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스턴코인 (2)
“야, 신입. 말조심해라.”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건.”
“우리 대장님이 보통 히어로냐. 저딴 건 드릴로 뚫어버리면 그만이야. 단단해 봤자 아스팔트지.”
그의 말대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다수의 돌창을 갈아내고 있던 드릴맨K는 멀지 않은 곳에서 아스팔트를 조작 중인 충꿔이앙을 눈에 담았다.
‘이번 공세만 막고 단번에 놈을 친다.’
사이드킥들이 학생들을 잘 보호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
타이밍을 재던 드릴맨K가 하반신을 드릴로 변형해 어뢰처럼 쏘아진 순간.
“그럴 줄 알았다!”
충꿔이앙에게 빈틈이 생긴 이유 자체가 돌창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쩌정
으아악!
빙판이 깨지며 솟구친 검은 돌 위로 사람이 장난감처럼 하늘을 날았다. 학생들이 추락하는 광경이 드릴맨K의 눈에 각인된다.
안돼!
물속에서 비명처럼 고함을 내지르며 저들을 받아내기 위해 급히 방향을 선회하려는 때에.
“이얏-호!”
어느새 서핑보드를 꺼낸 케롤라인이 하늘을 가릴듯한 파도를 타며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유려하게 이동하며 도수정과 트레이시 그웬을 받아 조각난 빙판 위에 안착하는 케롤라인.
그런 학생들을 노리고 재차 올라오는 돌창은 정신을 차린 사이드킥들이 처리.
학생과 사이드킥의 활약에 안심한 드릴맨K는 전력을 주먹에 담아 앞으로 내뻗었다.
뻑!
물에 잠겨있던 충꿔이앙의 몸이 회전하며 하늘로 떠오른다.
실신.
눈에 흰자만 남은 충꿔이앙이 머리부터 낙하하는 것을 보고 일단 살려는 둬야겠다는 생각에 그를 받기 위해 다가가는 드릴맨K.
“안 돼요!”
트레이시 그웬이 직감에 따라 그리 소리쳤을 때. 충꿔이앙의 입이 비틀렸다.
“같이 죽자.”
기절한 듯 보였던 놈은 마지막 힘을 짜내 특성을 폭주시켰고 이는 근방의 모든 천연 아스팔트 원료를 자극했다.
셀 수 없는 숫자의 돌창이 제각각의 형태로 수면을 향해 질주했고 이를 잠수해서 확인한 드릴맨K.
‘제기랄.’
자연재해와도 같은 광경에 자신의 힘으로 막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그는 최소한 아이들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각오를 다잡았다.
‘빙판을 들고 하체를 포기한다.’
그리고 돌창 위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중간까지는 그의 계획대로 되었다. 가장 빨리 올라오는 돌창을 발로 잡아챈 건 천운이었다.
끄읍-!
사방에서 밀려드는 송곳을 팔과 머리만 제외하고 전신을 드릴로 변형함으로써 갈아내던 드릴맨K는 어느 순간 공격이 멎었음을 깨닫고 주위를 살폈다.
“여기 먼저!”
“간닷!”
“조심해!”
“우으윽.”
트레이시 그웬의 예지에 가까운 위기 감지로 돌창이 날아들 곳을 가리키면 칠링 남매의 얼음과 물이 그곳을 막는다.
그것마저 돌파하는 강력한 돌창은 막 기력을 회복한 도수정이 단절시킴으로써 해결.
학생들의 분전에 감화된 사이드킥들도 평소 이상의 능력을 발휘했고 이로 인해 돌창들 위로 빙판을 놓을 여유가 생겼다.
“잘했다!”
드릴맨K도 발 이외에는 큰 부상 없이 합류하는 데 성공. 이렇게 위기를 극복하는가 싶었으나.
“대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팀닥터가 돌창에 돋아난 가시들이 점점 자라나는 것을 보고 급히 보고하자 트레이시 그웬이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가 이내 편안하게 바뀐다.
드릴맨K 팀이 돌창으로 빽빽한 아래를 내려다보며 어찌할지 논의하는 사이 케롤라인이 트레이시에게 물었다.
“어때?”
“불안하지만 걱정되지는 않는 느낌?”
“그게 뭐야.”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어.”
“언제?”
트레이시가 하늘 저편을 올려다본다.
“산에 불났을 때.”
“아!”
트레이시의 눈에 비치는 빛줄기들을 본 케롤라인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노을이 지는 하늘 저편으로 보라색 유성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또 적이라고…?”
신입 사이드킥의 울 것 같은 목소리에 도수정과 그웬이 동시에 답한다.
“아뇨.”
월말마다 치러지는 평가전에서 상대가 버젓이 앞에 있음에도 작은 언데드 하나를 소환해놓고 삼겹살을 구워 먹던 광경은. F반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상대였던 곽재우는 그의 작태에 분노하여 조상님을 부르짖으며 달려들었으나 경기장 전체 가득 메웠던 저것에 의해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눈가를 훔쳤었다.
“아!”
수천 개의 매직 미사일이 포물선을 그리며 쏟아져 돌창들을 비스듬히 깎아낸다.
드릴맨K는 지금이 기회임을 알아차리고 돌창이 완전히 부서지기 전에 빙판을 경사면을 따라 밀었다.
으아아아!
목숨을 건 미끄럼틀을 완주한 학생과 사이드킥은 환호를 터트렸고 드릴맨K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한 명씩 끌어안으며 사과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
“모두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이후 긴급 구조 요청에 호출된 헬기들이 도착. 트레이시 그웬의 도움을 받아 충꿔이앙의 시체를 수거한 뒤 복귀하는 것으로 휘도 교도소 탈옥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 * *
[탈옥범, 전원 재수감!]
[서히아 1학년의 현장 실습, 우려를 꺾고 성과를 내다!]
[이번 작전 중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충꿔이앙의 아스팔트 스피어가 꼽혀.]
[끝내 사망한 아스팔트, 원인은 특성 폭주.]
[스턴코인 실종? 사라진 빌런은 어디에.]
본래 이튿날부터 다시 교장의 강의가 진행되었어야 했으나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로 인해 기존 커리큘럼을 따르는 것으로 정해졌다.
당분간 교장은 좀 안 봤으면 싶었던 나로선 잘된 일이다.
흐압!
찻!
‘열심히 하네.’
F반 애들은 실전을 경험한 덕인지 이전보다 훨씬 진지한 태도로 강의에 임하고 있다. 특히 충꿔이앙을 상대했던 녀석들이 유독 더 두드러진다.
“이렇게?”
“지금은 힘이 너무 들어갔다.”
강의가 끝나면 기숙사로 내빼기 바빴던 그 트레이시 그웬이 소구경에게 권총술을 배우고.
“악!”
“소리가 그것밖에 안 나와! 조상님 뵙기 부끄럽지 않나!”
도수정이 곽재우에게 PT를 받는다. 듣자 하니 실습 때 헬기를 통째로 단절했단다.
손에 닿는 면적만 단절시킬 수 있다며 징징댄 게 엊그제 같은데 헬기라니. 사람이나 장비까지 포함하면 톤 단위였을 거다.
‘쟤도 은근히 실전에 강한 타입이란 말이지.’
좀 더 능숙해지면 어지간한 도시는 한순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블린의 투척 공격을 저 녀석 혼자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곧 끝난다.
훈련실에 모여 있던 애들이 흩어졌고 나 역시 36개 학파에 대하여 강의를 듣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왔다.
드륵
“자네 왔는가.”
둘밖에 없는 책상 중 하나에 앉아 두꺼운 책을 보던 매저드 교수가 안경을 밀어 올린다.
“예, 스승님.”
“앉게. 오늘은 할 이야기가 많아.”
책을 내려두고 좁은 결계를 치는 매저드 교수.
“교장과 같이 움직였다지?”
“그렇게 됐습니다.”
“어땠나?”
“별로였죠.”
“자세히 말해보게.”
“자세히랄 것도 없습니다. 스턴코인을 납치하자는 제안을 하길래. 오케이 했고. 그렇게 됐죠.”
“그것 말고 다른 일은?”
데드레드스컬이 죽은 이유가 교장 때문이라 추측하고 있으나 물증이 없어 증명이 불가하다.
혹 증거가 있다고 해도 이 사실을 내 입으로 말해선 안 된다. 매저드 교수와 교장이 척을 졌을 때. 그 원흉으로 내가 지목되면 고래 싸움에 새우가 낀 꼴 나지 않겠나.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그 노인네 수상쩍은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허허, 그렇지. 고 영악한 녀석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골치를 앓았어. …자네가 그렇다니 이 이야기는 되었네.”
“저, 그런데 골드우드는 어디 갔답니까?”
그놈은 매저드 교수의 강의라면 혼을 팔아서라도 올 놈인데.
“본가에 갔다네.”
“왜요?”
“음, 골드우드 가문은 15세 가 넘으면 매년 시험을 치른다네. 봄이 끝날 무렵에 호출이 있었으나 내가 여름방학으로 미뤘지.”
기본 정도는 가르치고 싶었던 걸까. 그런데 여름방학이 되려면 좀 남았지 않나.
내 의문을 읽었는지 매저드가 인자하게 웃으며 말을 잇는다.
“내가 설득해서 일찍 보냈네. 뜬금없는 사건은 일시적이나마 주동자가 우위를 점하기 마련 아니겠나.”
리쳇을 통해 알아보니 안토니오는 골드우드 가문에서 내쳐진 인간이다. 가문 내에 배치된 컴퓨터에 그의 이름이 입력된 수는 0.
그런 놈이 갑자기 나타나 자진해서 시험을 치르겠다고 하면, 무슨 자신감인지 궁금해서라도 시선이 가게 되어 있다.
아마, 시험은 성공적으로 치를 거다. 그러니 매저드가 예정보다 이르게 보냈겠지. 또 나한테, 엄밀히 말하면 식이 형제들에게 얻어터지면서 배운 게 있었을 테니까.
놀라운 건 매저드 교수의 교육 방식이다. 이건 안토니오 골드우드가 진정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 꿰뚫어 본 게 아닌 이상 깔아 둘 수 없는 레일이다.
“현명하시네요.”
“허허, 자네도 눈치챘나 보군. 그럼 오늘 강의는 골드우드 가문의 소환마법을 교보재로 함세.”
“예?”
학파의 마법과 가문의 마법은 보안 수준이 천지 차이다. 지금까지 매저드는 그 선을 아슬아슬하게라도 지켜왔었는데.
“마침 시간이구먼.”
시계를 확인한 매저드 교수가 강의실 전면에 배치된 홀로보드를 조작해 외부입력으로 전환한다.
-건방진 자식. 네 주제를 알아라!
밝은 금발의 소년이 금과 은으로 치장된 로브를 입고 정면에 서 있다.
“스승님, 이거 혹시 실시간입니까?”
“물론이네. 내 근래에 새로 개발한 마법일세. 빛, 전기, 전송 학파의 마법을 조합했지. 어떤가?”
다시 한번 느낀다. 이 아카데미에 교직원으로 있는 노인들을 절대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특히 마법사는 더.
“대단하십니다.”
진짜로.
“자네가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안다네. 하지만 내 나이쯤 되면, 호기심 해소가 세간의 눈총보다 우선이라네. 자, 시작하는군.”
본인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애초에 세 학파의 조합마법을 할 수 있는 마법사가 존재할 리가 없으니 유출돼도 어쩔 수는 없을 테지.
문명이 시작된 이래 최고의 마학자라 불리는 매저드답다고 해야 하나.
오늘도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때에 귀로 익숙한 단어의 나열이 꽂힌다.
-거, 주둥이로 마법 쓰냐? 왜, 마우스 매직 학파라도 창설하게?
엥. 저거 저번 주에 내가 한 말인데.
치사하게 언데드로만 싸우느냐고 뭐라 씨부렁대길래 저렇게 쏘아붙이자 아무 말도 못 하더라.
“껄껄.”
내 어깨를 치며 웃는 매저드.
-이, 이…!
상대의 반응이 딱 초기 안토니오와 판박이다. 나이대도 비슷하고. 형제나 사촌인가.
“시작하는군. 잘 보게. 저게 골드우드 가문의 직계만 배울 수 있는 마법일세. 파훼법은-”
아니, 교수님. 아직 마법 발동도 안 했는데 파훼법을 말씀하시면…. 애초에 어떻게 아는 거야.
안토니오도 이 파훼법을 배웠는지 하늘에서 사선으로 날아오는 금빛의 창을 같은 색의 실드로 어렵지 않게 막아낸다.
“겉은 화려해도 배열은 생각보다 단순하다네, 솔직히 서프라이즈 매직이나 마찬가지야.”
내 예상인데. 골드우드 가문의 마법을 한낱 손장난으로 폄하하는 건 세상에서 이 사람뿐일 거다.
-그딴 마법으로는 내 옷깃조차 스칠 수 없다! 애송이!
턱을 들고 오만한 포즈를 취하는 골드우드. 어우야. 쟤 멘트 왜 저래. 아무리 그래도 저런 유치한 격장지계에 당하는 놈이 어딨어.
-감히!
저게…,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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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