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칸탄테 (2)
“-서울 한강 인근에 돌연변이 쥐들이 출몰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현장에 박견 기자가 나가 있습니다. 박견 기자?”
“예, 저는 지금 잠실 한강 공원에 나와 있습니다.”
“거기 상황이 어떻습니까?”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도, 이렇게. 쥐들이 모여 꽃을 갉아 먹고 있습니다.”
무릎까지 오는 낮은 화단 울타리를 넘은 기자가 막대로 풀을 젖히자 네다섯 마리의 붉은 쥐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일반적인 쥐와는 색깔이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한국의 쥐는 검은색과 갈색 두 종류이며 외국에도 이런 색을 가진 쥐는 없어, 재작년 신설된 변이동물조사본부에서는 위기 등급 3급을 부여하고 관찰 중이라 하며-”
팟.
버려진 한강 지하도 깊은 곳. 홀로TV의 빛이 사라지자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느릿하게 움직였다.
“3급. 큭.”
나지막이 중얼거린 어눌한 음성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멍청한 조센징 놈들.”
블러드커스랫은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걸작. 그걸 고작 3급이라, 한국 놈들 수준을 알만하다.
반년 만에 무시마타 현의 인구 3할을 죽였다. 일본은 철저히 언론을 통제해 이 사실이 외부로 유출되는 걸 막았으나 주변국은 이미 나의 인상착의를 비롯한 연구 과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한국만 제외하고 말이다.
관광하러 왔다는 말에 그냥 통과시킨 입국 심사관은 나중에 피를 토하며 도게자를 하겠지.
큭큭.
준비는 끝났다.
가장 큰 문제였던 환경 적응에 성공했으니 블러드커스랫은 하루에 수천 마리씩 증식할 것이다.
한국의 수도가 피의 저주에 잠식될 날도 멀지 않았다.
그의 선언대로.
뉴스 이후 열흘 만에 서울은 쥐가 들끓기 시작했다. 방역업체와 히어로를 동원한 구제작업이 연일 이어졌으나 규모를 줄이는 데는 성공해도 씨를 말리지 못해 증식과 사살의 반복이 이어졌다.
연일 돌연변이 쥐가 화제에 오르자 그는 자신이 블러드커스랫의 창조자라며 전면에 나섰다.
“내가 원하는 것을 물었나? 어렵지 않다. 대한민국 서울을 나에게 바쳐라.”
그가 올린 영상에는 죄 없는 시민이 쥐에 의해 죽는 잔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사람 죽이는 쥐새끼!”
다수의 커뮤니티에 그에 관한 글이 올라왔고 하나같이 같은 단어가 욕과 함께 달렸다.
킬링랫.
그게 그의 빌런명이 되었다.
* * *
“이건 좀.”
“히어로가 되고 싶다고 한 건 너다.”
“…목소리 변조는 또 뭔데.”
“그렇게 싫으면 말던가. 나는 상관없어.”
“입을게. 입으면 되잖아!”
1세기 전 히어로 코스튬. 쫄쫄이에 대두 헬멧. 그나마 가슴 보호대가 있어 민망하지는 않다는 게 위안이 된다고 해야 하나.
좋게 생각하려 해도 자꾸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근데, 그거 진짜 하게?”
“네가 봐도 딱 맞아떨어지지 않아?”
킬링랫의 서울 정복 전쟁 선포 이후, 아카데미에도 쥐가 유입됐다.
더러운 것을 혐오하는 남만혁은 자신의 산에 침입한 쥐를 박멸하기 위해 호식이와 삼식이를 24시간 굴렸고.
그 과정에서 조합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게 지금 칸탄테가 히어로 코스튬을 입고 있는 이유다.
“매직 미사일이 내 노래를 들을 줄은 몰랐지….”
마운틴 짐에서 특성을 훈련하던 칸탄테, 컨테이너 위에서 쥐를 요격하던 삼식이.
우연히 기술을 사용하는 타이밍이 겹쳤고, 놀랍게도 매직 미사일에 출혈 속성이 부여됐다.
본래 쥐는 매직 미사일 한 방에 죽지 않는다. 워낙 위력이 약해서 적어도 두 발, 많으면 네발까지 꽂아야 하는데.
출혈 속성의 매직 미사일은 한 발만 맞혀도 쥐가 피보라를 뿜으며 죽었다.
평범한 시너지는 아니었기에 이를 매저드 교수에게 자문하니.
“내 윗세대만 해도 피와 저주를 다루는 네크로 학파의 마법사가 많았네. 오래전, 어떤 마법이 학파의 정통인가를 두고 내전이 벌어졌을 때. 익스트림 다크볼과 블러디스피어가 합쳐진 일화는 유명-”
네크로 학파의 역사까지 이어진 매저드 교수의 2시간짜리 강의를 요약하면.
언데드와 피는 고대부터 검증된 조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홀로보드에 복잡한 화학식 같은 마법 배열을 그리는데, 그것도 한 시간이었다.
하여튼.
남만혁은 일전, 등산 30분의 보상으로 말한 칸탄테의 소원을 떠올렸다.
“진짜 히어로가 되고 싶어.”
히어로란.
자신에게 주어진 비극을 받아들이고 타인의 비극을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자칭할 자격이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칸탄테는 히어로의 소양이 있다.
아카데미 본관 창고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코스튬을 아무도 모르게 빌려와 칸탄테에게 건넸고, 녀석은 질색하면서도 헬멧을 벗으면 할머니가 튀어나올 것 같은 코스튬을 입었다.
선팅된 헬멧 고글 안으로 칸탄테의 눈이 반짝인다.
* * *
양효민 의원은 밀려오는 두통에 습관처럼 서랍을 더듬어 약을 꺼냈다.
“또 드십니까.”
“어쩌겠나. 더 아프기 전에 먹어야지.”
불과 2시간 전에 이미 약을 먹었던 양효민 의원을 걱정한 비서였으나 이미 입에 물을 넣고 우물거리는 모습에 말리는 걸 그만두고 하던 보고를 이었다.
“온누리당이 일시 양도로 의견을 모았다고 합니다.”
“허, 진또배기 미친놈들이야. 대한민국 의원이라는 작자들이…. 한 비서, 자네 생각은?”
“저도 의원님이랑 같습니다.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합니다.”
일시 양도. 잠깐 시장직을 위임했다가 회수하자는 장난 같은 제안이 당내회의를 통과됐다는 게, 지금도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킬링랫보다 무섭다.
“그런 놈들이 정치를 하고 있으니.”
쯔쯔.
양효민 의원은 혀를 차곤 팔짱을 낀 채 장고에 들어갔다. 이럴 때는 방해하면 안 된다는 걸 아는 비서는 조용히 물러났고.
홀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양효민은 홀로폰을 꺼내 세계에서 가장 바쁜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접니다.”
-우리 잘나가는 매제가 웬일이야. 잘 지내고?
“제 사정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으하하, 한 번 놀려봤지. 그래서 용건은?
“국민들께 제 얼굴 한 번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양효민은 자신에게 부족한 건 경력이고. 이를 단기간에 메울 방법은 대중의 관심이라 믿었다.
그는 평생 몇 번 쓸 수 없는 서히아 교장 카드를 지금 써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공짜로?
“형님.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도와주시려고 그러십니까. 저는 아니더라도 우리 마눌님이 많이 섭섭해할 겁니다.”
저편에서 작게 헛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해달라는 거냐.
“제가 해외 히어로를 영입해오는 그림. 어떻습니까?”
히어로 보유 숫자가 곧 국력이다. 타국의 히어로를 데려오는 건, 언제나 환영받는 정치계 단골 업적.
다른 정치인들이 그러듯 못 사는 국가의 각성자를 데려와 히어로로 포장하면 될 일이나. 양효민은 진심으로 쥐를 사냥하기 위한 전문 헌터들을 영입할 계획이었다.
-그건 힘들겠어.
“예?”
-우리 쪽 애들이 준비하는 거 같더라고. 원하면 거기에 이름 정도는, …음? 이야, 이거 참. 놈이 이런 거까지 염두에 둔 건가. 무섭단 말이지. 크.
양효민이 그의 중얼거림에 의아해하고 있으니 이내 설명이 이어졌다.
-매제, 하나 보육원의 남만혁이 알지?
“하나 보육원…. 아, 예. 기억납니다. 먼저 연락이 와서 기부 좀 하라던. 맹랑한 꼬마였습니다.”
한 비서를 통해 들은 바를 떠올려 말하자 껄껄 웃는다.
-그 녀석에게 연락해봐.
그거로 끝이었다.
양효민은 서울이 빌런 하나에 좌지우지되는 현 상황을 자신의 정치 인생에 큰 분기점이라 보고 있다.
‘여기서 어찌하느냐에 따라 꽃길이 될 수도, 가시밭길이 될 수도 있다.’
…17살 꼬맹이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으로 대선에 나갈 자격이 생긴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정리를 끝낸 양효민은 비서를 불러 남만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쁩니다.
1초 만에 끊겼다.
한 비서는 최대한 표정을 숨기며 몸을 돌렸고 양효민 의원은.
“크흠, 전화가 제대로 안 걸렸나 보군. 다시….”
-아, 바쁘다고!
쾅!
홀로폰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에이, 씨. 누구야. 양효민? …거, 나중에 통화합시다.
그러곤 전과 같이 끊어졌다.
동시에 빌런 관련 특보가 뜨면 알림이 오게끔 해둔 한 비서의 홀로폰이 미친 듯이 진동한다.
“죄송합니다.”
“괜찮네. 업무용 폰이지? 오픈모드로 열게.”
[긴급, 잊힌 히어로의 등장? 서울을 붉게 물들이던 쥐. 떼 몰살!]
[본 기자는 한강 둔치에서 히어로들의 쥐 구축작업을 취재하던 중, 믿기 어려운 광경을 목도했다.
낡은 히어로 코스튬을 입고 후드로 전신을 가린 꼬마를 등에 업은 채 등장할 때만 해도 과거 히어로 활동을 하셨던 할머니가 손주를 데리고 손을 보태러 온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들의 등장으로 잠실 한강 공원 소탕 작전은 단숨에 종결되었다. 자세한 상황은 첨부한 영상을 확인하길 바란다.]
“누르겠습니다.”
“그러게.”
코앞에 손깍지를 끼고 진중한 눈으로 재생되는 영상을 지켜보는 양효민 의원.
구시대 코스튬을 착용하고 동분서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여성. 변조된 음성이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노래가 시작되면 보라색 매직 미사일이 등 뒤에서 솟구쳐 쥐들에게 날아갔고, 한 발에 한 놈씩 죽었다.
양효민은 화면 구석에 전화기를 든 남자를 발견하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저 남자.”
“예?”
“남만혁 아닌가?”
홀로폰을 들여다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소년. 화면을 확대해 살핀 한 비서는 고개를 주억이며.
“맞습니다.”
지금의 양효민을 있게 한 그의 두뇌가 맹렬히 가동했고 킬로그램 단위의 지방을 연소시킨 뒤, 하나의 전략을 내놓았다.
한순간에 수척해진 그의 모습에 재빨리 영양제를 꺼내오는 비서.
“고맙네. 이렇게 하지. 남만혁에게 빚을 갚을 때가 됐다고 하게.”
“알겠습니다.”
한 비서는 양효민의 심모원려를 많이 봐 왔던지라 의심 없이 지시에 따랐다.
남만혁에게 문자를 넣자 바로 전화가 왔고.
-빚? 하얀 은사라 흘려주는 거로 끝났잖아?
“그걸 지금 쓰기엔 아깝지 않나.”
성군은 난세에 어울리지 않는다. 가족이 전쟁에서 죽어가는데 나는 착한 사람이라고 떠들어 봐야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아하, 거래를 하자?
기민한 눈치를 가진 소년이다.
“그렇게 생각해도 좋다. 너희를 고용하마.”
-얼마까지 알아보셨수?
즉답.
1초의 망설임 없이 척추에서 튀어나온 듯한 대답에. 임기응변의 대가인 양효민마저 찰나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대로 주마.”
-후회할 텐데.
“대신 확실히 하도록.”
-나는 계좌에 꽂히는 만큼만 일하는 놈이니 알아서 하쇼.
뚝.
이때 양효민이 느낀 감정은 불쾌와 기이함이었다.
들어온 의뢰가 널렸고 돈에 그리 구애되지 않는 일류 용병이 보통 저런 식이다.
“저 소년이 몇 살이랬지?”
멈춘 화면의 소년을 쳐다보며 묻는 양효민.
“남만혁. 34년생. 17세, 확실합니다.”
영상 속의 몇 가지 단서로 저 둘이 콤비라는 것, 등에 업힌 아이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까지 추측했으나.
소년의 아니면 말고 식의 반응은 예상 밖이다.
분명 이제까지처럼 성공이 확실한 그림을 그렸음에도 묘하게 찜찜한 기분이 드는 양효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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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