“그러면 오늘도 열심히 배우고 오세요.”
조례는 별 내용 없었다. 곧 현장실습을 나가는 강의가 있을 수 있으니 해당 일에 맞춰 외출권을 신청하라는 것과.
“최근 아카데미 내의 산에서 출몰하는 동물들이 번식기 철이라 예민할 겁니다. 혹시 만나면 주의하세요.”
일찍도 말한다.
내 원망이 담긴 눈을 알아챈 것인지 데커드 교수는 나를 향해 싱긋 웃고는 교실을 나갔다.
아카데미 입학 첫 달은 같은 일정이 반복된다. 아이들의 정의관과 체력을 확실히 잡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정의에 대하여 강의는 어제 내게 반박당한 선배의 눈총 외에는 특별한 것 없었고.
특성 체육 또한 나의 지적에 오묘한 시선을 보내던 아이들 말고는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밥 먹자!”
트레이시에게 붙들려 식당에 간 나는 홀로 얼큰한 콩나물국밥을 주문.
“크흐, 예아.”
소싯적에 국밥집을 운영했다는 식당 아주머니의 실력은 대단했다.
그리고 도착한 36개 학파의 마법들 강의.
“과제 확인부터 하겠네. 먼저 골드우드.”
“예, 교수님.”
녀석은 마법봉을 잡고 한참 집중하더니.
“핫!”
마법봉 끝에 작은 스파크를 매단 채 웃었다. 번개를 소환하는 것에 비하면 볼품없는 모양새였기에 왜 저러나 싶었는데.
“하루 만에 주문 없이 발현이라. 자네, 나와 동류로구먼?”
“으헤, 큼. 아닙니다. 저따위가 어찌 세기의 천재이자 마도학의 성인이신 교수님과 비교되겠습니까.”
비쩍 마른 두 사람이 서로에게 칭찬을 건넨 다음. 각각의 다른 감정이 실린 눈이 내게 닿았다.
“이번엔 자네 과제를 보여주겠나?”
성공하라고 내준 과제가 아님에도 뻔뻔하게 요구하는 게, 역시 교수는 교수구나 싶다.
해서, 보란 듯이 일식이를 불러냈다. 의아해하는 둘에게 한 가닥 머리칼이 스컬러가 성공한 증거라 말하자.
“푸하핫!”
어린놈의 자식이 어른이 말하는데 버릇없이 웃어? 콱 주둥이에 돌법봉을 물려줄까 보다.
“검정이라…. 데드레드스컬도 실현하지 못한 색이거늘.”
과거를 회상하는 듯. 먼 곳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던 교수가 말을 이었다.
“어떤 속성이 작용하던가?”
“속성이요?”
“색마다 고유의 속성이 부여된다네. 흰색은 정화, 노랑은 감지, 파랑은 냉기, 빨강은 불. 이런 식으로 말일세.”
아. 그런 설명이 있었지.
“글쎄요. 큰 힘을 흡수하기는 했는데.”
“흡수? …그렇군! 검정은 흡수였어. 허허, 이리 단순한 것을.”
어느새 꺼낸 책 표지를 쓸어내리며 혼잣말을 하는 매저드 교수.
골드우드는 그런 교수의 모습에 난색을 보이곤 당장에라도 나를 죽일 것처럼 마법봉을 쥔 채 노려본다.
쟤는 또 왜 저래.
매저드는 내 손을 잡더니.
“간절히 바랐으나 결국 도달하지 못하고 생이 끝나버린 그놈이 자네를 봤다면, 참 부러워했을 터인데…, 허허. 나도 늙었구먼.”
말을 하다 말고 눈시울을 붉히며 돌아서는 교수.
잠시 후, 감정이 정리된 매저드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둘 다 과제를 잘 수행해주었네. 오늘 강의는 새롭게 익힌 능력에 익숙해지는 것으로 하세.”
골드우드는 매저드에게 1:1 지도를 받고 나서야 살심 가득하던 표정이 풀렸다.
“그렇지. 이제 두 개를 만들면 자네도 이중영창 성공했다 할 수 있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천천히 하게. 자네에게 주어진 시간은 넉넉하잖은가. 떠나간 건강은 돌아오지 않아, 특히 마법사는 더하지. 경험담일세.”
“명심하겠습니다.”
집중상태로 들어간 골드우드를 흐뭇하게 보던 매저드가 내게 왔다.
“그런데 자네의 스컬은 좀 특이하구먼.”
멀뚱히 내 옆에 앉아 있던 일식이를 보며 말하는 매저드.
“어떤 부분이 그렇습니까?”
“안광은 시전자의 마나일세. 그래서 보통 파란색이나 붉은색이지. 그런데 자네의 해골은 검은빛이 돌잖는가.”
“스컬러 때문이 아닐지요?”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여겼네만, 스캔을 해보니 자네의 마나와는 관계가 없어.”
“그럼…?”
“다른 곳에서 마나를 받아들인 게지.”
‘받아들인 마나? 아!’
생각해보니 일식이의 안광은 하이퍼이온캐논을 맞은 뒤로 달라졌었다.
‘빔을 마나로 치환해 받아들인 건가? 아니면 그사이에 뭔가가 개입을-’
쾅!
“뭐, 뭐야!”
갑작스러운 굉음에 집중이 깨진 골드우드가 놀라 벌떡 일어났고 나와 교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교수님! 산이!”
“허어…, 화재로구먼. 날이 건조해서 그런가. 걱정하지 말거라 아카데미 상주 방화대가 출발했을 터이니.”
어째 불난 산의 모습이 익숙하다.
‘어?’
순간 간밤에 일식이에게 추우니 화덕을 좀 지피라는 명령을 내렸던 장면이 머릿속에 스친다.
‘…내가 불을 끄고 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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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