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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6화 (16/201)

<16화>

환경미화원 ON

세계 최고의 우주기술 연구기관, 볼트.

“국장님.”

“어잇, 자네 퇴근하지 않았나?”

애인과 통화를 나누던 국장은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루덴에 놀라 급히 전화를 끊었다.

“…플래싱이 고에너지 빔을 사출했습니다. 무력 정찰 때보다는 소규모입니다.”

플래싱은 볼트가 리쳇에게 붙인 이름이다.

“뭐? 어디.”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의 야산으로 추정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잠시 고민한 국장은 결단을 내렸다.

“어쩌면 이번에 플래싱의 오너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가능성은 있습니다.”

“신원만 확인해봐. 은밀하게.”

“알겠습니다. 몇 단계 거쳐 용병을 고용해 파견하겠습니다.”

“그건 알아서 하고. 볼일 끝났으면 나가.”

오른손에 홀로폰을 쥐고 있는 국장을 쳐다본 루덴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국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본인 자리에 가 용병업체를 알아보는 와중, 톡으로 문자가 왔다.

-자기♥

-예, 형수님.

-아이, 제니퍼라고 부르라니까.

-제니퍼.

-어떻게 됐어?

-덫을 밟았습니다.

-좋아. 당분간 집에 안 올 거야. 오늘… 올래?

-업무가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흥, 까탈스럽게 굴긴. 알았어.

톡을 끝낸 루덴은 대화 기록을 삭제하고 국장실을 힐끔 돌아봤다.

불쌍한 인간 같으니.

대화는 무덤덤하게 했으나 사실 루덴은 제니퍼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이 순간이 오길 얼마나 기다렸던가. 하지만 준다고 바로 달려드는 건 꼬맹이나 하는 짓.

‘조금 더 뜸을 들이자. 확실히 내게 넘어왔을 때…, 프러포즈를 하는 거야.’

오직 그것을 위해 저 무능한 국장에게 머리를 숙여왔다.

이때.

루덴은 제니퍼를 생각하느라 탭을 잘 못 누르고 말았다.

잠입 의뢰 탭을 터치한다는 것이 바로 아래 칸의 납치 탭을 누르고 만 것.

“이 사람이 싸군. 음? 첫 의뢰라고? …뭐 누군지만 알아 오면 되는 일이니 상관없겠지.”

루덴은 고에너지가 떨어진 지형의 좌표를 찍고 의뢰 내용을 적었다.

“해당 지점의 흔적과 인근의 사람을 조사해 보고할 것. 방식은 자유.”

메시지를 전송하자 30초 만에 답신이 왔다.

“벌써?”

[답신 : 마침 한국이다. 선금은 의뢰비의 절반. 입금 확인 즉시 출발.]

“오케이. 흐아암….”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을 송금한 루덴은 드디어 며칠간 미룬 잠을 자기 위해 수면실로 향했다.

자신의 실수를 깨닫지 못한 채.

* * *

그 시각. 납치 전문 용병단이자 빌런 듀오, 번과 퓨즈의 모처.

“방식은 자유? 마음에 들어. 퓨즈, 일 들어왔다.”

“어디서?”

“모르지. 알 필요도 없고. 서히아 조사하라네.”

번은 퓨즈에게 의뢰 내용을 보여주며 떠오른 계획을 읊었다.

“내가 불 지를 테니까, 네가 납치해라.”

“근데 이거 그냥 조사 의뢰 아냐?”

“정신 차려. 우리 같은 신입은 의뢰주가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야 유명해진다고.”

“그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알았어. 네가 리더니까. 따를게.”

번은 의뢰를 다시 확인했다.

해당 지점과 그 주변인 조사.

확실한 건 저 주변인을 납치하는 것이다. 직접 대면해 심문하면 확실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의뢰를 초과 달성하면 플러스알파를 제공하는 게 이 바닥의 룰.

의뢰주가 보낸 좌표가 서히아 내부의 산이라는 것을 알아낸 번은 아카데미 커뮤니티에서 ‘산’을 키워드로 검색했다.

[저는 17살입니다. 등산이 취미지요. 이번 주말에 함께할 친우 있읍니까?]

[└교수님. 저는 못 갑니다. 죄송합니다.]

[└자네…, 내가 교수인 걸 어떻게 알았나?]

[올해 신입생 중에 기숙사 배정을 못 받아서 산에 사는 사람이 있대.]

[└진짜?]

[└어. 버려진 산장이 있다더라.]

[└불쌍해.]

[산채비빔밥은 산 채로 먹어야 맛있어.]

[└사체로 먹고 싶냐?]

[└ㅜㅜ]

‘산장이라.’

“번, 그런데 위성 지도로 보면 안 돼?”

“멍청아, 아카데미는 못 봐.”

“아쉽네.”

그 때문에 이렇게 우회하는 게 아닌가.

“출발하자.”

“지금? 밤인데….”

“빨리 끝내고 놀자. 너 좋아하는 워터파크 가던가.”

“그 거짓말 진짜지? 저번 의뢰 때도 그래 놓고 안 갔잖아!”

“그땐 사람이 죽었으니까 뒤처리하느라 그랬고. 이번엔 정말로.”

“알았어. 근데 누구 납치하라고.”

“알아보니까 신입생 중 하나같은데.”

“신입생? 전부 몇 명인데.”

“서히아야 뭐 매년 60명이잖아.”

“너무 많아.”

“몇 명이나 되겠어?”

“나오는 거까지 생각하면 두 명?”

2명이라. 1/30은 너무 확률이 낮은데. 좀 좁혀보자.

실력 지상주의인 서히아에서 성적이 좋으면 기숙사는 물론이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최상품으로 바뀐다.

반대로.

성적이 낮으면 평범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대우를 받고.

그런데 아카데미 생활의 기본인 기숙사를 배정받지 못할 정도면, 아예 눈 밖에 났다는 소리다.

“F반 반장을 납치하고 걔를 통해 산장 주변에 사는 놈을 찾으면 되겠지.”

“나는 좋아.”

둘은 곧장 서히아로 이동했다.

* * *

“번.”

“왜.”

“저길 어떻게 들어가.”

흉악범죄자를 가둔 교도소 못지않게 감시가 철저한 아카데미의 보안체계를 본 퓨즈는 어깨를 늘어트리며 번에게 물었다.

“내 특성을 쓴다 해도 나올 때가 문제야.”

“걱정하지 마.”

번은 자신 있게 너튜버를 통해 알려진 개구멍을 찾아갔으나 막혀 있었다.

“이거야?”

“…….”

통짜 쇠로 틀어막힌 구멍. 번을 올려다보는 퓨즈.

입을 꾹 다물고 침묵하는 그의 모습에 한숨을 쉰 퓨즈는 번의 손을 잡고 특성을 이용해 쇠를 통과했다.

마비가 풀리고 정신을 차린 번은 퓨즈가 능력을 썼다는 걸 알고는 무어라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오늘 컨디션 좋네. 두 명까지는 될 거 같아.”

“…그래.”

계획대로 2학년 교복으로 갈아입은 퓨즈가 발랄한 포즈를 취하며 학생 같지 않냐며 깔깔거릴 때, 번은 자신이 올라야 할 산의 경사를 목도하고 절망했다.

“내가 불을 지르면 네가 F반 반장을 납치해.”

“응.”

그렇게 흩어진 두 사람은 점심시간이 될 무렵에서야 각자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화덕에 부채질하는 언데드를 발견한 번은 순간 당황했으나 이내 같은 행동만 반복하는 모습에 안정을 되찾았다.

‘네크로학파는 그때 몰살당했을 텐데.’

서히아. 무서운 곳이다. 그 학파의 부활을 노리고 있었다니.

빌런 커뮤니티에 뿌리면 환호할 정보를 습득한 번은 조심스럽게 접근해 화덕을 불을 자신의 특성을 이용해 크게 키웠다.

“화염확산.”

단숨에 언데드를 집어삼키며 거대해진 불길은 인근의 나무에 옮겨붙었고, 번은 재빨리 산장 안으로 들어가 흔적을 살폈다.

‘발자국만 있나.’

특별한 것이 없기에 곧장 뒤뜰에서 발견한 텐트로 향했다. 안은 생필품만 있을 뿐 신상 명세를 특정할 만한 단서는 조금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상해, 어떻게 머리칼 한 올도 없을 수 있지?’

이는 아주 사소한 단서만으로도 추적당해 본 남만혁이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번은 일단 지문이라도 챙길 생각으로 코펠과 의자 손 걸이 부분을 떼 배낭에 담았다.

화륵.

텐트 밖으로 나오니 열기가 여기까지 전해졌다.

“슬슬 빠져야겠군.”

이 정도 크기면 아카데미 측에서 알아챘을 것이다. 급히 산을 내려가던 번이 중얼거렸다.

“퓨즈가 잘 해줘야 할 텐데….”

말괄량이 같은 그녀의 기질이 이번만큼은 좀 잠잠하길 바라는 번이었다.

한편.

요리 강의가 진행되는 강의실에 잠입한 퓨즈.

“F반 반장이 누구야?”

퓨즈는 옆에 앉은 학생에게 물었다.

“수정이? 오늘은 앞줄에 앉아 있네. 그런데 너 처음 보는데 몇 반?”

소녀의 물음을 무시하고 일어나 수정이라는 얘 옆에 앉았다.

“안녕?”

“…어, 안녕?”

“네가 F반 반장이라며?”

“그렇긴 한데…, 누구?”

그렇구나.

‘얘를 데려가면 워터파크에 갈 수 있는 거겠지?’

퓨즈는 킥킥 웃고는 번의 신호를 기다렸다.

잠시 후.

펑!

산이 폭발과 함께 붉게 타올랐고 학생들과 교수의 시선이 창밖에 꽂혔다.

교수가 학생들을 진정시키려고 돌아봤을 때는 이미 학생 둘이 사라진 뒤였다.

* * *

“안돼.”

내 텐트. 내 화덕. 내 의자!

징계는 둘째 문제고 나의 노력이 저렇게 불타서는 안 된다.

“일식아!”

당장 일식이를 부르자 녀석은 그을음이 잔뜩 묻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너 밤에 불 지폈지?”

달각.

“나 내려오고 껐어?”

좌우로 움직이는 두개골.

“돌아가서도 계속 부채질했냐?”

끄덕.

…아.

“저 산에 불 난 거, 너 때문이다. 이제 어떻게 할래.”

일식이의 안광이 가늘게 좁혀진다.

“뭐. 네가 부채질 한 거 맞잖아.”

“자네….”

아차. 옆에 교수가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벌써 언데드와 소통을 하는 겐가. 허허, 네크로학파 수장을 노리는 인재들의 좌절하는 모습이 벌써 그려지는구먼.”

“그런 자리 관심 없습니다.”

나는 정색하고 답했다.

네크로학파의 수장? 단두대에 목이 걸린 거랑 다름없다.

“겸손하기까지.”

아니라고.

“자네 산장이 저기에 있다고 했지? 먼저 가보게. 내 고스트핸드 교수에게 말해 놓겠네.”

“아, 그래 주시겠습니까.”

나는 곧장 일식이를 데리고 뛰어나와 산장으로 향했다.

“정지! 진화작업 중입니다. 학생분은 기숙사로 돌아가 대기하십시오.”

방화복을 입은 사내가 나를 막아 세웠다.

“제 집이 저기에 있습니다. 방화범은 이 녀석이고요.”

“방화범?”

일식이를 지긋이 바라보던 소방관은 인상을 확 찌푸리며.

“학생, 지금 장난할 시간 없습니다.”

아니, 진짜라니까.

“아카데미에서 받은 위성 사진을 통해 방화범은 인간 남자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지금 도주하는 놈을 추적 중이니 괜한 정보로 혼선을 빚게 하지 마십시오.”

“예?”

“그럼.”

그대로 위험하니 진입을 금한다는 홀로라인을 내 바로 앞에 긋고는 돌아서서 무전기를 잡는 소방관.

방화범이 따로 있다?

내가 활동하던 시기랑 겹치지 않아 명확하지는 않지만, 미래에 방화로 유명해지는 몇 놈이 뇌리에 떠오른다.

‘도주 중이라고 했지.’

리쳇의 빈자리가 크다. 이래서 빔은 최대한 자제해야 하는데. …생명의 위기였으니까 어쩔 수 없지.

“일식아, 원수 잡으러 가자.”

달각?

두개골을 기울여 의문을 표하는 녀석.

“너 걔 땜에 화덕 또 만들어야 돼. 그리고 텐트랑 이것저것 사면 너한테 쓸 돈도 줄어들 거고.”

화덕 만든다는 대목에서는 그러려니 하던 놈이 돈이 줄어든단 말에 안광을 흑청색으로 피워올리며 울음을 토해냈다.

그우우-

그러자 잿가루를 잔뜩 묻힌 백호가 나무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저놈을 부르는 소리였나.

다가오는 백호의 머리털을 잡고 등에 올라탄 녀석이 하관을 요란하게 움직이자 백호가 코를 킁킁댔고 이내 고개를 들어 아직 불이 번지지 않은 곳을 주시했다.

방화범의 냄새를 맡은 건가?

“나도-, 어어.”

일식이와 백호는 내 부름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저편으로 달려갔다.

야! 나는!

백호를 타려던 어정쩡한 자세로 멀지 않은 곳에서 나를 보던 소방관과 눈이 마주쳤다.

세상 모든 한심함이 저 두 눈에 담겨 있었다.

…이게 다 방화범 때문이다.

나는 네가 누군지 모른다. 뭘 원하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널 찾을 것이다. 널 찾아내서.

치울 것이다.

――――――――――

❖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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