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칸탄테 (1)
슬프게도. 삼식이의 매직 미사일 무한 증식 이론에 들떴던 나는 지독한 현실을 마주하고 좌절했다.
“내 계속 언급하잖나. 자네의 마나로는 어림도 없어. 어허, 조급해하지 말게. 어떤 마법사도 꾸준한 명상 없이는 성장할 수 없는 법이니.”
마나 총량을 늘리는 비법은 여럿 존재하나 그중 안전이 검증된 건 극히 소수.
“총량을 늘리는 법? 있지. 내 비전의 수련법을 전수함세. 소모와 회복을 끊임없이 반복 하게.”
지금 매저드 교수가 말한 방식은 내가 피곤한 만큼 성장하는 악명 높은 수련법이다.
마법사 대부분은 저렇게 골드우드처럼 정신을 집중한 상태에서 주문을 사용해 마나를 소모한다.
하지만 나는 블랙 위치와 해골을 유지하는 것부터가 계속 마나를 소모하고 명령을 내리면 또 마나가 닳는다.
그래서 고안해낸 내 맥시멈마나펌핑 프로젝트는 이런 식이다.
블랙 위치화와 스컬즈 소환. 삼식이에게 매직 미사일 6발 사출 명령 후 명상으로 마나 회복.
현재 이 싸이클을 분당 1회 반복 중이고, 이번 달 내로 3회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 * *
달각?
“아침이냐?”
달각.
컨테이너 앞 평상에 대자로 누워 명상을 하던 나는 일식이의 기척에 눈을 뜨고 대충 씻은 뒤 F반 교실로 향했다.
새벽에 일어나 약 4시간 동안 마나를 미친 듯이 소모, 회복을 반복한 결과. 기존이 100이었다 치면 지금은 103 정도로 마나 최대량이 늘었다.
하루에 3%.
나쁘지 않다.
“호식아, 가자.”
이제는 백호의 등에 누워서 탈 수 있게 됐다. 격한 움직임을 하면 일식이가 잡아주니 떨어질 염려도 없고.
건물 앞에 도착한 일식이가 손가락 세 개를 편다.
“3천 원?”
녀석이 열심히 턱을 움직이며 무어라 떠든다.
깨우는 거랑 잡아주는 것도 노동에 포함된다?
아침부터 괜한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았기에 카츄에 넣어둔 지폐 지갑에서 천 원짜리 세 장을 꺼내 손가락뼈 사이에 쥐여줬다.
“여기서 더 올리면 너 안 부르고 백호한테 돈 준다. 천 원이면 육포 한 줄 살 수 있는 거 알지?”
충격을 받은 듯. 안광이 커지는 일식이. 반면 백호는 자기 앞을 왔다 갔다 하는 지폐를 보곤 침을 흘린다.
나름 영물 축에 속하는 백호는 저걸로 편의점에서 음식을 살 수 있다는 걸 안다. 나 없을 때 일식이랑 따로 몇 번 갔던 것도 같고.
힘겹게 머리를 끄덕이는 일식이.
“잘하자.”
달…각.
호식이를 뒤로하고 교실로 들어서니 웬일로 데커드 교수가 일찍 와 있다.
“중요한 공지가 있습니다. 교감 선생님께서 약속하신 A반 진급 학생은 F반에서 나왔습니다.”
네-?
“엄밀히는 교환학생처럼 일정 기간만 체류하는 거지만요.”
데커드가 말하길. 교감은 월말 평가전에서 A반에 소속될 만큼 뛰어난 성과를 보인 학생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었기에 다른 반에서 한 명을 한 달만 체류시킨다는 수를 낸 것이다.
“로테이션인가요?”
“예, 올해는 그렇게 정해졌습니다. 우리 반이 처음이죠.”
B, C, D, E, F.
방학이랑 행사 빼면 한 번씩은 A반에 소속될 기회가 있다.
도수정과 곽재우, 그리고 소구경이 뒷자리에 앉은 나를 돌아본다.
참고로 F반 평가전 우승자는 나다. 호식이 선에서 다 처리되더라.
“남만혁 학생은 아닙니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있어서 다른 반으로 못 갑니다.”
잘됐네. 무슨 핑계를 대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말했듯. A반은 알아서 잘 큰다. 게다가 키우고 싶은 애들은 이미 마운틴 짐에 출석 중이라 더더욱 갈 이유가 없다.
데커드는 아이들의 기대 어린 시선을 한동안 즐기다 어느 소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칸탄테.”
“넷?”
“축하합니다. 많이 배우고 오세요.”
“정말요? 세, 세상에! 고맙습니다!”
데커드의 도움을 받아 자리를 정리하고 곧장 A반으로 가는 칸탄테.
칫.
눈여겨보던 녀석이다. 적당히 얼굴이 익숙해질 때쯤 권유해 볼 계획이었다.
칸탄테의 특성은 버프송. 노래로 다수에게 이로운 효과를 부여하는 능력.
부여계는 숙련도와 효과에 따라 몸값이 크게 달라진다.
칸탄테는 출혈이다.
평가전 때 보니 모기 수백 마리를 곤충채집통에 담아와 상대에게 뿌리고 노래로 버프를 주더라.
한 번 물리면 그곳에서 피가 계속 나온다. 모기는 자기 배가 터져나가도 본능에 따라 계속 빨아 댔고.
굉장히 끔찍한 광경이었어야 했으나 안타깝게도 상대는 블리딩블러드.
타고난 피 사냥꾼에게 칸탄테의 노림수는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본인도 알고 있었는지, 금방 항복하고 경기장을 내려가더라.
그리고 내 눈에는 그때의 풀죽은 뒷모습과 현재 웃으며 뛰어나가는 뒷모습이 겹쳐 보였다.
* * *
남만혁이 오전 강의를 명상으로 때우고 컨테이너로 돌아갈 무렵. A반에서는 칸탄테의 환영식이 있었다.
“우-와. 진짜다. 피가 안 멈춰!”
“오버 좀 하지 마. 혈육 놈아.”
A반에게 칠링 남매가 투닥이는 건 일상이었기에 전전긍긍하는 건 칸탄테 뿐이었다.
“스위프트다. 반갑다.”
“네! 저는 칸탄테예요.”
“음.”
고개만 끄덕이곤 교실을 나가는 스위프트. 자신이 뭔가 잘못했나 싶어 당황하는 칸탄테의 어깨에 두꺼운 손가락이 얹혔다.
“쟤는 원래 저래. 그보다 F반에서 왔댔지? 그 교수, 알겠네?”
“그 교수? …아, 만혁이요?”
그의 이름이 나오자 앞자리에 앉아 있던 그레이스 멜론의 귀가 씰룩인다.
이를 캐치한 마가렛이 큭 웃으며.
“그 녀석 어때? 혹시 좋아하는 건 아니지?”
“아닙니다.”
“어…. 미안.”
몹시 소녀스럽던 언행이 한순간에 돌부처처럼 딱딱하게 변한 칸탄테의 모습에 사과하는 마가렛.
“그런데 왜요?”
“궁금해서. 여기서는 그 녀석 마운틴 교수라고 불리거든. 엮인 애들도 있고.”
마가렛이 스위프트가 나간 문과 이쪽을 힐끔거리는 멜론을 보며 말하자 칸탄테는 입을 동그랗게 모으고는.
“그런가요? 만혁이는 좀 폭군 같아서. 말 걸기가 무서워요.”
“아하하, 무슨 느낌인지 알겠어.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해.”
“저도요.”
그런 두 사람 옆을 지나치며 한마디 하는 안토니오 골드우드.
“한 달 보고 말 사이에 부탁은 무슨.”
“흘려들어. 원래 이런 놈이니까.”
“흥.”
“마법충은 내버려 두고 이쪽으로 와봐. 애들 소개시켜줄게. 여기는 도슨 칠링-”
통성명이 끝나자 마가렛은 칸탄테를 자신이 듣는 선택 강의에 데려갔다.
강의명, 구조를 위한 지형 돌파.
빌딩 옥상에 갇힌 요구조자를 구출해야 하는 단순한 상황.
칸탄테는 자신의 특성으로는 방법이 없다고 여겨 가만히 있었는데. 교수가 한 마디 던졌다.
“네 소중한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가도 그렇게 있을 건가?”
그리 말하며 옆을 가리켰고, 거기엔 수직으로 세워진 빙판을 스케이트로 올라가는 케롤라인 칠링이 보였다.
정상까지 닿기에는 한참 부족한 높이였으나 그녀는 몇 번이나 넘어짐에도 포기하지 않고 빙판 위를 달렸다.
“하지만 저는….”
출혈을 부여하는 노래로는 저런 물리적인 움직임이 불가능하다.
“그만, 알겠다.”
칸탄테의 변명을 끊은 교수는 강의 내내 그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 강의만, 이 교수만 이런 거야. 괜찮아.’
그렇게 스스로 최면을 걸며 다음 강의를 들어갔으나 내용만 다를 뿐. 결과는 같았다.
다음 날.
“오늘은 나랑 다니면 돼!”
케롤라인 칠링을 따라다니며 강의를 들었고 어제보다는 나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음을 이제는 그녀 스스로도 알았다.
2주.
칸탄테는 A반 아이들이 듣는 선택 강의를 모두 경험했다.
그리고 내려진 결론은.
‘히어로…, 그만둘까.’
칸탄테의 눈에 A반 아이들은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불가능에 대한 끝없는 도전. 망설임 없이 위기를 마주하는 굳건한 의지. 뛰어난 임기응변.
무엇보다, 인명구조와 대인전에 타고난 특성.
반면 자신은 어떤가.
못한다, 어쩔 수 없다, 이거 말고.
변명하며 도망치기 바빴다.
불 꺼진 방. 칸탄테의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 * *
“돌아온 칸탄테를 환영해주세요.”
어땠어? 뭐 배웠어? 재밌었지?
A반 생활을 마치고 F반으로 복귀한 칸탄테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어, 어. 응. 재밌었지. 고마워.”
홀쭉한 볼과 광대까지 내려온 다크서클. 그리고 푸석푸석한 피부.
나는 드디어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교수들에게 시달렸구만.’
A반만 맡아 가르치는 교수들이 따로 있다. 이번에 들어간 강의들을 살펴보니 죄다 그런 것뿐이던데.
저건 당연한 결과다.
초엘리트만 상대하던 교수들이다. 눈이 오죽 높겠나. 아직 새싹 같은 칸탄테의 특성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출혈이라는 애매한 부여 능력이니 키워볼 생각조차 안 했겠지.
그리고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칸탄테는 그리 절실한 인물이 아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사랑받으며 자랐고 서히아에 합격한 것만으로 가족과 주변 지인이 성공은 보장된 것이니 졸업장만 따라며 떠들어댔다.
칸탄테는 만족해버린 거다.
여기까지 왔으면 됐지.
이렇게 흘러갈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한 나는 점심마다 마운틴 짐에 오는 퀸과 스위프트에게 넌지시 나에 대해 좋게 말해달라고 부탁했었다.
저렇게 나를 바라보는 걸 보면, 잘 해준 모양.
여기서 내가 먼저 다가가면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이 악물고 모른 척했다.
며칠 후.
“저….”
왔다.
“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나는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고민하는 척하다 칸탄테를 밖으로 불러냈다.
자판기에서 설탕절임 알로에 캔 음료 두 개를 뽑아 하나를 따서 녀석에게 건넸다.
“고마워.”
양손으로 캔을 붙잡은 칸탄테는 반쯤 술이나 다름없는 음료를 원샷 때리더니.
“만혁아, 나 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아. 오해하지는 말고. 멜론 씨가 너 상담 잘한대서 물어보는 거야.”
하.
아니, 퀸은 씨라고 하면서 나는 왜 반말이냐.
“네가 하기에 따라서는 슈퍼히어로도 될 수 있지.”
“나 농담하는 거 아니야.”
“나돈데.”
노려보는 눈매가 매섭다. 전에 없던 독기도 언뜻 비치고.
좋네.
“슈퍼히어로. …흐, 그래. 어떻게 하면 돼? 원하는 걸 말해.”
“일단 너도 마운틴 짐에 매일 와라.”
“마운틴 짐?”
“내 집 어딨는지 알지?”
모른다기에 대략적인 위치를 설명하자 칸탄테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거긴 산이잖아.”
“마운틴 짐이니까.”
“…알았어.”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던 칸탄테는 속을 게워내듯 힘겹게 답했다.
다음날. 칸탄테가 숨을 거칠게 쉬며 내 컨테이너 앞, 간이 헬스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 끝나기 직전이었다.
“타라.”
뭘 가르칠 시간이 없었기에 녀석을 백호 등에 태워 강의동으로 보냈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등산은 하체와 코어 근육 단련에 아주 좋다. 깨끗한 공기를 마셔 정신이 맑아지는 건 덤이고 강의 때문에 반강제로 공복을 유지하니 살도 빠진다.
고행 끝에 강의동에서 내 마운틴 짐까지 30분을 끊은 칸탄테는 주변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순수하게 환호했다.
으-아아아!
이후 30분 컷을 주문한 나를 찌를 듯이 노려보는 칸탄테.
저거다.
힘을 갈구하는 사람의 눈은 마땅히 저래야 한다.
“잘했어, 이제 소원을 말해봐.”
내가 너의 지니가 되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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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