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지명
매저드 교수에게 다수의 해골과 계약한 것에 대해 칭찬과 조언을 듣고 강의실을 나오자 홀로폰에 공지사항이 도착해 있었다.
[공지]
[금일 1학년 마지막 강의는 교장 선생님의 강의로 대체되었습니다.]
[강의 주제는 ‘실습’]
[1학년은 대강당으로 오세요.]
에라이.
* * *
늦은 오후. 대강당.
모두의 침묵과 기대감이 담긴 시선을 끌고 들어온 교장이 단상 중앙에 선다. 말없이 학생들을 둘러보던 그가 씨익 웃고는.
“내 강의는 현장실습이다. 작년에 비해 이르긴 하지만, 너희라면 이런 사소한 문제는 아무렇지 않게 극복할 거라 믿는다. 난이도? F반 수준에 맞췄으니 걱정할 것 없다.”
교장이 날 쳐다보며 말하자 우리 반은 물론이고 다른 반 학생들의 묘한 시선이 내게 꽂힌다.
교장은 내가 반응하기 전까진 아무 말도 안 할 기색인지라 하는 수 없이 퉁명스레 물었다.
“실습은 언제부터요?”
“지금!”
대강당 단상 좌우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차례차례 들어와 각각의 머리 위로 홀로그램 폰트를 큼지막하게 띄운다.
[드릴맨K]
[닥터 웨인]
[부트호즈]
…
…
…
[키드 워리어]
[테크니컬 헤드샷]
히어로 사무소?
이 노인네. 입학 4개월 차인 뉴비들을 데리고 진심으로 현장실습을 할 생각이다.
“단, 이 명단에 적힌 녀석들은 내가 맡으마.”
[엔들리스]
교장의 머리 위로 뜨는 한 줄. 그리고 그가 말한 명단 최상단에는 보란 듯이 내 이름이 박혀 있었다.
에이, X.
“C반의 디소클로프 아르고비치, 특성은 다중 부메랑 맞습니까?”
“넵!”
이름만 대면 아는 사무소에서 나온 스카우트들이 1분기 훈련을 마친 히어로 지망생들의 능력을 평가하기 시작했고.
짧은 심사가 끝난 후 A반은 모든 스카우트의 지명을 받았다.
그들끼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는지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한 1학년은 없었다.
특히 F반은 C반 이상의 평균 지명도가 나와 특성 체육 담당인 카우 교수가 주위 교수들에게 찬사를 듣기도 했다.
한 사무소당 평균 4명을 데려갔으며 이는 교장 또한 다르지 않았다.
퀸, 스위프트, 마가렛. 그리고 나.
교장의 리즈 시절의 히어로명이었다는 엔들리스 팀은 그렇게 인원이 구성됐다.
“각 구역으로 이동하지.”
“엔들리스 님이 그놈을 맡으시는 겁니까?”
드릴맨K 사무소 직원이 묻자 교장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만약의 상황을 생각하면 그게 낫지 않겠나.”
“확실히…, 그놈의 특성이 특수하긴 하지요. 알겠습니다.”
저들의 대화를 듣다 문득 드는 생각인데, 교장이 직접 나설 정도의 일이 2051년에 있었던가?
“정숙.”
교장이 펜마이크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단상 뒤로 하늘에서 찍은 섬 사진이 나타난다.
[휘도(諱島) 교도소]
저긴 무인도에 위치한 교도소로 범죄를 저지른 각성자를 가두는 곳이다. 내가 한때 신세를 졌던 곳이기도 하고.
“왜 이걸 보여주나 싶겠지? 이유는 별거 없다. 얼마 전에 잡힌 이놈.”
[이름 : 충꿔이앙]
[나이 : 49세]
[특성 : 아스팔트 조작]
[죄목 : 납치, 살해, 폭력 외 33개]
이름 옆에 사진이 붙어 있는데, 언젠가 한 번 본 듯한 낯짝이다.
언제였지.
기억이 날락 말락 하는 거 보면 옛날이었던 거 같은데….
아!
그놈이다. 하나 보육원에 빨대 꽂은 조폭 놈들의 대장. 이야, 저걸 벌써 잡았네. 경찰들도 고생했겠어.
“탈출했다.”
뭐?
“헬기장 바닥이 아스팔트였다더군. 결과적으로 놈은 교도소 시설 일부를 부숴 교도관들의 시선을 돌린 뒤 바다로 뛰어들었다.”
교장이 허공에 손가락을 휘젓자 사진이 바뀐다.
교도소 벽면 한쪽이 두부 잘라 놓은 것처럼 옆으로 넘어져 있다.
“이로 인해 다 동에 있던 빌런 7명도 탈출, 지금은 수영 중이거나 어선을 나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위프트가 손을 든다.
“해안 경비대가 바다에 빠진 죄수들을 포획하면 될 것 같습니다.”
교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다.”
“왜요.”
나도 모르게 척수반사 급으로 반문했고. 단순한 답이 돌아왔다.
“너희 실습시키려고.”
정부의 행사를 애들 실습 때문에 막는 교장의 권력이라.
부럽구만.
“해서, 내 팀은 A랭크 빌런 ‘스턴코인’을 잡으러 간다.”
흐름상 충꿔이앙을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나만 한 게 아니었는지 사무소 스카우트들도 교장을 쳐다본다.
“음? 아, 충꿔이앙 말인가? 바다에 아스팔트가 어딨나. 그런 건 자네들끼리 알아서 주워 먹게.”
브리핑이 끝나고 사무소가 정해진 학생은 각자의 스카우터를 따라 흩어졌다.
우리는 교장의 헬기를 타고 제주도로 이동.
말이 헬기지 소형 벙커나 다름없는 내부의 모습에 놀라는 것도 잠시.
교장의 입에서 튀어나온 갑작스러운 제안에 우리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턴코인을 납치해야 하네.”
이어지는 침묵.
“이유는요.”
내가 정적을 깨고 묻자.
“너희 이름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을 거라 약속하지. 물론, 공짜는 아니야.”
교장은 옆에 놓여 있던 배낭을 하나 열었고 안에는 1kg짜리 금괴 열 개가 들어 있었다.
그런 가방이 네 개.
리쳇 소환에 실패했다면 혹했겠으나 현 상황에서 돈은 그리 급하지 않다.
해서 뚱한 눈으로 쳐다보니.
“어허, 이게 다가 아닐세. 내 강의는 무조건 A학점을-”
오?
“엔들리스. 우리는 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닙니다. 스턴코인을 납치하는 목적을 말씀해주십시오.”
스위프트가 마치 나를 만류하듯. 내 팔을 누르며 일어나 교장에게 호소한다.
왜 저래. 나는 당장 오케이인데. 그 바쁜 교장이 짬 내서 하는 일이면 다 이유가 있겠지.
“허허, 자네는 벌써 히어로 태가 나는구먼. 그래, 이유라…. 자네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대단한 이유는 아니야. 스턴코인은 명칭 그대로 상대를 기절시키는 동전을 다루지. 사용하기에 따라 굉장히 치명적인 능력이 될 수도 있고.”
“인정합니다. 그러면 더더욱 교도소에 가둬 두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가정을 해보세. 자네가 언제고 히어로가 되어 적진에 돌입했을 때. 상대를 기절시키는 아군이 있다면 작전 수행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나?”
“…풀려난 빌런의 재범률은 7할 이상입니다. 절대 교화되지 않을 겁니다.”
“세상에 절대란 없네.”
이번만큼은 교장 편이다.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꾸준한 암시와 물리력을 동원하면 대개 고쳐지더라고.
스위프트는 인정할 수 없었는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다수결로 정하지. 그레이스 멜론, 마가렛 예프소비치.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저는….”
“전 하겠습니다.”
망설이는 퀸과 달리 마가렛은 선뜻 긍정하고 나섰다.
“내가 말하기도 뭣하네만, 이유를 들을 수 있겠나?”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지금과 같은 각성자 포화 시대에 범죄자가 올바르게 교화됐다는 전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듯하네.
“훌륭한 생각일세. 역시 장학생다워! 자네는?”
퀸은 나를 힐끔 보더니.
“하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지금의 행동이 틀렸다면, 반드시 바로잡겠어요.”
“그게 이 노인네라 해도?”
“네.”
“끌끌, 좋구먼. 스위프트 자네는?”
그는 눈을 감더니.
“…남만혁이 하면 하겠습니다.”
“허허, 다들 고맙네.”
놀랍게도.
교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의중은 묻지 않았다.
두두두.
헬기는 제주도 서귀포에 도착, 대기하던 차량에 탑승. 하월 해안도로를 따라 이동 중 샛길로 빠져 해변에 진입했다.
“이쪽으로 몰아넣게. 그래. 나머지는 내가 책임지지.”
전화 한 통으로 도로를 통제하고 해안 경비대를 지휘한 교장.
“준비하게.”
해안에서 올라오는 줄무늬 죄수복의 사내. 그는 헤드라이트를 정면으로 받았음에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걸어왔다.
“너희가 전부냐?”
“오냐.”
“꼬맹이, 늙은이. 조합 재밌네.”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상했던 건지. 스턴코인의 언사에는 막힘이 없었다.
“마가렛, 자네가 상대하게나.”
즉시 거대화로 몸집을 키운 마가렛이 모래를 박차고 도약하자 스턴코인은 옆으로 굴렀다.
마가렛은 자신의 돌진에 대응하는 경우의 수가 삼중택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어디로 피하든 재도약할 준비를 갖춘 상태였고 스턴코인을 쫓아 몸을 비트는 것과 동시에.
풀썩.
“저게 괜찮단 말이지.”
턱을 쓸며 나지막이 말하는 교장.
마가렛은 등에 노란색 동전이 꽂힌 채 서서 기절했다.
“참. 저놈 꼴은 저래도 영역을 만들 줄 아는 마법사다. 주의해라.”
일찍도 알려준다.
영역.
일정 공간을 자신의 마나로 점령하는 행위. 일반적으로 영역에 진입한 상대는 시전자의 마나 총량에 비례해 움직임이 느려진다.
반면 시전자는 마법의 발현 속도와 최대 도달 거리가 늘어나고 개인의 역량에 따라 영역에 특별한 힘이 깃들기도 한다.
스턴코인은 확실히 마가렛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 수 있을 정도로 영역화를 구축했다.
‘저 안에서 자유자재로 동전을 생성할 수 있는 건가, 까다롭네.’
영역으로 느리게 만들고 특성으로 기절시킨다.
사기 조합 아닌가.
“…죽이진 않았다.”
교장의 눈치를 보는 스턴코인.
“현명하구먼. 여기 남은 세 사람을 모두 제압하면 그냥 보내주지.”
“쉽군.”
“스위프트, 자네 차례일세.”
자연체 상태로 들어간 스위프트가 날이 달린 쇠구슬을 바람에 날려 보낸다.
속도가 빠르기는 한데, 저거로는 안 되지.
급소로 오는 구슬만 막거나 쳐내며 달리는 스턴코인. 스위프트가 거리를 벌리려 했으나 이미 사방은 노란 동전들로 가득했다.
포기할 법도 하건만 하늘로의 돌파를 선택한 스위프트. 그러나 상승하던 중 수십 개의 노란 동전에 맞아 모래사장에 처박혔다.
“다음.”
저거 능력이 좀 치사한데.
교장이 말하기 전에 주먹을 맞부딪치며 공중으로 떠오르는 퀸.
“유니버스는 안돼.”
“안, 안 해!”
내가 녀석의 귀에다 대고 말하자 놀라며 버럭하는 퀸.
소문에 의하면 월말 평가전 당시 옥상을 뭉개는 바람에 교감에게 불려 가 꽤 따끔하게 혼났다고 들었다.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토너먼트 때보다는 훨씬 넓은 공간이었기에 여유롭게 가속을 거듭했으나 영역에 진입하는 순간 이마에 노란 동전을 맞고 그대로 끝.
이번 전투는 집중력의 차이가 승부를 갈랐다.
스턴코인은 마지막까지 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으나 가속에 심취한 녀석은 정확하게 상대를 노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는 고개까지 돌렸다.
저 고개 돌리는 버릇도 고쳐야 하는데. 진짜 갈 길이 태산이다.
“너 하나만 남았군.”
스턴코인은 나를 가리키며 검지를 까닥였고. 이에 삼식이를 떠올리며 나서려 했으나.
“아직이네.”
교장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마가렛이 힘겹게 일어나고 있었다.
얼굴을 구기는 스턴코인.
“약속을 지키지 않을 셈인가.”
“학생 전원을 쓰러트리면, 이라고 했네. 이 친구는 아직 쓰러지지 않았잖나.”
혀를 찬 스턴코인은 다시 마가렛을 상대해야 했고 자신이 왜 패배하였는지 인지한 마가렛은 철저히 스턴코인의 영역 밖에서 틈을 노렸다.
“마가렛. 네 육감을 믿어라.”
겨우겨우 피하길래 슬쩍 조언을 던졌더니. 이해했는지 점차 여유를 찾는다.
곧 스위프트와 퀸도 깨어나 각자의 방식대로 노란 동전을 피해 스턴코인을 공격하기 시작.
그럼에도 승기를 잃지 않는 스턴코인. 움직이는 폼이 예사롭지 않은 게 전문적인 훈련까지 받은 모양.
어느 순간부터는 둘이 상대하는 동안 한 명은 휴식하는 포메이션까지 자기들끼리 짜서 싸운다.
교장은 그걸 흐뭇하게 바라보는 중이고.
그러나 실전에서 갈고 닦은 스턴코인의 예리한 일격들은 학생이 쉽게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애들의 공격 패턴에 익숙해진 스턴코인은 허공에 몇 개의 동전을 은밀히 박아 놓고 애들을 그곳에 유도하는 것으로 전투는 허무하게 끝났다.
거친 호흡을 다스리며 발치에 뒹구는 소년 소녀를 내려다본 그가 교장에게로 눈을 돌린다.
툭.
내 등을 치는 손.
“자네 차례일세, 봐주지 말게. 놓치면 곤란해.”
“내가 곤란한 건 아니지 않나?”
“클클, 요 녀석이. 알았다. 하나 보육원을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해주마.”
…건드리려던 놈이 있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뭐 그건 나중에 조사해보고.
“학점이랑 금괴도 부탁합시다.”
“오냐.”
빌런으로 살다 보면 저렇게 인간 자체의 퍼포먼스가 좋으면서 특성까지 사기인 히어로에게 심심찮게 쫓긴다.
그럼 이걸 어떻게 해결하느냐.
“뭣?”
“…허.”
더 빨리 튀면 된다.
헤드라이트로 해변을 비추고 있는 차에 올라탔다.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던 스턴코인이 급히 달린다.
마법사 놈이 뛰어봤자 거기서 거기지.
나는 구겨진 스턴코인의 얼굴을 백미러로 감상하며 풀악셀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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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