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팀 그랜드 마운틴
한편, 온라인 커뮤니티 ‘위 아 더 히어로’에서는 구시대 코스튬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오가고 있었다.
-피스풀마인드가 확실하다!
-아니다, 피스풀마인드보다는 키가 작고 흉부가 크다!
-성희롱이다!
-생물학적, 물리적 사실이다. 의미 부여는 네 핑크 뇌가 한 거다.
-됐고 인터뷰에서 히어로명은 없다고 했으니 우리가 붙여주자.
-음성 변조까지 했다. 정체가 수상하다.
-쥐만 치워주면 나는 전직 빌런이어도 용서하겠다.
-코스튬의 상징을 따서 빅헬멧은?
-쟤는 차단하자.
-동의.
-동의.
-미사일슈터.
-너도 가라.
….
….
….
-할머니인 건 확실하다. 손주를 애지중지하더라. 그런 의미에서 그랜마마는 어떤가.
“켁.”
휴식 중이던 칸탄테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댓글을 실시간으로 구경하던 중, 그랜마마라는 히어로명에 경악하며 재빨리 토의에 참여했다.
-별로야. 아직 젊은 거 같았어. 학생일지도?
-?
-잘 가라.
[당신은 다수의 합의에 따라 대화가 차단되었습니다. 좀 더 신중하게 발언하는 건 어떨까요?]
“아, 안돼!”
얼마 후.
[시대를 초월해 등장한 히어로, 우리는 그녀를 ‘그랜마마’라 부른다.]
└고마워요, 그랜마마! 덕분에 하수구가 뚫렸어요.
└제 아이를 구해주셨어요. 기억은 못 하시겠지만-
└마마, 보헤미안 랩 해주세요.
└인천도 와주세요. 제발.
공식적으로 그녀의 히어로명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으아아!
30분 컷 이후 다시 한번 마운틴 짐에 칸탄테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 * *
너튜브에 새로운 채널이 개설되었다.
[팀 그랜드 마운틴]
등록된 동영상은 하나.
그랜마마로 추정되는 여성의 뒷모습과 그를 촬영하는 가면남.
가면남은 자신을 M이라 칭했고 그랜마마를 돕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이후 채널에 어떻게 하면 그랜마마를 지원할 수 있냐는 문의가 쇄도했고.
남만혁은 하나 보육원 때의 방식 그대로 돈을 끌어모았다. 계좌로 양효민 의원의 돈이 들어오자 이를 아예 공지로 박았다.
[채널 공지]
[모 의원분께서 큰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덕분에 그랜마마가 더 좋은 장비를 사용하고 더 좋은 곳에서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후에도 동네 하나를 쥐에게서 해방할 때마다 비슷한 형태의 공지를 올렸고, 슬쩍 양효민 의원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들을 풀었다.
젊은 정치인, 누리지 않는, 양씨 가문의 큰사람.
점점 힌트를 크게 던지다 보니 두 번째 공지쯤부터 사람들은 의원이 누군지 알아챘고 그를 열렬히 환호했다. 종래에는 유명한 스트리머의 기습 인터뷰도 받았다.
“그랜마마를 처음 발굴할 게 양효민 의원님이라는 소문이 사실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저 한시라도 빨리 킬링랫이 잡히길 바랄 뿐입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기사가 쏟아지자 양효민은 일약 스타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내친김에 시사 예능 프로에도 나가 적당히 떠들며 연일 주가를 올렸고.
이후 그는 두리당 대표가 된다. 다가오는 대선을 드랍하는 대신 인지도를 쌓고 영향력을 넓혀 다음 대선을 노린다는 그의 계획이었다.
“한 비서.”
“예, 대표님.”
“이만하면 됐어. 그들과는 적당히 선을 긋게.”
소수의 히어로와 공적으로 너무 가까이 지내면, 다른 히어로들의 원망을 살 수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양효민은 적당한 시기에 그를 잘라낼 생각이었고, 그게 지금이다.
“…보고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만, 팀 그랜드 마운틴이 먼저 저희 쪽 번호를 전부 수신 차단했습니다.”
“허.”
양효민은 형님이 왜 이 소년의 이름만 나오면 피식대는지, 이제는 알 것도 같았다.
* * *
“야.”
“코노야로!”
이 자식 찾느라 꽤 고생했다.
리쳇과 연동된 마이크로 드론을 제작, 서울 전역을 탐색. 최초 소탕 작전지역 바로 옆인 한강 지하도에서 놈을 찾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딱 그 꼴이다.
내가 입구를 틀어막고 홀로폰을 꺼내자 놈은 코웃음 치며.
“흥, 항복하겠다.”
킬링랫의 정보를 수집한 결과, 본신의 무력은 별 볼 일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발견한 시점에서 이미 승패가 갈린 것과 마찬가지.
그것을 본인도 잘 아는지, 분한 표정을 지을지언정 반항의 의사는 내비치지 않았다.
“사람 죽여놓고, 항복하면 끝이냐?”
내가 소싯적에 다루던 것과 비슷한 형태의 나이프를 꺼내 화려하게 돌리자 놈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나는 일본 국적 보유자다!”
어쩌라고.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답한 나는 더러운 것이 옷에 묻지 않도록 환경미화원 전용 우비를 꺼내 입었다.
스걱.
인간은 의외로 심한 상처보다는 생채기에 더 겁을 먹는다. 이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에 고통과 공포가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으아악!
한 박자 늦은 놈의 비명이 지하도를 울렸으나 나 이외에는 들을 사람이 없다. 사흘 전에 킬링랫을 발견했음에도 굳이 비가 올 때까지 기다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적당히 포를 뜨고 숨을 할딱이는 놈 앞에 두식이를 소환했다.
“흐어, 허윽.”
비명을 지를 기력도 없는 놈이 서서히 죽어가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알리바이를 위해서는 이쯤에서 끝낼 필요가 있다.
일전. 번의 팔과 다리를 씹었을 때. 그의 피가 두식이의 백골을 붉게 물들였었다.
상황이 끝난 뒤에 불러내니, 번의 찢어진 옷조각은 이 사이에 걸려 있음에도 피와 살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에 관해 묻자 두식이가 덜걱거리며 내게 전해온 의사는 꽤 놀라운 것이었다.
먹다.
생전에 족장으로서 기우제를 지낼 때, 살아있는 동물의 고기를 먹는 일이 꽤 빈번했다는 모양이다.
요즘 블랙 위치의 숙련도가 급격히 늘면서 덩달아 두식이의 먹는 양도 늘었다. 어제는 생삼겹살도 씹어 먹더라.
고기.
덜걱.
마침 눈앞에 있잖은가.
“먹어.”
뼈와 뼈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한동안 고막을 긁었고, 나는 마이크로 드론을 동원해 흔적을 철저하게 지운 뒤 우비를 벗고 밖으로 나왔다.
“M! 거기 없었지?”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다가오는 칸탄테. 나는 태연히 가면에 묻은 피를 빗물로 닦아내며 답했다.
“어, 전에 왔을 때랑 똑같네.”
“에휴, 어디로 숨었는지. 다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고생하셨습니다.”
“그랜마마,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또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들어가세요. 허리 조심하시고요. 심식이도 안녕.”
기자들에게 한 컷이라도 같이 찍히기 위해 그랜마마 옆에 찰싹 붙어 있던 중소 길드의 수장들이 아쉬워하며 떠나갔다.
그제야 칸탄테는 의도적으로 굽혔던 허리를 펴며 하소연했다.
“나 언제까지 이래야 해.”
“진짜 히어로가 되고 싶다며.”
“이러다 진짜 할머니 될 거 같으니까 그렇지! 내가 할머니들 말투 연습하는 거 알기나 해?”
“잘하네. 원래 부캐 하나 만들어두면 여러모로 좋아. 아, 네 경우는 그게 본캔가.”
“아니거든!”
이후 우리는 리쳇의 안내를 받아 미행하던 파파라치들을 떨쳐내고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일주일간 평일 밤에 납치하듯 칸탄테를 데리고 나가 전국의 쥐를 잡고 다녔다.
[블러드커스랫, 박멸!]
[대한민국, 또 한 번 위기를 넘다.]
[양 모 정치인을 선두로 한 후원행렬이 그랜마마에게 미친 영향들.]
[킬링랫은 어디? 해외로 도주한 정황 포착.]
[생존자들, 저주 저항력이 생겼어요!]
[손주 삼식이와 그랜마마를 다룬 한국 위인전 발간 초읽기.]
[서울 광화문 광장에 그랜마마 동상 세워지나?]
이번 사건에 연루되고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가 유의미한 수확을 거뒀다.
생존자는 준수한 수준의 저주 저항력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매일같이 TV에 얼굴을 비추는 양효민 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칸탄테는 본인이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얻었다.
그러나 킬링랫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나다.
우선 쥐를 잡는 기계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머신팩토리를 한국에 데려올 수 있었다.
그에게 채널을 통해 받은 후원금 대부분을 넘기는 대신 리쳇이 사용할 수 있는 드론을 다수 제작했고, 이 과정에서 머신팩토리가 리쳇이 가진 설계도에 흥미를 보이기에 20년만 같이 일하자고 꼬셨다.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몇 년 내로 재각성을 시켜주겠다는 조건을 달자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더라.
머신팩토리의 친구이자 당구 요정인 빌리의 외관이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게 상당히 아니꼬웠던 모양.
여기까지만 해도 큰 이득이라 하겠으나 진짜는 따로 있다.
마나.
두 달 전 내 마나량이 100이었다 치면, 현재는 500에 달한다.
마운틴 짐에서 혼자 수련할 때보다 3배나 높은 성장률이었고 이는 삼식이의 매직 미사일 개수 증량과도 이어졌다.
언포스를 사용해 삼식이의 스텟을 살피면.
【이름 : 삼식】
【종 : 임프】
【힘 : 6->8】
【지 : 21->30】
【마 : 37->65】
【잠 : 255】
【특성 : 변이된 매직 미사일(E), 블링크(D)】
【설명 : 혼몽의 마굴 999일 생존, 최근 블러디커스랫을 학살해 기분이 좋다, 인간의 등이 포근하다는 걸 알았다, 삼식이라 불리는 것을 즐긴다.】
마 65.
표적으로 사출할 때 쏟아내는 매직 미사일의 숫자가 기존의 두 배로 늘었다. 그만큼 마나 소모도 커졌으나, 이제는 감당할 수 있는 마나량이 되었다.
내가 삼식이에게 의사를 전하고 지시하자 다연장 로켓포처럼 쏟아져 나가는 매직 미사일들.
보라색 선이 되어 밤하늘로 사라지는 빛줄기.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실질적인 성장이야말로 최고의 보상 아니겠는가.
두두두.
“보급?”
삼식이의 두개골을 수정구처럼 쓰다듬으며 음흉한 마법사 흉내를 내던 중에 드론 소리가 들렸다.
교감의 보급은 내가 컨테이너를 들이고 사제 음식을 밀반입한 뒤로 뜸해지더니 최근에는 오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가자 어느새 점멸해온 퓨즈가 드론이 가져온 상자를 받는다.
“아빠는 오지 마!”
빽- 소리치며 상자를 자기 몸으로 가리고 빠르게 손을 놀려 뜯고는 무언갈 챙겨서 도망가는 퓨즈.
나는 퓨즈가 뒤지느라 바닥으로 떨어진 교감의 쪽지를 집어 들었다.
[동봉된 여성 의류는 퓨즈가 사용할 옷입니다. 만혁 학생이 먼저 봤다면, 못 본 척하세요.]
속옷이었나 보다. 하기야 저 나이엔 다른 사람 옷이랑 같이 세탁하기도 싫어할 때지.
[킬링랫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전문 히어로 못지않은 솜씨더군요. 아카데미 교감으로서 사회에 헌신한 미래의 히어로들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지요.]
블러드커스랫을 사냥하느라 몇 개의 강의를 빠진 적이 있는데, 그 부분을 교감이 해결해주겠다는 내용의 쪽지가 이어졌고 끝에는.
[곧 교장이 돌아온다고 합니다. 만혁 학생만 알고 있길 바랍니다.]
늘 살해 협박을 받는 교장의 위치는 극비 중의 극비. 그걸 내게 말한다는 건….
‘교감도 교장이 사라졌으면 하는 건가!’
…아니겠지.
나는 간식이 들어 있는 상자를 대충 컨테이너 안에 들여두고 스컬즈를 호출했다.
매저드 교수가 내일까지 해골 10명을 채우지 않으면 크게 혼을 내겠다고 엄포를 놨다.
아쉽지만 블랙 위치 놀이는 그만두고 과제를 할 때다.
그 순한 양반이 화를 내봐야 얼마나 무섭겠냐만, 실망시키는 게 좀 그래서 오늘 사식이부터 십일식이까지 한 번에 소환하기로 마음먹었다.
“샤릴리 릴리, 라랄라 랄라. …어?”
마나를 있는 대로 박아 넣어서 그런지 공간을 찢고 튀어나오는 상자의 개수가 평소와는 궤를 달리했다.
세로로 갈라지는 검은 선의 숫자만 수십 개.
헤아려보니 101개.
눈앞에 회전하는 상자들이 멈추고 동시에 뚜껑이 열렸다.
튀어나오는 해골들.
딱딱, 달가각, 들극!
삼식이까지는 마네킹처럼 서 있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얘들은 서로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려는 듯. 각종 포즈를 취한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광경. 나는 나도 모르게 근엄한 자세를 잡은 채 중얼거렸다.
“제 점수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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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