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스턴코인 (1)
제로백을 2초 만에 돌파하는 교장의 차.
사람의 다리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기에 스턴코인의 모습은 순식간에 멀어졌다.
놈의 공략법은 명확하다. 영역 밖에서의 공격. 즉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삼식이의 매직 미사일을 난사하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그런데도 번거롭게 차를 끌고 나온 이유는 교장의 눈을 피하기 위함이다.
‘교장이 엔들리스였을 줄이야.’
그와 함께 있는 동안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고생했다.
데드레드스컬의 책 후반부에는 암호로 된 일기가 적혀 있는데, 리쳇이 해독한 바로는 이런 내용이다.
-히어로 엔들리스가 내게 투자하겠다며 파티 초대장을 보냈다. 부담되는 자리지만 연구비를 생각하면 가야겠지.
-큰돈을 받았다. 귀한 소재를 구해 배열식을 완성했다. 소식을 들었는지 엔들리스가 연구 결과를 요구해왔다.
-상자의 형태로 압축 가공한 양방향 심계 포탈을 그의 저택으로 보냈다.
-엔들리스가 저택에서 실종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심계에 가니 그는 왕 살해범이 되어 있었다.
-심계의 왕들은 반드시 보복할 것이다. 어쩌면 고대에 발생했다는 언데드 웨이브가 재림할지도.
-내 책임이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이번 연구 기록을 모두 폐기했다. 세상에 양방향 심계 포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엔들리스가 가진 것만 빼면.
-그에게 다시는 사용하지 말라 경고했다. 그는 다른 사람과 대화하며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 건가. 답답하다.
-두렵다. 언젠가 반드시 닥칠 그 시련을. 내가 이겨낼 수 있을까.
이 일기가 사실이라면, 40년 전 멕시코에서 발생한 언데드 웨이브는 데드레드스컬이 아니라 엔들리스가 원인이라는 말이 된다.
당시 공식적으로 집계된 사망자는 8만 명.
아무리 많은 공적을 쌓은 히어로라고 해도 이 죄를 감당할 순 없다.
실제로 사건 이후, 엔들리스는 침묵했다.
당시 기록에는 데드레드스컬이 ‘이 재해는 내 책임이다.’라고 짧게 발언한 뒤 언데드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고 한다.
역사가 살아남은 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그는 자신의 언데드로 심계에서 올라온 언데드를 상대한 것이리라.
데드레드스컬은 누구와 다르게 최전선에서 목숨을 불살랐다.
히어로.
불가능과 악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는 이를. 우리는 히어로라 부르지 않던가.
당시 데드레드스컬은 분명 히어로였다.
반면 진실에서 도망치고 자신의 죄를 은폐하는 이는….
“쓰레기.”
* * *
해안도로를 따라 10km 정도 이동한 뒤 갓길 나무 사이에 차를 대고 밖으로 나와 스턴코인을 기다렸다.
‘슬슬 올 때 되지 않았나?’
홀로폰을 켜 시계를 확인하려는 찰나.
텅!
“잡았다.”
헐떡이는 스턴코인이 나무 뒤에서 나타났다. 저 숲을 가로질러 온 건가.
돌연 대기가 무거워졌고 내 콧잔등 바로 위에 생겨나는 노란 동전. 피하기에는 늦었다.
‘일식아.’
덜걱
일식이의 두개골이 나타나 내게 닿기 직전인 코인을 어금니로 물고는 옆으로 뱉어낸다.
“뭣, 언데드?”
놈이 저렇게 당황하는 이유도 엔들리스가 네크로학파의 이미지를 조져놨기 때문이겠지.
아무튼 나는 일식이가 놈을 상대하는 동안 교장의 차에 있을지 모르는 블랙박스를 여유롭게 처리한 다음 말했다.
“포기해. 저 대머리가 약속을 지킬 사람으로 보이냐.”
“지금 와서 그 약속은 중요하지 않다.”
“그럼?”
“여기에 차가 있잖나.”
아하. 타고 도망치겠다?
“여기 제주야. 섬에서 뭐 어쩌려고.”
“내 계획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지. 살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닥치고 꺼져.”
나는 저런 종류의 인간을 많이 봤다. 자신의 계획이 성공할 거라 맹신하는 멍청이들. 죽음 직전에서야 본인이 틀렸다는 걸 깨닫더라.
퀸이나 마가렛이 바람처럼 단순한 설득으로는 갱생이 어려운 종류의 인간.
‘상관없나. 내가 할 것도 아니고.’
“흐합!”
충격을 충분히 흡수한 일식이가 결정적인 순간 간장 치기를 먹이려는 때에 기합을 내지르는 스턴코인.
그러자 차를 비롯해 나와 일식이가 뒤로 주르륵 밀려난다.
순간 매저드의 강의에서 들은 지식들이 떠올랐고 이게 마법사가 영역을 한계까지 전개하면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다르다.’
이전과는 달리 영역 안으로 손을 넣으니 팔을 수평으로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무게가 느껴졌다.
‘이거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이렇게 하는 건가? 칫.’
영역 전개를 시도하기 전에 대량의 코인이 사방에서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날아왔다.
“두식아.”
덜걱
등장과 동시에 나를 감싸 안고 대신 코인을 맞는 두식이. 확실히 일식이도 그렇고 마비에 걸리지 않는다. 언데드라 놀란 이유가 마냥 내가 네크로학파라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천적.’
두식이가 소환됨과 동시에 블랙 팽이 나타나 몸으로 나를 보호한 덕에 코인이 볼과 귀, 어깨 바로 옆을 지날지언정 내게 단 하나의 정타도 들어오지 않았다.
충격에 취약한 일반 해골들은 뼛가루가 되어 역소환되었으나 두식이는 아무렇지 않게 코인들을 버텨냈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뼈를 걷어차 일식이가 공격할 수 있도록 놈을 견제하기까지 한다.
“후웁, 후우.”
숨을 고르는 스턴코인. 아무리 사기 특성과 마법의 조합이라도 체력에는 한계가 있다.
빌런의 생존법 기초. 버티면 반드시 틈이 생긴다. 이번에도 역시 정답이었음을 재확인하며 나는 우리 팀 최고의 공격수를 불렀다.
“네 차례다.”
돌곡?
“곧 동전이 날아올 텐데, 그거 다 격추하고 저놈 털어버려.”
돌곡!
삼식이는 그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놈에게 매직 미사일을 날렸고 처음에는 실드 마법으로 대충 막으며 체력을 회복하던 놈이 화살의 개수가 삽시간에 불어나자 기겁하며 코인을 생성한다.
나타난 동전들은 직선운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사일에 맞아 궤도가 틀어지거나 소멸.
“너도 마법사였나?”
놈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내 뒤에 숨은 삼식이를 못 본 모양.
“아직 마법사라고 하긴 좀 그렇고. 좋은 스승 밑에서 배워가는 단계지.”
“흐.”
지름 3m 남짓하던 놈의 영역이 4차선 도로를 덮을 정도로 커진다.
“나도 마법사였다. 그 빌어먹을 새끼들이 이 X랄을 해놓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는 덥수룩한 머리칼을 들어 올리며 이마의 상처를 보인다. 중앙의 화상 자국과 칼로 난도질당한 듯한 흉터들.
그러고는 대뜸 자기 과거사를 읊기 시작했다. 심한 따돌림과 폭력에 자살하려다 문득, 죽는 것보다는 죽이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하고 특전사로 입대한다.
제대 후 가해자와 그 가족을 크레모아로 터트려버린 살인자의 이야기.
자기가 선량한 줄 알았던 인간이 본성을 따라 빌런이 되는 흔한 과정이어서 그다지 감흥은 없었다.
“네놈 같은 엘리트는 절대 이해할 수 없겠지!”
저렇게 극단적으로 자기 정당화를 하는 놈은 한 마디로 이성을 날려버릴 수 있다.
눈썹 양 끝을 8시 20분으로 만든 뒤.
“불쌍한 놈.”
―!
대략 2백 개의 동전이 동시 생성되었고 스턴코인이 빠른 속도로 주문을 외운다.
그의 입이 다물어졌을 때. 노란 동전은 회색으로 변했으며 거기서 차갑고 눅눅한 마나가 느껴졌다.
‘저주.’
안 맞으면 될 일이다. 나는 스턴코인이 떠드는 동안 이미 만전을 갖춘 상태.
동전을 요격할 천 발 남짓한 매직 미사일을 장전하고 좀 전부터 감이 잡힐 듯 말 듯하던 영역을 작게나마 형성하는 데 성공.
“죽어!”
쏟아지는 동전과 이를 격추하는 미사일. 생성과 파괴의 반복. 놈도 결국 이 소모전을 버티는 사람이 승자라는 걸 깨달았는지 주문을 멈추고 동전 생성에 전력을 기울인다.
신비롭게도.
내가 형성한 지름 2m 남짓한 정육면체 안으로는 동전이 생성되지 않았고 그 덕에 운신에 여유가 생겼다.
“삼식아, 두식아. 믿는다.”
돌곡.
무엇을 하려는지 의사 교류로 알아챈 둘이 안광을 번뜩인다.
나는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갔다. 영역 내외의 마나를 관망하며 최대한 빨아들였고 이는 삼식이의 매직 미사일 발현에 마르지 않는 동력이 되었다.
돌곡?
근래 계약자의 마나 최대량이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은 삼식은 매직 미사일의 수를 조절하며 사용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마치 강이 범람하는 듯한 마나량에 환호하며 과거. 미궁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마법을 가감 없이 뽐냈다.
이때 하늘을 수 놓은 매직 미사일의 숫자. 약 1만.
마나 고갈로 사색이 된 계약자를 확인한 삼식은 여기서 만족하기로 하고 입을 벌린 채 침묵하는 스턴코인에게 순차적으로 날려 보냈다.
“말도 안―”
고작 백여 발도 버티지 못하고 기절해버린 적에게 실망한 삼식은 아까운 미사일들을 한참 바라보다 일전, 야밤에 계약자와 함께 매직 미사일을 쏘던 때를 추억하며 밤하늘 저편으로 남은 미사일 전부 뿌렸다.
돌돌곡~
지극히 흥미 본위적인 삼식의 이 미사일 쇼는 다른 전장에 극적인 변화를 주게 된다.
* * *
“만나서 반갑다!”
근 10년간 국내 랭킹 10위 안에 꾸준히 드는 프로 히어로 드릴맨K는 팀의 스카우트가 영입해온 히어로 유망주들의 눈을 일일이 마주치며 악수를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드릴맨K 팀의 스카우트가 첫 번째로 데려온 학생은 F반의 도수정. 지정한 물체를 장기간 유리하는 능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우리가 잡아야 할 빌런이 조폭 두목이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두 번째로 합류한 인물은 트레이시 그웬.
본인에게 유리한 단서를 식별하는 특성이 빌런 탐색에 도움이 될 거라는 스카우트의 판단으로 영입됐다.
“걱정하지 마라. 나와 내 사이드킥들이 있는 한 너희가 다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에이, 그건 모르죠.”
“케롤라인!”
“왜 또.”
“어머니가 아카데미 밖에서는 입 다물고 있으라고 했잖아. 이른다?”
“아, 씨…. 알았어.”
빙판과 파도를 구현하는 남매가 해상전이 예상되는 전투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건 상식이다.
다른 사무소 스카우트들도 스위프트보단 이 남매를 영입하고자 적극 어필 했었으나 둘은 이왕이면 보스를 잡는 게 낫다는 이유로 드릴맨K 사무소를 선택했다.
“드릴맨K, 제 동생이 무례해서 죄송합니다.”
“괜찮다!”
“누가 동생이야!”
얼마 후.
교장의 말처럼 바다에서 헤엄치는 충꿔이앙을 발견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네놈들 따위에게 내가 잡힐성싶으냐!”
해저의 천연 아스팔트 원료를 끌어 올려 돌창을 만든 충꿔이앙이 드릴맨K 팀이 타고 있던 헬기를 부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꼬리날개를 잃고 회전하던 헬기가 바다에 부닥치기 직전, 도수정이 헬기 전체를 잠깐 유리시킴으로써 폭발과 충격을 막았다.
어푸, 푸허업!
“도슨! 도넛 빙판 깔아!”
“어, 어어?”
빡!
“빙판!”
허둥대는 도슨의 뒤통수를 케롤라인이 후려치자 곧장 주변 수면이 얼어붙었다.
발 디딜 곳이 생기니 학생들은 물론이고 사무소 사이드킥들도 빙판에 의지하며, 서로의 상태를 점검했다.
“수정아, 괜찮아?”
“잠, 잠깐 쉬면 돼.”
도수정은 10톤이 넘는 수송 헬기를 유리시킨 대가로 체력이 고갈되어 빙판 위에 늘어졌다.
의료팀이 급히 상태를 점검하고 큰 문제는 없다는 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안도했다.
“…그런데 대장님은?”
“헛, 저기!”
바다에서 솟구치는 검은 돌. 끝이 송곳처럼 뾰족하고 겉은 무수한 가시가 달려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모양새였다.
눈 깜짝할 사이 그런 게 너덧 개씩 솟아나는 광경을 보며 사이드킥 중 누군가가 무심결에 중얼거린다.
“저런 놈을 어떻게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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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