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23화 (23/201)

<23화>

평가전 (2)

“너희 평가전 상대는 스위프트다.”

“예에?”

A반 담임 교수인 프로스트의 공지가 떨어지자 모두의 눈이 스위프트를 향한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뒤에서 그러지 말라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으나 스위프트는 무시했다.

A반 전원. 결코 자신에게 뒤처지지 않는 잠재력을 가졌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밀려나고 말 것이라는 건, 그 누구보다 스위프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전부 이긴다.’

* * *

며칠 후. 강의동 지하 대련실.

“지목해라.”

대련 방식은 간단하다. 스위프트가 이름을 부르면 경기장에 올라 그와 싸우고 과정과 결과에 따라 점수가 매겨진다.

“마가렛.”

어려운 과제부터 먼저 해결하는 게 스위프트의 습관이었기에 그는 망설임 없이 A반 최대 전력을 입에 담았다.

“의미 없지 않아?”

현재의 마가렛으로선 자연체에 타격을 입힐 만한 방법이 없고 스위프트는 마가렛의 육체를 압도할 방법이 없다.

“그랬지. 한 달 전까지는.”

말을 마친 직후 주머니에서 구슬을 꺼내 허공에 뿌리는 스위프트.

“실전에선 칼날을 쓸 생각이다.”

프로스트 교수는 스위프트의 발상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최근 빌런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히어로들이 포박술 자문하러 올 때마다 답답하던 차에 이처럼 원시적인 파괴를 목적으로 한 서포트 아이템을 보자 속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마가렛은 스위프트가 도구를 준비할 줄은 예상 못 했는지 당황하는 듯 보였으나 금방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를 잡았다.

“몸에 닿기 전에 쳐 내면 그만이야.”

“할 수 있다면.”

백여 개의 구슬들이 팔방에서 마가렛을 두들겼고 초반에는 견뎌내나 싶었으나 철저하게 도망 다니며 바람으로 구슬만 조종하는 스위프트에겐 당할 수 없었다.

거대화는 피격 면적을 늘렸고 그나마 한방이 있는 스택 펀치는 틈을 주지 않는 바람에 써보지도 못했다.

“…졌다.”

경기장 밖으로 밀려난 마가렛이 분한 목소리로 패배를 시인하자 스위프트는 처음 경기장에 오르던 모습 그대로 다음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케롤라인 칠링.”

“칫.”

“빨리 지고 와라.”

“시끄러워!”

파도를 구현해 스위프트를 질식시키려던 케롤라인의 작전은 그가 날아오르는 바람에 모조리 무산됐다.

“감히 내 동생을!”

“도슨! 그딴 대사 치지 말라고!”

케롤라인의 패배 이후 도슨이 올랐으나 비슷한 양상으로 패배.

이처럼 바람과 쇠구슬이라는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조합으로 A반 6명을 순식간에 제압한 스위프트는 토너먼트 때 자신에게 패배를 안겼던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안토니오 골드우드.”

“창공을 내달리는 푸른 맹수여 이곳에 그대를 조롱하는 이를 벌하소서. 썬더-길로틴. 스닉 스파크.”

허.

프로스트 교수는 스위프트의 서포트 아이템 등장 이후 처음으로 감탄했다.

이중영창.

아무리 골드우드 가문 사람이라 해도 이건 너무 빠르지 않나.

프로스트는 정식 마법사로 등록되진 않았지만, 냉기를 다루는 히어로로서 빙결 마법에는 나름의 조예가 있었다.

‘천재로군.’

그는 골드우드가 졸업하기 전에 자신의 조수로 끌어들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스위프트가 어떻게 저 공격을 받아내는지 유심히 살폈다.

시험보다는 학생의 안전이 무엇보다 우선.

‘여차하면 빙벽을 세운다.’

화려하게 움직이며 날아가는 번개와 그 뒤를 따라붙는 노란 구슬.

자연체의 상극이라 할 수 있는 마법사의 공격. 앞의 화려함에 정신이 팔리면 은밀하게 다가오는 스파크에 당하고 말 것이다.

스위프트는 이를 아주 간단한 수로 무효화 했는데.

“어.”

쇠구슬이 뭉쳐서 방패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중 멀쩡한 것 하나를 빼 골드우드의 어깨에 내려놓기 직전, 프로스트 교수는 학생의 안전을 위해 경기 종료를 선언했다.

“큭.”

분한 듯 스위프트를 노려보며 내려오는 골드우드.

이로써 남은 학생은 한 명.

“그레이스 멜론.”

마가렛의 응원을 받으며 경기장에 오른 멜론은 프로스트 교수에게 한 가지 요청했다.

“교수님, 경기장을 옮기고 싶은데요.”

“스위프트, 괜찮나?”

“저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레이스 멜론의 상태를 잘 알고 있는 프로스트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 대련에 조금이라도 후회가 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어쩔 수 없이 눈이 가는군.’

트리플 기프트를 보유했으나 특성 망각에 걸린 불운한 학생. 동정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리라.

강의동 옥상.

“여긴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런 것 치고는 너무 깨끗하다. 게다가 중앙에 하얀 테이프를 붙여 만든 사각형 경기장과 곳곳에 놓인 엄폐물까지.

프로스트는 미소를 머금고 말았다.

준비.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이 불운한 여학생은 상대를 자신이 준비한 필드로 끌어들였다.

그것부터 이미 합격점이다.

이런 거시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가르친 교수가 누굴지 궁금해진 프로스트였으나 일단 경기가 먼저였기에 시작 호각을 불었다.

아니, 불려고 했다.

옥상에 올라오자마자 경기장 중앙에서 크라우칭 자세를 취하는 그레이스 멜론.

프로스트 교수가 호루라기를 입에 가져가는 것을 동공에 담으며 앞으로 내달렸다.

엄폐물을 비롯해 옥상의 구조를 파악하느라 잠시 한눈을 팔았던 스위프트는 갑작스러운 멜론의 돌진에 신속히 반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찰나에 불과했고 금방 자연체로 대응.

코앞에 다가온 주먹을 피했다.

삐이-

호각 소리가 귀에 꽂힘과 동시에.

컥!

다리에 끔찍한 통증을 느끼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레이스 멜론의 로우킥이 무릎에 박혀 있었다.

주먹질은 페이크. 달리는 속도를 그대로 살린 공격은 이 로우킥이었던 것이다.

그대로 옆으로 허물어지는 스위프트의 안면에 그레이스 멜론의 주먹이 꽂히려는 때에.

“으하하!”

평소 근엄하기로 유명한 프로스트 교수의 입에서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주변에서 같이 관람하던 학생들은 놀랐으나 경기장 위의 둘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부웅.

멜론의 주먹은 전신이 자연체로 넘어간 스위프트에게 닿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움직임이 이전 경기와는 확연히 다름을 인지한 그녀는 침착하게 가드를 올렸다.

머릿속으로 그 남자의 숲에서 익혔던 스탭을 떠올리며.

스위프트가 구슬을 뿌리고 마가렛 이상으로 그레이스 멜론을 두들겼다.

“교수님!”

특성 망각이라고는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다. 특히 내구의 경우엔 도리어 전보다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게 프로스트의 눈에는 보였다.

구슬이 튕겨 나오고 있다.

‘…어쩌면.’

특성 망각을 극복한 이가 어떻게 됐는지 잘 아는 프로스트는 팔에 돋는 소름을 쓸어내리며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괜찮다.”

걱정해야 할 건, 스위프트.

의심과 의아함이 섞인 아이들의 눈총을 무시한 교수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강의동 경비 근무 중인 히어로를 호출, 아래층에 대기시켰다.

“…….”

집중상태에 들어간 멜론은 이미 자신이 내구 특성을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었다.

그저 스위프트가 방금의 일격으로 힘이 빠진 것으로만 여기고 남만혁이 지나가듯이 가볍게 한 말을 되뇌었다.

-어떤 히어로든. 버티다 보면 한 번은 틈이 생기더라고.

실제. 스위프트는 지쳤다. 연이은 대련과 로우킥의 충격.

그리고 저 그레이스 멜론의 눈. 가드 사이로 언뜻 보이는 청색의 눈동자.

저게 스위프트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이만한 공격을 먹였으면, 설령 내구 특성이 존재한다 해도 조금은 충격을 받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그녀는 선 자리에서 어떤 흔들림도 없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그때부터 그레이스 멜론이 동상문의 교장상처럼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엄청난 크기의 벽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멜론이 실제로 커진 건 아니고, 특성을 과하게 사용해 스트레스를 받은 스위프트의 뇌가 환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스위프트는 상대가 크면 클수록 극복하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가진 사내였고, 도리어 쉬고 싶은 뇌가 토하듯 뱉어 놓은 환상은 그에게 힘을 불어넣고 말았다.

팡-

옥상 저편으로 퍼져나가는 소닉붐. 눈 깜짝할 사이 그레이스 멜론의 품 안으로 파고든 스위프트는 모든 구슬을 주먹에 모아 글러브처럼 만들고는 그녀의 턱을 노리고 올려 쳤다.

그때 그의 귓가에 들리는 음성.

부유, 내구, 가속.

부유, 내구, 가속.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자신이 잃어버린 특성을 외우는 그레이스 멜론의 안쓰러운 모습에 잠시 망설였으나 차라리 빨리 꿈을 접게 해주는 게 나을 거라는 합리화와 함께 어퍼컷을 끝까지 밀어 올렸다.

턱에 주먹이 닿고 그녀의 목에 하늘로 꺾이는 때에.

“…유니버스.”

그녀의 푸른 눈에 금빛이 깃드는 것을 스위프트는 코앞에서 목격했다.

‘아-’

그것은 스위프트가 생에 처음 느껴보는 진실된 아름다움이었고 그것을 자기 손으로 뭉개고 있다는 것에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상실감을 느꼈다.

스위프트의 공격을 허용하고 공중에 뜬 그레이스 멜론. 이를 지켜보던 모두의 안타까운 표정이 돌연 의아함으로 치환된다.

“응?”

안 떨어진다.

맞아서 올라간 그 공중에서. 마치 박제된 듯 고정된 그레이스 멜론. 장내는 급격히 소란스러워졌고 프로스트 교수는 서리를 내려 아이들의 입을 강제로 닫았다.

‘그 말이 사실이었나.’

특성 망각을 극복한 이가 남긴 자서전엔 ‘착각일지도 모르겠으나 특성이 강해졌다.’라는 문구가 있다.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특성 망각은 재각성의 전조.’

데굴.

그레이스 멜론의 눈이 아래로 향한다. 그 시선의 끝에는 스위프트가 있었다.

목표를 눈에 새긴 그녀는 망설임 없이 하늘로 쏘아져 올랐다.

방금 스위프트가 일으켰던 소닉붐을 꼬리처럼 만들어내며 가속한 뒤.

지상이 둥글게 보이는 고도까지 올라와 누구처럼 입꼬리를 당기며 주문을 외웠다.

“다이브.”

프로스트는 하늘의 점이 된 그레이스 멜론이 트랜스 상태임을 직감하고 불러둔 히어로들에게 연락했다.

“당장 올라오세요.”

-지금요? 김밥 먹는 중…

“어서!”

현재 그레이스 멜론이 다이브를 외친 그곳은 지표로부터 120km 상공.

지구의 경계를 넘어, 우주라 불리는 곳이었다.

공기 저항이 없는 구간을 가속. 지구가 펼친 대기의 장막을 내구로 극복. 이 속도를 부유 특성에 맡겨 손실 없이 지상에 가져오는.

일단 시전에 들어가면 슈퍼빌런 로맨티시스트마저도 두손 두발 들고 항복을 외쳤던.

퀸의 궁극기. 유니버스 다이브가 강의동 옥상에 작렬했다.

“보호, 결계, 장막 모조리 동원해! 너희도!”

한때 현장 최일선에서 이름을 날렸던 프로스트 교수가 어린 히어로들을 지휘해 그레이스 멜론의 궁극기를 받아낸다.

가장 먼저 안토니오 골드우드의 실드 두 겹이 깨져나갔고 칠링 남매의 얼음과 바다가 증발했으며 현직 히어로들의 특성들도 무효화 되어간다.

방어에 참여한 각성자 전원 나가떨어지고 최후의 방벽으로 프로스트 교수가 끊임없이 남극의 빙하를 구현함으로써 밀어내고는 있었으나 한계는 분명했다.

“프리실라아!”

그때 어둠 저편에서 날아온 에어보드에서 검은 정장에 붉은 셔츠를 입은 여성이 내렸다.

“미안해요, 일이 밀려 있어서. 자, 정신 차리렴. 천천히…, 내구는 마지막에 풀고.”

정신 간섭으로 그레이스 멜론을 깨운 교감, 프리실라 루드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느긋한 태도로 상황을 수습해나갔다.

“…죄송합니다.”

정신을 차린 그레이스 멜론은 자신이 벌인 일을 모두 기억한다며 사죄했고 교감은 그 자리에서 용서했다.

“지켜볼게요. 퀸.”

“감사합니, 네?”

“호호, 그가 당신을 퀸이라고 부르던 걸 따라 해봤어요. 기분 나빴나요?”

“그건…, 아니지만.”

“아하, 그에게만 불리고 싶었나 보군요?”

“아, 아니에요!”

“호호. 젊음이 좋긴 좋군요. 잠시만요, 여러분 고생하셨어요. 사건 진압에 도움을 준 히어로와 학생에겐 소정의 보상이 지급될 거예요. 해산~”

대다수가 쓰러진 상황이었기에 의료팀이 와서 아이들과 히어로를 데려갔다.

프리실라는 얼굴을 붉힌 채 당황해하는 멜론의 손을 잡고 교감실로 이끌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떠나고 특성의 흔적만 남은 옥상 구석.

“나…죽어. 이러다 나 죽는다고…, 프리실라…!”

프로스트 교수는 자신이 구현한 빙하 아래에서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가 발견된 건, 새벽. 드론으로 사제 치킨을 밀반입하던 남만혁에 의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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