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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24화 (24/201)

<24화>

삼식이

아, 이 녀석들 빨리 좀 안 가나. 10분만 참았다가 주문할 걸 그랬어.

지금쯤 튀김 외길 33년 인생의 장인 치킨집 사장이 튀기고 있을 닭 다리를 생각하니 절로 마음이 급해졌다.

“왜 왔냐.”

“그게….”

“그레이스 멜론은 생각이 많은 모양이다. 나부터 용건을 말하지.”

머뭇거리는 퀸 앞으로 스위프트가 나섰다.

“네가 그레이스 멜론을 가르쳤다 들었다.”

“그렇지? 코찔찔이 때부터 업어 키운 거나 마찬가지야.”

게다가 내 덕에 퀸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으니 이 정도 생색은 내도 되지 않을까.

“내가 언제 코를!”

“울었어 안 울었어.”

“…울었어.”

“그럼 코 찔찔 한 거지.”

퀸. 침몰.

“나도.”

나와 퀸의 대화를 듣고 있던 스위프트가 툭 뱉은 말.

“내게도 그 가르침을 부탁한다. 교수.”

스위프트의 눈빛이 묘하다.

음…? 아, 이 녀석. 나를 아카데미 측 인사로 알고 있지 참.

스위프트는 내가 따로 건드릴 게 없다. 자연체나 염동력은 이미 현직 고참 히어로 수준으로 잘 다루고 있다.

아쉬운 건 딱 하나. 실전.

백날 아카데미에서 대련이니 훈련이니 해도. 현장의 피비린내는 흉내 낼 수 없다. 순간 멘탈이 나가 생긴 빈틈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히어로를.

나는 수도 없이 봐왔다.

‘3학년 때 파견 나가서 꽤 구른다고 듣긴 했지만.’

그것조차도 어른의 보호 아래에 움직일 게 뻔하다.

“퓨즈!”

다른 녀석들이야 시기상조지만, 이놈이라면 괜찮겠지.

문을 열고 건너편에 놓인 컨테이너 쪽으로 고개를 돌려 녀석을 부르자, 내 옆으로 물 덩어리가 날아와 정지한다.

이내 부글부글 끓으며 증발하고 대신 그 자리에 퓨즈가 나타났다.

2m 남짓. 받지 않으면 다칠 높이.

이 녀석은 내가 부르면 항상 이렇게 온다. 받아주는 게 좋다면서.

“얍!”

내 목에 팔을 걸고 활짝 웃는 녀석의 이마에 가볍게 꿀밤을 먹였다.

“너 이거 하지 말랬지. 내가 못 보면 어쩌려고.”

“힝, 알았어. 그런데 왜 불렀어?”

“저 무뚝뚝하게 생긴 녀석. 네가 상대 좀 해줘.”

“번처럼?”

“어.”

번은 퓨즈와 특성 훈련을 하고 나면 초주검 상태가 된다.

내가 구현한 물속에서 재점화 확산을 연습하는 것보다 실제로 날아오는 물 덩어리를 맞추는 게 훨씬 어렵기도 하고, 예측하기 힘든 퓨즈의 공격은 때때로 살의가 담겨 있어서 식겁하며 훈련에 임한다.

특히 몸에서 땀이 나면 손쓸 도리가 없다고 보면 된다.

“이 꼬마는?”

마가렛 수준은 아니어도 덩치가 꽤 큰 스위프트 입장에서는 퓨즈가 꼬맹이로 보일만 하다. 하는 행동도 그렇고.

홱.

그리고 이 나이대의 아이들이 그렇듯. 퓨즈는 꼬마라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꼬마 아니거든?”

“이름이?”

“퓨즈!”

“퓨즈. 반갑다. 나는 스위프트다. 비행기 타고 싶나?”

“네! 앗, 꺄하하학!”

의외의 면모.

스위프트는 아이를 잘 다뤘다!

바람으로 공중을 한참 날던 퓨즈가 6시간 산책에 만족한 강아지처럼 내 소파에 늘어진다.

“너는 앞으로 매일 점심시간에 와서 퓨즈랑 놀아줘.”

“음…, 알았다.”

스위프트는 내키지 않는 듯했으나 ‘뜻이 있겠지.’라는 말을 덧붙이곤 돌아갔다.

멀뚱히 서 있는 퀸.

“넌 왜.”

“…그.”

“말을 해.”

“고맙다고!”

“아니, 왜 소리를 질러. 알았으니까 너도 가 봐.”

GPS를 보니 치킨을 가져오는 드론이 담을 넘었다.

퀸이고 나발이고 치킨 먹어야 되니까 꺼져!

“이익-, 후. 남만혁.”

“말해.”

“용서할게.”

“응?”

“내 등에 탄 거!”

“아, 진짜? 고맙다?”

“…너는. 너는!”

퀸이 발로 땅을 쾅 찍는다. 아직 젖살이 덜 빠져 약간 통통한 볼이 흔들린다. 그러곤 나를 한차례 거세게 쏘아보곤 쌩 날아가는 녀석.

왜 저래.

“오.”

두두두.

왔다 왔어.

중간에 웬 노숙자가 옥상에 있길래 신고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일없이 잘 도착한 치킨을 받았다.

오우야, 이 스모키한 바베큐향.

박스에 둘둘 말려 있던 고무줄을 벗기기가 무섭게 퓨즈가 내게 달라붙었다.

“맛있겠답. 번 불러와도 돼?”

이럴 줄 알고 두 마리 세트로 주문했지.

“그래. 일식아, 두식아. 너희도 와라. 백호! 너는 내 특별히 아끼니 목을 주마.”

목 두 개를 던져줬다.

크릉….

내 부름에 어슬렁 나타난 백호는 살점이 거의 없는 목을 싫어하는 기색이었지만 몸은 정직하게 침을 흘리고 있었다.

“먹자.”

와-

* * *

“계약을 안 해왔다? 과제로 냈었던 것 같은데…. 아니면 자네 스승을 치매라 주장할 생각인가?”

순박한 학자 이미지인 매저드 교수의 점잖은 훈계는 매웠다.

“그것이 아니오라.”

“변명을 들을 수는 있네만, 판단 잘하게. 용서를 구하는 건 빠를수록 좋은 법이야.”

마법사들은 자신과 선조, 선배들이 이룩한 마법 지식을 절대 타 학파와 나누지 않는다.

그런 단체들이 버젓이 눈 뜨고 있는데도 아카데미에서 36개 학파의 마법 강의를 하는 매저드 교수.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건, 힘과 권력 그리고 사회적 인망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이고.

“죄송합니다!”

내가 머리를 박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다음에는 그러지 말거라.”

“넵.”

“그런데 변명은 궁금하니 들려주게.”

“다름이 아니라, 제가 계약하는 모습을 스승님께 보여드리고 싶어서 참았습니다.”

“호-, 기특하구먼. 당장 해보게. 골드우드는 걱정하지 말고. 이곳에서의 일은 바깥에 말하지 않겠다는 에프터데스 서약을 했으니.”

에프터데스 서약. 죽을 때까지.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제약이 걸리는 마법사 최고단계 서약.

그거라면 믿을만하지.

슥 골드우드를 보니, 녀석은 강의 초반에 매저드 교수가 주문한 영창가속을 연습하느라 이쪽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망토를 바꿨구먼?”

“네, 퓨즈가 만들어줘서요.”

번과 퓨즈, 그리고 내 얼굴이 엉성하게 그려진 망토를 어깨에 걸쳤다.

내 가방 역할을 하는 카츄의 배를 톡 치자 입구로 돌법봉이 튀어나왔고. 나는 능숙하게 잡아채 주문을 외웠다.

“샤랄라, 시릴리 릴리.”

숙련도가 쌓여서 그런지 주문도 꽤 단축됐다.

블랙 위치의 언데드 생성을 의식하며 돌법봉을 휘둘렀다. 허공이 세로로 갈라졌고 회전하는 검은 상자 세 개가 등장.

“신비롭구먼. 확실히 이 세상의 마법은 아니야. 아, 나는 무시하고 계약까지 진행해보게.”

상자의 윗면이 열렸고 상자 안에 분해되어 있던 뼈들이 조립된다.

‘아.’

상자에서 나온 것들은 하나같이 두개골이 신장의 1/3 이상을 차지하는 꼬맹이들이었기에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해서 큰 기대 없이 언포스를 켰고.

【이름 : 작센】

【종 : 드와프】

【힘 : 58】

【지 : 27】

【마 : 3】

【잠 : 126】

【특성 : 재련(B), 무두질(C)】

【설명 : 대장간, 쇠굽는남자들의 대표】

【이름 : 없음】

【종 : 임프】

【힘 : 6】

【지 : 21】

【마 : 37】

【잠 : 255】

【특성 : 변이된 매직 미사일(F), 블링크(D)】

【설명 : 혼몽의 마굴 999일 생존】

【이름 : 없음】

【종 : 소인】

【힘 : 99】

【지 : 9】

【마 : 5】

【잠 : 119】

【특성 : 독침술(C), 빠른발(C), 독제조(B), 군체의식(A)】

【설명 : 네발 동물을 숭배하며 뱀을 조상으로 여김】

있다.

셋 중 가장 몸집이 작은 녀석의 잠재력이 무려 255다.

임프.

“이 스승이 참견해도 되겠는가?”

지켜만 보겠다던 매저드 교수가 상기된 얼굴로 중앙의 임프를 직시하고 있었다.

“반드시 저 언데드와 계약하게.”

교수도 스테이터스가 보이나?

“어째서 그렇습니까?”

“해골은 골격과 뼈에 깃든 마나를 통해 생전의 종을 추측할 수 있다네. 저건 희귀종인 임프일 확률이 높아.”

대장간 대표는 현대에 쓸 일이 없고 독침 소인 역시 같은 이유로 가치가 떨어진다.

뭐, 사실 잠재력을 본 순간 마음의 결정을 내리긴 했다.

“그리고 임프는 고유 마법을 사용한다네. 만약 그것이 특별한 마법이라면, 자네는 진정으로 내 뒤를 잇게 될 걸세.”

자신의 뒤를 잇는다는 말에 고개를 쳐든 골드우드가 나를 노려본다. 익숙해진 패턴인지라 무시하고 교수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 말씀은?”

“아카데미라는 방패가 사라진 자네가 계속 해골들을 다루려면 그랜드위저드 상이 꼭 필요할 걸세.”

마법계의 발전과 발견에 헌신한 마법사가 받는 그랜드위저드 상. 이 상을 보유한 마법사는 학파창설 권한이 주어진다.

그리고 상 보유자가 꺼림칙한 마법을 연구하더라도 윤리와 도덕에 벗어나지만 않으면 음해하거나 물리적인 제약을 가할 수 없다.

법도 법이지만, ‘그 상을 받은 사람이 하는 일이니 깊은 뜻이 있겠지.’라고 넘기는 것이다.

“노력하겠습니다.”

임프의 머리에 손을 대고 계약한다는 의지를 강하게 떠올리자 보랏빛 안광이 두개골 안에서 피어났고. 다른 상자 둘은 다시 닫히며 찢어진 공간의 틈 안으로 사라졌다.

“네 이름은 삼식이다.”

돌곡.

턱관절이 움직이는 소리가 조용하다. 삼식이는 주변을 살피더니 매저드 교수를 발견하곤 내 다리 사이로 숨어들었다.

바짓단을 붙잡고 달달거리는 녀석.

그러다 팔짱을 끼고 있던 매저드가 손을 움직이자.

보랏빛 안광이 거세게 타오르더니, 허공에 같은 색의 화살 여섯 개가 뒤집힌 거미의 다리처럼 펼쳐져 교수에게 쇄도했다.

그를 여유롭게 실드로 받아낸 매저드 교수는 이내 실망의 목소리로.

“특별하진 않구나.”

그 말 직후. 실드에 부닥쳐 사라져야 할 마법 화살이 작은 원의 형태로 변해 들러붙었다. 이내 그 동그라미 중앙에 십자가가 생겼고.

내 마나가 미친 듯이 빨려 나갔다.

“허어.”

이후 한순간에 생성된 18개의 보랏빛 화살이 매저드 교수의 보호막을 두들긴다.

화살들은 자그마한 균열도 만들어내지 못했으나 전과 같이 무수한 원과 십자가를 그의 실드에 새겼다.

재차 소모되려는 마나의 양에 깜짝 놀라 삼식이의 머리에 엘보를 먹였다.

그러자 정수리에 닿지 않는 짧은 팔로 자기 머리를 움켜잡은 삼식이가 안광을 흔들며 나를 올려다본다.

“이 녀석아, 저분은 내 스승님이시다.”

돌곡, 돌곡.

내 뜻을 이해한 녀석은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내가 의도한 것이니 혼내지 말거라.”

일전 소환학파가 실수로 불러낸 괴수의 마나를 흉내 냈다는 매저드 교수.

“아, 그러셨습니까.”

어쩐지.

요즘 블랙 위치 숙련도가 오른 덕에 해골들의 의사가 희미하게 느껴지는데, 방금은 ‘계약자, 지킨다.’ 정도의 감각이었다.

적이 없는데 왜 그러나 했다.

“매직 미사일의 변형이라. 자네에겐 안된 일이네만, 기초 마법에 기교를 섞는 정도로 그랜드위저드 상을 받은 이는 역사상 아무도 없다네.”

그럼 뭐 할 수 없는 거지. 처음부터 상에 큰 욕심은 없었다. 졸업까지 시간도 있고.

“하지만 이 매직 미사일은 무서울 정도로 효율적이야. 자네도 알고 있겠지?”

“어떤…?”

“자네의 쥐똥만 한 마나량으로 18개의 매직 미사일을 만들었지 않나. 게다가 지금 멀쩡히 서 있는 거로 봐서 한계까지 뽑아 쓴 것도 아니라는 걸세. 만약 저 임프가 내 마나를 이용하면 어찌 되겠는가. 자, 내 상세히 설명해줌세.”

이후 흥분해서 열변을 토하는 매저드 교수.

임프가 사용하는 변이 매직 미사일의 메커니즘은 이렇다.

최초의 여섯 발로 표적을 생성하고 표적의 세 배만큼 매직 미사일을 다시 만든다. 이때 소모되는 마나는 본래 소모되어야 할 마나량의 절반 수준.

이것이 계속 반복되면 막대한 숫자의 매직 미사일을 생성함에도 마나 소모는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그렇다고 너무 기대하지는 말게. 분명 한계는 존재할 것이야.”

한계는 아마 능력치겠지. 3배…, 삼식이의 마 스텟의 앞자리가 마침 3이다.

‘매직 미사일 개수, 마력에 영향받지?’

돌곡.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잠재력을 전부 마 스텟에 꼽는다 치면, 앞으로 19. 다른 데 분산됐다 해도 15개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두 번째 공격에 벌써 108개의 매직 미사일이 생성된다. 그다음이 가능하다면, 1,944개 34,992개로 이어지고.

…어.

사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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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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