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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7화 (17/201)

<17화>

번퓨즈 (1)

치직.

“퓨즈, 이쪽은 추적당하고 있다. 포인트 B로 와라. 오버.”

-여기는 F반 반장 확보했어. 알았다, 오바. 히히.

무전을 끊고 뒤를 돌아보자 아카데미 상주 히어로 셋이 쫓아 오고 있었다.

“제길, 의자는 버리고 올 걸 그랬나. …저건 또 뭐야.”

측면에서 갑자기 나타난 백색의 호랑이가 에어보드를 타고 이동 중인 번과 같은 속도로 달린다.

무엇보다 백호의 등에 타고 있는 놈은 방금 자신이 불태웠던 바로 그 해골.

달각.

초승달처럼 휜 언데드의 안광을 본 번은 팔뚝에 돋아나는 소름을 쓸어내리며 에어보드의 속력을 최대로 높였다.

‘아무리 맹수라 해도 저 속도로 십 분 이상 달릴 순 없겠지.’

에어보드는 최고 속도로 3시간은 유지할 수 있다.

그때 마상 기예처럼 호랑이 등 위에 선 일식이가 근육과 뼈의 움직임에 맞춰 중심을 잡으며 서서히 번의 옆으로 붙었다.

“뭔, 전생에 흉노였나 X발.”

번은 해골이 자신을 덮칠 것을 예상하고 놈이 뛰는 타이밍에 맞춰 옆으로 틀 생각을 하던 중.

“서라!”

우측에 에어보드를 탄 히어로들이 따라붙는다. 좌우와 후방이 막혔다.

측.

“퓨즈, 신호 주면 와. 긴급탈출이다. 오바.”

-으, 싫어. 그거 아프단 말야. 다른 사람 데리고 한 적도 없고.

“나 잡히면 네 이름 분다.”

-치사하게!

아카데미 동쪽은 특이하게도 커다란 대머리 동상이 담장 사이에 있고, 우리는 그곳을 B포인트라 정했다. 퓨즈의 능력이면 탈출할 수 있겠지.

크허엉!

호랑이가 도약하며 허리를 튕겼고 그 반동으로 날아 이쪽 에어보드 위로 올라타는 해골.

번은 급히 품에서 개조한 펜라이트를 꺼내 해골에게 던졌다.

두개골에 맞고 깨지며 퉁겨나가는 펜라이트에 의식을 집중하고.

“화염확산!”

근래 들어 최고의 화력으로 발동된 특성이 해골을 삼켰다. 검게 일어난 폭연이 히어로들의 시야를 가렸고 번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왼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달각.

“으억, 에이 썅!”

귀 바로 옆에서 들려온 턱관절 소리. 그리고 자신의 팔을 움켜쥐려는 하얀 손뼈에 비장의 수를 사용하기로 마음먹는 번.

“영광인 줄 알아라. 이 흉노해골 놈아.”

언젠가 마주할 유명 히어로를 상대하기 위해 마련해둔 수류탄을 품에서 꺼내 놈의 안구에 처박았다.

번이 지하 경매장에서 재산의 절반을 털어 산 이 수류탄은 폭발속성이 부여된 화약이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다.

백호와의 일전에서 힘이 빠진 상태의 일식이는 펜라이트의 충격은 어찌 극복했으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두개골 안에 수류탄이 들어오자 당황하고 말았다.

이어서 번에게 걷어차인 해골은 바닥을 몇 바퀴 구르더니 수십 개의 대전차미사일이 일시에 터진 듯한 폭발이 일었다.

쾅!

평생을 화염을 다루어 내성이 쌓인 번은 열기는 무시할 수 있었으나 후폭풍에 의해 거칠게 나뒹굴었다.

“퉤, X벌.”

저걸 쓴 이상 의뢰금을 열 배로 받는다 해도 손해다. 서히아에서 탈출했다는 타이틀이라도 가져가야겠다고 다짐한 번이 옷을 털며 일어나는 때에.

“멈추세요.”

하늘에서 금발의 여자와 검은 머리칼의 사내가 떨어졌다.

“야, 그렇게 말해선 못 알아먹는다니까. 야이 X방새야. 느네 부모가 남의 집 태우고 튀라고 가르치던?”

곱상하게 생긴 소년의 입에서 튀어나온 패드립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인물이 숨을 죽였다.

“뭐, 뭐?”

“아이고, 화나셨어요? 그러게 누가 내 소중한 스위트 마이 홈에 불 지르래? 그리고 남자 새끼가. 나이 처먹고 일을 저질렀으면 책임을 져야지.”

번은 저 싸가지 없는 놈이 더 혀를 놀리기 전에 폭사시키기로 결심했다.

“화염 확산.”

긴급한 상황에서 급격히 숙련도가 쌓인 화염 확산은 번도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일으켰다.

【화염 확산 변이 중…, 완료.】

【‘화염 확산’이 ‘화염 재확산’으로 변이되었습니다.】

최근 1분 안에 벌어진 폭발을 한 번 더 발생시키고 주변으로 화염을 흩뿌린다는 것을 이미 특성을 사용하고 나서 알아챈 번은 재빨리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방화포를 몸에 둘렀다.

처음은 작은 불씨였다. 점점 크기가 커지다 어느 순간 한 점으로 압축되었고.

삐——

폭발했다.

남만혁은 퀸을 제 몸으로 감싸 바닥에 엎드리며 급히 해변을 불러냈다.

“미르토스.”

바다 부분을 급히 정면에 구현했으나 모조리 증발하며 막대한 양의 수증기가 발생. 주변의 사람들을 모조리 날려 보냈다.

방화포를 들치고 일어난 번은 사위가 고요해진 것에 감탄하며 희열을 느꼈다.

“하, 하하.”

측.

-리더, 나 언제 가?

번은 배낭에서 철끈이 꽁무니에 달리 화살을 미니 석궁에 장전하고 하늘을 향해 쐈다.

“지금.”

-아, 보인다. 주변 정리 끝난 거.

“맞지?”

손으로 만진 전도체가 시야에 보이면 어디에서든 즉시 그곳으로 전도할 수 있는 능력, 퓨즈.

번이 처음 퓨즈를 발견한 건 슬럼가의 철길 위에서였다. 달려오는 기차가 뻔히 보임에도 철도 위에 드러눕는 아이의 모습에 흔한 자살 희망자인 줄로만 알았으나.

치이기 직전 기차 운전석에 나타나 기관사를 놀라게 하곤 빠져나오는 퓨즈에 번은 매료됐다.

고작 놀라게 하려고 자신의 목숨을 거는 몰상식한 꼬마의 행동에서 자신을 수렁으로 밀어 넣은 모든 것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괜찮나?”

“…사실 좀 아파. 참, 오늘부터 야간 워터파크 개장한대.”

이동하는 거리가 멀수록 당사자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크다. 퓨즈는 내장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라고 했던가.

“그래. 꼭 가자.”

활달하게 웃고 있지만 안색이 창백한 퓨즈를 업고 F반 반장으로 추정되는 여학생의 목덜미를 쥔 채 퓨즈가 가져온 에어보드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운행을 누르려는 찰나.

“가긴 어딜 가.”

숯검댕이가 된 얼굴로 에어보드의 후미에 올라탄 그놈.

남만혁은 막무가내로 날아가던 퀸을 하이재킹해 여기까지 올 때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적당히 배상하면 감옥으로 방생할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두 가지 연유로 그것이 불가하게 됐는데. 하나는 단순 방화가 아니라 도수정을 납치하려 했다는 점. 또 하나는.

“번퓨즈.”

자칭 방화의 스페셜리스트이자 테러 용병인 빌런 듀오. 머지않은 미래에 무고한 이들을 수도 없이 불태울 놈들.

뒤를 돌아보며 놀라는 번. 이 팀명으로는 처음 의뢰받았는데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이 새끼들.’

함정.

가끔 빌런을 검거하기 위해 쿵짝을 맞추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신입인 우리를!’

이를 뿌득 간 번은 다수의 펜라이트를 던졌으나 남만혁은 해변 일부 구현으로 모조리 바다에 빠트렸다.

허무하게 젖은 채 떨어지는 펜라이트. 이를 쳐다보던 번의 시야 저편에 머리가 반짝이는 동상이 들어왔다.

“퓨즈!”

“콜록, 응.”

‘이런.’

퓨즈의 상태가 안 좋다.

지금 동상으로 이동하자고 하면 분명 탈출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퓨즈는 죽음 직전까지 가겠지.

남만혁이 번에게 접근해 그의 머리 위로 수십 갤런의 물을 폭포처럼 떨어트리기 직전.

“자수하겠다.”

번은 에어보드를 멈춰 세웠다.

“갑자기?”

“대신 퓨즈를 치료해라. 네놈들이 짜고 친 판에 놀아줬으면,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겠지?”

던지듯 도수정을 내려놓은 번은 입가로 피를 흘리는 퓨즈를 안아 들고 남만혁에게 내밀었다.

생각보다 더 상태가 안 좋은 퓨즈의 모습에 번은 주먹을 움켜쥐고 좀 전부터 반응이 없는 남만혁에게 머리를 숙였다.

“제발. 부탁이다.”

자신만만한 퓨즈를 믿어서는 안 됐다. 이 녀석은 내 말이라면 죽은 척도 하니까. 두 번 세 번 확인했어야 했다.

‘첫 의뢰라 너무 신났어. 만약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좀 더 철두철미하게.’

“이렇게 하자.”

장고 끝에 결단을 내린 남만혁이 입을 열었다.

“내 밑으로 와라.”

“뭐?”

“네놈이 산을 태우는 바람에 내가 살 산장이 없어졌잖아. 겸사겸사 나무도 좀 심고 풍경 좋은 곳에 집도 짓고, 가끔 내 수발도 들고.”

다른 건 퓨즈를 살리는 대가라 하면 참겠으나, 수발?

“아니면 여기서 둘 다 죽던가.”

머리 위에 꿈틀거리는 새까만 물기둥을 본 번은 자신에게 선택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퓨즈만 치료해준다면, 하겠다. 언제까지 네 수발을 들어야 하지?”

“외계인이 침공할 때까지?”

“…….”

“싫어?”

남만혁이 검지로 검은 물을 가리키자 번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퓨즈를 받아 든 남만혁은 어슬렁대며 다가오는 백호를 발견하고 대뜸 놈의 머리를 쥐어박더니 등에 올라탔다.

그대로 곧장 출발하려다 기절한 도수정을 백호의 뒤편에 태웠다.

‘부하로 들인 이상, 죄를 더 만들 필요는 없겠지.’

“학생?”

남만혁은 아카데미 본관 쪽으로 달리던 중, 산 초입에서 조우했던 소방관을 만났다.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하자.

“저기로 가면 앰뷸런스가 대기 중이다. 들어가서 환자 보여주면 치료해주실 거다. 서둘러.”

쿨럭.

퓨즈가 토하는 피의 양이 심상치 않다. 남만혁은 혀를 차며 백호를 재촉했고 아직 의식이 있는 퓨즈를 앰뷸런스에 들여보낼 수 있었다.

얼마 후.

“잡혔답니까?”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만혁의 귀로 자판기 앞에 모인 교수들의 대화가 들렸다.

“아, 예. 자수했다더군요. 뭐 몇 개 조건이 있었는데…. 그건 별거 아니고. 이상한 주장을 합니다.”

“어떤 주장이요?”

“우리가 판을 짜고 자기네를 속였다더군요.”

“뻔뻔하기도 합니다.”

“빌런이 다 그렇지요. 우리 학생들이 그놈들을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조건은 뭐랍니까.”

“아, 자기가 태운 산에 나무를 심고 산장을 복원하겠다더군요. 그리고…, 이게 좀 이상한데.”

“뭔데 그러십니까.”

“그 산장에서 살던 학생의 수발을 들겠답니다.”

“허….”

덜컥.

앰뷸런스의 문이 열리고 피를 잔뜩 묻힌 수술복을 입고 나온 의사가 두리번거리기에 내가 다가가자.

“보호자 되십니까?”

“일단은 그렇습니다.”

“후, 조금만 늦었어도 다시는 눈을 못 뜨실 뻔했습니다.”

“예?”

“내장이 아주 곤죽이 돼 있었어요. 제 세포 회복 특성이 아니었으면 정말 위험했습니다.”

세포 회복?

세계적으로 열 명이 넘지 않는다는 초희귀 특성. 나는 그의 수술복에 수실로 놓인 이름을 살폈다.

큐링 힐.

이 인간이 왜 여기에 있어.

큐링 힐은 인류 최고의 힐러로 역사에 이름을 새긴다. 그블린과의 전쟁에서 인류의 절반을 떠받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 사람의 능력은 나중에 광역화가 된다. 그것도 작은 도시 하나를 덮을 정도의 넓이로.

“남만혁입니다.”

“예? 아, 네. 남만혁 학생.”

“큐링 힐님 덕에 제 수하가 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크흠, 생색을 내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만한 능력을 갖추셨으니까요. 제가 보기엔 사람 살리는 거로는 세계 제일이십니다.”

얼핏 퀸을 통해 그의 과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젊을 때는 주변의 인정을 받지 못해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던가.

“그 정도는 아닙니다.”

칭찬 세례를 퍼부어 그에게 내 얼굴과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와중, 앰뷸런스에서 환자복 차림의 퓨즈가 걸어 나왔다.

그리곤 주변을 둘러보더니.

“흐으앙--!”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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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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